불화이야기=고려외

아! 고려불화 = 5탄

백련암 2010. 11. 7. 13:00

시왕도(제8 평등왕)고려후기=비단에 색  *있는 곳 = 미국 개인 소장

 

시왕도(제10 오도전륜왕)고려후기=비단에 색  *있는 곳 = 미국 개인 소장

 

열폭으로 이루어진 시왕도 세트늬 일부로서, 각각 제1 진광왕<진광왕>, 제4  오관왕<오관왕>, 제5 염라왕<염라왕>, 제10 오도전륜왕<오도전륜왕>을 그리

그림이다.  = 이 세트는 예전에는 해리 패커드<1914-1991년> 소장본이었다가 흩어져 현재는 미국 하버드 아서새클러 박물관, 개인, 그리고 호놀룰루 예술대학

과 덴버미술관으로 분산 소장되었으며 총 9점이 남아 있다. 이처럼 지옥을 관장하는 열 명의 왕을 한 폭에 한 명씩 묘사하는 형식의 시왕도 남송대의 닝보에서

그려진 시왕도와는 달리 10세기 경의 둔황의 수권<手卷> 형식 시왕도의 도상을 많이 반영하고 있으며 닝보 시왕도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자극적인 지옥 장면

 등이 적다는 점이 특징이다.

 

고려불화 중에는 비교할 만한 작품이 적어 조심스러우나  이 시왕도의 세트가 고려불화일 가능성은 여러번 제시되어 왔다.  먼저 도상적으로는, 시왕도의 전거인

 『예수시왕칠경, 豫修十王七經』에서는 내하<奈河>를 건너는 장면이 본래 제2왕에 속하는데, 이 시왕도의 세트에서는제1왕에서 그려져 있다. 그런데 혼동이 13세기의 고려 해인사본<예수시왕생칠경변상도>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어, 지역적으로 일어난 혼동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또한 양식적으로 공간

구성이나 색채의 구사가 닝보에서 제작된 중국 시왕도와 상당히 다르고, 인물의 옷주름이나 사물의 선에 중첩하여 그린 금니선, 각종 금니 모양 등이  고려불화에

가까운 특징을 보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시왕도 세트가 고려불화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점이다.

※남송대 중국 닝보<寧波>에서 대규모 공방을 운영한 김처사<金處士>, 육신충<陸信忠>의 작품을 중심으로 일본에 많이 남아 있다.※

 

나한도(제15 아대다존자)고려 13세기=비단에 옅은색  *있는 곳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나한도는 보통의 고려불화와 달리 수묵담채로 그렸다. 두 명의 시자에 둘러싸여 앉아있는 존자는 굽은 허리와 얼굴의 주름살에서 나이 든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나 법을 설하듯 움직임이 느껴지는 입술과 생각에 잠긴 눈매, 희끗한 색채의 머리카락과 턱수염, 길고 흰 눈썹은 존자의 나이와 함께 오랜 세월의 수행의 깊이

를 드러내고 있다.

 

 

오백나한도(제23 천성존자)고려 1235년 =비단에 옅은 색  *있는 곳 = 일본 도쿄국립박물관<東京國立博物館> 소장

 

오백나한도(제92 수대장존자)고려 1235년 =비단에 옅은 색  *있는 곳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백나한도(제125 전보장존자)고려 1235년 =비단에 옅은 색  *있는 곳 = 국립중앙박물관소장

 

오백나한도(제145 희견존자)고려 1236년 =비단에 옅은 색  *있는 곳 = 국립중앙박물관소장

 

오백나한도(제170 혜군고존자)고려 1236년 =비단에 옅은 색  *있는 곳 = 국립중앙박물관소장

 

오백나한도(제329 원상주존자)고려 1235년 =비단에 옅은 색  *있는 곳 = 일암관<一岩館>소장

 

오백나한도(제357 의통존자)고려 1235-6년 =비단에 옅은 색  *있는 곳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백나한도(제427 원원만존자)고려 1236년 =비단에 옅은 색  *있는 곳 = 국립중앙박물관

 

오백나한도(제464 세공양존자)고려 1235-6년 =비단에 옅은 색  *있는 곳 = 미국 클리블랜드박물관 소장

 

