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를 만난 사람들] 18. 푼나
전법 위해선 죽음조차 두려워 않은 설법제일〈說法第一〉
대상인에서 부처님의 가르침 좇아 출가
고향 수나파란타로 돌아가 포교에 전념
사리풋타, 목갈라나, 마하캇사파, 아누룻다, 수부티, 캇차나, 우파리, 라후라, 아난다 그리고 푼나. 이른바 부처님의 10대 제자라 불리는 인물들이다. 사리풋타는 지혜, 목갈라나는 신통, 마하캇사파는 두타, 아누룻다는 천안, 수부티는 해공(解空), 캇차나는 논의,
우파리는 지계, 라후라는 밀행(密行), 아난다는 다문, 그리고 푼나<부루나존자>는 설법에 있어 각각 최고라 평가되는 그야말로 내놓으라 하는 대제자들이다.
그 명성만큼 이들에 얽힌 일화도 많아 불교문헌 곳곳에서 그들의 출가 전의 삶이나 출가 동기·과정, 그리고 출가 후 승가에서 생활하며 겪게 되는 갖가지 에피소드들을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바로 푼나, 즉, 부루나존자이다. 10대 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
되는 그이지만,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이상하리만치 관련 정보를 얻기 힘들다. 왜일까? 그 이유는 푼나의 삶에서 찾을 수 있었다.
부처님이 한창 활동하시던 무렵, 인도의 무역 상인들은 저 멀리 메소포타미아 지방까지 나가서 교역을 하는 등 매우 활발한 해상무역을 펼치고 있었다. 그 상인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높은 명성을 드날리며 상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자가 있었다. 바로 ‘푼나’라 불리는 대상인이었다. 해상무역을 통해 부의 축적을 꿈꾸는 상인들에게 있어 그는 갈망의 대상이었다. 인도 서해안에 위치한 수나파란타국의 항구 도시 숫파라카 출신이었던 그는 아버지 역시 장사로 많은 돈을 번 대장자였다.
그러나 아버지와 노비 사이에서 생긴 자식이었던 푼나는 아버지가 죽자 형제들 간 싸움에 밀려 한 푼의 재산도 나누어 받지 못한 채
쫓겨나고 말았다. 재산은 한 푼도 물려받지 못했지만, 대신 아버지로부터 상인으로서의 재주는 이어받았던 것일까.
무일푼으로 집을 나선 그였지만, 우연히 얻은 향나무를 자본으로 장사를 해서 큰 자산을 이루게 된다. 그 후 그는 해상무역을 전문으로 하는 대상인이 되었다.
몇 달 동안이나 거친 바다와 싸우며 미지의 세계에 나가 낯선 사람들과 무역을 해야 하는 힘든 일이었지만, 푼나는 힘과 용기로 거뜬하게 이 일들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그는 여섯 번이나 바다를 건너가 무역을 하여 큰 재산을 쌓았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명성은 저 멀리 코살라국의 사왓티에까지 퍼졌고, 그의 무용담을 들은 사왓티의 상인들은 재물을 들고 푼나를 찾아와 자신들도 해상무역에 참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했다. 이렇게 해서 푼나는 저 멀리 사왓티에서 찾아온 상인들과 함께 그의 생애 7번째 항해에 나서게 된다.
사리풋타도 인격·설법능력 존경
그런데 푼나는 사왓티에서 온 상인들이 매우 기이한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한 자리에 모여서는 무언가를 열심히 읊조리는 것이었다. 노래 같기도 하고 주문 같기도 하고 도무지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며칠을 눈여겨보던 푼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함께 노래를 부르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노래가 아닙니다.”
“그럼, 주문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무엇을 그렇게 매일 함께 읊조리시는 겁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저희들은 부처님께 귀의한 자들로 그 분의 가르침을 함께 되새기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활동하시던 중인도로부터 멀리 떨어진 인도의 서해안, 그리고 바다 위에서만 살아온 푼나는 아직 부처님에 대해 들은 바가 없었다. 호기심을 느낀 푼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부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석가족으로부터 출가하신 분입니다. 사문 고타마라 불리지요. 오랜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그 분을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그 분은….”
상인들의 입으로부터 줄줄이 흘러나오는 부처님에 대한 정보를 듣고 있노라니, 푼나의 몸과 마음이 왠지 모를 감동으로 전율했다.
