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도깨비·짐승 얼굴요?…용의 얼굴입니다.
안압지 출토 용면와
고구려 벽화 통해 용에 다가가
1997년 여름 어느 날, 경주박물관의 성덕대왕신종의 용을 살피는데 너무 거대하여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는데
앞에서는 두 눈이 보이지 않고 옆으로 가야 깊숙이 들어간 두 눈을 겨우 볼 수 있었다. 그러니 용이 얼굴을 정면에서 보면 전모가 보이지
않고 표현할 수도 없다.
그 순간 깜짝 놀라며 아, 우리가 지금까지 불러온 귀면 혹은 도깨비가 바로 용의 얼굴을 펼쳐서 표현한 것이라는 것이 천둥치듯 가슴에 울려왔다. 이어 우리가 그 헤아릴 수 없는 일본과 한국의 귀면(鬼面)과 중국의 수면(獸面) 모두가 용의 얼굴로 바뀌는 찰나였다.
1997년 8월8일이었다. 그 날까지 이 지구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귀신의 얼굴을 의심한 사람도 없었으며 더구나 용의 얼굴로 인식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왜냐하면 뱀의 정면 얼굴이 불가능한 것처럼 용의 정면 얼굴은 표현할 수 없다고 굳게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어사전은 물론 한글사전이나 한문사전에는 귀면(鬼面)은 있어도 아예 용면(龍面)이란 단어는 없으므로 용면(龍面)이나
용면와(龍面瓦)란 용어는 내가 만든 셈이다. 2000년 경주박물관 강당에서 용면와를 주제로 택하여 정년퇴임 기념으로 강연했다.
그 이후로 단지 기와의 귀면이 용면으로 바뀌는 문제만이 아니고, 나의 학문은 대전환을 일으키기 시작하였으며 무슨 힘에 이끌려
이어서 고구려벽화를 연구하기 시작하여 10년째에 이르고 있다. 그것은 나의 학문뿐만 아니라 동양미술사연구의 대전환이었으며,
더 나아가 세계미술사 연구의 대전환점을 마련한 것이다. 인류의 미술이 새로이 탄생하는 감격적인 사건이었다.
통일신라 월지 출토 기와 관심
채색분석 통해 용을 조형 분석
이 연재를 계속하는 동안 여러분은 귀면이 용면으로 바뀌는 것이 얼마나 충격적인 사건이며, 동시에 용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아 용 연구모임을 만들어 용의 조형과 상징에 대하여 계속 공부하여 오고 있다.
그 이후로 나의 학문을 빠른 속도로 변화하여 무한히 확대되고 무한히 심화되어오고 있지만, 그대로 귀면을 고집하고 용의 얼굴임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10년 전, 아니 100년 전과 같은 상태에 머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문적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고 하겠다.
그래서 안타까운 나머지 사명감을 가지고 귀면을 용면이라고 인식해야 한다는 강의를 전국적으로 펼치고 있다. 용에 대하여 강연할 때
에는 사자후(獅子吼)가 아니고 용후(龍吼)였다.
이제 용의 조형의 구성과 상징구조를 모르면 동양미술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동양의 모든 장르의 조형은 용과 반드시 관련되어 있으
니 갈수록 용의 중요성이 절실하다. 특히 여래와 보살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이나 이미 어느 정도 용에
대한 내 나름의 이론체계를 정립하여 두었기 때문에 함께 공부하면 빨리 배울 수 있다.
‘용이 여래다’ 혹은 ‘여래는 보주다’ 라고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1년 동안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마침내 모든
상호관계를 절실히 인식하게 될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통일신라의 걸작품 용면와(龍面瓦)는 월지(月池:안압지) 출토 녹유 용면와로 처음으로 백묘 뜨고 채색분석 해보았
다. 용의 입에서 나오는 영기문만을 부분적으로 채색 분석한 적은 있었으나, 이렇게 전체를 다루기는 처음이며 그러는 동안 새로운 점들
을 배울 수 있었다. 역시 채색분석은 조형분석의 최선의 분석방법임을 재확인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귀신의 얼굴이 아니라 용의 얼굴이라고만 주장하였지 용의 입에서 나오는 무늬에 대하여는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아무런 언급도 하지 못했다. 귀신의 얼굴을 용의 얼굴이라고 눈에 보였던 이후에 고구려벽화를 연구하면서, 용의 입에서 나오는 갖가지
조형들이 동양의 우주생성론(宇宙生成論)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신의 계시였다고 생각한다.
