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본사와 사찰 벽화 이야기

해인사 = 대적광전. 대비로전벽화 이야기

백련암 2013. 4. 22. 03:02

배 고푼 호랑이들에게 몸을 내주시는(공양)  전생의 부처님

 

부처님은 전생 무수한 세월동안 자신의 몸을 버리면서까지 만중생을 이롭게 합니다....

 배고픈 호랑이에게 몸을 던지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본생담에 담긴 이야기입니다.

  

 

 阿難 尊者(아난존자)의 득도


아난 존자(阿難 尊者)는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이다. 25년간이나 곁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석가모니를 시봉하면서

한 번도 싫은 내색을 보이지 않고 정성을 다했으며, 부처의 설법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듣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석가모니가 살아 계시는 동안에는 도를 깨치지 못하였다.

그런 까닭에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 카아샤파의 주재로 칠엽굴에서 제 1회 결집(結集)을 열려고 할 때 거기 참석할 자격이 없었다.

문자가 없었던 당시에 석가모니의 말씀을 정확하게 기억하여 후세에 전할 방법과 석가모니의 열반 후

교단의 운영 문제 등을 상의하기 위한 첫 번째 회의였다.

도를 깨친 500명의 아라한(阿羅漢)만이 참석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르지 못한 아난다는 참석할 수 없었다.

이에 크게 분발한 아난다는 홀로 절벽 끝에 가서, 발꿈치를 들고 발끝으로 7일간이나 꼼짝 않고 서서 용맹정진한 결과

드디어 도를 깨달아서 아라한이 되었다.

그리하여 장로들만 모이는 제1회 결집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섬이 배로 변하다 = 산의 한부분을 타고 날아가는 일화


옛날 가엽불(迦葉佛) 시대에 예류성자(預流聖者)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게 되었다.

몇칠 후 폭풍이 불어 배가 파선되자, 부서진 배로 뗏목을 만들어 타고 겨우 작은 섬에 도달하였다.

예류성자(預流聖者)는 그 섬에서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名號)를 칭명(稱名)하였다.

그랬더니 그 칭명 소리를 듣고 섬 지키던 용왕이 예류성자의 깊은 신심에 감동되어 섬을 배로 변하게 하였고

예류성자(預流聖者)는 험한 바다를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가엽불(迦葉佛) : 인간의 수명이 2만 세 때에 출세(出世)하여 정각(正覺)을 이룬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이전의 부처이며,

과거 칠불(七佛)의 한 분이다.


※예류성자(預流聖者) : 예류(預流)는 예류향(預流向) 예류과(預流果) 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는 모두 소승 불교에서 수도하여 깨달음을 얻어 들어가는 품계(品階)를 말한다.

그러므로 예류성자(預流聖者)는 예류(預流)의 품게를 얻은 성자(聖者)라는 뜻이다.

 


대비로전 ↓

 

拈花와 微笑(염화미소) = 가섭존자와의 인연


약 3000년 전, 인도 북쪽에 있는 네팔국에 와사성이라는 도성이 있었는데, 석가모니는 그 교외의 영취산(靈鷲山)에서 많은 대중들에게 법회를 열었다.

사자좌(獅子座)에 오른 석가모니는 전일과 같이 "착하고 착한 선남 선녀들이여……."하고는 그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오랫동안 단정히 앉아만 있었다.

모인 대중들은 오늘은 무슨 말씀일까 생각하며 기다리는데 아무리 오래 있어도 통 말이 없었기 때문에 이상하게 여겼다.

한참만에 석가모니는 대범천이 공양한 금바라(金波羅)라는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문득 들어올리며 대중들에게 두루두루 보여 주었다.

만좌한 대중들은 석가모니의 설법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너무 뜻밖의 일을 보고 그 뜻을 알 수 없어 그저 멍할 따름이었다.

그때 좌중의 상좌인 마하가섭(摩訶迦葉)만이 홀로 석가모니가 꽃을 들어올린 뜻을 알고 미소 지었다.

