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전체가 불교문화재의 보물창고인 안양암(安養庵)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자리한 안양암(安養庵)은 1889년 성월대사(性月大師)가 창건한 정토도량(淨土道場)이다.
또한 이곳에는 조선 말기부터 조성된 전각, 불화, 불상, 공예품 등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사찰 전체가 문화재인 것이다. 100여년의 짧지만은 않은 세월을 머금고 있는 성보들이기 때문이다.
안양암(安養庵)은 1889년 청신사 이창진(李昌鎭:성월대사)이 환옹(幻翁)스님으로부터 거사계를 받고 절 이름을 칠성각이라 하고,
건물을 지은 것이 시초라고 한다. 그리고 7월에는 아미타삼존상을 봉안하고, 후불탱, 신중탱, 산신탱을 함께 봉안하였다.
1899년에는 삼존상에 개금하고 독성각을 새로 짓고, 독성탱과 산신탱을 조성하였는데 이때 절 이름을 안양암으로 바꾸었다.
1901년에는 성월거사가 환옹스님에게 선주(善住)라는 법명을 받고 정식으로 승려가 되었다. 이로써 창건 이래 13년간 재가신도들에
의한 신앙결사로 유지되던 사찰이 변화를 하게 된다.
1909년에는 절 왼쪽 절벽에 관음상을 조각하고, 대웅전에 문고산(文古山) 스님이 조성한 감로탱을 봉안하였다. 1911년에는 관음상
예배를 위한 공간인 관음전과 염불당을 건립하였다. 1914년 2월에는 대웅전 10칸을 새로 짓고, 4월에는 신중탱과 산신탱을 개조(改造)
하여 봉안하였다. 1915년에는 3월에 대웅전을 단청하고, 7월에 명부전 6칸을 지었다.
1916년 5월 27일에는 성월대사(性月大師)가 주지에서 물러나고 양학(養鶴) 스님이 주지에 부임하였다. 또한 조선 사찰령에 의해
봉은사 말사로 등록되었다.
1917년 4월에는 대웅전에 팔상탱을 조성하였고, 1919년 7월에 아미타괘불탱을 조성하였다.
1922년 6월에는 명부전에 시왕탱을 조성하였고, 1924년에는 칠성탱을 조성하고 신중탱, 관음탱을 개조 봉안하였다.
또한 문고산(文古山)이 조성한 대웅전 신중탱, 명부전 지장시왕탱, 시왕상을 봉안하였다.
1926년에는 영각을 짓고 아미타삼존탱을 봉안하였고, 1930년 6월에 지장시왕괘불탱을 조성하였다. 1934년 12월에는 천오백불상
조성을 시작하였고, 1936년에는 천오백불전 건립 공사를 시작하였다. 1937년 4월에는 천오백불전을 완공하고 천오백불상과 신중탱을
봉안하였다. 1939년에는 강당 15칸을 건립하였고, 1941년에는 화경(和鏡)이 조성한 지장삼존과 판관 등 권속들을 명부전에 봉안하였
다. 1942년에는 염불당 중건을 시작하여, 이듬해 8월에 완공하였다. 이로써 안양암은 오늘날과 같은 도량을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후 안양암은 1968년부터 법정 소송에 휘말렸다가 1998년에 이르러 분쟁이 종결되었다. 이러한 분쟁의 회오리 속에 안양암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한국미술박물관 권대성 관장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권대성 관장은 1977년 개발위기에 몰린 안양암을 매입한 것을 시작으로 갖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안양암 소속의 종단과 쟁송을
거듭하여 안양암을 지켜내었다. 그 결과 안양암은 2004년 5월 3일 서울시청에 한국불교미술박물관 별관 사찰박물관으로서 정식 등록되고, 2005년부터 일반에 무료 공개되고 있는 것이다.
안양암 대문 일주문과 금강문 역할을 하고 있다.
금강문에 역사와 두 동자인 문수 ·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다.