용의 얼굴은 제1영기 싹의 集積
원래 형상 없고 있어도 변화무쌍
용의 얼굴로 말미암아 인류문화사가 새로운 국면에 이르러 처음으로 인류역사의 본질을 드러내게 되었으니, 참으로 가슴이 벅차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당대의 고승(高僧)이며 예술가였던 걸출한 양지(良志)가 만들었음직한 월지 출토인 용의 얼굴 추녀마루기와를 백묘
뜨고 채색 분석하니 실로 감회가 깊다. 귀면을 용면으로 인식하면서 10년 동안 매일, 아니 순간마다 채색분석하며 색연필이 한 번 종이
위를 스쳐 지나며 칠해질 때마다 나의 학문은 한 계단씩 드높이 올라 시야가 조금씩 넓어졌으며, 동시에 순간마다 조금씩 깊어졌다.
그러니 수 천 점을 채색분석하면서 한없이 확대되고 심화된 셈이다.
모든 작품은 볼 때마다 새로이 보였으며 모든 작품이 그 심원한 사상을 점차 드러냈다. 연재를 시작하며 처음으로 용의 얼굴을 그려보고
채색 분석하면서, 나의 연구는 지금부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용의 얼굴을 오늘 처음으로 그려보고 채색 분석해 보았으
니 오늘 비로소 용의 본질을 파악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여 일 지나 채색분석한 것을 논문으로 써보니, 전에 알지 못했던 것을 더욱 새로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러니 관찰하
고, 기록하고, 사진 찍고, 백묘 뜨고, 채색분석하고, 다시 채색분석한 것을 논문으로 씀으로서 비로소 한 작품의 조사가 끝나는 것이다.
안압지 출토 용면와 도판. |
그러나 그런 과정을 수 천 번, 수 만 번 거쳐야 비로소 한 작품의 본질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이니, 그 끝없는 드라마와 같은 체험을
겪으면서 ‘하나’를 알면서 ‘일체’를 파악하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의 종교적 체험을 동시에 겪는 것이다.
용면와의 부분들을 자세히 분석하여 보면 제1영기싹의 다양한 변주로 용의 형상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눈은 보주이지
만 차차 왜 보주인지 증명하여 보일 것이다. 코, 눈썹, 귀, 두 뿔, 갈기, 치아, 혀 등, 용의 각 부분의 형태들이나, 입에서 발산하는 영기
문은 모두 제1영기싹의 다양한 변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면 왜 옛 예술가들은 왜 그렇게 표현하였을까. 그 해답을 수 천 점의 영기문들을 채색분석한 다음에야 오늘날 비로소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즉 물에 내재하여 있는 대생명력(大生命力)을 가시화한 것이 갖가지 영기문인데, 그 가운데 최소 단위가 제1영기싹이며,
가장 위력적인 영기의 모양이기 때문이다. 제1영기싹에서 전개되는 제2영기싹.제3영기싹은 차차 설명하게 될 것이다.
여래나 보살상을 만들 때처럼, 당대의 최고의 조각가가 용면와를 만든 까닭이나, 녹유로 장엄한 까닭은 용의 존재가 동양우주론의 중심
에 있는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용의 얼굴을 왜 다양한 조형의 제1영기싹으로 구성하였으며, 지붕의 추녀마루기와로
썼으며, 아래 부분을 잘라 사래기와로 쓰면서 법당이나 왕궁의 지붕을 장엄하였을까.
용의 얼굴은 ‘영기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미 지난 회에 용의 얼굴 모든 부분들을 살펴서 모두가 영기싹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아냈다. 그러면 ‘영기 싹’이란 무엇인가?
영기 싹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에 충만한 대생명력(영기)의 화신(化身)들을 구성하는 최초의 그리고 최소의 단위 모양으로, 생명의
최초의 새싹을 말한다. 대생명력(영기)의 싹이므로 ‘영기 싹’이라 이름 지은 것이다.
그 영기 싹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며 무엇으로도 생성 변화할 수 있으며, 따라서 만물생성의 가시적 근원이라 할 수 있다.
그 형태는 도르르 말린 것으로 대부분의 식물이 싹틀 때 그런 형상을 띠며, 동물 또한 그런 형상을 띤다.
땅에서 싹트는 식물의 싹은 실은 물에서 싹튼 것이다. 땅이 물을 흠뻑 머금어야 새싹이 튼다. 그 도르르 말린 싹은 자라서 무한한
다른 형태를 띠며 성장한다. 그 영기 싹의 형태는 같은 형태를 다양하게 조합하여 무한한 영기문을 탄생시킨다.