= 나한들의 설명 =

나한을 주제로 하여 오백점이라는 다량의 세트로 제작했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하고 귀중한 사례이다. 화기에 의하면 제작시기는 乙未, 丙申 두 해에 걸쳐있는데

1235年에서 1236年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이번에 전시된 9점 중 간지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7점이다.   乙未年 즉 1235년 제작으로 추정되는 것은 제23

천성존자<天聖尊者>, 제92 수대장존자<守大藏尊者>, 제125 전보장존자<展寶藏尊者>, 제329 원상주존자<圓上周尊者>, 4점이고, 丙申年 즉 1236年 제작으로 생각

되는 것은 제145 희견존자<喜見尊者> 제170 혜군고존자<慧軍高尊者>, 제427 원원만존자<願圓滿尊者>, 3점이며, 나머지 2점인 제357 의통존자<義通尊者>,

제464 세공양존자<世供養尊者>, 는 명문이 남아 있지 않아 확실한 제작연도를 알 수 없다.   화면 상단에는 나한의 차례와 존명을 나타내는 묵서가 적혀 있다.

 

제23 천성존자 <第二十三 天聖尊者>, 는 화면이 어둡게 변색되었으나 그림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나한의 머리 위에 나뭇가지가 표현되어 있어, 앉은 곳은

나무 아래의 바위임을 알 수 있다. 나한의 앞에는 한 젊은 승려가 공손히 합장하고, 나한을 올려다보고 있다. 양손을 무릎 위에 포개고 앉아 승려를 내려다보는

 나한의 시선에서 자애로움이 느껴진다. 나한에 비해 승려는 매우 작게 표현되어 있어 주된 인물과 부수적 인물과 의 차이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제92 수대장존자<第九十二, 守大藏尊者>, v자 형태의 괴목을 등지고 둥글게 엮어 만든 의자에 앉아 있다. 두 손에 받쳐 든 작은 병에서는 수직으로 무언가

솟아오르고 있는데, 존자는 고개를 들어 그것을 올려다보고 있다. 이 작품은 다른 오백나한도 작품에 비해 금니를 많이 사용하여 광배를 금니로 둘렀을 뿐

아니라 가사에도 금강저문과 당초문을 금니로 그렸다. 옷주름 역시 기본적으로는 먹선을 이용하였으나, 그에 중첩하여 금니로 선을 그은 것을 볼 수 있다.

 

제125 전보장존자<第百二十五 展寶藏尊者>는 바위 위에 걸터 앉아 오른손에 정병을 들고 있다. 정병에서는 물줄기처럼 생긴 어떤 기운이 솟았다가 아래로

향하면서, 땅에 누워 장난을 치는 듯한 동물에게 로 떨어지고 있다. 존자는 눈을 크게 뜨고 동물 쪽을 응시하며, 그 동물을 부리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짙은 피부색과 둥글게 부릅뜬 눈, 두터운 입술은 존자의 품모를 이국적으로 보이게 하는 요소이다. 이 나한은 지금까지 '진보장존자<辰寶藏尊者>'로 소개되어

왔으나, 『오백성중청문』에는 제125번째 나한이 '전보장존자<展寶藏尊者>' 판독이 가능하다.

 

제329 원상주존자<第三百二十九  圓上周尊者>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나한의 부리부리한 눈매와 무릎을 힘주어 짚은 양팔의 근육 등에서 힘과 기운이 느껴진다.

나한의 시선은 화면 왼쪽 상단의 용을 향해 있으며, 눈빛으로 용을 제어하는 듯한 모습이다. 나한이 신통으로 용을 부리는 모습은 미국 클리블랜드박물관 소장에서도

볼 수 있으며, 중국의 나한도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도상이다. 미국 클리블랜드박물관 소장본은 화제 부분이 박락되어 '양존자<養尊者>' 부분밖에 남아있지 않으나, 『오백성중청문』과 대조하여 볼 때 제464번째 나한인 세공양존자<世供養尊者>로 추정된다.

