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본사와 사찰 벽화 이야기

조계사 벽화이야기 = 2

백련암 2013. 1. 15. 19:19

14) 마왕녀의 유혹

 

목욕을 마치고 유미죽 공양을 마친 싯달타태자의 마음은 날듯이 홀가분했다. 모든 것이 맑고 아름답게 보이고 마음의 환희를 느꼈다.

그는 다시 비장한 맹세를 했다. ‘이 자리에서 육신이 다 죽어 없어져도 좋다. 우주와 생명의 실상을 깨닫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싯달타가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금강삼매(金剛三昧)에 든 지 7일이 되었다. 이 삼매는 보살이 최후에 부처가 되는 단계에서만 얻는 선정이다.

이러한 선정에 들어서 삼매의 위신력으로 두 눈썹 사이 흰 터럭(미간백호 眉間白毫)으로부터 광명을 놓아 아래로 6욕천(六欲天)에서부터

위로는 색계 18천까지 다 비추었다.

제6천인 타화자재천궁(他化自在天宮)을 비추시니 마왕 파순은 서른두 가지 악몽을 꾸고 크게 놀라 태자의 성불을 결사적으로 방해하기로 했다.

먼저 마왕의 네 딸을 시켜서 갖가지 유혹을 한다.

 

 

15) 마왕 파순의 도전 (마왕을 항복받으시다) :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팔상도 6]

 

마왕은 미녀들을 동원하여 갖가지 방법으로 태자의 마음을 흔들어 성도를 깨뜨리려 했지만 태자는 이미 희로애락, 시비분별을 초월한 불생불멸의 선정을

성취하였으므로 조금도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다.

이제 마왕은 다시 맹수와 나찰, 아귀들을 수없이 동원하여 태자를 해치려고 온갖 신통한 재주를 다 하였지만 보살의 몸에는 추호도 접근할 수 없었고,

그들의 독기와 살기는 기진맥진 무참히 쓰러지고 말았다.

마왕은 마지막으로 80억의 악마 군중을 이끌고 태자를 살해하려 했다. 입으로 호랑이, 사자, 독룡, 군사 등을 토해냈고

창, 칼, 화살 등을 무수히 토해냈으며, 80억 마군들이 갖가지 무기로 공격했으나 모두 연꽃으로 변하여 떨어졌다.

그리고 마왕과 군졸들은 태자가 세운 빈병을 쇠사슬로 얽어매어 쓰러뜨리려 했으나 힘이 미치지 못하여 마침내 항복하고 말았다.

 

 

16) 최후 구경의 정각을 이루시다.

 

마왕의 귀의를 받은 태자는 다시 선정에 들어 그 이튿날 동쪽 맑은 하늘에 샛별에 눈빛이 마주치는 찰나에

큰 지혜의 광명을 얻으시어5 최상의 정각을 성취하였다.

 

이것을 일체종지(一切種智)라고 합니다.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는 최상의 지혜입니다.

이것을 일러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곧 최상의 바르고 원만한 정각(무상정등정각 無上正等正覺)이라 하니 이것이 곧 성불(成佛)입니다.

태자의 나이 서른다섯 살 되는 섣달 8일(12월 8일= 성도제일) 이었다.

이로써 싯달타 태자는 아득한 과거세 연등불께서 예언하신 대로 사바세계에 나시어서 3명(천안명·숙명명·진명),

6통(천안통·천이통 ·타심통·신족통·숙명통·누진통), 10력(力), 18불공법(不共法), 4무소외(無所畏)등의 온갖 지혜와 공덕을 원만히 성취하였다.

 

 

 

17) 성불 최초의 공양

 

부처님이 처음 성도하신 직후 대상인 타파수와 발리카라는 두 형제로부터 첫 공양을 받으셨다. 이 두 상인은 본래 북인도를 왕래하며 많은 무역을 하는

이들로서 마침 5백 수레에 보물을 가득 싣고 이 지역을 통과하던 중, 천신의 계시를 받고 부처님이 이곳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루신바

첫 공양을 올릴 수 있음을 알고 크게 환희심을 내어 연유(煉乳)에 꿀과 미묘한 향을 화합하고 쌀을 넣어 끓인 죽을 공양으로 올리었다.