우리가 흔히 장식무늬라고 말하며 지나치는 일체의 무늬가 우주생성의 원리를 표현한 영기문임을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영기 싹은 모든 영기문의 시발점이며, 모든 영기문의 구성요소이며, 영기 싹이 없으면 영기문은 성립할 수 없다. 영기 싹은 용을 구성하
며, 영기싹은 보주가 되며, 영기 싹은 연꽃에 부여되어 현실의 연꽃을 다른 차원의 영화된 연꽃으로 승화하므로, 영기 싹은 따라서
만물의 근원이 된다.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되는 영기싹이 제1영기싹이고, 이것이 전개되어 제2영기싹이 성립하고, 다시 제3영기싹이 성립하는데,
이 세 가지 형태가 만물생성의 근원이 되어 모든 영기문의 구성요소가 된다.(도 1)
먼저 제1영기싹이 성립하고, 갈래를 이루면서 제2영기싹이 성립하고, 갈래 사이에서 만물이 탄생하는 것을 상징하는 제3영기싹이 성립
한다. 영기싹 전개의 기본원리는 내가 수많은 영기문을 분석하면서 발견한 기본 도형이며, 이 기본 도형에서 무한하고 다양한 영기문이
성립하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용만이 영기싹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고, 봉황도 기린도 백호의 도상들도 다양한 영기싹으로 구성된다. 이런 영수(靈獸)들은
물론 식물무늬 같은 덩굴무늬 일체가 모두 영기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기싹은 우주에 충만한 생명력 무엇으로도 생성 변화할 수 있어
형태는 도르르 말린 모양으로 식물 싹틀 때 형상…근원은 ‘물’
눈 코 입에서는 寶珠가 표현돼 귀목(鬼目)이 아니고 용목(龍目)
그러면 왜 용을 다양한 영기싹으로 구성하였을까? 만일 그렇다면 용은 ‘하나의 영기싹’으로 귀결한다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용의 본질을
파악하려면 영기싹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영기싹은 영기의 싹이다. 대생명력의 싹이다.
그런데 생명력의 근원은 ‘물’이다. 그러므로 특히 불화(佛畵)를 공부하며 차차 알게 되겠지만 영기싹은 항상 물에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영기싹은 물을 상징하며 따라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에 물을 조형화할 때 제1영기싹을 연이어서 나타낸다.
따라서 용은 물을 상징한다. 앞으로 왜 용이 물을 상징하는지는 더 확실한 증거물을 제시할 것이다.
자, 그러면 지난 추녀마루기와 용면와에서 눈을 보주라고 말했다. 처음 듣는 말이어서 아마도 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용의 얼굴에는 영기싹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또 하나 중요한 도상이 있다. 즉 보주이다. 용의 얼굴에는 전체적으로 둥근 보주의 모티브
도 역시 많다. 보주는 내포하고 있는 상징이 매우 위대하고 풍부하여 일반인들은 포착하기 어렵다.
앞으로 우리는 이 보주에 대하여 상당한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용과 보주를 올바로 파악하려면 여러분이 지금 지식으로 혹은 이미지로
알고 있는 용과 보주는 대부분 틀린 것이므로 집착하지 말고 그동안 배우거나 들은 것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아마 버릴 것도 없을 것이다.
고려 암막새기와, 보주와 주변의 제3영기싹(유금박물관).
용과 보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용에 대한 저서는 더러 있으나 틀린 내용이 너무 많고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개 그런 책을 읽으니 오류가 점점 넓게 퍼져나가고 점점 두텁게 쌓여 간다.
용의 얼굴에서 코 위 부분을 보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고, 이마의 양미간에 보주를 두기도 하고 머리 위에 두기도 한다.
앞으로 다루겠지만 입에서 보주를 발산하기도 한다. 입에 보주를 물고 있는 것이 아니고 입에서 발산한다고 표현해야 한다.
역시 월지 출토 용면와는 1회의 것과 다른데 일반적으로 신라시대에는 각 법당에 따라 용의 얼굴을 다양하게 만들어 지붕을 장엄한 것
같다.(도 2)
용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형상화한 까닭에 한국미술의 역사를 통하여 용의 형상이 모두 다르게 표현되었는데 바로 이 점이 중요한 것이
다. 여기 소개하는 사래기와 용면와가 중요한 것은 눈이 보주라는 것을 입증해 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용의 눈은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 보주에서 보주가 무한히 나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보주에서 강력하게 발산하는 불꽃같은
형태로 눈썹을 삼았다.
항상 보주의 속에서부터 강력한 영기가 발산하거나 보주의 주변에서 발산한다. 이 도상으로 눈이 보주임이 확실해졌다.