안양암의 일주문 없다 이 대문이 그 역할을 하는데 여느 절집처럼 역사나 신장님이 그려져 있는것이 아니라
두 동자가 코끼리와 사자에 올라타 두손을 모아 서로 합장하고 있습니다.
즉 사자를 탄 동자는 문수보살, 코끼리를 탄 동자는 보현보살을 뜻하는 것이다.
사자를 탄 동자는 문수보살, 코끼리를 탄 동자는 보현보살을 뜻하는 것이다.
두 동자가 코끼리와 사자에 올라타 두손을 모아 서로 합장하고 있습니다.
대웅전(大雄殿)
정면과 측면 두 개의 기둥 위에는 구슬을 물고 있는 용두가 장식되었다. 문은 사분합문으로 창살은 띠창살이며,
서까래 끝에는 문을 들어 올려 걸 수 있는 걸쇠가 고정되어 있다.
기둥에는 『석문의범(釋門儀範)』 「대장전청(大藏殿請)」에 나오는 내용을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이 쓴 주련이 걸려있습니다.
◎ 주련 ◎
불신보편시방중(佛身普徧十方中) 부처님의 법신은 시방에 두루 하시니
삼세여래일체동(三世如來一體同) 삼세여래도 모두 한결 같으시네.
광대원운항부진(廣大願雲恒不盡) 광대한 서원의 구름 항상 다함이 없으시고
왕양각해묘난궁(汪洋覺海渺難窮) 드넓은 깨달음의 바다는 아득하여 헤아리기 어려워라.
벽화로는 : 십우도와 오른쪽 벽면 아래쪽에 “상락아정 천우사화(常樂我淨 天雨四花)”
"법륜상전 육종진동(法輪常轉 六種震動)"이라는 글씨를 도안화 하여 써 놓았다.
안양암 대웅전 삼존불상(아미타불,관음보살,지장보살) (安養庵 大雄殿 三尊佛像(阿彌陀佛,觀音菩薩,地藏菩薩))
아미타삼존상(서울시유형문화재 제190호, 시대 : 조선)이 모셔져 있으며
19세기 말~20세기 초를 대표하는 화승들이 조성한 아미타후불도(서울시유형문화재 제185호), 시대 = 조선
팔상도(서울시유형문화재 제187호, 시대 : 일제강점기),
감로도(서울시유형문화재 제186호, 시대 : 대한제국),
신중도(서울시문화재자료 제15호, ) 등이 봉안되어 있습다.
안양암 대웅전 삼존불상(아미타불,관음보살,지장보살, 安養庵 大雄殿 三尊佛像(阿彌陀佛,觀音菩薩,地藏菩薩)) : (서울시유형문화재 제190호, 시대 : 조선)과
19세기 말~20세기 초를 대표하는 화승들이 조성한 아미타후불도(서울시유형문화재 제185호),
대웅전 감로도(大雄殿 甘露圖) :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186호, 시대 : 대한제국
오른쪽 벽면에 있는 불화로 경선응석(慶船應釋)이 1909년 그린 것입니다. 화면은 3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단에는 칠여래, 중단에는 2위의 아귀, 하단에는 육도의 여러장면이 다채롭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상단 중앙에는 칠 여래가 일렬로 나열되어 있고, 좌측에 아미타불과 인로왕보살이 그려져 있습니다. 중단에는 제상과 무릎을 끓은 채 합장하고 있는
아귀를, 하단에는 나지막한 산을 경계로 육도의 여러 장면들이 그려져있습니다.
이 감로도는 앞 시대 감로도에 비해 상단의 칠 여래가 크고 중단의 아귀 주위로 구름이 배치된 점이 특징입니다.
극락왕생도(大雄殿 極樂往生圖) :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188호
두 점이 하나를 이루고 있습니다.