 

부처님께서는 공양(供養)을 받으시고 ‘너희들이 하는 일이 다 상서롭고, 구하는 것이 뜻대로 되며, 있는 곳에는 선신(善神)이 수호하리니

이 공양을 베푼 공덕으로 장차 최상의 감로법을 얻어 정각을 성취하리니 이름을 마단삼바바불이라 하리라.’는 수기(授記)를 주셨다.

 

이것이 맨 처음의 공양이며, 맨 처음의 귀의자이며, 또한 맨 처음의 수기(授記)하심이었다. 오른쪽의 사천왕(四天王)은 발우를 바치고 있다.

 

 

 

18) 대범천왕이 설법을 청하다.(범천권청 梵天勸請)

 

부처님께서 선정에 드시어 이 세간을 관(觀)하시며 이렇게 생각하셨다.

‘내가 증득한 법은 매우 깊고 미묘하여 보기도 어렵고 깨닫기도 어렵나니 분별과 생각으로써 알 바가 아니요,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서로 알 것입니다.

또한 그 바탕이 청정하여 취할 수도 놓을 수도 없고, 공적하여 얻을 것이 없고 길이 적멸한

열반의 바다이니 이것을 사람에게 말하면 알아듣는 자가 없으며 도리어 비방할 것이니 이익이 되지 못할 뿐더러 구업(口業)만 짓게 되리니

어찌하면 좋은가, 그렇다고 설법하지 않고 열반에 들면 무량겁에 중생을 위하여 원을 세우고 정진한 뜻이 없게 되리로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시며 미간 백호로부터 광명을 놓으시니 대범천왕이 신력으로 부처님 앞에 나타나 우슬착지(右膝着地)하고 합장공경(合掌恭敬)하며

중생을 위하여 법륜(法輪)을 굴리기를 간청하였다. 또한 재석천왕과 타화자재천왕도 부처님께 중생을 위하여 법륜(法輪)을 굴리기를 간청하였다.

 

 

 

19) 5비구의 귀의와 녹야원 설법 - 녹원전법상(鹿圓轉法相)  [팔상도 7]

 

부처님은 범천의 권청을 받아들이시고 먼저 이 땅 위에서 법을 듣고 깨침을 얻을 사람을 관(觀)했다.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라마풋타를 찾고자 ‘천안(天眼)’으로 관해 보니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 두 선인은 인연이 없어서 서로 만나지 못함을 탄식하고, 다음으로 과거 함께 고행하였고 현재는 바라나시 녹야원에서 수행하고 있는

다섯 사람(콘다나(=고진여), 바파, 바디야, 앗사지(마승), 마하나마)을 관하여 보시고 천여리가 되는 그곳에 이르시어 4성제(四聖諦)와

중도(中道)의 법문(法門)을 말씀해 주시는 첫 법문을 하셨으니 이것이 유명한 녹야원의 초전법륜입니다.

 

이것이 승가(僧伽)의 성립입니다. 교진여(=콘다나) 등의 다섯 사람은 본래 정반왕이 명을 받고 출가하여 고행하며 태자를 잘 모시도록 했으나

고행 도중 수자타(선생녀)의 공양을 받은 태자를 보고는 타락했다 하여 녹야원으로 자리를 옮기었던 이들이었다.

 

 

20) 본국에 돌아온 부처님 

 

부처님이 죽림정사에 계시면서 항상 북쪽으로 향하여 앉으셨다. 하루는 사리불이 그 뜻을 여쭈었다.

“사리불이여, 나는 부왕이 계시는 카필라를 바라보기 위함입니다. 늙으신 부왕은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는 하루 빨리 카필라성으로 돌아가 부왕 뵙기를 생각하셨으나 새로 교단에 들어온 모든 비구의 교화에 틈이 없으시고

또 석가족들이 교만하여 아직 교를 받을 때가 되지 않았으므로 때를 기다리고 계셨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지 6년이 되던 해에 정반왕은 부처님과 동갑이며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카알루다인을 보내어

부처님의 환국을 청하였다.

