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탱화
신중들이 부처님의 퇴공을 받아 불법을 수호하겠다는 서원을 세웠기 때문에 별도로 전각을 마련하지 않고 신중단에는 존상은 모시지 않고 동진보살과
대범천왕, 제석천왕을 주존으로 모시는 경우가 보통이다.
신중은 안으로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수행 정진하고 밖으로는 불법 수호의 역할을 원력으로 삼고 있다.
신장의 형상은 무사나 역사의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얼굴 표정은 위엄에 차있으며 몸체나 몸짓 또한 대단히 장엄하고 그 종류 또한 다양하게 전개된다.
신중탱화에 나타나는 존상의 숫자는 1위,3위,39위에서 많게는 104위까지도 있다.
104위와 같은 존상수가 많은 경우에는 대예적금강이나 동진보살이 주존이 되고 있으며,
대범천왕과 제석천왕을 주존으로한 탱화도 있고 대예적금강과 대범천,제석천을 함께 주존으로 모신 신중탱화도 있다.
대예적금강은 여래의 화신으로 화면의 정상의 높은 위치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화불로서 표현되기도 한다.
칠성탱화
북극성(北極星)을 의미하는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와 이를 보좌하는 여러권속을 그린 불화이다.
치성광여래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 하늘 왕궁인 자미원의 주인, 자미대제가 부처의 불법 속에서 여래로 화현한 모습이다.
주로 자손의 수명장수를 발원했던 칠성신앙은 본래 북극성과 북두칠성의 神이 인간의 수명과 吉凶和福을 주재한다는 민족신앙이었다.
관룡사 감로탱화(觀龍寺 甘露 탱화)= 시대(조선) 동국대 박물관에 있음
7월 15일에 행한다는 우란분재(盂蘭盆齋)을 올려 극락왕생을 기원한다는 내용을 도해한 우란분변상도(盂蘭盆變相圖)이다.
전체적으로 손상이 많긴 하지만 치밀하고 섬세한 구성, 사실적이며 생동감있는 표현력, 밝고 세련된 색상등이 당시 불화의 경향을
잘 반영해주고 있는 작품이다. 화면 상부에는 인로보살(引路菩薩)을 선두로 아미타불 일행과 지장보살이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중앙에는 커다란 상에 성반을 차려놓고 재를 올리는 광경이 상세하고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이들 주위의 여백과 각 장면 사이에는 구름과 암산(巖山)을 표현하여 극락장엄과 아울러 각 장면을 구분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현존하는 불화중 비교적 연대가 올라가는 작품으로 극락래영(極樂來迎)장면과 성반의식(盛 飯儀式)장면을 한폭에 갖춘 형식의 대표적인
우란분변상도(盂蘭盆變相圖)라고 할 수 있다.
화려한 색채가 18세기 후반에 갑자기 사라지는 의외의 변화가 일어난다. 1791년에 제작된 「관룡사 감로탱」이 그러한 예이다.
이 탱화에서는 제단이 없어지고 상단에 일렬로 칠 여래를 비롯한 불부살을 배치하고 바로 아래 중앙에 아귀를 배치하였다.
중생계의 풍속장면이 전체 화면의 3/4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 중생계는 백색 위주로 표현하여 화려한 색상을 없애버린 것이다.
부처의 세계와 중생의 세계를 채색의 세계와 무채색의 세계로 구분하였다.
부처의 세계는 적색, 녹색, 청색으로 채색하였고, 뇌신, 아귀, 왕후장상, 불꽃, 나무등 일부네 채색을 가하였을 뿐,
인물은 대부분 백색 안료로 표현하였다.
색체를 사용하여 부처의 세계와 중생의 세계의 위계적 차이를 뚜렷하게 구분한 점에서 다른 감로탱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 나라 풍속화 가운데 가장 다양한 색체의 풍속장면이 등장하는 것이 감로탱인데, 이 그림은 전혀 예외이다.
이는 김홍도, 김득신 등의 일반 풍속화와 같이 수묵담채 화풍을 적용한 것이다.