상단의 극락왕생도는 푸른 연꽃 위에 결가부좌하고 앉아있는 아미타삼존을 중심으로 양 옆에 연화화생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하단의 극락왕생도는 인로왕보살이 극락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장면이 그려진 반야용선도이다.
전각형의 용선은 흰 물거품이 이는 파도에 둘러싸인 채 아미타불과 왕생자들을 태우고 있습니다.
신중도(大雄殿 神衆圖) : 서울특별시문화재자료 제15호
1924년 고산축연(古山竺演), 보응문성(普應文性), 학송(鶴松) 등 당대 최고의 화승이 그린 것이다.
화면은 세 개의 얼굴과 여덟 개의 팔을 가진 대예적금강(大穢跡金剛)을 중심으로 왼쪽에 범천, 제석천, 오른쪽에 위태천을 위시한
여러 신장이 배치된 모습이다.
팔상도(大雄殿 八相圖)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87호 시대 : 시대 : 일제강점기
팔상도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불화 입니다.
법당 내에 있는 범종
관음전(觀音殿) = 안양암 마애관음보살좌상(安養庵 磨崖觀音菩薩坐像)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122호, 시대 = 조선
커다란 암벽에 붙여 1911년 지은것이랍니다. 내부에는 1909년에 벽면에 조성한 마애관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돌로 불상이 들어 앉을 반원형의 공간을 만들어 중앙에 관음전(觀音殿)이라 새기고 그 안에 불상을 조각한 것으로 전체 높이 3.53m이다.
불상 좌우에 연꽃이 조각되어 있는 팔각기둥이 세워져 있어 전각 같은 느낌을 준다.
불상은 전체적으로 묵중하고 풍만한 느낌을 주는데, 조각선은 그리 깊지 않지만 자세가 안정적이며, 넓고 각진 어깨가 중량감있어 보인다.
이러한 양식은 고려말 조선초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조선 후기 서울 지역의 마애불 양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마애보살상 앞에는 팔각형의 석조 기둥이 좌우에 세워져 있고 기둥을 잇는 돌에 '觀音殿' 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석감마애관음보살상(石龕磨崖觀音菩薩像) :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122호
경내의 커다란 화강암 바위의 동쪽 면을 파서 얕게 조각한 것 입니다. 전체적으로 반원형의 석감(石龕)을 얕게 부조하고 그 안에 보살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석감이란 : 돌로 된 감실이 있는 바위벽에 새겨진 불상을 말합니다.
전각의 왼쪽 편에는 불상을 조성하는데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정확한 판독이 어려우나, 그중 “□□삼년기유년(□□三年己酉年)”이란 내용으로
보아 1909년에 조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명문에 의하면, 이 보살상을 조각한 사람은 석공(石工)으로 되어 있고 명문을 새긴 사람인 김천보(金天輔)는 각수(刻手)라 하였다.
머리에는 원통형의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데 보관 중앙에 좌상의 화불(化佛)이 간략하게 표현되었으며 관대(冠帶) 좌우에는 수술 장식이 늘어져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보아 관음보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나 여래가 입는 법의를 입고 있으며 손에는 아무런 지물도 쥐고 있지 않다.
넓은 얼굴에는 백호(白毫)와 눈ㆍ입만 채색되어있으며 코는 낮고 뭉툭하여 전반적으로 보살상의 인상이 무뚝뚝해 보인다.
대의(大衣)는 양어깨를 모두 감싸고 있는 통견(通肩)으로 걸쳤으며 어깨선은 이중으로 표현되어 팔꿈치 아래까지 내려와 있다.
두 손은 각각 가슴 앞과 배 부분에 두고 있는데 왼손은 엄지와 둘째손가락을 맞대고 있고 오른손은 다섯 손가락을 다 펴고 있다.
광배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이 연결된 키 모양으로 네 줄의 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광 바깥쪽에는 산스크리트어로 '옴'자를 양각하였다.