 

빈도로존자상<고려 13세기> 높이 42cm *있는 곳 = 국립박물관 소장

 

빈도로존자<賓度盧尊者>는 십육나한 중의 첫 번째 나한의 이름이다. 대좌 앞면에 명문이 새겨져 있어 이 나한상이 빈도로존자이며 영통사<영통사> 승려에

의해 조성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영통사는 왕실의 진전<진전>이 설치 되었던 고려시대 주요 사찰 중 하나이다.  인상<인상>이 새겨진 사각의 대좌  위에 앉은

나한은 두건을 쓰고 拂子를 들고 있다. 나한의 얼굴과 몸매는 세장하게 표현되었으며 명상에 잠긴 듯 침잠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중국 元 작품 = 석가삼존도<중앙 석가모니불> = 비단에 색  *있는 곳 = 일본 니손인<二尊院>소장 **일본 중요문화재 

 

㉡ 중국 元 작품 = 석가삼존도<우측 = 보현보살> = 비단에 색  *있는 곳 = 일본 니손인<二尊院>소장 **일본 중요문화재 

 

㉢ 중국 元 작품 = 석가삼존도<좌측 = 문수보살> = 비단에 색  *있는 곳 = 일본 니손인<二尊院>소장 **일본 중요문화재 

 

대좌 위에 앉은 석가모니불 한 폭과 좌우에 문수. 보현보살을 한 폭씩그려 세 폭으로 구성한 석가삼존도이다. 이와 같은 구성의 석가삼존도는 현존하는 고려불화에서는

흔치 않으나, 동시대의 중국과 일본 불화에서는 상당히 성행하여 현재까지 많은 예를 볼 수 있다. 중앙에 석가모니불은 높은 대좌의 연꽃 위에 앉아 있으며, 옷자락이 연꽃의 꽃잎 사이사이로 늘어뜨려져 있다. 바탕은 녹색을 띤 황토색이며, 광배는 먹선과 흰색으로 그리고 내부를 옅은 황토색으로 바림하거나 귀 안쪽, 손안쪽 등을 분홍색으로 바린하여 표현하였다. 부처의 가사는 밝은 빨강에 녹색과 청록을 적절히 단계적으로 섞어 입체감을 표현하고 옷주름에 음영을 주었다. 옷단 등 부분적으로 흰색을 눈에 띄게 칠하여 음영을 주는 것은 중국 닝보불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장식적 효과이다.

 

문수보살은 사자 등 위의 구름에 얹혀진 연화좌에 앉아 여의를 들고 있고, 보현보살은 코끼리 등 위의 구름에 얹혀진 연화좌에 앉아 경책을 받친 연꽃가지를 들고 있다.

보살의 피부는 희고 여성적으로 표현 되었는데, 가는 먹선과 분홍빛을 띤 살구색을 겹쳐 윤곽선을 그렸다. 연꽃의 꽃잎에는 흰색과 분홍색을 단계적으로 섞어 화사한 느낌을 표현하였다. 승물인 사자와 코끼리, 그리고 사자와 코끼리의 고삐를 쥔 인물은 매우 세밀하고 장식적으로 표현하였다. 

 

출산석가도<중국 元>=비단에 색  * 있는 곳 = 일본 개인 소장

 

석가모니가 고행을 마치고 산에서 나오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석가모니의 머리 주변은 옅게 바림한 이중 먹선으로 두광을 그렸다. 가슴. 팔. 발 등 피부에 음영이

짙게 들어가고 털이 많이 나 있으며, 얼굴은 콧등이 높이 솟은 이국적인 인물형이다. 털은 가는 붓질로 한 올 한 올 터럭까지 표형하였다.

발은 고행을 금방 마친 듯 여위었고 발톱이 매우 길다. 옷에는 가늘고  일정한 금선으로 금강저문<金剛杵文>을 표현했으며, 무릎 앞부분의 일부에는 봉황문이,

옷단에는 당초문이 있다.