“그 분은 지금 어디 계신가요?”
“코살라국의 사왓티시 근교에 있는 제타숲에서 수닷타장자가 세운 정사에 머물고 계십니다.”
이 항해가 끝나면 꼭 그 분을 찾아가 보리라. 푼나는 마음 한 구석에 부처님과의 만남을 그리며 길고도 긴 항해를 계속했다. 그들의 항해는 바빌론까지 이어졌고 큰 이익을 거두었다고 한다. 숫파라카로 돌아온 푼나는 여독을 풀 겨를도 없이 사왓티를 향해 길을 나섰다.
먼저 그가 찾은 것은 수닷타 장자였다.
“아니 장자께서 이 먼 길을 무슨 일이십니까? 특별한 무역이라도 있으십니까?”
놀라 묻는 수닷타에게 푼나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이번에 온 것은 장사 때문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자 입니다. 저를 그 분께 소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함께 부처님이 계신 기원정사를 찾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은 푼나는 그 즉시 출가하여 수행자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해상무역 등을 통해 낯선 사람들과 교류하며 그 마음을 움직여 매매를 성사시켜 온 화술이 빛을 발했던 것일까.
그의 화술은 그 어떤 제자와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다. 그의 설법을 들은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았고, 그 허물을 참회하며 진리의 통찰을 위해 노력했으며, 나아가 밝은 지혜를 얻게 되었다. 그가 설법제일이라 불리는 연유이다.
지혜제일이라 불리는 사리풋타조차 푼나의 인격과 설법 능력에는 경의를 표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푼나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출가하기 전 자신의 생활 터전이었던 수나파란타로 가서 아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지 못했을 그들을 위해 남은 생애를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출발을 앞두고 푼나는 인사를 드리기 위해 부처님을 찾았다.
“너는 도대체 어디로 가려 하느냐?”
“부처님, 저는 고향인 수나파란타에 가서 불법을 전하고자 합니다.”
자신이 태어난 곳에 가서 불법을 전하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문에 의하면 그 곳 사람들은 매우 사나운
기질을 지녔다고 한다. 걱정이 되신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푼나야, 수나파란타 사람들은 성질이 사납고 흉악하다고 하던데, 만약 그들이 너를 면전에서 조롱하거나 비난한다면 너는 어찌 하겠느냐?”
콘단냐 조카로 바라문 자제 설도
“부처님,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저는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수나파란타 사람들은 정말 착하구나. 주먹으로 나를 때리지는 않으니 이 얼마나 착한 사람들인가.’”
부처님께서는 다시 물으셨다.
“그렇다면 푼나야, 만약 그들이 주먹으로 너를 때린다면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때는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수나파란타 사람들은 정말 착하구나. 나에게 흙덩어리를 던지지 않으니 이 얼마나 착한 사람들인가.’”
“그렇다면 만약 그들이 너에게 흙덩어리를 던진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하겠느냐?”
“그때는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수나파란타 사람들은 정말 착하구나. 몽둥이로 나를 두들겨 패지는 않으니 이 얼마나 착한 사람들인가.’”
부처님은 또 물으셨다.
“그렇다면 푼나야, 만약 그들이 몽둥이로 너를 두들겨 팬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하겠느냐?”
“그때는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수나파란타 사람들은 정말 착하구나. 칼을 가지고 나를 해치지는 않으니 이 얼마나 착한 사람들인가.’”
마지막으로 부처님은 물으셨다.
“그렇다면 만약 그들이 칼로 너의 생명을 뺏는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하겠느냐?”
“부처님이시여, 부처님의 제자들 가운데는 그 몸을 혐오하고 그 목숨에 번민하여 스스로 칼을 들려 하는 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저는 스스로 구하지 않고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겠습니다.”
푼나의 굳은 의지를 확인하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푼나야, 좋다. 그 정도의 각오라면 수나파란타에 가서 법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가거라.”