염불당(念佛堂)
1943년에 지은 것이다. 정면에는 ‘만일회(萬日會)’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내부에는 관음보살반가상과 삼불회도(서울시문화재자료 제20호)가 봉안되어 있다.
내부에 봉안된 관음보살반가상은 전체적으로 백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안양암 삼불회도 (安養庵 三佛會圖) :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 20호
관음보살반가상은 전체적으로 백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머리에는 불꽃모양과 새 모양이 달린 금색보관을 쓰고 있다.
까만 머리카락은 양 어깨 위로 흘러내렸으며 얼굴은 계랸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허리는 잘룩하며 복부 위에서 천의가 ×자형으로 감겨져있다.
오른손은 손등이 위로 보이게 펴서 오른 무릎에 올렸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펴서 위로 향하게 하여 왼쪽 무릎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오른다리는 결가부좌 한 상태에서 아래로 내려 반가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머리에는 불꼴 모양과 새 모양이 달린 금색보관을 쓰고 있다.
벽장같이 만들어 그 안에 미닫이 문을 해 달고 모셔 놓았다.그러다 보니 후불화의 모습이 잘 나타나지 않아 좌우옆면 불화를 따로 찍어 올려놓았다.
원모습
삼불회도 (安養庵 三佛會圖)도 좌우의 후불화모습
명부전(安養庵 冥府殿)
1915년 지은 것이다. 명부전 편액과 더불어 4개의 주련이 걸려 있는데 모두 이태형(李泰亨)이라는 사람이 쓴 것이다.
◎ 주련 ◎
모언지장득한유(莫言地藏得閑遊) : 지장보살님이 한가로이 놀고 계시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지옥문전루불수(地獄門前淚不收) : 지옥문전에서 눈물을 거두지 못하시도다.
조악인다수선소(造惡人多修善少) : 악을 짓는 이는 많고 선을 행하는 이는 적구나
남방교화기시휴(南方敎化幾時休) : 남방교화를 언제나 쉬실꼬.
안에는 지장삼존상(서울시문화재자료 제22호)과 시왕상(서울시문화재자료 제23호), 2구의 판관상, 2구의 금강역사상, 4구의 동자 · 동녀상이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1924년에 조성된 지장시왕도(서울시문화재자료 제17호)와 1922년에 제작된 시왕도(서울시문화재자료 제18호), 사자도, 금강역사도 등이
봉안되어 있다.
좌우 측 벽면에는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한 노력인지, 오른쪽 벽면에는 “안양정토(安養淨土)” 글자를,
왼쪽 벽면에는 “극락세계(極樂世界)”글자를 도안화하고 다람쥐와 포도, 연꽃과 새를 그려 장식하였다.
지장삼존상(冥府殿 地藏三尊像) : 서울특별시문화재자료 제22호
지장삼존상(冥府殿 地藏三尊像) : 서울특별시문화재자료 제22호
봉안되어 있는 삼존상으로 지장보살좌상은 민머리에 약간 길쭉한 방형의 얼굴로 이목구비가 큼직하다.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었고,
U자형으로 흘러내린 법의는 다소 도식화된 경향이다.
수인은 왼손을 무릎에 올려 보주를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위로 들어올려 바깥쪽으로 내어 보이고 있다.
도명존자입상은 지장보살의 왼쪽에 협시하고 있는데 두 손으로 석장을 쥐고 있다. 무독귀왕입상은 지장보살의 오른쪽에 협시하고 있으며,
역시 두 손으로 경궤를 들고 있다.
경궤에는 “대정십이년십대왕(大正十二年十大王)”이라는 음각 명문이 있어 1923년에 조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이 삼존상은 일괄로 서울특별시문화재자료 제22호로 지정되어 있다.
