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본사와 사찰 벽화 이야기

조계사 벽화 이야기 = 3

백련암 2013. 1. 16. 03:30

24) 석가세존의 아우 난타의 출가 

 

가모니에게는 배다른 동생이 있었다. 난타(Nanda)라는 이름의 그 동생은 가비라성의 왕자였으며 착하고 온순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손타라'하는 아주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는데 난타는 아내를 무척 사랑해서 늘 아내 곁에 있기만 좋아했다.

석가모니가 출가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고 아무리 권해도 난타는 아내가 그리워서 출가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난타를 데리고 극락세계로 갔다.

그리하여 극락세계의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행복한 삶을 일일이 구경 시켰다.

그리고 지옥에도 데려가서 지옥에서 고통 받는 많은 죄인들의 처참한 모습도 구경시켰다.

 

다시 사바세계로 돌아온 석가모니는 난타에게 출가해서 도를 닦으면 극락에 태어나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되고,

출가하지 않고 죄를 지으면 지옥에 떨어져서 무한 겁 동안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친절히 일깨워 주었다.

 

그리하여 난타는 깨달음을 얻고 출가하게 되었다.

 

 

25) 외도 앙굴리마라를 구제하시다

 

바라문 외도를 섬기던 아힝사카는 뛰어난 실력 때문에 사람들의 질투를 얻게 되고 사람들이 엉뚱한 소문을 퍼트리게 된다.

소문을 믿은 스승은 아힝사카에게 사람 천 명을 죽여 천 개의 손가락을 가져오면 道를 가르쳐 준다고 한다.

" 스승의 말을 따른 아힝사카는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다녔는데 손가락 목걸이를 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앙굴리마라'라고 불리게 되었다.

앙굴리마라가 나타나면 사람들이 모두 피해 달아나므로 천 명째 사람은 만날 수가 없으므로 어머니를 죽이려 했다.

때마침 앙굴리라마는 부처님이 지나가심을 알고 부처님을 해치려 하는데 있는 힘을 다해 뛰었으나 이상하게도 부처님께 가까이 다가설 수가 없었다.

 

“사문아, 거기 섰거라!”부처님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앙굴리마라에게 “앙굴리마라여, 나는 여기 이렇게 멈추어 있다.

너는 어리석어 무수한 인간의 생명을 해쳐왔고 나를 해치려 하지만 나는 여기 이렇게 멈추어 있어도 마음이 평온하다. 너를 가엽게 여겨 여기에 왔다.”

말을 들은 앙굴리마라는 문든 악몽에서 깨어나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마치 시원한 물줄기가 훨훨 타오르던 불길을 꺼버린 듯 하였다. 그는 칼을 내던지고 꿇어 엎드렸다.

“부처님,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오늘부터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그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으며 후에 아라한과를 얻었다.

 

 

 

26) 계율을 제정하시다

 

부처님은 대중에게 수행규범으로써 5계 ․ 10계 ․ 150계 등의 계율 제정하여 지키게 하셨다. 그 가운데 5계는 재가신도들이 지켜야 할 기본 계율이고,

10계는 사미행자의 계율이며 2백 50계 ․ 3백 48계는 비구 ․ 비구니의 계울이다. 이 밖에도 10중 대계 ․ 48경계가 있으며, 이 모든 계율을 통틀어 3취 정계라고

한다. 부처님의 마지막 유교는“내가 열반하고 나면 계율로 스승을 삼으라.”하셨다.

 

 

27) 부왕을 위한 최후의 설법

 

정반왕이 97세가 되었을 때에 문득 중병을 얻어 아들 세존과 난타, 왕손 라훌라를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여 애달파하고 있었다.

그 때 세존은 왕사성 기사굴산에 계시어 부왕과 2천여 리나 떨어져 있었다.

부처님은 천이통 ․ 천안통으로 부왕이 병중에 혈손들을 보고 싶어 하며 한탄하는 말을 듣고 곧 난타 ․ 아난 ․ 라훌라 등을 데리고 신족통(神足通)으로

잠깐 사이에 부왕께 이르러 안락케 해주시고 마지막 설법을 하셨다.

 

“내가 이제 여래를 뵈오니 나의 원이 다 이루어져서 마음이 기쁘기 그지없으며 이제 죽어도 한이 없소이다.”

이때에 부왕이 합장하고 마음으로 세존의 발아래 절하면서 부처님의 손을 당신의 가슴 위에 얹고 편안히 숨을 거두었다

 

 

28)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한 도리천의 왕래

 

어느 때 부처님께서 도리천 환희원에 계시면서 문수 사리보살로 하여금 부처님의 생모인 마야부인께 나아가 부처님이 도리천궁에 오심을 알렸다.

마야부인은 부처님을 낳으신 지 7일 만에 죽어 도리천에 왕생하였기 때문이었다. 부처님이 친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이 육도에 윤회하는 것은 오로지 탐 ․ 진 ․ 치 삼독(毒) 때문이오니 이 삼독을 끊어 해탈 묘과를 성취하고 일체를 제도하소서.”

이 법문을 들은 마야부인은 곧 속세의 깊은 인연과 번뇌의 얽힘에서 풀려나 깨달음을 얻어 물러남이 없는 지위에 들어갔다.

 

 

29) 우전국왕이 조성한 최초의 불상 

부처님이 도리천궁에서 어머니를 위해 3개월 동안 설법하셨다. 그간에 인간 세상에서는 부처님을 뵈올 수 없게 되었는데

코삼비국의 우전국왕은 부처님을 뵙고 싶은 마음이 어찌나 간절하였던지 전단향나무로 부처님의 모습을 조각하여 도량을 만들어 놓고 조석으로 예배하였다.

 

부처님께서 도리천궁으로부터 내려오시자 등상불은 자리를 피했는바, 부처님은 우전국왕의 이 일을 칭찬하시었다.

 

 

30) 열반에 드시다 : 쌍림열반상 (雙林涅槃相)  [팔상도 8]

 

부처님은 45년간의 설법을 마치시고 80세를 일기로 쿠시나가라성 사라쌍수 사이에서 대 열반에 드시었다.

열반에 드시기 3개월 전에 미리 예언하시고 제자들에게 법을 묻게 하시었다.

부처님은 무수히 모여든 제자들을 돌아보시면서 다정한 음성으로 “그동안 내가 한 설법의 내용에 대해서 의심나는 점이 있거든 묻도록 하여라.

승단이나 계율에 대해서도 물을 것이 있으면 물어라. 이것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입니다.”

아난존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의문을 지닌 사람이 없다고 아뢰자 부처님은 마지막 가르침을 펴시었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여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내가 열반에 든 후에는 내가 말한 가르침이 곧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