이렇게 해서 푼나는 수나파란타로 갔고 그 해 500명을 불법에 귀의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같은 해 우기가 끝날 무렵,
아직 젊은 나이인 그는 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타고난 출신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빈 몸으로 세상 한 가운데로 내버려져 힘든 삶을
살아야 했지만,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성품으로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대상인으로 성공한 푼나. 그가 상인들의 이야기만을 듣고 부처님께 왜 그토록 강한 호감을 느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부처님과의 만남 역시 단호한 성격의 그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푼나는 부처님이 태어나신 고향에 있는 도나바투라는 바라문촌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어머니 만타니는 초전법륜의 5비구 가운데 한 명인 콘단냐의 여동생이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바라문의 자제로서 최상의 교육을 받으며 많은 공부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보다는 숫파라카의 해상 대무역가였다는 위의 전승에 훨씬 마음이 간다.
설법이란 단지 지식이 많다고 해서, 혹은 머리가 좋다고 해서만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지혜를 얻고 사람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얻은 그였기에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불법을 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부처님의 활동 무대 저 멀리 있던 숫파라카와 바다 위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부처님을 만났지만 다시 수나파란타로 가서 생애를 마쳤던 푼나. 그에 대한 기록이 적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설법을 통해 당시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던 그였기에, 또한 자신의 목숨까지 아낌없이 내놓는 최상의 인욕 정신으로 불법을 전하고자 한 용기 있는 그였기에 위대한 10대 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것이리라.
[붓다를 만난 사람들] 19. 마하파자파티
흔들림 없는 의지로 여성 출가의 문을 열다
언니 마야 부인을 대신해 싯다르타 양육
석가족 여인 500명 이끌고 승단에 귀의
성도 후, 고향 카필라성을 찾은 부처님에게 조심스레 옷을 건네며 받아주시기를 청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 집을 떠난 아들이 숲속이나 들판에서 수행하며 혹시 추위에 떨지는 않는지, 밤새도록 모기에 시달리지는 않는지, 노심초사하며 정성스럽게 짠 옷이었다. 항상 미녀들에게 둘러싸여 아름다운 옷과 장신구로 치장한 채 맛난 음식만을 먹던 아들이었다. 그 어디선가 홀로 쓸쓸히 누더기 옷을 걸친 채 거친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할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그녀의 가슴은 미어질 것만 같았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나중에 아들을 만나면 건네주리라 생각하며 옷을 지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마하파자파티, 즉, 부처님의 양모였다. 언니 마야(Mayā)와 함께 카필라성의 슛도다나왕에게 시집 온 그녀는 언니 마야가 출산 후 7일 만에 저 세상으로 떠나자, 그녀의 빈자리를 채우며 조카를 키웠다. 그 아기가 고타마 싯다르타. 바로 부처님이었다. 마하파자파티는 마치 자기가 낳은 자식처럼 소중하고도 소중하게 싯다르타를 키웠다. 싯다르타가 출가를 감행했을 때, 아버지 슛도다나왕보다 아내 야소다라보다 그녀는 더 비탄에 빠져 슬퍼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깊은 애정도 싯다르타의 진리를 향한 애타는 갈증을 해소시켜주지는 못한 듯, 결국 싯다르타는 출가의 길을 선택했다. 길고도 힘든 시간이 흐른 뒤, 이제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는 각자가 되어 고향을 찾은 아들이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그런 아들에게 자신의 슬픔과 기다림이 담긴 옷을 내민 것이었다.
“부처님, 당신을 위해 제가 직접 지은 옷입니다. 부디 받아 주십시오.”
하지만, 부처님은 거절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옷을 내게 주지 말고 승가에 보시해 주십시오. 승가에 보시하면 내가 공양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마하파자파티는 선뜻 그 말에 따를 수 없었다. 일찍이 자신의 품속에서 고이고이 길렀던 아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담긴 옷이었다. 그런 옷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세 번이나 반복해서 받아주시기를 간곡히 청했다. 그러나 부처님의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곁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아난다가 나서 마하파자파티를 설득했고, 그녀는 부처님의 뜻을 이해하며 옷을 승가에 보시했다. 양모의 따뜻한 마음을 모를 리 없는 부처님이지만, 오히려 그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보시의 본질을 일깨우며 그녀가 더 큰 공덕을 쌓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고 싶으셨던 것이리라.