석가모니도 무언, 가섭도 무언, 대중은 무슨 뜻인지 몰라 농아같이 되어 만좌가 적적무언지대(寂寂無言地帶)인 속에서

형용할 수 없는 깊고 깊은 대설법이 이루어졌다.

언어를 초월한 이심전심(以心傳心), 마음과 마음으로 대법문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향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영취산 너머에서 30여 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농사와 목축을 상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70명의 바라문이 있었다.

그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자 그 자리에서 수염과 머리를 깍고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출가는 했지만 아내와 자식을 사모하는 정을여의지 못해 영취산을 지날 때마다 뒤돌아보곤 했다.

어느 날 부처님을 따라 절로 돌아오면서도 그들의 마음은 한결같이 세속을 못잊어 했다.

더구나 그날따라 비가 내려 그들의 마음은 더욱 울적하고  답답했다.

부처님은 바라문들의 심정을 눈치채고 길가에 있는 빈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비를 피했다.

그러나 성글게 이엉을 이은 지붕이라 비가 샜다.  부처님은 이 광경을 보시고 계송을 읊으셨다.

 

지붕의 이엉을 성글게 이어,  비가오면 곧 새는 것처럼,  뜻을 굳게 단속하지 않으면,  음란한 욕심이 마음을 뚫는다.

지붕의 이엉은 촘촘히 이으면,  비가 와도 새지 않는 것처럼,  뜻을 굳게 지니고 그대로 행하면,  음란한 욕심이 생기지 않으리

 

70명의 비구들은 계송을 듣고 뜻을 굳게 지니려고 애써 보았으나 마음은 여전히 울적하기만 했다.

얼마 후 비가 개어 일행은 다시 길로 나섰다. 길가에 헌 종이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부처님이 한 비구에게 그 종이를 주우라고 하셨다.

그는 분부대로 종이를 주웠다. 부처님은 물으셨다.  "그 종이는 무엇에 썼던 것인가?"

그 비구가 대답했다. "향을 쌌던 종이인 모양입니다. 지금은 버려져 있지만 아직도 향내가 배어 있군요."

 

말없이 길을 가는데 이번에는 새끼줄이 길가에 놓여 있었다. 부처님은 비구에게 그걸 주우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서 다시 물으셨다.

"그것은 무엇에 썼던 새끼인가?" 비구가 대답했다. "이 새끼줄에서는 비린내가 납니다. 아마도 생선을 묶었던 새끼줄인 모양입니다."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든지 본래는 깨끗하지만 그 인연에 따라 죄와 복을 일으킨다. 어진 이를 가까이하면 뜻이 높아지고,

어리석은 자를 벗하면 재앙이 닦친다.  그것은 마치 종이가 향을 가까이 했기 때문에 향내가 나고, 새끼 줄은 생선을 가까이 했기 때문에

비린내가 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사람들은 무엇엔가 점점 물들어 가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부처님은 다시 계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사람에게 물드는 것은,  냄새나는 물건을 가까이하듯,  조금씩 조금씩 허물을 익히다,  자신도 모르게 악한 사람이 된다.

어진사람에게 물드는 것은,  향기를 쏘이며 가까이하듯,  지혜를 일깨우며 선을 쌓아,  자신도 모르게 선한 사람이 된다.

<법구비유경> 中 쌍요품[雙要品]

 

 

죽은 아들을 살려달라고 찾아온 아이의 어머니에게 부처님은 사람이 죽지 않은 집에서 겨자씨를 얻어오면 살려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아이의 어머니가 만방으로 찾아다녔으나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은 집은 없었죠.

결국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제행무상의 진리를 일깨워 주셨던 내용, 아이의 어머니는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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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당시에 외동아들을 잃고 비탄에 빠진 한 여인이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면서 거의 실성하다시피 아주 이상한 행동을 하고 울부짖으며

돌아다녔습니다.  죽은 아기를 안고.....