*출산석가도는 중국 송대 이후 선종계열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문헌 기록에 의하면 고려 불화로도 출산석가도가 그려졌다고 하며 이와 같은 출산석가도를 통해

그 모습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아미타불<중국 남송,南宋>=비단에 색  *있는 곳= 일본 곤렌지<金蓮寺>소장

 

송에서 전래된 경위서가 붙어 있는 입상의 아미타불도이다. 이 그림은 <유법사미타상. 喩法師彌陀像>이라고 전한다.  "유법사"란 '유미타법사'라 불렸던 송대의

정토승 사정<思淨, ?-1137년>으로, 일생 동안 수많은 아미타불도를 그렸다고 한다. 실제로 이 아미타불도가 그의 작품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현재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송대 아미타불도 중 하나로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현재는 어둡게 변색되고 색이 흐려져 형상ㅇ 또렷하지 않지만 육신부와 옷주름에 모두 먹선을 이용한 것으로보이며, 비수가 별로 없는 일정한 선을 구사하였다.

붉은색 가사를 입은 것은 고려불화에 그려진 부처의 모습과도 통하는 점이나, 문양은 고려불화에서 볼 수 없는 대형의 화문을 사용하였다.

 

시왕도<제5 염라대왕>중국 南宋 13세기=비단에  색  *있는 곳=일본 나라박물관<奈良國立博物館>소장,**일본 중요 문화재

 

시왕도<제6 변성대왕>중국 南宋 13세기=비단에 색  *있는 곳=일본 나라박물관<奈良國立博物館>소장,**일본 중요 문화재

 

**이 시왕도는 열 폭의 세트가 온전히 남아 있다**

 

아미타불도<중국 서하,西夏12-13세기>=비단에 색  *있는 곳 = 러시아 에르미타주작물관 소장

 

서하의 대도시 하라호토에서 발굴된 불화 중 하나이다. 서화불화는 크게 중국계와 티베트계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불화는 송의 영향을 받은 중국계 불화에 속한다.

아미타불은 오른손을 내밀고 왼손을 가슴앞에 들어 엄지와 약지를 맞댄 자세로 구름 위에 서 있다.  양발은 구름 위의 연화좌를 딛고 있는데, 왼발을 힘주어 딛고

있어 마치 남녀 예배자를 향해 전진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미타불의 머리 위에는 연꽃 세 송이가 구름에 감싸여 있고 그 아래에는 구슬 장식이 달려 있다.

매달린 구슬 장식은 뒤로 흔들리고 있어 아미타불의 속도감을 더해 준다.  머리 위를 장식하는 이와같은 장치는 서하의 아미타불도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대부분

꽃과 구름, 창공르 나는 악기 등으로 표현된다.  아미타불의 이마로부터 발하는 구불거리는 서기<瑞氣>는 남녀 예배자 위로 내려오고 있다.

남자 예배자는 손잡이가 달린 향로를 들고 여자 예배자는 두 손을 모은 자세이다. 이 아미타불은 왕생자를 맞이하는 것과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으나, 연화대를 들고

다가가는 보살이 없는 점, 예배자의 위에 왕생을 의미하는 어린아이가 표현되지 않은 점 등으로 볼 때 왕생자를 맞이하는 내영도라기 보다는 예배자 앞에

현신한 아미타불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아미타불도<중국 서하,西夏.2-13세기>= 세밀도

 

아미타삼존내영도<중국 西夏 13세기>= 면에 색  * 있는 곳= 러시아 에르미타주작물관 소장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세지보살이 구름을 타고 죽은 자를 맞이하러 오는 아미타삼존내영도이다. 중국계에 속하는 불화이다.

관음보살의 보관에는 화불이, 세지보살의 보관에는 정병이 있어 존격을 뚜렷이 드러내 준다. 나무 밑에 앉은 왕생자는 승려의 차림으로 두 손을 합장하고 있으며,

그의 머리에서 마치 영혼과 같은 빛줄기가 위로 발하고 있다. 빛줄기 속에는 왕생을 의미하는 어린아이가 막 연화대에 오르려 하고, 아미타불의 이마에서 발하는

서기가 내려와 어린아이를 감싸고 있다. 손을 내민 아미타불, 연화대를 들고 다가서는 보살, 그 앞의 왕생자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구도는 고려불화 중 <아미타 삼존도>

와 매우 가까워 오래 전부터 주목받았다.

 

수월관음도<중국 西夏 13세기>=면에 색  *있는 곳= 러시아 에르미타주작물관 소장

 

보타락가산의 암좌에 앉은 관음보살을 그린 수월관음도이다. 수월관음도의 등 뒤로는 암벽과 함께 나무 두 그루가 솟아나 있으나 나무의 종류는 불명확하다.