팔경법 수지 약속하고 출가 허락
부처님께서 고향을 찾으신 후 샤카족의 젊은이들은 뒤를 이어 출가했다. 아난다, 아누룻다, 데와닷타, 밧디야, 바구 등을 비롯하여 부처님의 친아들인 라후라와 이복형제 난다마저 출가했다. 난다는 마하파자파티의 아들이었다. 싯다르타에 이어 난다까지 떠나보낸 마하파자파티, 그리고 남편에 이어 아들 라후라까지 출가시킨 야소다라. 이 두 여인을 비롯하여 카필라성에는 남편이나 아들의 출가로 많은 여인들이 홀로 남게 되었다. 게다가 슛도다나왕까지 죽어버리자, 카필라성에는 여인들의 온기만이 떠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결심한 듯, 마하파자파티는 카필라성 교외의 니그로다동산에 머물고 계신 부처님을 찾아갔다. 남편도 아들도 없는 곳에서 더 이상 머물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며 진정한 의지처에 대한 동경도 생겼던 터였다. 그녀는 부처님께 청을 드렸다.
“부처님이시여, 부디 여인도 출가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부처님은 단호히 이를 거절하셨다. 거듭 세 번에 걸쳐 간절히 청을 드렸지만, 부처님의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부처님은 완강하게 거절하셨다. 크게 낙담한 마하파자파티는 울면서 돌아갔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후 부처님이 카필라성을 떠나 웨살리마을로 유행을 떠나시자, 마하파자파티는 머리카락을 자르고 가사를 걸친 채, 500명의 석가족 여성들과 더불어 부처님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부처님이 머물고 계시는 대림중각강당의 문 앞에서 울며 서 있었다. 익숙지 않은 긴 여행으로 발은 퉁퉁 부어오르고 얼굴은 눈물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다. 측은한 마음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아난다는 부처님께 그녀들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부처님의 대답은 다름없었다. 그러자 아난다는 이렇게 물었다.
“부처님, 만약 여인이 이 가르침을 따라 출가하여 수행한다면 예류과·일래과·불환과·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습니까?”
“아난다야, 만약 여인이 이 가르침을 따라 출가하여 수행한다면 예류과·일래과·불환과·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획득하는 능력에 있어 여성이 남성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여 여성의 출가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난다는 부처님의 대답을 받아, 만약 그러하다면 마하파자파티가 양모로 젖을 주어 부처님을 기른 은혜를 생각하여 여성의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애원했다. 그의 말에 마음이 움직인 부처님은 결국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게 된다. 단, 팔경법(八敬法)이라 불리는 8종의 법을 평생 지킨다는 조건 하에서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비구니는 구족계를 받은 지 백세가 되어도 오늘 구족계를 받은 비구를 예경하고, 일어나서 맞이하며, 합장하고, 공경해야 한다. 둘째, 비구니는 비구가 없는 주처에서 우기를 보내서는 안 된다. 셋째, 비구니는 보름마다 비구승가에 두 가지 법을 청해야 한다. 즉, 포살을 묻는 것과 교계에 가는 것이다. 넷째, 비구니는 우안거가 끝나면 비구승가와 비구니승가의 양 승가에서 보고, 듣고, 의심 가는 세 가지 일에 대해 자자를 행해야 한다.
부처님 입멸 3개월 전 사선에 들어
다섯째, 비구니가 경법(敬法)을 범하면 양 승가에서 보름동안 마낫타(mānatta)를 행해야 한다. 여섯째, 식차마나가 2년 동안 6법의 학처를 배우고 나면 양 승가에서 구족계를 구해야 한다. 일곱째, 어떤 수단에 의해서도 비구를 욕하거나 꾸짖어서는 안 된다. 여덟 째, 오늘부터 비구니의 비구에 대한 언로(言路)는 폐쇄되고, 비구의 비구니에 대한 언로는 폐쇄되지 않는다. 이 8종의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고, 봉사하되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난다는 마하파자파티를 찾아가 만약 이 8종의 법을 지킨다면 부처님께서 출가를 허락하신다고 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녀는 “장식을 좋아하는 젊은 남녀가 머리를 감고 각종의 아름다운 꽃으로 머리를 장식하듯이, 저는 이 여덟 가지 조항을 평생 소중하게 지키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며 받아들였다. 이 팔경법은 곧 그녀의 구족계가 되었고, 이렇게 해서 최초의 비구니가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이어 그녀와 함께 했던 500명의 석가족 여성들이 구족계를 받아들면서 비구니승가가 성립하게 된다. 아마도 비구승가 성립 후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던 것 같다.
