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이야기=고려외

보살들과 칠지도, 흙으로 빚은 부처들, 금강령 등

백련암 2011. 5. 28. 05:05

보살상(菩薩像)

보살은 본래 석가보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부처가 되기 이전의 단계를 가르킨다.

대승불교에서 보살은 그 수행면에서 부처에 버금가는 초고의 존재로서, 소승불교의 아라한(나한)과 같은 높은 지위에 위치한다.

보살은 아라한과 달리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이 세상에 머물며 중생을 구제하는 역할을 한다.

즉 보살은 부처와 중생을 연결해주는 중간자적인 존재다.

보살의 종류에는 부처의 본성인 지혜와 실천을 상징하는 문수와 보현이 있는가 하면, 흰두교적인 신격에 영향을 받은 관음이 있다.

보살의 기본적인 형태는 머리를 묶고 보관(寶冠)을 쓰며 화려한 장신구와 천의(天衣)를 걸친 귀인(貴人)의 모습을 띤다.

아룰러 손에는 각각의 보살을 상징하는 지물(持物)을 지니고 있다.

 

 

연꽃봉오리를 쥐고 있는 보살상 = 金銅菩薩 座像, 高麗 後期

두 어깨를 감싸는 통견의 법의를 입고 몸 전체에 화려한 장신구를 한 보살상이다.  둥근 얼굴에 아래로 내려 감은 듯한 눈은 조용히 명상에 잠긴 듯하다.

머리에는 윗부분이 덜어져 나간 상투모양의 보계가 남아 있다.  왼손에는 연꽃봉오리가 쥐여 있고, 오른 손은 가슴 쪽까지 올라와 있다.

 

 

 명상에 잠긴 듯한 보살상 = 金銅菩薩坐像, 高麗後期

깊이 명상에 잠긴 듯한 보살상이다. 머리카락을 높이 틀어 올린 상투모양의 보계는 당시 보살상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배 부근에 노출된 속옷과 띠 매듭, 무릎 옆으로 내린 소맷자락의 형태,

왼쪽 무릎을 덮은 나뭇잎꼴 옷자락 등은 같은 시기 여래상에서도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온화한 표정의 보살상 = 金銅菩薩坐像, 高麗後期

생각하고 있는 듯한 온화한 표정의 보살상이다. 머리카락은 상투처럼 높이 틀어 올린 후 두 귀 옆으로 다시 몇가닥을 드리워 내렸다.

가슴과 배, 다리에는 화려한 장식을 걸쳤으며, 두 손은 각각 엄지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굽혀 중행을 구제하려는 염원을 나타냈다.

동으로 주조한 후 표면에 금박을 잘 입히기 우하여 검은색의 칠을 발랐다.

 

  

 

 

 

 

 흙으로 만든 부처와 보살 = 元五里寺址 주조불,      1937년 평안남도 원오리 옛 절터의 발굴

 

 

 

흙으로 만든 부처와 보살 = 元五里寺址 주조불,      1937년 평안남도 원오리 옛 절터의 발굴

 

 

금강령(金剛鈴)

금강령은 법회에서 의식을 행할 때 흔들어 소리를 내는 도구이다.

손잡이가 금강저 형태로 표현되었으며, 손잡이 끝의 돌출한 부분의 갯수에 따라 독고령(獨鈷鈴), 삼고령(三鈷鈴), 오고령(五鈷鈴)으로 나뉜다.

고려 후기 중국 원과 교류하면서 유입된 라마교의 영향으로 금강령과 같은 밀교법구가 유행하였다.

 

 

금강령(金剛鈴)

 

 

 

칠지도(七支刀) 철 = 삼국시대(백제) = (三國時代, 百濟) 4 세기(世紀)

 

태화 4년 5월 16일 병오일 한낮에 백번이나 달구어 두두려 만든 강철로 철지도를 제작하였다.

<이 칼은>여러군대를 물리칠 수있어 우왕에게 주기에 알맞다. □□□□ 가 만들었다.

 

선세이래 미유차도 백제왕세자 기생성음 고위왜왕 지조전 시후세<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濟王世子 奇生성音 故爲倭王 旨造傳 示後世>

이전에 이런 칼이 없었으나 백제 왕세자가 특별히 왜왕을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 보이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