명부전 시왕상 및 권속18구(冥府殿 十王像 및 眷屬十八軀) : 서울특별시문화재자료 제23호
시왕상은 1941년에는 화경(和鏡)이 조성한 것으로 지장삼존상 좌우에 각 5위씩 봉안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시왕상을 보면 모두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인데 안양암의 존상은 모두 좌상의 형식으로 각기 홀이나 경전, 명부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 일괄로 서울특별시문화재자료 제23호로 지정되어 있다.
명부전 지장시왕도(冥府殿 地藏十王圖) : 서울특별시문화재자료 제17호
지장삼존상 뒤에 봉안되어 있는 불화로 1924년 고산축연(古山竺演), 보응문성(普應文性), 학송(鶴松) 등 당대 최고의 화승이 그린 것이다.
화면은 중앙에 원형의 좌대에 앉아 있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적으로 협시 권속을 그렸다.
중앙의 지장보살은 두건을 쓰고 있으며, 신체의 뒤로 오색 서운이 뻗어나가는 신광과 원형의 두광을 갖추고 있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왼손에는 투명한 보주가 들려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위로 들어 밖으로 내어 보이고 있다.
지장보살 좌우측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시왕, 사천왕, 마두나찰, 우두나찰, 그리고 천동․천녀가 각 2위씩 표현되었다.
명부전 시왕도 및 사자도(冥府殿 十王圖 및 使者圖) : 서울특별시문화재자료 제18호
시왕상 뒤에 봉안되어 있는 불화로 1922년 고산축연(古山竺演), 학송(鶴松) 등이 19세기 말 서울 경기지역 시왕도의 도상을 따라 그린 것이다.
시왕탱은 두 폭에 4대왕씩을 나누어 그리고 도시대왕과 전륜대왕은 한 폭에 따로 그렸다.
그리고 2폭의 사자탱은 화면을 구획하여 사자와 인왕을 각기 나누어 그렸다. 화면구성은 상단에는 시왕이 심판하는 장면을 ,
하단에는 망자들이 형벌을 받는 장면이 그려졌다.
현재 이 불화는 일괄로 서울특별시문화재자료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양암 사적비(安養庵 事蹟碑)
넓적한 바위 끝에는 4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안양암사적비와 중건주이태준공덕비, 거사이선행정골사리비가 나란히 서 있다.
안양암사적비는 1932년 권상로(權相老)가 지은 것이고, 중건주이태준공덕비는 1963년 한법용의 찬문을 한글로 새겨 놓은 것이다.
거사이선행정골사리비는 1923년 입적한 이선행거사의 사리비를 1963년에 세운 것이다.
정면에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음각된 비석이 하나있다. 이 비석에는 1939년 삼화부인회 10주년과 중건을 기념하여 세우고,
1943년 삼화부인회의 재설치 및 염불당 중건을 기념하여 새겼다고 적혀있다.
창건주 이태준 공덕비(친일파로 낙인이 찍혔다 함)
◈찾아가는 길 = 지하철
6호선과 1호선 동묘앞역 9번 출구로 나와 창신역방향으로 100m 정도 가다보면 GS25 편의점이 나온다.
여기서 왼쪽 길로 50m 정도 가면 두산아파트이다. 아파트 담장을 끼고 왼쪽길을 따라 50m 정도 가면 안양암에 닿는다.
'서울 경기 = 心 마음의 길을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유일의 비구니 종단인 보문종의 총본산 탑골승방 보문사(普門寺) (0) | 2012.10.26 |
---|---|
불교문화재의 나라 안양암(安養庵) (0) | 2012.10.22 |
서울 근교의 명찰(名刹) 망월사(望月寺)= 천중선원, 무위당, 영산전, 혜거국사부도(慧炬國師浮屠) (0) | 2012.09.24 |
도봉산 제일의 명찰(名刹) 망월사(望月寺)= 낙가보전, 월조당사리부도탑, 범종각. 고불원, 천봉당대선사탑비와 태흘탑, 문수굴 (0) | 2012.09.24 |
황금법당(黃金法堂) 수국사의 역사 (0) | 2012.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