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대사(達磨大師) : 朝鮮後期
보리달마(菩提達磨, ?-536년)는 남인도 출신의 승려이다. 중국에 건너가 중국 선종의 초대 조사가 되었으며,
혜가(慧可, 487- 593년)가 지신의 팔을 잘라 가르침을 구하자 그에게 법을 전하여 2대 조사가 되게 하였다고 한다.
상단에 기록된 "서천 제 28세 중국초조"란 "염화미소" 일화로 알려진 마하가섭을 초조로 하는 인도에서의 선종 계보에서 보리달마가 28대 조사이며,
중국에서는 초대 조사가 되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선 수행 중심의 조선시대 불교에서도 달마대사는 선불교의 선구자로서 중요시되었다.
진영에 그려진 달마대사는 이국적인 얼굴은 아니자만 옷을 머리까지 덮어쓴 특징적인 차림을 하고 있다.
기허당대사(騎虛堂大師) : 朝鮮後期
기허영규(騎虛靈圭, ?-1592년)는 조헌(趙憲)의 군대와 함께 금산 전투에서 왜군을 맞아 싸우다가 전사한 의승장이다.
지공, 나옹, 무학의 삼화상 진영이 조선 건국과 관련하여 형성된 것아라면, 청허(淸虛). 사명(四溟). 기허(騎虛)의 삼화상진영은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한 3대 의승장의 진영이다.
조선 후기 사찰에서는 이 3대 의승장의 진영을 모시는 표충사(表忠祠)를 건립하기도 하였다. 근엄한 표정에서 의승장의 위엄이 잘 드러난다.
무경당대선사(無鏡堂大禪師) : 朝鮮後期
불화를 그리는 화승(畵僧)이기도 하였던 무경관주(無鏡觀周)의 진영이다. 그는 경북 안동 중대사(中臺寺) 신중도(1830년),
충북 괴산 채운암(彩雲庵) 영산회상도(1845년)를 제작하는 등 19세기에 활동하였다.
화면 왼쪽 상단에는 "선교양종 화엄강주 무경당대선사 관주 진영(禪敎兩宗華嚴講主無鏡堂大禪師觀周之眞)"이라 적혀 있어,
불화뿐 아니라 화엄에도 일가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 상단에는 원오거사(圓悟居士)의 찬문이 적혀 있다.
화악당대선사(華岳堂大禪師) : 朝鮮後期
화면 오른쪽 상단에 "화악당대선사의 진영(華岳堂大禪師之影)"이라고 적혀 있다. 화악당대선사는 화악문신(華岳文信, 1629- 1707년)
을 기리키는 것으로 보이나, 한자를 잘못적기도 하는 점을 고려하면 보다 이름이 높았던 승려 화악지탁(華嶽知濯, 1750- 1839년)일
가능성도 있다 화악지탁은 청허유정(淸虛休靜)에서 편양언기(鞭羊彦機)로 이어지는 조선 후기 불교계의 가장 유력한 문파에
속하는 승려로, 그 법맥은 제자인 화담경화(華潭敬和, 1786- 1848년)로 이어졌다.
운악당대선사(雲岳堂大禪師) : 朝鮮後期
운악당(雲岳堂)이라는 당호를 가진 승려는 몇 명이 알려져있지만 그 중 가장 유명한 승려는 운악당 두안(雲岳堂 斗安)이다.
그는 19세기 초중반경 운문사에서 만일염불회를 이끌었으며 대대적으로 사찰을 중창하였다.
운문사에는(만일회 창건주 운악당대선사 진영, 1875년)이 남아 있는데 얼굴 생김새는 다르지만 자세, 손에든 물건, 옷 표현 등이
유사하여 동일인일 가능성이 있다. 바닥에 화문석을 깔고 가부좌하고 앉은 전형적인 진영의 형식으로 그려졌다.
용암당대선사(龍巖堂大禪師) : 朝鮮後期
상단에 "용암당대선사의 진영(龍巖堂大禪師之眞相)"이라고 적혀 있다. 다른 내용이 없어 주인공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강세황이 비문(□陽神興寺龍巖大師碑銘)을 지어 준 용암체조(용암체조, 1714- 1779년)일 가능성이 있다.
비문에 의하면 그는 서산대사(서산대사)로 잘 알려진 청허휴정의 7세손 제자라고 되어 있어, 조선 불교의 대표적 승려였던
청허휴정의 법맥을 계승했다는 자부심이 드러난다. 눈을 크게 또렸하게 뜬 개성적인 인상으로 묘사되었다.
나한 = 석조나한좌상(石造羅漢坐像) : 朝鮮後期
나한은 불화뿐 아니라 상으로도 제작되었다. 이 소형 나한상은 나한전. 영산전(羅漢殿. 靈山殿)등에 봉안하는 십육나한상
또는 오백나한상의 하나로 추정된다. 여러 점을 함께 제작 봉안할 때 유리하도록 몸체는 단순화 시키고 머리는 크게 만들었다.
얼굴과 옷은 조각하기보다는 대부분 그려서 표현하였다.
나한도(羅漢圖)
십육나한 중 다섯 나한(十六羅漢圖) : 조선 19세기 후반
십육나한(十六羅漢)이란 부처가 열반에 든 뒤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열반에 들지 않고 이 세상에 머물러 불법을 수호하도록
부처에게 위임을 받은 제자들이다.
최고의 수행자이면서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자유로운 존재인 나한들의 모습은 염주를 들고 수행하는 모습으로도
혹은 옷을 풀어헤친 편안한 모습으로도 그려져 있다.
이 나한도에는 십육나한 중2. 4. 6. 8. 10번째 나한이 그려져 있어 여러 점으로 이루어진 십육나한도의 일부임을 알 수 있다.
설법하는 약사불(藥師佛會圖) = 朝鮮 1828년
사천왕과 보살 및 제자들을 거느리고 설법하는 약사불을 그렸다.
약사불의 양 옆에는 젊은 제자 모습의 아난과 나이든 제자 모습의 가섭이 있고 화면 윗부분에는 다시 십대제자를 작게 그렸다.
이들은 출가한 승려이자 부처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게 되는 나한이다.
부처의 설법회에는 이처럼 부처의 제자들이 다른 성중들과 함께 참여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관음 삼십이 응신도(觀音 三十二 應身圖) : 일본= 지온인(知恩院)
지장보살과 무리(地藏 十王圖)
야외 의식용 불화(浮石寺 掛佛圖 = 부석사 괘불도)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지장보살과 무리(地藏十王圖) : 조선후기 1873년
불교에서 아미타불이 죽은 사람을 극락정토로 왕생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지장보살은 죽은 사람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하는 역할을 한다.
지옥은 열 곳으로 나뉘어 각 지옥마다 한 명의 왕이 다스리며 죄인을 심판한다.
이 그림에서는 지옥 중생의 구원자인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하여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지옥을 다스리는 열 명의 왕, 천녀, 판관 등을 그렸다.
19세기 중후반에 주로 경남 및 전남지역에서 활동한 화승인 금암당(錦庵堂) 천여(天如)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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