 

관경십육관변상도<조선 1465년>=비단에 색  *있는 곳= 일본 지온인<知恩院>소장

 

1465년 효령대군<孝寧大君 1396-1486년>과 월산대군<月山大君 1454-1488년>, 영응대군부인<永膺大君婦人>등이 선군<先君 태종 太宗,1367-1422년>의 명복을 빌고,

모든 고혼<孤魂>들이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하며 발원한 관경십육관변상도이다. 이것은 『관무량수경』의 내용 중 극락세계로 가기 위한 16가지 관상<觀想> 내용을

도해하였다.  이 불화에서는 고려시대 관경십육관 변상도에서 보이는 1관에서 16관에 해당하는 방제<旁題>가 사라지고, 아미타삼존의 명칭도 기록하지 않았다.

특히 중앙 아미타불의 극락회<極樂會>부분이 주요시되어 중앙에 아미타삼존이 크게 배치됨으로써 아미타불이 나타내는 극락왕생의 이미지를 더욱 강조하였다.

아미타불의 넙적한 얼굴, 큰 육계와 머리 중앙에 붉은 색의 중간 계주, 아미타불이 앉은 팔각의 화려한 대좌와 붉은 가사에 그려진 금니의 원형 문양 등은 고려시대

불화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인물의 이목구비가 얼굴에 비해 작게 표현되고, 허리가 길어져 세장한 느낌을 주는 점 등은 조선 전기 불화의 인물표현의 특징

을 보여주고 있다.  묘법<描法>에 있어서도 고려불화에 비해 섬세한 필치가 줄고, 연두색과 홍색 등 중간색이 사용되는 점등 조선 전기의 새로운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의 끝 부분에는"사직 이맹근이 공경스럽게 그립니다<敬畵司直李孟根>"이라는 화기가 적혀 있다. 이맹근은 도화서의 화원으로 사직<司直>의 벼슬을 지냈고, 이후

성종3년<1472년>에는 어진<御眞>을 그리는데 참여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화원으로소 역량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 불화는 연대 및 조성배경, 그림을 조성한 화원까지 명확히 알 수 있는 조선 초기 왕실발원 불화로서 큰 의미가 있다.

 

관경십육관변상도<조선 1465년> 세밀도

 

약사삼존도<조선 1565년>=비단에 금  *있는 곳=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의 경우 일광보살의 보관에는 월광을 상징하는 계수나무 아래 방아를 찧는 토끼의 모습을, 월광보살의 보관에는 일광을 상징하는

삼족오<三足烏>가 표현 되어 일광, 월광보살의 보관에아무런 표현이 되어 있지 않다.

 

동방 정유리세계에 계시며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없애며 현세의 복을 이루게 하는 부처님이신 약사여래와 협시보살을 그린 약사삼존도입니다.

병을 치유하는 약그릇을 왼손에 놓고 계신 약사여래와 좌우협시보살로 해와 달의 표식인 삼족오와 토끼가 그려진 보관을 쓰고 있는 일광 · 월광보살을

붉은색의 비단 바탕에 채색 없이 금니선으로만 그린 조선 중기 왕실발원 불화의 우수한 수준을 보여주는 아주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문정왕후는 1565년 중수 불사를 마친 회암사의 낙성식에 맞춰 병약한 아들 명종의 병세 회복과 건강, 세자의 탄생을 기원하며

석가 · 미륵 · 약사 · 아미타불화를 각각 금니화로 50폭, 채색화로 50폭을 제작하도록 하였다.

 

이불화는 그 때 조성된 400폭의 불화중의 하나입니다.

억불 숭유 정책을 시행하고 있던 시기였음에도 자식의 건강을 발원하며 공양을 올리는 왕실에서 행해졌던 불교 숭배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약사삼존도<조선 1565년> 세밀도

 

약사삼존도<조선 1565년>=비단에 금  *있는 곳=일본 도쿠가와미술관<德川美術館>소장

 

일본 도쿠가와미술관<德川美術館>소장본은 부처의 얼굴 및 육신부와 보살의 얼굴 부분에 박락이 심하고 부분적으로 보수한 흔적이 엿보인다. 