때가 되었음을 아신 부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본국에 돌아가시는데 정반왕과 백관들을 위해 본생담을 설법하셨으며,

정반왕은 총명한 소년 5명을 선발하여 스님이 되게 하였고, 뒤이어 부처님의 동생 난타와 그의 하인 우바리존자도 이때에 발심하여 출가했다.

 

 

21) 라훌라의 출가

 

부처님이 카필라국에 계실 때 목련존자를 부왕에게 보내어 부처님의 아들인 왕손 라훌라를 출가시키도록 권청했다.

부왕은 반갑게 승낙할 수 없었으며, 야수다라 비는 크게 반대했다.

이에 세존께서 정거천자(淨居天子)를 보내시어 세존과 야수다라 비는 성도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기로 서원했던

연등불(=정광불) 때의 일을 깨우치게 하여 라훌라의 출가를 승낙토록 한다.

 

그리고 정반왕은 나라 안의 좋은 집안에서 각각 한 아들씩 50명을 뽑아 라훌라와 함께 출가시키니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명하여 머리를 깎게 하고,

사리불을 화상(和尙)으로 삼고 목건련으로 아사리(阿闍梨)를 삼게 하였다. < 미증유경(未曾有經)>

 

 

22)술 취한 코끼리를 항복시키다

 

부처님이 마가다국의 왕사성에 계실 때 부처님의 사촌 동생인 데바닷다는 심성이 좋지 않아 항상 부처님을 시기하여 자기가 교단을 장악하고자

아사세왕(=아자타삿투 Ajatasattu : 빔비사라왕의 아들)과 모의했다.

부처님의 제자들이 출타하고 5백 나한 밖에 없을 때에 부처님을 청한 뒤 5백 마리의 사나운 코끼리에게 술을 먹여서 취하도록 한 다음

부처님을 해치도록 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들의 술책을 알고 오른손을 드시니 다섯 마리의 사자가 나와 일시에 큰 소리를 벽력같이 질러 천지를 진동하니

술 취한 코끼리들이 땅에 엎드려 유순해졌다.

왕과 백성들이 놀라서 엄숙하지 않는 이가 없음을 보신 부처님께서는 천천히 걸어서 왕궁으로 들어가 공양을 마치시니

아사세왕이 ‘저의 품성이 밝지 못하여 참소하는 말만 듣고 큰 역죄(逆罪)를 저질렀나이다. 원컨대 대자비로 저의 미혹한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옵소서.’

부처님께서는 여러 가지로 설법하시어 발심회개(發心悔改) 시키셨다.

 

 

23) 부처님의 이모 대애도 부인의 출가

 

부처님의 생모이신 마야부인은 부처님이 탄생한 7일 뒤에 세상을 떠났고,

마야 부인의 동생 즉 이모인 대애도(=마하파자파티고타미) 부인이 부처님을 양육했다.

부처님이 부왕의 장례를 마치시고 카필라국에 계시던 어느 때 부처님의 양모가 되시는 마하파자파티 고타미 왕비가 부처님께 출가하여

수행 득도할 것을 세 번이나 간청을 했으나 물리치셨다.

 

부처님은 카필라성을 떠나 바이샬리의 대림정사(大林精舍)에 계셨다.

스스로 머리를 깎고 그곳에 온 마하파자파티왕비를 보고 아난존자는 부처님께 여인의 출가를 두 번 청했지만 두 번 다 허락하지 않으셨다.

 

부처님은 여인은 세속에 애착이 깊으므로 도에 들어가기 어렵고, 여인이 출가하면 청정한 정법이 천 년에서 5백년 밖에 전하지 못한다고

거절하였지만 아난존자의 세 번째 청에 여덟 가지 공경하는 법을 지킬 것을 조건부로 하여 출가를 허락하니 이 여인이 최초의 대애도 비구이다.

이로써 부처님의 교단에 사부대중이 성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