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이야기=고려외

미황사. 장곡사, 수월관음도, 경국사, 도림사, 용연사, 지장탱, 칠장사 , 천은사 아미타후불도.

백련암 2012. 7. 20. 02:01

 

▲미황사 쾌불(掛佛)= 보물 제1342호

이 괘불은 항마촉지인을 결한 석가불을 묘사한 것으로 옹정 5년(雍正五年, 1727) 9월에 삼베바탕에 채색하여 조성한 것이다.

중앙에 석가여래를 독존의 입상으로 크게 묘사하고, 화면 상단 좌우에 구름을 타고 법회도량에 내려오는 화불 6위를,

하단 좌우에는 해상용왕과 용녀를 배치한 이 괘불은 조선후기 괘불이 대부분 석가의 영산회상을 주제로 많은 권속을 표현함에 반해 단순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본존은 마치 좌상에서 보이는 원형 두광과 신광을 갖추었는데, 원만한 얼굴에 이목구비는 작으며, 윤곽선만 표현된 나발머리에는 뾰족하게 육계가 솟아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큼직하게 묘사되었다.

신체는 당당하며, 두 손은 항마촉지인을 결하였다. 불의(佛衣)는 왼쪽어깨에 걸쳐 뒤로 돌아 오른쪽 어깨를 살짝 덮는 변형 통견식으로 걸치고,

가슴 아래로 드러난 승각기는 띠매듭으로 고정하였다.

전체적으로 화면은 원형 신광을 경계로 상단에는 천상의 세계를 묘사하고, 하단에는 좌우 용왕 용녀 주위로 바다 속 세계를 연출하였다.

용왕은 원유관을 쓰고 보석함과 같은 지물을 들고 본존불을 향하고 있고, 용녀는 여의주가 담긴 정병을 들고 있다.

바다 속 표현으로는 산호, 조개 등을 묘사하였는데, 본존이 딛고 서있는 연화대좌의 연화도 산호와 같이 표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게, 물고기 등을 조각한 점과 연관하여, 미황사의 위치가 바다와 가까이 있다는 점과 상관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기에 따르면 괘불의 조성에 참여한 화사는 탁행(琢行), 설심(雪心), 희심(喜心), 임한(任閑), 민휘(敏輝), 취상(就詳), 명현(明現)이며,

이들은 18세기 전반 전라도 및 경상도일대에서 활발히 활동한 의겸(義謙)화파의 유파와 임한(任閑)화파의 인물들이다.

 

이 괘불은 다른 괘불처럼 야외 법회 때 걸기도 하지만 가뭄이 들 때 이 괘불을 걸고 제를 지내면 비가 내린다는 영험으로 유명한데,

실제로 1992년 기우제를 지냈는데 제를 지내고 서너 시간이 지나자 달마산으로 먹구름이 몰려와 폭우가 쏟아져 그 영험을 증명한 바 있다고 한다.

 

 

▲장곡사 아미타불 후불탱화(長谷寺阿彌陀後佛幀)

군데군데 약간의 손상을 입었고 왼쪽 사천왕 그림하나를 잃어버렸지만 당시 불화의 대표작으로 손꼽을만한 것이다.
화면의 상단 중심에 본존불이 압도적으로 클로즈업되었는데 실로 이곳에 모든 구도가 집중되고 있다. 하단부 대좌에는 관음, 세지의 두보살이 서있고

그 가에 사천왕이 2구씩 배치되고 있다. 본존 좌우로는 6구의 보살과 梵天, 帝釋天이 각각 배치되었다. 상단부에는 他方佛과 제자들이 보인다.
색채는 은은하고 고상한 것으로 주로 홍 녹색을 쓰고 있으며, 색채가 더러 바래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좋은 질감을 보여준다.

선도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편은 아니나 세련되고 유창한 선이 쓰여지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보아 당시 불화로서는 썩 잘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장곡사 삼신불 탱화 노사나불▲ (長谷寺三身佛幀, 盧舍那佛) 시대/ 조선

화려하게 장엄을 한 화관(花冠)을 쓰고 칠보영락(七寶瓔珞)을 전신에 걸친 보신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이여래(二如來)와 십이보살, 제석, 대범천왕이 좌우로 호위하고 있다. 화불을 그린 상단 좌우에는 입보살 2위를 배치했고,

그 아래좌우로 10대제자를 5위씩 나누어 그렸으며, 바깥쪽 좌우로 위쪽에는 팔부용신이, 아래로는 사대천왕이 호위하고 있는 우수한 불화인데,

너무 마모가 심해서 세밀한 부분은 판별하기가 어렵다. 과거7불중 석가모니불을 뺀 6불을 삼신불탱화 3폭에 각 2위씩 배치했다고 보면,

제2축인 이 탱화에 모신 이여래는 칠불중 제3 비사부불(毘舍浮佛)과 제4 구류손불(拘留孫佛)이다.

