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보박물관 = 해인사 = 중창조 학조선사 진영(重創祖 學祖禪師 眞影) = 시대 : 조선후기
성보박물관 = 해인사 = 이정대사 진영(理貞大師 眞影) = 해인사 창시자
성보박물관 = 해인사 = 개산조사 순응대덕 진영(開山祖師 順應大德 眞影)
성보박물관 = 해인사 = 용성선사(龍城禪師) : 1864년 ~ 1940년
스님이 살다간 시대는 우리민족사와 한국 불교사에 있어서 가장 암울한 시기였다. 역사적으로 조선 5백여년 동안의 숭유배불정책으로
천대와 멸시를 받아 왔으며 일제 침략과 서양 종교의 전래로 우리의 전통불교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시기였다.
더욱이 1911년 일본의 사찰령 반포로 한국 불교는 자치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왜색화 되어간다.
스님들의 대처와 육식이 이루어지고 교단 내의 질서와 계율이 무너지게 된다. 이같은 시대적 상황속에 용성선사는 왜색화되고 천시받으며
외세에 도전받는 불교의 새로운 이미지 부각과 조용한 혁신을 위해 불교를 대각교(大覺敎)라 명명하고 불교 정화운동을 펼친다.
총독부에서 주지가 되려면 비구계를 갖추어야한다는 전통적인 조항을 삭제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건백서(建白書)를 총독부에 제출하여 강력히 반대하였고
기독교의 불교비방에 <귀원정종(歸源正宗)>을 저술하여 논박을 했으며 사원경제의 자립을 위해서는 스님들ㄹ이 농사짓고 경작하면서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스스로도 노동하였다.
1919년 3 · 1 운동 당시에는 한용운(韓龍雲)과 함께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의 대표자로 참가하여 구국 운동에 헌신하였다.
모든 불교인에게 구국운동에 참가하도록 독려하였으며 스스로 실천에 옮겼다.
이러한 스님의 노력으로 한국 전통불교는 오늘날 다시 청정교단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성보박물관 = 해인사 = 벽암선사(碧巖禪師) : 1575년 ~ 1660년
휘(諱)는 각성(覺性) 호는 벽암(碧巖) 10세 때 설묵(雪默)스님에게서 득도하였고 임진왜란 때 선수(善修) 스님과 함께 해전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1624년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으로 남한산성을 완공하였으며 그 공로로 인조로 부터 보은천교원조국일도대선사(報恩闡敎圓조國一都大禪師)의
시호를 받았다.
1632년 구례 화엄사를 중수, 1636년 병자호란 때 의승 3천명을 규합 항마군(降魔軍)이라 칭하고 북상 도중 강화가 성립되자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1640년 하동 쌍계사를 중수하고 송광사 주지를 지냈으며, 1642년 해인사로 옮겨 정진하다가 묘향산을 거쳐 구례 화엄사에서 입적(入寂)했다.
스님의 부도는 현재 해인사 국일암 위쪽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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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박물관 = 해인사 = 연 들
범종의 쌍용의 용뉴
성보박물관 = 해인사 = 범종
일주문 옆 감로수
자장보살 탱화 = 지장탱화를 명부전에 모실려고 불사를 한답니다
소나무 전염병 이야기 많이들어보셨지요 이 나무가 병이들어 몸체가 하나도 성한데가 없이 죽었습니다
이 나무를 보는 순간 소름이 돋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보기에도 징그럽더군요
뉴스상으로만 들었지 실제로는 처음보는지라 이렇게 무서운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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