그리고 입에서 두 개의 제1영기싹(붉은 칠을 한 부분)이 양쪽으로 길게 발산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거기에서 영기가 발산한다(녹색으
로 칠한 부분). 앞으로 계속 다루어질 것이지만, 이 용의 입에서 발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지금 모르고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조형은 용의 입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여래조차도 용의 입에서 화생한다! 원래 이 기와는 사래기와로 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마 한 가운데 둥근 모양(채색하지 않은 하얀 부분)은 사래에 고정시키기 위하여 못을 박았던 구멍이다. 그런데 이 기와를 추녀
마루기와로 쓰기 위하여 밑부분을 반원형으로 자른 것이어서, 원 작품에서는 입에서 발산하는 제1영기싹이 잘려나간 것이다.
추녀마루기와의 밑 부분을 잘라서 사래기와를 삼은 예는 많지만, 원래 사래기와로 만들었던 것을 추녀마루기와로 용도를 바꾼 것은
처음 본다.
(도3) 암막새와 수막새기와의 용목=보주(유금박물관).
귀면와가 용면와가 확실해진 터에 과거 100년 동안 의심 없이 써왔던 고려기와의 이른 바 귀목(鬼目)도 자연히 그리고 당연히 용목(龍
目)으로 바뀌어져야 한다.(도 3) 그리고 용의 눈이 보주라 증명되었으니 보주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만일 표기를 한다면, ‘龍目=寶珠文’이라 해두면 더욱 친절할 것이다.
과거에는 귀면와(鬼面瓦)라 불렀으므로 모두 의심 없이 막새기와의 반구형 형태를 귀신(鬼神)의 눈(鬼目)이라 불렀었다.
왜 귀신의 눈이 지붕에 있단 말인가.
(도4) 황룡사 출토, 사래기와, 고려, 중앙의 보주와 주변의 영기문, 죽 보주의 영기화생(유금박물관).
그리고 황룡사 터에서 나오는 고려시대 사각형 사래기와의 중심에 있는 반구형도 용목이고 동시에 보주이며(도 4), 주변의 구름모양은
구름이 아니고 영기문이며 ‘보주의 영기화생’을 나타내주는 고귀한 기와이다.
구름이 아니고 영기문이라는 진실을 밝히는 데에도 앞으로 상당한 지면을 할애할 것이다.
용·연꽃, 영기문 정립은 통일신라 시기에 완성
1. 공주 주미사지 출토 와당 한 세트.
백제 제석사 암막새의 영기문을 앞서 자세히 분석했다. 이상하게도 중국에는 이런 곡선을 가진 암막새가 만들어진 적이 없으니 백제
제석사 암막새는 한국의 와당예술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셈이다. 이런 암막새는 중국에 영향을 준 적이 없지만 일본에 큰 영향을 주었
다. 지금까지 용의 본질을 파악하려 해왔는데, 그러면 왜 지붕의 여러 곳에 갖가지로 용의 정면 모습을 표현하고, 왜 그 용의 입에서
강력한 영기문이 발산하는 것일까. 그리고 연꽃 와당도 왜 함께 있는가. 그리고 갖가지 영기문만 있는 암막새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
까. 나는 국립공주박물관 전시실에서 에서 주미사(舟尾寺) 출토 통일신라 연꽃 수막새와 제1영기싹으로만 이루어진 영기문 암막새
한 세트를 보고 깨친 바가 많았다.(도 1) 나는 그동안 암막새와 수막새를 별개로 검토하여 영기가 수막새에서 암막새로 발산하는지도
몰랐다. 영화된 연꽃도 만물의 근원이니 이런 영기가 발산한다. 그래서 주미사 연꽃 수막새 자리에 통일신라 용면 수막새를 두고 같은
암막새를 두니 볼만했다.(도 2-1, 2-2)
암막새 영기문은 좌우 양쪽 끝에서 각각 시작하여 중앙에서 서로 만나
끝맺음을 하며 좌우대칭 이루고 영기는 수막새에서 암막새로 발산
그러니 지붕은 온통 연꽃과 용에서 영기문을 발산하는 장대한 광경이다! 용과 연꽃은 물을 상징하니 형태는 달라도 상징은 같다.
연꽃이 물을 상징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고, 용도 물을 상징한다고는 알고는 있지만, 아직도 용을 동물로 보는 경향이 많다.
용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는지 10년째다. 그런데 용의 연구는 지금부터라는 생각이 든다.
연꽃도 마찬가지로 올바로 인식하려면 오랜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만큼 용이나 연꽃은 고대 조형 일체와 뗄 수 없는 관련이 있으니
용과 연꽃을 올바로 연구한다는 것은 동양미술 전체를 새로이 연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미 제석사 수막새와 암막새의 도상에서, 암막새 영기문은 중앙의 연꽃와당과의 관계를 살펴보면서 모순이 있음을 발견했다.