또한 그러한 영향을 인물의 묘법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낚싯바늘 모양의 작은 눈과 일정한 간격으로 내려 그은 치마의 옷주름도
18세기 후반의 풍속화품 그대로 이다.
이 감로탱에서는 장면과 장면 사이를 구분하는 산의 표현에서 이전의 감로탱과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무덤 같은 모양의 산으로 장면과 장면 사이를 복잡할 정도로 세분하여 공동묘지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뿐만 아니라 부처세계와 중생 세계의 구분도 다른 감로탱과 다르다.
왼쪽에는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오른쪽에는 성곽으로 장면을 나눈 것이다.
강진 무위사= 아미타삼존벽화
극락보전 후불벽 앞면에 봉안된 아미타삼존벽화로서, 후불벽화로 그리기 위해 별도로 세운 흙벽에 채색그림으로 그렸다.
가운데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음과 지장보살이 시립한 아미타삼존이 화면을 꽉 채우고 있는 이 벽화는, 고려불화의 영향과 조선 초기의
새로운 수법을 동시에 엿볼 수 있는 걸작으로 화려하기 그지없다.
중앙의 본존불은 거대한 키 모양 광배 안에 결가부좌하고 있으며, 왼쪽에는 높은 보관을 쓴 관음보살이 서있고,
오른쪽에는 왼손에 석장을 잡고 머리에 두건을 쓴 지장보살이 서있는 구도이다.
구름을 배경으로 한 화면의 상단 좌우로는 6인의 나한상을 배치하였는데, 가슴 윗부분만 드러내고 채색을 부드럽게 하여,
중앙 삼존으로 향하는 시선이 분산되지 않도록 처리하였다.
다시 그 위에는 서광이 펼쳐진 가운데 좌우로 소형의 좌불(坐佛)이 각 2불(佛)씩 그려져 있다.
이러한 구도적 특징은 16관경변상도를 이어받은 조선 초기 관경변상도(觀經變相圖, 1465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어,
16관경변상도의 ‘아미타극락회도’ 장면이 단독으로 그려진 듯한 구도이다.
금당사 쾌불탱화
1692년 화원 명원(明遠) 등 4인이 조성한 이 괘불은 보관을 쓴 장엄신 여래를 단독으로 그린 것이다.
전체 크기는 길이 8.70m, 폭 4.74m의 중형 괘불로 장엄신 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화려한 색을 이용하여
신광을 기(氣)가 뻗어나가듯 표현하였고, 신광 안에는 각각 화불을 10좌씩 두었다.
여래는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는데 보관에는 2단으로 7좌(坐)의 화불을 연꽃 위에 얼굴만 표현하였고,
그 좌우에 봉황(鳳凰)을 장식하고 뒤로는 머리칼을 묶은 흰 매듭이 보인다.
얼굴은 방형의 원만상(圓滿像)으로 이목구비를 작게 묘사하였으며, 신체는 얼굴에 비해 비교적 왜소하나 장대한 편으로
의습의 화려한 영락장식과 호화로운 문양이 화면을 압도하고 있다.
좌우의 화불은 거신형 광배 바깥으로 10좌씩 총 20좌가 마치 호위하듯 배치되어 있는데 이러한 화불배치는 충남 무량사괘불탱(1627년, 보물 제1265호)과
개심사 영산회괘불탱(1772년, 보물 제1264호)과도 유사하다.
이 괘불은 화불을 작게 묘사하여 본존불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며, 당당하면서도 중후한 모습으로 신체 비례가 비교적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는 조선 효종ㆍ숙종대의 특징으로, 색채 또한 주홍을 중심으로 녹색ㆍ분홍색ㆍ흰색 등 중간 톤의 색조를 사용하여
화면 전체에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문양은 두광ㆍ옷ㆍ광배에서 다양한 무늬를 볼 수 있는데,
특히 두광 내에는 봉황문ㆍ연화문과 변형된 여러 가지 화문이 배치되어 있으며, 지그재그 문양을 비롯하여 도안화된 구슬문양, 점문양 등이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다.