그때 많은 사람들이 저 여인의 슬픔을 달랠 자는 부처님 밖에 없으니 부처님 쪽으로 좀 인도를 해야겠다 했어요.

그래서 부처님에게 그 여인을 데려 갔습니다.

 

그때 우리 부처님께서는 참으로 불쌍하도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 그랬더니 이 애기엄마는 그래도 정신이 없어서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어요.

그때 우리 부처님이 그래 그럼 좋다 내가 귀한 약이 있으니 그것을 구해오면 내가 살려 주겠다 그랬어요.

그때 이 여인은 그래 하리라고 약속을 했고 그 약이 뭐냐 하면은 저 마을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어떤 집안에서든지 한 번도 죽지 않은 그 집의 겨자씨를 가져오면 내가 그걸로 살려 주겠노라 했어요.

인도는 집집마다 다 이 겨자씨가 다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희망을 가지고 이 동네 저 동네를 다니면서 겨자씨를 구했습니다.

단 한 사람도 죽지 않은 집안의 겨자씨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도는 가보면 큰 집에서 몇 대가 같이 살아요.

그래서 그 친척 친척입니다. 거의..

일가친척 전체가 한집을 이루고 사는데 거기에서 죽지 않은 집안이 어디 있었겠느냐 이거지요.

삼촌이 죽었으면 죽었고 자식이 죽어도 죽고 가장 직접적으로는 할아버지 할머니 고조부 고조모 안 죽은 집안이 어디 있느냐 이거지요.

그래서 끝내 어느 한 사람도 죽지 않은 집안의 그 겨자씨를 구하지 못하고 나중에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세상에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게 되어 있구나 하고 거기서 스스로 큰 깨달음을 얻고는 그 애기를 땅에 묻고 부처님 전에 나아가서

“부처님 산자는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게 된 것을 제가 알았습니다.

 지금부터 저는 부처님 공부를 부지런히 하면서 열심히 제가  수행정진 하겠습니다.”

 

 

바보라 불리였던 주리반이 부처님께 " 쓸고, 닦자"라는 일명 화두?를 받아서 결국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아라한이 되었다는 것 

 

바보라 불리었던 주리반특

남의 나쁜 점을 꾸 짓기를 너무 엄하게 하지 말라. 남에게 착한 일 가르치기를 너무 높은 것으로 하지 말라.

그 사람이 행할 수 있는 것으로써 해야 한다. = 채근담.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실 때 주리반특 이란 비구스님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우둔하고 미련하여 5백의 아라한들이 날마다 가르쳐 주었으나 3년 동안 글 귀 하나를 외우지 못했습니다.

 

부처님은 이를 불쌍히 여겨 守口攝意 身莫犯(수거섭의 신막범) "입을 지키고 뜻을 거두어 몸을 범하지 말라"는

게송을 주시고 그 뜻을 설명해 주셨다.

그러나 이것마저 외우지를 못했다. 그래서 부처님은 "청정한 자성(自性)을 깨닫자면 무명과 업장을 닦아야 한다." 며

그에게 맑을  청(淸) 쓸 소(掃) 청소 이 두자를 외우면서 청소를 하도록 일을 시키셨다.

주리반특은 부처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열심히 청소를 하면서 청소, 청소하고 부지런히 게송을 외웠다.

머리는 아둔한 주리반특 이었으나 자신의 업보를 쓸어내고 마음의 때를 깨끗이 닦아야 출가에 목적인 성불을 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정진하고 수행한 끝에 그는 드디어 활연히 대도를 깨닫게 되었다.

 

그 후 부처님은 주리반특으로 하여금 바사익왕을 만나게 하시었다. 이에 놀란 바사익왕이 그 까닭을 부처님에게 묻자

"반드시 많이 배우는 것만을 요하지 않습니다. 행하는 것이 으뜸입니다." 라고 왕을 깨우쳐 주었다는 말씀이 경에 실려 있다.