원래는 연꽃에서 암막새의 용이 생겨나고, 다시 암막새에서 용의 양쪽으로 영기문이 발산하는 형상이다.
그러므로 연꽃을 중심으로 생각하여보면 조형적으로 연꽃에서 영기문이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용의 입에서 영기문이 발산하는 암막새
가 연꽃과 별개로 한 세트를 이루고 있는 셈이어서, 용의 입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의 방향은, 중앙의 연꽃와당에서 발산해야 하는 방향과
부딪치게 되어 모순이 일어난다.
나는 잘 살펴보지도 않고 통일신라의 암막새의 영기문이 한 방향으로 전개하는 줄 알고 찾아보았으나 뜻밖에 없었다. 모두가 좌우에서
시작하여 중앙에서 서로 만나 좌우대칭을 이룬다! 순간 통일신라의 주미사 와당에서 그 모순의 해결책을 확인했던 것이다.
과연 백묘 뜨고 채색분석하여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암막새의 영기문은 좌우 양쪽 끝에서 각각 시작하여 중앙에서 서로 만나 끝맺음을 하며 좌우대칭을 이루는데 반드시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용와당이건 연꽃와당이건 양쪽으로 영기문이 발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중앙의 용와당과 연꽃와당이 한 세트를 이루는 것은 좌우의 암막새의 절반 부분뿐이다.(도 2-1)
다시 확인하기 위하여 또 하나의 월지 출토 제3영기싹 덩굴모양 영기문 암막새를 선정하여 채색분석한 다음(도 3-1, 3-2), 두 암막새가
만나는 중앙에 각각 용면 수막새와 연화 수막새를 두어 채색분석해 보았다.(도 4-1, 4-2) 과연 주미사 것과 같았다.
그런데 항상 영기문이 좌우대칭이 아니라 같은 영기문이 계속하여 전개의 방향이 없는 영기문의 암막새가 또한 많은 것을 발견하였다.
그런 암막새를 만들면 구태여 영기문의 방향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백제 제석사 암막새는 그 자체로는 도상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영기문의 흐름에 있어서 수막새와 암막새가 불협화를 일으킨다.
그 모순 아닌 모순을 극복하여 수막새와 암막새의 합리적 결합을 정립한 것이 통일신라 와당인 셈이다.
따라서 백제에서 처음 650년 경, 7세기 중엽에 암막새가 창안되었지만, 얼마 시간 차이 없이 통일 초 674년경에 만들어진 월지 출토
암막새는 모든 문제를 깨끗이 해소해 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자마자 와당예술은 눈부시게 꽃을 피운다. 통일 후 수많은 불교사원을 지으며 따라서 기와도 대량으로 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연꽃은 비교적으로 쉽게 알 수 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영화된 연꽃’이란 이해하기 그리 만만치 않다. 현실의 연꽃이 아니어서
연꽃잎에 여러 가지 영기문을 부여하기도 하고, 연꽃잎에 영기를 불어넣어 풍만하게 만들어 마음껏 영화시킨다.
이에 비해 용이란 무엇인가. 용의 모습이란 변화무쌍하여 파악하기 어렵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용은 용이 아니다. 사람모습이 있는가
하면 사자모양이 있는가 하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모양도 있어서 포착하기 어렵다.
5. 그리스 코린트 아폴로 신전 테라코타 판. |
절대적 진리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도(道)를 도라고 말하면 이미 도가 아니라고 한다. 도처럼 영기는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다.
여래도 원래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용이란 것도 보이지 않고 형태를 띤다고 하더라도 일정하지 않다.
한마디로 도(道)를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로 만든 것이 용이다. 용은 물이며 만물의 근원이다.
물은 원래 일정한 형태가 없어서 둥근 항아리에 넣으면 둥글게 되고 상자 속에 넣으면 육면체가 된다. 물은 용만이 아니라 봉황의 모습
으로도 띠고 해태의 모양으로도 띤다. 그런 가운데에 용이 으뜸이니 용의 위용이란 무엇이라도 따라갈 수 없다.
초월적 절대적 여래와 세속적 절대적 왕을 표현할 때 주변은 물론 그 존재가 있는 건축에는 얼마나 많은 용들이 표현되어 있는가.
기와는 그리스에 많다. 4년 전에 그리스를 처음 방문했을 때, 기원전 3세기에 제작된 코린트의 아폴로 신전 테라고타판에서
‘영화된 사자’의 입 양쪽으로 생명생성의 영기문을 보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도 5) 놀라움에 이어 곧 숙연해졌다.
[불교신문 2754호/ 9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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