보관형 장엄신 여래의 단독상은 충남 무량사괘불, 충북 법주사괘불, 포항 보경사괘불 등 17세기 후반의 괘불과 그 궤를 함께 하며,
화기를 통한 시주질의 소임을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엿 볼 수 있다.
현재 금당사 괘불은 보물 제126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장엄신 여래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힌다.
관음도
충북, 안심사 영산회 쾌불
안심사 괘불은 1652년(효종 2) 조성된 것으로 석가모니불이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중앙에 키모양의 광배(光背)를 지닌 석가모니불을 큼직하게 그린 다음,
문수와 보현보살을 협시로 하여 사천왕과 범천ㆍ제석천ㆍ14대 제자ㆍ용왕ㆍ용녀ㆍ벽지불(?支佛) 등이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는 전형적인
군도형식(群圖形式)의 불화이다.
주존(主尊)인 석가모니불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수인을 하고 있으며, 머리는 전체적으로 윤곽선만 나발(螺髮)이 표현되었다.
나지막한 육계에 비해 중간계주가 큼직하게 묘사된 것이 특징이며, 신체는 어깨가 넓고 풍만한 형태로 길어진 팔과 손의 처리 등 세부표현은 그다지
세련되지는 못하다. 그러나 전체적인 신체비례는 안정되어 있으며, 붉은색의 법의(法衣)와 함께 광배에 장식된 화려한 꽃무늬로
본존불을 돋보이게 하였다. 그리고 본존의 어깨 위쪽 상단에 좌우로 대칭되게 자리하고 있는 14대 제자와 신중ㆍ벽지불 등은 위쪽으로 갈수록
작게 묘사함으로써 상승효과를 나타내었다.
갑사 삼신쾌불탱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모니와 노사나불 등 삼신불이 진리를 설법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괘불이다.
대형 괘불로 전체를 상, 중, 하 3단으로 나눈 구도를 지니고 있다. 가운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와 노사나불의 좌상을 배치하였다.
상단(上壇)에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제자, 금강역사 등을 그렸으며, 맨 아래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사천왕, 사리불 등을 그렸다.
삼신불은 모두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키 모양의 거신광배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노사나불은 보살형으로 보관을 쓰고 영락을 늘어뜨린 모습이다. 중앙의 비로자나불은 둥근 얼굴에 통견을 하고 있으며,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싼 지권인을 하고 있다. 상호와 손이 크게 묘사된 반면 어깨는 상당히 좁게 묘사하였고, 상대적으로 무릎의 폭이 넓은 편이다.
노사나불은 양 팔을 벌려 두 손을 어깨 위로 올린 설법인을 하고 있다.
석가불은 왼손은 발 위에 올리고, 오른손은 오른 무릎 위에 올려 아래를 향하고 있다. 이는 악귀를 물리친다는 뜻을 지닌 항마촉지인이다.
노사나불과 석가불의 신체 비례와 표현 방법도 비로자나불과 동일하며, 비로자나불과 석가불은 기둥처럼 솟아오른 독특한 머리모양을 하고 있다.
삼신불 위의 상단에는 맨 위 양쪽 끝 모서리에 붉은 광배를 지닌 관음과 세지보살을 배치하고 시방제불, 나한 등이 화려한 빛깔로 표현된
구름과 어울린 아름다운 천상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맨 아래는 비교적 중앙 하단에 사리불을 그리고, 좌우에 문수와 보현보살을 그린 바깥으로 좌우에 사천왕을 나누어 배열한 단순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조선 효종 원년(1650년)에 화원 경잠 등이 참여하여 조성한 불화로 상, 중, 하 삼단으로 화면을 나누고 중단의 삼신불을 크게 강조한 구도가 특성이며,
녹색과 홍색, 황색과 같은 중간 색조와 금으로 채색하여 화면 전체를 매우 밝고 화려하게 구성하였다.
