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이야기=고려외

개성 경천사 십층석탑. 국보 제86호. 시 대 = 고려시대

백련암 2011. 5. 26. 14:06

용산중앙박물관에 갔다왔다 요즘법화경공부를 하다보니 탑(견보탑품= 見寶塔品)에 대해서 나와 있어 파고다 공원 원각사 10층석탑

(圓覺寺址十層石塔, 국보 제 2호)과 개성에 있는 경천사 10층석탑에 대해서 공부를 하다보니 찾아나서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볼 수있는 아름다운 탑은 단 두점밖에 없단다 원각사 10층석탑과 경천사 10층석탑 뿐이란다. 

원각사 10층석탑은 개성 경천사 10층석탑보다 무려 120년 후에 나온것이다.

 

= 경천사 십층석탑(敬天寺 十層石塔) =

◈ 탑은 고려 충목왕(忠穆王) 4년인 1348년에 대리석을 재료로 하여 세운 십층석탑이다.

고려시대 목조건물에 다포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당시 불교 교리와 사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기단부는 사면이 튀어나온 亞字형으로 사자(獅子) 서유기(西遊記) 나한(羅漢) 등의 조각이 있다. 

난간과 탑신 그리고 지붕으로 이루어진 탑신부는 목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1층부터 4층까지는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과 같이 불교에서 중요시되는 여러장면을 묘사한 16회상이 조각되어 있다.

     지붕에는 각각이 어떤장면 인지를 알려주는 현판이 달려있다.

5층부터 10층까지는 다섯분 혹은 세분의 부처를 빈틈없이 조각하였다. 상륜부는 원래의 모습을 알 수없어 박공 형태의 지붕만을 복원 하였다.

 

이탑은 1907년에 일본의 궁내대신 다나카(田中光顯)가 일본으로 밀 반출하였으나, 영국 언론인 E, 베델과 미국 언론인 H, 헐버트 등

   의 노력에 의해 1918년에 반환되었다.

   1960년에 이르러 경복궁에 복원 되었으나, 산성비와 풍화작용에 의해 보존상의 문제점이 드러나 1995년에 해체 되었다.

   국립박물관에서는 2005년 새 박물관 개관에 맞춰 "역사의 길"에 복원 하였다. 

 

경천사는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에 있던 절로, 고려시대 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에 세워져 있었던 이 탑은 일제 시대에 일본으로 무단으로 반출되었던 것을 되돌려 받아 1960년에 경복궁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 놓았다.

3단으로 된 기단은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고, 그 위로 올려진 10층의 높은 탑신 역시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이었다가,

4층에 이르러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기단과 탑신에는 화려한 조각이 가득 차 있는데, 부처, 보살, 풀꽃무늬 등이 뛰어난 조각수법으로 새겨져 있다.

4층부터는 각 몸돌마다 난간을 돌리고, 지붕돌은 옆에서 보아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형태의 기와골을 표현해 놓는 등

목조건축을 연상케 하는 풍부한 조각들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탑의 1층 몸돌에 고려 충목왕 4년(1348)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 만들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새로운 양식의 석탑이 많이 출현했던

고려시대에서도 특수한 형태를 자랑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특이하다.

전체적인 균형과 세부적인 조각수법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태로 눈길을 끌며, 지붕돌의 처마가 목조건축의 구조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어 당시의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이러한 양식은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원각사지십층석탑(국보 제2호)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일본으로 반출되면서 훼손되었던 원래의 탑 형태를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복원작업을 거쳐 현재 새로 개관한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자연과 함께 있을때 경천석탑(가을) 너무 잘 어울린다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다 이런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경천사 십층석탑 = 국보 제86호.   시 대 = 고려시대 "보존을 위해 갇혀있는 탑"

 

 

 

상단부분

 

 

 

 

 

 

하단부분

 

 

반대쪽 전신

 

 

 

반대쪽 상단

 

 

반대쪽 하단

 

 

겨울의 끝자락에서...

 

 

3층에서 내려다 본 석탑

 

 

 

 

 

 

전시장 쪽에서...

 

 

 

 

2층 에서... 위에서 아래로.

경천사지 10층 석탑 : 국보 제 86호    시대 = 고려 충목왕 4년(1348년)

경천사지 10층석탑은 원래 개성 경천사지에 세워져 있었는데, 1909년경 우리나라에 대사로 와 있던 일본대신 다나카에 의해 불법으로 해체되어

동경으로 반출되었습니다. 그 뒤 1918년에 반환되어 오랫동안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방치되었다가 1959년  재건, 1960년 완공 되어

경복궁에 전시되었으나, 산성비와 풍화작용에 의해 보존상의 문제점이 드러나, 1995년 해체되어

문화재연구소 · 한국자원연구소 · 원자력연구소의 공동작압으로 완벽 보존처리되어,

2005년 신축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지금까지 상설전시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

탑의 1층부터 ~ 4층까지는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과 같이 불교에서 중요시 되는 여러 장면이 조각되어 있고,

지붕에는 각각이 어떤 장면인지를 알려주는 현판이 달려있습니다.

 

5층부터 ~ 10층까지는 다섯 분 혹은 세분의 부처를 빈틈없이 조각하였습니다.

 

탑의 1층에 새겨진 명문에는 고려 충목왕 4년(1348년)이라는 건립연대와

"원나라의 황제와 고려 왕실의 안위를 기원하며 다 같이  불도를 이루기를 기원한다."는 조성배경이 새겨져 있습니다.

 

당시 중국은 원의 순제(順帝)가 집정하던시기였는데, 순제의 부인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려인 기황후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개경에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경천사에 원의 번영과 고려왕실의 천수만세를 기원하는 대리석탑을 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