 

 

장곡사 미륵불 삼신탱화 ▲ 中央  석가모니불,(長谷寺三身佛幀, 釋迦牟尼佛)

이 불화는 삼신불중 석가모니후불탱으로, 역시 같은 법당에 비로자나후불탱을 중심으로 3번의 노사나불과 좌우대칭으로 우측에 모셨던 탱화이다.

노사나불탱과 거의 같은 배치인데, 상단 좌우에 보살입상을 그리지 않고 화불 14위를 좌우에 각각 7위씩 그린 것이 특징적이다.  

 

 

▲장곡사 미륵불괘불탱 : 국보 300호,

현종 14년(1673)에 제작된 괘불탱으로 크기 869×599cm이며 마본채색(麻本彩色)한 군집도이다. 이 불화는 ‘미륵존불’이라는 명칭과는 달리

보살형태의 미륵보살도로 묘사되었으며, 각각의 존상마다 명칭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화면 중앙에 주존불(主尊佛)을 중심으로 육대여래(六代如來) · 육대보살(六代菩薩) · 십대제자 · 제석 · 범천 · 사천왕 · 천동(天童) · 아사세왕 ·

위제희왕비 · 용왕 · 용녀 등이 모두 표현되었다.

주존불은 상호는 원만한 방형으로 머리에는 화불 4位가 있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손에는 만개한 용화수 가지를 들고 있다.

 

신체는 당당하고 팔은 길어 비례가 조금 어색하다. 본존의 오른쪽과 왼쪽에 배치된 주요 협시불이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인데, 육대여래는 보살형이 아닌

부처형으로 지권인(智拳印)과 전법륜인(轉法輪印)을 결하고 있으며, 위쪽 끝에는 좌상(坐像)의 아미타여래 · 석가여래 · 다보여래 · 약사여래 등이 있다.

 

 

▲의겸(義謙)등필(等筆)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보물 제 1204호

의겸등필수월관음도(義謙等筆水月觀音圖)는 다양한 모습으로 중생 앞에 나타나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고, 안락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을 묘사한 그림 가운데 하나로, 조선 영조 6년(1730년)에 제작된 것이다.

관음보살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전으로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과

화엄경(華嚴經)》의 입법계품(入法界品)을 들 수 있는데, 여기에 의하면 관음보살은 남쪽의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에 거주하면서

중생을 제도하고 있으며, 그곳에는 온갖 보배와 꽃과 과일이 풍부하고, 바다를 접하고 있다고 한다.

입법계품에는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찾아다니는 선지식(善知識)의 하나로 관음보살이 설해지고 있는데,

이러한 장면을 도설(圖說)하고 있는 것이 바로 수월관음도이다.

 

 

▲경국사 현왕탱화

크게 병풍을 두르고 중앙에 보현왕여래(普現王如來)를 안치하고, 좌우에 여러가지 일산(日傘)과 당번(幢番)과 검극(劍戟)을 든 동자(童子) 동녀(童女)가

시위하고, 그 아래로는 전륜성왕(轉輪聖王),  대륜성왕(大輪聖王)과 판관(判官), 사자(使者), 졸리(卒吏), 동자, 동녀가 있다.

 

죄목을 필기하고 죄의 경중을 저울로 달고 형량을 결정하는 모습들을 그렸다. 이그림은 석옹불모(石翁佛母)가 그렸으며, 보운(寶雲)스님이 증명했다.

 

현왕탱화이라 함은: 사람이 죽은지 3일 후에 만나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명계중(冥界衆 : 지옥)의 왕(염마왕(閻魔王)을 여래화 시킨

보현왕요래(普現王如來))를 중심으로 그 의 권속들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말한다.

따라서 현왕탱화의 내용은 현왕여래가 명계중과 더불어 인간 사후에 심판을 관장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현왕탱화의 본존은 보현왕여래(普現王如來)인데, "현(現)" 자와 "왕(王)"자를 따서 현왕여래라 하며

유래는 부처님께서 염라대왕에게 수기하실 때

 "미래세에 마땅히 부처를 이루니 호는 부현왕여래로 십호를 구족할 것이며 국토는 엄정하고 백복으로 장엄하며 보살이 가득하리라"는

『예수시왕생칠재의 찬요(豫修十王生七齊儀贊要)중 제 5 염라대왕조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현왕여래는 미래의 부처님이시며, 현재는 "염라대왕"이시다.