 

 

부처님께서 금시조에게 피해를 입는 용왕들에게 가사 일령을 내리시어 화를 면하게 하신다.

 

용왕과 금시조

불설가사공덕경(佛說袈裟功德經)에 보면 부처님께서 기사굴 산중에 계실때 문수사리보살이 여쭙기를

"부처님이시여, 염부제(閻浮提) 중생들이 어떻게 인연(因緣)을 지여야 곧 수명(壽命)과 福을 얻게 됩니까?

원컨대, 내세(內世) 중생을 위하여 장수하고 좋은 복 되는 법을 설하여 주소서" 하니 부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너희들은 대자대비심(大慈大悲心)으로 써 오탁악세(五濁惡世)에서 헤메는 중생들을 불쌍히 생각하여 장수하고 복짓는 법을 물으니

말하리라, 장수하고 福이 되는 법을 말하자면 가사를 짓는 법이 제일 되느니라,

대저 가사는 부처님의 상의(上衣)이며 만행(萬行)을 닦는 보살의 대의(大衣)니라, 그러므로 삼세제불(三世諸佛)과 무량한 보살들이

가사를 수하지 않고 수도성불(修道成佛)하는 부처님이나 보살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가사를 입는자는 능히 복전(福田)을 짓게 되고 가사를 시주하는 자도 무량한 복을 얻고 속히 수승한 대과(大果)를 얻게

되느니라, 그리고, 가사에는 천상(天上) 대범천왕(大梵天王)과 제석천왕(帝釋天王)은 남북에 앉아서 옹호하고

사방천왕(四方天王)은 가사 하편에 서서 시위하느니라

만일 용왕이 가사를 몸에 걸치게 되면 독한 금시조의 해를 받지 아니하는니라.

 

금시조라는 새는 한번 날개를 펴면 구만리장공(九萬里長空)을 날개되는데 금시조가 먹는것은 매일 용 오백마리씩을 먹는지라,

용왕이 많은 근심을 하여 부처님께 찾아거서 예배하고 여쭙기를 "어떻게해야 금시조의 난을 면 하오리까?" 하니

부처님께서 수(受)하고 계시던 가사 끈에서 붉은 실 한바람을 뽑아 주시면서 이르시기를

"이 가사에서 나온실을 너의 꼬리에다가 잡아 매어두면 금시조의 난을 면하리라" 하셨습니다.

용왕이 부처님께서 주신 다홍실을 자기의 꼬리에 매 두었는데 이튿날 금시조가 바다속으로 날아와서 그 용왕을 물고

구만리(九萬里)나 되는 수미산정(須彌山頂)으로 가서 용왕을 먹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금시조는 뱀이 개구리를 먹을때 머리부터 먹는 방식과는 달리 용을 먹을 때 꼬리부터 순서를 정해서 법도에 따라 먹는데

먹기위해 하루종일 꼬리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어서 결국 기진맥진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용에게 사죄를 하면서 말하기를 "네가 무슨 도력으로 꼬리를 없앴느냐?" 고 묻자

용왕이 답하기를 "부처님께서 너의 난을 면하게 해주시려고 수(受)하시던 가사에서 다홍실 한바람을 주시면서 일러 주신데로

내 꼬리에다 잡아 매 두었다." 고, 하니 금시조는 크게 뉘우친뒤 용왕에게 사과를 하고 직접 용궁까지 가서 법문을 듣고

죽어 천상에 태어났으며 이후로 용왕은 금시조의 난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불설가사공덕경에서도 가사의 공덕이 무량함을 말하고 있으며

가사의 색이 붉은색계통임을 이 경에서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가루라 = 인도 신화에 나오는 상상의 새입니다. 금시조 또 묘시조라고도 불리지요.

새의 왕으로서 용을 잡아먹고 살면 비바람을 그치게 하고 번개를 피하는 힘이 있었다고 합니다.