중앙에는 약사불이 오른손에 약합을 얹고 있으며 부처의 무릎 아래에 합장한 모습의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각각 향후측 향좌측에 배치하였다.

 

= 위 두 점의 총체 설명 =

약사삼존도 두점은 1565년 명종의 어머니였던 문정황후가 아들인 명종의 성수<聖壽>와 왕자의 탄생을 발원하며 회암사<檜巖寺> 중창에 맞춰 조성한 400점 중

일부이다.  문정황후는 화암사 중창이라는 큰 불사에 맞춰 불화의 조성도 대대적으로 발원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미타불. 미륵불의 네 부처를

금화 50점, 채화 50점씩 총 400점으로 제작하는 대형 불사의 발원이었다. 현재까지 현존하는 불화는 순금화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과 일본 도쿠가와미술관 소장본

두 점이 알려져 있고, 채색화로 일본 호주인<寶壽院>소장본과 류조인<龍乘院>, 일본 고젠지<江善寺> 미국 버크컬렉션 소장본 네 점이 알려져 있다.

400여 불화 가운데 여섯 점의 불화가 현존하고, 그 가운데 한 점만 이 국내에 있으므로 그 중요성은 자못 크다.

일본 도쿠가와미술관<德川美術館>소장본은 부처의 얼굴 및 육신부와 보살의 얼굴 부분에 박락이 심하고 부분적으로 보수한 흔적이 엿보인다. 

중앙에는 약사불이 오른손에 약합을 얹고 있으며 부처의 무릎 아래에 합장한 모습의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각각 향후측 향좌측에 배치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의 경우 일광보살의 보관에는 월광을 상징하는 계수나무 아래 방아를 찧는 토끼의 모습을, 월광보살의 보관에는 일광을 상징하는 삼족오

<삼족오>가 표현 되어 일광, 월광보살의 보관에아무런 표현이 되어 있지 않다.

 

석가설법도<조선 16세기>=비단에 금  *있는 곳=독일 쾰른 동아시아박물관 소장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석가설법도이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 보현보살, 범천과 제석천, 십대제자, 사천왕을 표현하였다.

조선 전기 석가 설법도는 16점 정도 알려져 있는데 형식에 있어서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고려시대에는 정토계 불화인 아미타불화가 다수 조성되는데 비하여 조선 전기에는 석가모니 불화가 등장하고, 그 수량이 타 불화에 비해 월등히 많아진다.

이것은 불교 신앙의 변화로 추측되는데, 고려말기 부터 유행하여 조선시대 가장 많이 간행된 『법화경』의 영향으로 생각 된다.

조선시대 『법화경』은 천태종뿐만 아니라 타 종파에 까지 범불교적으로 유통되었는데, 『법화경』의 서품은 석가모니불이 영취산에 모인 사람들에게  설법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작품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한 원형구도가 정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천인<범천, 제석천>과 두 보살<문수, 보현보살>의 도상은 유사하게 보이지만

부처의 바로 앞 목걸이와 팔찌 등 장신구를 착용한 도상이 문수. 보현보살이며, 그 뒤쪽으로 합장한 자세로 포 형태의 복식을 한 도상이 범천. 제석천이다.

 

이 작품은 화기가 없어 정확한 조성배경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양식적으로 볼 때 부처의 얼굴에서 이목구비가 중앙에 몰려 있는 점, 육계 정상 위로 보주가 있는 점,

보살상의 세장한 신체와 배경문양 등으로 보아 16세기 문정황후 발원 불화와 유사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사천왕은 모두 합장한 자세를 보이지만 향우측 하단

깃털이 달린 모자를 쓴 천왕이 북방 다문천왕으로 생각된다.

 

지장보살 시왕도

 

금빛 찬란한 고려불화…↑

 

정우택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11월2일 일본 야마나시(山梨)현의 사찰에서 1359년에 제작된 불화를 찾았다고 밝혔다.

비단 위에 아미타여래불과 관음ㆍ세지보살을 그린 ‘아미타삼존도로, 금가루(금니)로 그린 고려 불화가 나온 것은 최초의 일이다.

[불교신문 2863호/ 11월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