이 팔경법에 의하면 비구니의 지위는 비구보다 낮고, 비구가 나쁜 행동을 했을 때조차 비구니는 이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물론 반대의 경우는 인정된다. 그리고 비구와 비구니는 보통 따로 승가를 형성하여 자치적으로 운영되지만, 안거나 포살, 자자와 같은 승가의 중요한 정기행사, 승잔죄를 저지른 자에게 부과되는 마낫타라 불리는 근신 기간, 비구니가 되기 위해 받는 구족계 등의 경우에는 비구니 승가의 자치가 인정되지 않고 반드시 비구승가의 지도나 감독을 받아야 한다.
부처님이 왜 여성의 출가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는가, 왜 성차별이라고도 받아들일 수 있는 팔경법을 조건으로 세웠는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여성출가자를 받아들였을 때 당시 인도사회에 만연하고 있던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로 인해 발생할 승가 내외의 파문, 여성의 육체적인 특수성에 의한 수행 생활의 어려움을 고려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문제, 신참자로서의 비구니에게 선배인 비구의 지도를 받게 하고자 하는 배려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금욕생활을 지켜 수행하는 것을 중요시하고 있던 남성 중심의 승가에 애욕의 대상인 여성이 들어오는 것에 의해 발생할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염려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팔경법이라는 제도적인 장치를 둠으로써 남성 출가자와 여성 출가자 사이에 상하 관계에 근거한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여하튼 당시 인도의 상황을 고려할 때, 여성의 출가는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아난다의 설득에서 엿볼 수 있듯이, 어쩌면 이는 부처님의 양모이기에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이미 고령의 상태에서 출가한 마하파자파티이지만, 열심히 수행하여 성자의 경지에 도달했고, 모든 면에서 다른 비구니들의 모범이 되었다. 자신의 청을 받아들여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신 부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항상 그녀를 긴장하게 만들었던 것이리라. 그렇게 20여년의 세월을 보낸 후,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난 것은 부처님의 입멸 3개월 전이었다. 사리풋타나 목갈라나처럼 그녀 역시 부처님의 입멸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웨살리의 강당으로 돌아가 조용히 문을 잠근 그녀는 대신변을 일으킨 후 사선(四禪)에 들어 입멸했다고 한다.
마하파자파티 그녀가 없었다면 어쩌면 비구니는 탄생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의 존재는 더욱 특별하다. 핏덩이 싯다르타를 따뜻하게 품에 안은 순간, 그 애처로운 생명을 소중히 돌보며 애정을 쏟아갔던 시간, 남은 생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겠다는 용기를 내고 정진했던 날들…. 그녀와 부처님의 만남이 그 어떤 경우보다 각별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붓다를 만난 사람들] 20. 마간디야
욕망에 사로잡혀 음해 일삼다 죽임 당해
부처님과의 만남은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안과 삶의 위안을 안겨 주었지만, 때로는 그 소중한 만남 속에서도 미처 진리를 발견하지 못한 채 탐진치의 우리 속에 자신을 가두고 고통의 시간을 보낸 안타까운 사례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마간디야이다.
마간디야는 쿠루국의 한 바라문의 딸이었다.
빛나는 외모로 인해 어릴 적부터 사람들의 찬사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란 탓일까. 오만방자한 성품이 이를 데 없었다. 결혼 적령기에 이른 아름다운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인도 곳곳에서 내로라 하는 집안의 청년들이 몰려들었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마간디야의 아버지 역시 딸과 어울릴만한 멋진 사위를 찾기 위해 혈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간디야의 아버지는 우연히 마을에서 탁발을 하고 있던 한 수행자를 발견했다. 빛나는 외모에 위엄 있는 모습…. 바로 부처님이었다.
자신의 사위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 바라문은 아름답게 장식한 마간디야를 데리고 부처님을 찾아가 자신의 딸과 결혼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출가해서 수행할 때 악마 마라는 내 수행을 방해하려고 계속 따라다녔다. 내가 네란자라강가의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자
그는 절세미인인 3명의 딸을 보내어 나를 유혹하려 했지만, 내게는 그녀들과 음욕을 행하고 싶다는 손톱만큼의 욕망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라 해도 결국 똥오줌으로 가득 차 있는 육체…. 도대체 이 여인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그녀의 몸에 손가락 하나 대고 싶은 욕망이 없구나.”