두 날개를 펼치면 그 길이가 자그마치 삼백삼십육만 리나 되며 온통 아름다운 황금빛으로 빛난다고 한다.

 

 

베를짜고 고기를 낚고 일을하고 공부하는 우리들.....코끼리 기린 어류들에게.......

청정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광명은 태양처럼 널리 비추입니다.

비로자나란 "바이로차나" 즉 "광명변조"....부처님의 진리광명이 태양처럼 비추이며 온갖 중생을 밝힌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 아래에 태양이 그려져 있네요.

 

 

 釋迦牟尼와 調馬師(석가모니와 조마사)


어느 날 석가모니가 길을 가다가 야생마를 잘 길들이는 조마사를 만났습니다. 이때 석가모니는 제자들을 보고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야생마도 여러 가지 성품이 있어서, 어떤 말은 쉽게 길들여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말은 아무리 애를 써도 길들여지지 않는 말도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쉽게 교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무지 교화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다음과 같은 중생은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처럼 제도(濟度)할 수 없는 중생들이다.


첫째가 원을 세우지 않는 중생들이고(無願 衆生濟度 不能[무원중생제도불능])

둘째는 인연이 없는 중생들이다.(無緣 衆生濟度 不能[무연중생제도불능])

 

 

거짓말을 일삼던 부처님의 아들 라훌라에게 부처님께서는 발을 씻게 하시고는 그것을 엎어버리십니다.

그리고는 아들 라훌라에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진실치 못하여 마치 엎어진 물그릇이 물을 담지 못하는 것과 같아

도에 나아갈 수 없다고 하시고는  비유로써 아들인 라훌라의 잘못을 고치셨다고 합니다.... 아함경에

 

♣부처님이 아들(라훌라)의 못된 버릇을 고치다.♣

라훌라가 아직 도를 얻기 전이었다. 그는 성미가 거칠고 사나운 데다 말에는 진실성이 적었다. 부처님은 라훌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저 현제(賢提)라는 절에 가서 안거[한 곳에 머물면서 수행하는 일]해라.

안거 중에는 입을 무겁게 가져 부디 말을 조심하고 생각을 한 곳에 모아 경전과 계율을 열심히 배워라.”

 

라훌라는 부처님의 분부대로 그 절에 가서 90일 동안 안거하면서 자신의 허물을 뉘우치고 정진하려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부처님은 몸소 라훌라가 안거하는 곳으로 가 보셨다.

라훌라는 부처님을 반기면서 절을 올린 뒤 노끈으로 짠 의자를 내놓았다. 부처님은 의자에 걸터앉아 라훌라에게 말씀하셨다.

 

“대야에 물을 떠다 내 발을 좀 씻어 주겠니?”

라훌라는 재빨리 물을 떠다가 부처님의 발을 씻어 드렸다. 그러자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라훌라야, 발 씻은 이 물을 보아라. 넌 이 물을 마실 수 있겠느냐?”

“발을 씻어 더러워진 물을 어떻게 마실 수 있겠어요? 갖다 버려야지요.”

“그렇다. 더러워진 물은 다시 쓸 수가 없다. 잘 듣거라. 너도 그와 같다. 너는 비록 내 제자이며,

카필라의 왕손이고, 세속의 영화를 버리고 출가해 사문이 되었지만, 정진을 게을리 하고 입을 지키지 않으며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세 가지 독한 번뇌가 네 마음에 가득 차 더러워진 물처럼 되었느니라.”

 

부처님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대야의 물을 내다 버려라.”  라훌라는 대야의 물을 버렸다.

부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대야가 비었지만 거기에 음식을 담을 수 있겠느냐?”  “담을 수 없어요. 발을 씻어서 더러워졌기 때문이지요.”

 

“그렇다. 너는 집을 나와 사문이 되었으면서도 입에는 진실한 말이 적고 생각은 거칠며 정진을 게을리 한다.