한편 괘불의 조성에 필요한 많은 물품의 시주자를 적어놓고 있어 17세기 중반의 생활상 및 사찰의 재정규모와 운용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신원사 노사나괘불탱(盧舍那掛佛幀) : 국보 299호
이 괘불은 화엄종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대신하여 노사나불이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인 영산회상을 그린 것이다. '원만보신노사나불(圓滿報身盧舍那佛)'이라는 존명과 함께 '대영산회탱(大靈山會幀)'이라는 명칭이 화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 괘불은 노사나불이 단독으로 중생을 설법하는 모습으로,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10대보살과 10대제자, 사천왕 등이 그려져 있다.
단독으로 그려진 노사나불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손은 신체에 비해 큰 편으로 손바닥을 들어올려 설법하는 모습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녹색과 홍색, 분홍색 등을 이용하여 옷을 표현하였고, 5가지색으로 빛을 형상화하여 주변 배경을 표현하였다.
중심 불상의 좌우에는 각기 다른 물건과 두광이나 옷색의 차이 등을 이용해 10대보살들을 표현하고 있다.
보살 위의 10대제자들은 서로 다른 얼굴 방향과 표정, 각기 다른 옷과 물건, 자연스러운 동작과 모습으로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1644년(인조 22)에 제작된 이 괘불은 짜임새 있는 구도, 섬세한 표현, 밝게 표현된 색조 등이 세련된 솜씨로 표현되어 있어
조선 후기 불화양식을 보여주는 17세기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청곡사(靑谷寺): 영산회괘불탱(靈山會掛佛幀)= 국보 제302호
청곡사 영산회괘불탱은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인 영산회상도를 그린 그림으로, 현재 국보 제302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존불인 석가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현 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화면 중심에 꽉 차게 배치되어 있는
석가여래상은 얼굴이 둥글고 풍만한 모습에 상체는 짧지만 당당하고 우람하게 표현되었다. 두 어깨에 걸친 옷은 두터운 편이다.
옷은 붉은색과 녹색으로 채색하였고 옷깃에도 변화를 주었으며 전면에 걸친 꽃무늬 장식이 밝고 선명해 보인다.
문수,보현 보살상은 각각 연꽃가지를 들고 서 있다. 본존보다 약간 작은 신체, 화려한 보관, 둥근 얼굴, 정면을 향한 자세 등이 매우 당당하고
화려하며 본존 뒤로 물러서게 배치해 원근감을 나타냈다.
청색,하늘색,연분홍색 등 다양한 색감이 나타나며, 복잡하고 화려한 꽃무늬와 장신구가 보살상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보살상의 머리 위에는 석가의 제자인 아난,가섭을 비롯해 여러 불상이 그려져 있다.
이 괘불은 1722년(경종 2) 의겸(義謙) 등이 참여하여 제작한 것으로,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현 보살을 화면 가득 배치한 구도,
당당하고 건장한 체구, 둥글고 원만한 얼굴, 화려하고 밝은 색채와 꽃무늬 장식 등에서 18세기 초반의 불화 가운데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석가·문수·보현의 삼존불입상이라는 점에서 경상북도 예천 용문사의 괘불과도 비교되며, 의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현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화엄사 영산괘불탱(華嚴寺 靈山掛佛幀)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그 권속들을 그린 영산회상괘불탱은 麻 위에 채색한 그림이다.
효종 4년(1653년) 5월에 지영, 탄계, 도우, 사순, 행철, 나흡 등이 금어(金魚)로 참여해 그린 것이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와 보현보살을 삼존불 형식으로 그렸으며, 화면 중앙에서 삼각형 구도를 이루고 있다.
아래 모서리에는 지국천과 증장천, 위 모서리에는 광목천과 다문천을 수호신상으로 그렸으며, 문수와 보현보살 위로는 10대 제자를 그렸다.