부처님의 대답을 들은 마간디야는 엄청난 수치심을 느끼며 분노했다.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며 부러워했던 자신을 분뇨로 가득 찬,
손도 대고 싶지 않은 여자로 몰아버린 이 자를 도대체 어떻게 응징하면 좋을까. 그녀는 부들부들 떨며 언젠가 반드시 혹독하게 되갚아 주리라 복수를 다짐했다.
한편, 이때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한 마간디야의 아버지는 그 길로 출가해 버렸다. 그녀는 숙부에게 맡겨졌는데, 훗날 그 아름다운 미모에 반한 우데나(Udena, 優塡)왕이 데려다 왕비로 삼았다. 우데나는 당시 인도의 5대 국왕 가운데 한명으로 꼽히던 왕으로, 갠지스강과 야무나강을 양쪽으로 끼고 위치한 밤사국의 수도 코삼비를 통치하고 있었다. 왕에게는 이미 사마와티(Sāmāvatī)라는 어질고 현명한 왕비가 있었다. 사마와티는 코삼비원을 지어 부처님과 승가에 보시했던 바로 그 유명한 고시타 장자의 양녀이다.
부처님께 청혼 거절당하자 복수 다짐
그녀의 아버지는 밧다와티의 대부호 밧다와티야로 고시타 장자와는 친구였다. 밧다와티에 전염병이 돌자 친구 고시타에게 의지하고자 가족 모두 코삼비로 피난을 떠났지만, 도중에 밧다와티야와 아내는 죽고 우여곡절 끝에 사마와티만이 고시타가 마련한 급식소에 이르렀다. 당장 고시타를 만날 수 없었던 사마와티는 며칠 동안 음식을 얻어먹으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보고 있자니 입구도 출구도 없는 급식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었다.
사마와티는 급식소의 관리자에게 칸막이를 세워 입구와 출구를 구분할 것을 제안하였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관리인으로부터 이 상황을 보고받은 고시타는 그녀를 눈여겨보았고, 그녀가 다름 아닌 자신의 친구 밧다와티야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그녀는 고시타의 양녀가 되었다. 우데나왕은 우연히 목욕하러 강으로 향하는 사마와티의 모습을 보고 첫눈에 빠져 왕비로 삼았다고 한다.
한편, 왕비가 된 마간디야의 욕망은 끝을 모르고 치달렸다. 타고난 미모와 가문, 게다가 한 나라의 왕의 사랑을 얻어 왕비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녀지만, 오만한 성격과 불같은 질투심은 그녀를 평온하게 두지 않았다. 특히 사마와티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하루 빨리 사마와티를 없애고 자신이 제1왕비로 등극할 날만을 꿈꾸며 욕망을 불태웠다. 하지만 현명하고도 자비로운 언행으로 왕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신뢰를 듬뿍 받고 있던 사마와티를 몰아내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간디야는 사마와티를 궁지에 몰아넣을 트집거리를 찾아냈다.
사마와티에게는 쿳줏타라(Khujjuttarā)라는 시녀가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곱추였기 때문에 쿳자 즉, 곱추 웃타라라 불렸다. 우데나왕은 항상 쿳줏타라에게 8개의 동전을 주며 꽃을 사서 사마와티에게 전해주도록 했다. 사랑하는 사마와티에 대한 왕의 배려였다. 그런데 어느 날 쿳줏타라는 평소 가지고 오던 꽃보다 배나 되는 양의 꽃을 들고 와서 사마와티에 주었다. 사마와티가 그 연유를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왕이 준 8개의 동전 가운데 항상 4개 만 꽃을 사는데 쓰고 나머지는 제가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꽃을 사러 수마나의 집으로 갔더니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고 계셨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얼마나 감동적이던지….”
쿳줏타라는 부처님께서 악행을 멈추고 모든 사람에게 항상 자비를 베풀라고 하셨다며, 그 말씀에 지금까지의 자신의 악행을 깊이 반성하며 오늘은 8개 동전만큼 전부 꽃을 사왔다고 했다. 이미 고시타 장자의 영향으로 불교에 귀의하고 있었으나 왕궁에 들어온 후 좀처럼 부처님의 법을 들을 기회가 없어 아쉬워하던 차에, 사마와티는 그녀에게 부탁했다.