 

 

▲경국사 신중탱화(극락보전 신중탱화(極樂寶殿 神衆幀畵)

불단의 왼쪽 벽에 걸려 있는 신중탱은 고종 24년에 봉안된 것이다. 중앙에 동진보살과 제석, 범천이 역삼각형 형태로 중심을 이루고

좌우에는 성군, 명왕, 신장등이 묘사되어 있다.

이 신중탱화에 나타나는 여러 신들은 불교의 외호신중인 호법신으로 인도의 토속신이 불교에 수용된 선신(善神)들이다.

제석은 하늘의 모든 신으로서 통솔하고 지배하며 수미산의 가장 높은 하늘인 도리천을 주관하는 신이다.

위태천은 천병(天兵)으로 하늘의 군사이므로 제석과 함께 등장한다.

 

 

▲도림사 영산회도

도림사 괘불은 좌상이며 협시는 입상인 특이한 예로 후불벽화(탱화)의 한 잔영으로 보인다. 주존은 석가모니불로, 협시는 문수·보현을 그렸다.

항마촉지인을 취한 석가모니불은 길상좌 형태의 결가부좌(結跏趺坐)이다.

이 괘불은 비록 삼존도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영산회상(靈山會上)을 그린 것이다.

두광 위쪽의 넓어지는 키형 광배를 배경으로 삼베바탕의 가사는 붉은 색이며 그 외에는 녹색을 잘 조화한 전남지역의 괘불 가운데 채색상태가 매우 뛰어나다.

증사(證師)는 도운(道云) 비구(比丘)이고, 지전은 수일 비구이며, 계오(戒悟), 삼안(三眼), 신균(信均) 비구(比丘) 3인의 화원(畵員)이 그렸다.

 

이 괘불은 보물 제 1341호로 지정되었다. 괘불지주는 법당 좌우에 12미터가 넘게 넓은 간격으로 자리한다. 괘불 자체의 너비와 많은 차이가 나서 의아스럽다.

괘불함은 법당 후불벽 뒤편에 놓여 있고 괘불의 출입을 쉽게 하기 위해 법당의 왼쪽 뒷부분에 문을 내었다.

 

 

▲용연사 영산회도(龍淵寺靈山會圖) 시대 / 조선

규모가 큰 불화이지만 보존상태도 거의 완전하고 화면배치형식과 세부표현양식 및 채색처리등 18세기 후반기 불화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화면 중앙 상부에는 주형거신광(舟形擧身光)을 진 석가여래가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고 그외의 보살성중은 본존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이들 보살성중은 본존에 비해 유난히 작게 그려지고 이목구비의 표현 역시 작은 편이어서 본존이 더욱 부각되는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섬세하게 정성들여 조성한 의도가 역연히 드러나는 작품이며 주조색은 짙은 암적, 암녹색등이 사용되어 전체적으로 어둡고 탁한 색상을 보이고 있다.
동국대학교 박물관  

 

 

▲지장탱화

자장보살(地藏菩薩)은 고대인도 브라마나 시대(B.C. 1000 ~ B.C. 800)에 일장(日藏), 월장(月藏), 천장(天藏), 등과 함께

별의 神으로 숭앙된 인도 재래의 神이다.

불교에서는 6세기 초 북인도 지역에 침입한 이교도의 불교 파괴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불법의 수호자로서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지옥중생을 모두 구제하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운 보살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지장신앙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중국의 사후신앙인 염라시왕 신앙과 결합되었고,

말법(末法)사상이 크게 유행하면서 부터 지장보살을 통한 구제를 희구하는 신앙으로 확대 발전을 이루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삼국시대에서 부터 지장신앙이 유입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에는 본격적으로 사후세계의 구주로서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이 후 수많은 민중의 목숨을 앗아간 왜란과 호란을 거친 조선중기 이후에는 그 신앙의 서원이 절정에 다다랐다.

따라서 18세기 부터 사찰에는 명부전이 독립된 불전으로 건립되기 시작하였고, 지장보살과 함께 지장탱화가 제작되어 봉안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지장탱화는 본래 사찰 주법당의 옆에 조영되는 명부전의 후불탱화로서  조성되는 불화이지만 지장전이나 명부전이 별도로 건립되지 못한

소규모의 사찰이나 암자에서는 주법당의 내부 한 쪽에 마련된 중단에 지장탱화를 봉안한다.