밝고 화사한 색채를 이용해 영산회상의 진리로 가득 찬 환희의 세계를 잘 표현한 탱화로 1997년에 국보 제301호로 지정되었다.이 불화가 걸작으로 꼽히는 이유는 밝고 화사한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영산회상의 진리로 가득찬 환희의 세계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상사 지장탱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측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十大王중 홀수 5位, 판관(判官), 녹사(錄事), 사자(使者), 귀왕(鬼王),그리고 동자 동녀가 있고, 우측에 무독귀왕(無毒鬼王)과 십대왕중 짝수 5位, 판관, 녹사, 사자, 귀왕, 동자 동녀가 배치되었다.
이 탱화는 조선시대 3대 불모중의 한분인 의겸(義謙)스님작품이다.
나한도
수월관음보살
파계사 영산회상도 (把溪寺 靈山會上圖) 보물 제 1214호
『법화경』의 처음인「서품」에 나오는 내용인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수많은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에게 먼 과거에서와 같이
광명을 놓으시며 법화경을 설법하시기 직전의 모습을 표현한 것을 영산회상도라 부릅니다.
대구 파계사의 원통전에 목조관음보살상의 후불화로 봉안되어있는 영산회상도에는 항마촉지인을 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이
화려한 광배에 광명을 놓으시고, 앞쪽 중앙에는 협시보살로 전신이 표현된 문수보살, 보현보살, 이 있고,
그 위로 양쪽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있습니다.
그 옆에 얼굴빛이 하얗게 표현된 사천왕을 다스리는 범천과 제석천이 있으며 그 아래는 사천왕이 두 분씩 표현되어 있습니다
화면 상단에는 양쪽으로 다섯분씩 십대제자가 있고, 그 위로는 양쪽으로 두분씩 총 네분의 타방불(他方佛)이 있으며,
양옆으로는 수호신인 금강역사가 한분씩 있습니다. 이 불화에는 표현되지 안았지만 보통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존이신 영산회상도에는
노승으로 묘사되는 16나한(아라한)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림의 하단을 보면 빨간색 사각형 안에 글이 쓰여 있는데 이를 그림에 대한 기록인 "화기"라고 합니다.
화기에는 불화를 조성한 시기, 봉안처, 그림을 그닐 화사, 시주자, 증명법사, 발원내용 등의 많은 기록들이 적혀 있습니다.
이 불화의 화기에는 대군(大君) 갑술생(甲戌生) 이씨가 왕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위해 시주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갑술생 이씨는 숙종의 4번째 아들로 후에 영조가 죄는 연잉군입니다.
화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불화는 왕실의 불사로 조성돼서 자료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작품입니다.
풍부하게 사용된 금박(금박)은 매우 화려해서 격조 높은 왕실 발원의 불화임을 다시한번 말해주고 있습니다.
숙종 34년(1707) 왕실에서 발원하여 조성된 것입니다. 연화좌에 결가부좌한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8대보살
(문수, 보현, 관음, 대세지, 제개장, 금강장, 미륵, 지장)이 시립하고 있습니다.
위쪽에는 10대 제자(사리불, 목건련, 가섭, 아나율, 수보리, 부루나, 가전연, 우바리, 라훌라, 아난다)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 위로 화불(4방불 동:아촉불, 남:보상불, 서;무량수불, 북;미묘성불)이 모셔져 있으며,
아래로는 불법을 수호하는 사대천왕(광목천왕, 지국천왕, 비사문천왕, 증장천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영산회상도의 특징은 우선 석가모니부처님의 키형광배에 두광을 따로 구별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불의(佛衣)에 흔히 나타나는 복전문이 없고 발목 부분에 치견장식이 없습니다. 숙빈궁의 시주로 바탕에는 금채를 많이 사용하여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린 시기를 확인할 수 없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같은 기법으로 그려진 삼장탱화(三藏幀畵)에 강희64년
즉 숙종 34년(1707)작(作)과 기년(記年)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동시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린 사람은 의균, 성익, 체환, 석민, 회징 삼학으로 동화사 극락전 미타탱화을 그린 화원과 대웅전 삼장탱화을 그린 화원이 섞여 있으므로
그 사이에 이 탱화가 그려진 사실을 짐작하게 합니다. 동화사 탱화들보다 훨씬 정성들여 그린 이 탱화는 당시 궁정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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