“앞으로 다른 일은 하지 말고, 너는 그저 부처님을 찾아가 설법을 듣고 잘 기억해서 내게 설해주렴.”
왕비 사마와티 살해해 땅 속에 유폐
그날 이후 쿳줏타라는 열심히 부처님의 법을 사마와티와 궁녀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했고, 덕분에 쿳줏타라는 훗날 부처님으로부터 박식제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또한 사마와티가 부처님을 뵙고 싶다고 하자 쿳줏따라는 궁전의 담에 구멍을 뚫어 지나가는 부처님을 보게 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 모든 행동들은 마간디야가 궁중 곳곳에 풀어놓은 첩자들에 의해 그녀에게 보고되고 있었다. 드디어 때는 왔다.
사마와티가 열심히 법을 전해 듣는 사람이 다름 아닌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예전의 그 치욕스러운 기억을 떠올렸다.
증오의 대상인 두 사람을 동시에 없애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여긴 마간디야는 우데나왕에게 거짓말을 고했다.
“사마와티는 은밀히 시녀 웃타라를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보내곤 합니다. 두 사람이 정을 통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벽에다 구멍을 뚫어놓고는 부처님이 지나가실 때마다 그 구멍으로 목이 빠져라 내다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정숙하고 반듯한 사마와티였기에 왕은 그녀를 찾아 자초지종을 듣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나 마간디야의 끊임없는 계략에 우데나왕도 순간 이성을 잃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느 축제의 날, 궁중의 500명의 여인들이 모두 모였으나 사마와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마간디야는 “사마와티도 참석하라고 하세요”라며 왕을 부추겼다.
거듭 세 번에 걸친 부름에도 응하지 않자, 왕은 대노하며 사람을 시켜 사마와티를 끌어 냈다. 그리고 기둥에 묶어 세워둔 채 그녀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영문을 몰라 당황했지만 사마와티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왕은 직접 활시위를 당겼으나 화살은 도리어 왕을 향해 되돌아와 그 앞에 떨어졌다. 다시 쏘아도 다시 왕을 향해 날아왔다. 두려움을 느낀 왕은 그녀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엇이 너를 지켜주는 것이냐?”
“저는 그저 여래를 의지하고, 삼보에 귀의하여, 팔재계를 실천하고 있을 뿐입니다. 화살을 맞지 않는 것은 부처님께서 보살펴 주시기 때문이겠지요.”
이 말을 들은 우데나왕은 분노와 두려움을 거두고, 그녀에게 편안히 정사를 방문하여 부처님의 법을 듣도록 허락했다. 그리고 자신도
이 사건을 계기로 불교에 귀의했다고 한다. 마간디야는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갖가지 욕망으로 가득 찬 마간디야의 혼탁한 마음을 들여다 본 우데나왕은 이제 더 이상 그녀에게 애틋한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왕의 총애마저 잃어버린 그녀는 이성을 잃었다.
어느 날 왕이 적국에 병난이 일어나 스스로 출정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숙부와 공모하여 사마와티와 시녀들을 모두 한 방에 가두고 불에 태워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결국 이 음모는 발각되었고 대노한 우데나왕은 마간디야의 숙부는 외국으로 추방하고, 마간디야는 땅속 굴에 유폐시켰다고 한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숙부와 하인들은 불에 태워죽이고, 마간디아는 그녀의 살을 도려내어 펄펄 끓인 기름에 튀겨 스스로 먹게 한 후 마지막에는 기름에 조렸다고도 한다. 사마와티를 잃은 슬픔과 천인공노할 악행을 저지른 마간디야에 대한 왕의 분노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부처님이 던진 말 속에서 진리를 발견했다면 그녀 자신도, 그리고 그녀와 얽힌 주변 사람들도 이렇게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이하지는
않았으련만…. 아무리 아름다운 육체라 한들 결코 의지할 만한 것은 못된다고 하는 이 평범한 진리를 자기애가 너무 강했던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일까. 그녀의 마음을 뒤덮은 탐진치의 어둡고도 깊은 번뇌는 결국 그녀를 돌이킬 수 없는 자멸의 길로 몰아넣었다.
부처님과의 만남이 그 누구보다 아쉽게 끝난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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