 

불화에 나타나는 지장보살의 도상은 사문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천의(천의)대신 가사를 입고 있으며 삭발을 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오는손에는 어둠을 밝힌다는 투명구슬을, 왼손에는 육환장(六環杖)이라고 부르는 석장을 쥐고 있다.

 

육환장의 상부에 장식된 여섯고리는 육바라밀을 상징하는 것이며, 지팡이의 정상부분에는 각화정자재왕여래(覺華定自在王如來)라 불리는

불상을 표현하기도 한다. 지장탱화의 배치 방식은 첫째, 지장보살만을 단독으로 묘사하는 경우와  둘째, 지장보살과 양협시 등 삼존상을 그린 것,

셋째, 지장삼존과 그 이외의 권속까지 묘사한 도상, 넷째, 지장과 권속및 명부의 10왕(十王)까지 한 폭에모두 묘사한 것 등이 있다.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그리고 시왕과 기타권속들이 함께 배치된 형식으로 가장 보편화된 도상이다.

이러한 구도에서 나타나는 권속들을 도상으로 살펴보면 좌협시인 도명존자는 합장을 한 사문의 모습으로 많이 표현된며

우협시인 무독귀왕은 왕관을 쓰고 합장을 하거나 지옥문 열쇠함을 양손에 받쳐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칠장사 오불회탱화

직사각형 구조물은 괘불은 거는 장치로서 칠장사와 안성에서 최고 자랑하는 국보 제296호로 지정된 오불회괘불탱로서

오불이란 다섯 분의 부처님, 회는 그림 회(繪), 괘는 걸 괘(卦), 불탱은 부처님의 상호 즉 얼굴을 그린 그림을 불탱 또는 탱화라고 하며

일년에 딱 하루 사월초파일날 일반인에게 공개하며 보물 제1256호인 삼불회괘불탱도 있습니다.

 

칠장사를 전체적으로 보면 통일신라시대 7C중엽인 선덕여왕(636년)때 최초로 중국 당나라에 가서 문수보살님을 친견하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가져오신

자장율사가 창건했으며 고려 현종 5년인 1014년 혜소국사에 의해 크게 중수되었습니다.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의 말사입니다.

 

 

▲천은사 아미타후불도 : 보물 제 924호

천은사는 지리산 3대 사찰 중 하나로서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년) 덕운선사가 세워 "감로사"라 하였다.

그 뒤 통일신라 헌강왕원년(875년)보조선사가 고쳐지었고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다시 고쳐 세우고 수리하였으나

영조 49년(1773년)에 화재로 절의 모든 건물이 불타 버렸습니다.

 

그 이듬해부터 혜암스님이 복원하면서 "천은사"로 이름을 고쳐 불렀다고 합니다.

 

이 불화는 혜암스님이 1774년 절을 중수하면서 현재의 극락보전을 건립한 후, 2년 뒤인 1776년에 조성하여 현재까지 극락보전에

아미타여래와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상의 후불화로 봉안되어있습니다.

 

이 불화는 천은사의 안타까운 사연과는 달리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왕생의 길로 이끌어준다는

아미타여래가 극락정토에서 팔대보살과 사천왕, 10대제자 등 수많은 청중을 이끌고 사리불 존자에게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

극락회상도' 형식의 아미타후불도입니다.

 

중품중생인의 수인을 한 아미타여래가 상단 중심에 있고 좌우협시보살로 화불을 모신 보관을 쓰고 정병을 들고 있는 관세음보살,

정병이 있는 보관을 쓰고 경책을 들고 있는 대세지보살이 앞줄 가운데에 있습니다.

앞줄 양옆엔는 두광부분에 이름이 친절하게 명기되어 있는 사천왕이 그려져 있는데

긴 검을 든 동방 천왕, 비파를 든 북방천왕, 용과 여의주를 든 남방천왕, 탑과 삼지창을 든 서방천왕입니다.

화면 가운데에는 문수. 보현. 금강장. 제장애. 미륵. 지장보살이 각각 좌우로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위로는 10대 제자와 여려분의 화불이 표현되어습니다.

맨 아래 본존인 아미타여래를 향하여 무릎을 끓고 법문을 청하는 비구승의 두광에

"舍利佛尊者(사리불존자)" 라 쓰여 있는데 10대 제자중 사리불존자가 아미타경을 설해 주기를 기원하는 장면임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