그래서 여러 스님들에게서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에, 발 씻은 대야에 음식을 담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부처님은 이때, 갑자기 대야를 발로 걷어찼다. 대야는 떼굴떼굴 글러가다가 한쪽에 멎었다.

“라훌라야, 넌 혹시 저 대야가 깨질까 걱정하지 않았느냐?”  “발 씻은 그릇이고, 또 값이 헐한 물건이라서 별로 걱정하지 않았어요.”

 

부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너도 그와 같다. 몸으로는 함부로 행동하고 입으로는 거친 말과 나쁜 욕지거리로 남을 헐뜯는 일이 많으므로,

사람들은 너를 아끼거나 좋아하지 않는다.

만일 그 버릇을 고치지 않고 정신이 몸을 떠난다면[죽는다는 표현] 삼악도(三惡道)[악인이 죽어서 간다는 괴로운 세계 -

 지옥도, 축생도, 아귀도]에  태어나는 일을 되풀이하면서 끝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다.”

 

라훌라는 이처럼 준엄한 말씀을 듣고 부끄럽고 두렵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스스로 꾸짖으면서 부지런히 정진해

욕된 일을 참고 대지처럼 순해졌다.


<법구 비유경>

 

잘 알다시피 라훌라는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 태자로 있을 때, 아내 야쇼다라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불타(佛陀) 전기에는 그가 어렸을 때 부처님이 강제로 출가시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당시 부처님의 교단에서는 하루 한 끼밖에 먹지 않았기 때문에 라훌라는 배가 고파 자주 울었다는 기록이 <율장>에 남아 있다.

그는 열두 살도 채 안 됐을 때 집을 나와 최초의 사미승[스무 살이 못 된 견습승]이 되었다.

철없는 아이인 데다 할아버지는 카필라의 왕이고 아버지는 부처님이라서 그랬는지, 또는 성인(成人)들만 모인 교단이라

나이 어린 그를 다들 귀여워해서 버릇이 없었는지, 어쨌든 그는 말썽꾸러기였다.

앞의 경전에도 나오듯이 부처님과 라훌라 사이의 문답은 마치 할아버지와 어린 손자 사이에서 자상하게 주고받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부처님도 그런 아들 때문에 속깨나 썩었던 모양이다.

인간적인 동작으로 발로 대야를 걷어차면서까지 자식의 버릇을 고쳐 주려고 자못 애쓴 자취가 보인다.

물론 그 당시의 대야는 요즘처럼 양은이나 플라스틱이 아닌 질그릇이었다.

요즘도 인도에는 토기 류가 흔하다. 그래서 깨질까 놀라지 않았느냐는 표현도 나온다.

라훌라는 그 후 크게 분발해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고,

남이 모르게 착한 일을 한다고 해서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는 칭찬을 듣게 된다.

♣법정스님의 인연이야기 중에서...

 

 

길을 가다가 밭을 가는 농부에게 걸식하던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농부는

당신들은 밭을 갈거나 일을 하지 않으니 밥을 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는 흙밭을 갈지는 않으나 마음의 밭을 갈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의 밭을 갈고 있기에 수행자들은 재가자들의 복전(복밭)이 되지요

 

♣부처님과 밭가는 농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때 거룩하신 부처님께서는 마가다국 남산에 있는 "한 포기 띠"라고 하는 바라문 촌에 계셨다.

그 때 밭을 갈고 있던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씨를 뿌리려고 오백 개의 쟁기를 소에 매었다.

부처님께서는 오전 중에 바리때와 가사를 걸치고, 밭을 갈고 있는 바라문 바라드바자에게고 가셨다.

때 마침 그는 음식을 나누어주고있었으므로 부처님은 한 쪽에 섰다.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음식을 받기 위해 서 있는 부처님을 보고 말했다.

"사문이여,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먹습니다. 당신도 밭을 가십시오. 그리고 씨를 뿌리십시오.

갈고 뿌린 다음에 먹으십시오"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갈고 뿌린 다음에 먹습니다."

바라문이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 고타마의 쟁기나 호미, 작대기나 소를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갈고 뿌린 다음에 먹습니다"라고 하십니까?

 

이때 밭을 갈던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시로 써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당신은 농부라고 자처하지만 우리는 일찍이 밭가는것을 보지 못했네. 당신이 밭을 간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알아듣도록 말씀해 주시오."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나에게 믿음은 씨앗이요, 고행은 비이며, 지혜는 쟁기와 호미, 부끄러움은 호미자루, 의지는 쟁기를 매는 줄, 

생각은 호미날과 작대기입니다." 몸은 근신하고 말을 조심하며. 음식을 절재하여 과식하지 않습니다. 나는 진실을 김매는 일로 삼고 있습니다.

부드러움과 온화함이 내 소를 쟁기에서 떼어 놓습니다.

노력은 내 소이므로 나를 절대 자유의 경지로 실어다 줍니다. 물러남이 없이 앞으로 나아가 그곳에 이르면 근심걱정이 사라집니다.

이 밭갈이는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고 단 이슬의 열매를 가져옵니다.이런 농사를 지으면 온갖 고뇌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이때 밭을 가는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커다란 청동 그릇에 우유죽을 하나 가득 담아 부처님께 올렸다.

"고타마께서는 우유죽을 드십시오, 당신은 진실로 밭을 가는 분이싶니다.

당신 고타마께서는 단 이슬의 열매를 가져다주는 농사를 짓기 때문입니다."

"바라문이여, 시를 읊어 얻은 것을 나는 먹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바르게 보는 사람들의 법이 아닙니다.

시를 읊어 얻은 것을 눈 뜬 사람들은 받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법도를 따르는 이것이 바로 눈 뜬 사람들의 생활 태도 입니다.

완전에 이른 사람, 위대한 성자, 번뇌의 더러움을 다 없애고 나쁜 행위를 소멸시켜 버린 사람에게는 다른 음식을 바치십시오.

그것은 마침내 공덕을 바라는 이에게 더 없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고타마시여, 이 우유죽을 저는 누구에게 드려야 합니까?" 

"바라문이여, 신, 악마, 범천들이 있는 세계에서 신, 인간, 사문, 바라문을 포함한

여러 중생 가운데서 완전에 이른 사람과 그의 제자를 빼놓고는, 아무도 이 우유죽을 먹고 소화시킬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라문이여, 이 우유죽일랑 생물이 없는 물속에 버리십시오."

그리하여 밭을 가는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그 우유죽을 생물이 없는 물속에 쏟아 버렸다.

그런데 그 우유죽을 물속에 버리자마자 부글부글 소리를 내면서 많은 거품이 끓어올랐다.

마치 온종일 뙤약볕에 쪼여 뜨거워진 호미날을 물속에 넣었을 때 부글부글 소리를 내면서 많은 거품이 이는 것과 같았다.

이때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온몸이 오싹하여 두려워 떨면서 부처님 곁에 다가섰다. 그리고 부처님 두 발에 머리를 숙이며 여쭈었다.

"훌륭한 말씀입니다. 고타마시여. 훌륭한 말씀입니다. 고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듯이, 또는 '눈이 있는 사람은 빛을 보리라' 하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듯이,

당신 고타마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당신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도를 닦는 수행자들의 모임에 귀의 합니다.

저는 고타마 곁에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밭을 가는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부처님 곁에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았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이 바라드바자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홀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마침내 수행의 최종적인 목표를-

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것을 얻기위해 집을 떠나 집없는 상태가 된 것인데- 이 생에서 깨달아 증명하고 싶천하며 살았다.

'태어나는 일은 이제 끝났다. 수행은 이미 완성되었다. 할일을 다 마쳤다. 이제 또 다시 이런 생사를 받지 않는다.'라고 깨달았다.

그리하여 바라드바자 장로는 성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