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이야기=고려외

38년째 빛 없는 수장고서 잠자는 비운의 유물… ‘빛’ 볼 날은 언제

백련암 2013. 4. 27. 02:20

38년째 빛 없는 수장고서 잠자는 비운의 유물… ‘빛’ 볼 날은 언제

 

비단벌레 날개 2000여장 들여 만든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
빛 노출 땐 변색·훼손 우려, 출토 후 38년째 일반에 공개 못해

 

빌딩들 사이의 고분들이 '천년의 고도'임을 말해 주는 경북 경주시국립경주박물관을 찾았다. 비운의 문화재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를 만나기 위해서다. 첨단 과학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21세기라지만 현대의 보존과학기술로도 어쩔

수 없어 공개되지 못하고, 문화재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입을 모으는 유물이다.

■ 첨단과학도 속수무책… 전문가들 "안타까울 뿐"

숱한 국보와 보물들, 도저히 그 값을 셈할 수 없는 귀중한 문화유산들이 '고이 모셔져 있는' 수장고 입구에 섰다.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육중한 쇠문을 열고 한발 내디디자 신발을 갈아 신게 한다. 먼지 하나라도 막겠다는 박물관의 세심한 조치다. 다시 이중 문을 하나씩

열고 마침내 수장고 안으로 들어섰다. 뒤에서 "덜컹" 수장고 문이 잠긴다.

 

 


 

 

 

비단벌레 날개의 금록빛과 금동투조판의 황금빛이 조화된 최고 수준의 신라시대 공예품인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가

글리세린 용액에 잠겨 있다. |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38년째 어둠에 갇힌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는 두꺼운 천이 덮인 특수 보존상자에 보관돼 있다. 천을 조심스레 걷자

강화유리로 된 보존상자에는 고순도 글리세린 용액이 담겼고, 유물은 그 속에 잠겨 있다. 크기는 가로 53.1㎝, 세로 35.4㎝, 폭은 중앙

부분이 11.4㎝다. 주변 조명은 훼손방지를 위해 조도를 80럭스 이하로 낮췄다. 어두워 그 찬란하고 화려한 분위기가 선뜻 다가오지

않는다. 꼼꼼히 살피니 금동판 무늬들 아래에 금록색의 비단벌레 날개들이 1500여년째 화려한 빛을 띠고 있다. 전체적으로 녹색의

금속성 광택이 반짝이는 날개는 중간 부분에 붉은 색 줄무늬도 보였다.

경주박물관 신대곤 학예실장은 "2011년 1월13~15일 특별전 때도 이 보존상자 그대로, 조도도 낮춰 공개했다"며 "국내외 사례를 보면

빛에 노출되거나 건조해질 경우 색깔이 변해 특별히 관리한다"고 밝혔다.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는 1975년 7월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이래 훼손 우려로 일반 공개를 못하고 있다.

경주박물관에 선보인 전시품은 복원품이다. 복원품은 울산MBC가 나서 2006년 전통공예가 최광웅씨의 기술, 일본의 비단벌레연구소

운영자인 아시자와 시치로가 1000여마리의 비단벌레를 무상기증해 힘들게 제작됐다.

 


■ '글리세린 용액'에 담가 임시방편 보관

경주박물관 보존수복실 신용비 보존담당은 "글리세린 용액은 순도 99%로 공기를 차단하고, 비단벌레 날개 표면에 밀착해 보습을 유지

시켜 건조나 미생물에 의한 분해를 막아준다"며 "정기적으로 용액을 교체한다"고 말했다. 글리세린은 보습효과가 좋아 화장품 재료로

많이 사용된다. 그는 "안타깝게 해외에도 보존기술 사례가 없어 이 유물을 다루는 데는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는 출토 직후 글리세린 용액에 담겼다. 1975년 '경주고적발굴조사단' 조사원으로 발굴에 참여한

윤근일 부여군 문화재보존센터 발굴단장(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발견 때부터 보존처리 문제가 고민이었다"며 "당시 각계 전문

가들이 '다른 보존방안이 없으니 일단 수습해 글리세린 용액에 넣자'고 자문한 것으로 기억된다"고 회고했다. 황남대총 외에 천마총,

안압지, 반월성 등의 발굴에도 참여한 그는 "그 유물은 무덤 내 부장품 상자속에서 다른 많은 유물들과 함께 발견됐다"며 "지금까지

전시되지 못하니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비단벌레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가 보관된 특수 보존상자.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의 보존방안을 찾기가 어려운 것은 복잡한 유물 구조도 한 몫한다. 이 유물은 크게 4가지 소재로

구성돼 있다. 우선 소나무판재 위에 백화수피(자작나무 껍질)를 촘촘하게 깔고 그 위에 비단벌레 날개 2000여장을, 또 그 위에 정교하

게 제작한 금동 투조판을 옻칠로 붙였다. 테두리는 못이 박혔다. 신용비씨는 "보존처리를 하자면 4개 소재를 각각 분리, 각 소재 특성에

맞게 해야 한다"며 "그런데 이 유물은 고분 안에서 1000년을 넘게 있으면서 각 소재들이 완전히 달라 붙은 상황이라 서로 떼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설사 비단벌레 날개를 떼내더라도 보존기술이 개발되지 않았다. 신씨는 "비단벌레 날개 성분은 딱정벌레 등 절지동물의 딱딱한 껍데기

의 골격을 만드는 성분인 키틴과 단백질"이라며 "표피층에는 구리·철·마그네슘 등 금속성분이 포함돼 있어 빛을 받으면 반사각도에 따라

다양한 빛깔을 낸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날개의 변색 원인이 복합적이라 아직 확실한 보존기술이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등 해외에서도 비단벌레 날개 유물이 확인됐으나 대부분 훼손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용희 보존과학담당관은

"그동안 학술대회 등 보존처리 방안을 찾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있었다"며 "하지만 결론은 '확실한 보존방안이 없고, 현 상태가 훼손을

막고 있으니 그냥 놔두자'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화려한 빛을 자랑하는 비단벌레.

 

 

■ 유물 재료 중 하나인 비단벌레는 천연기념물 지정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의 핵심인 비단벌레는 멸종위기에 처한 곤충으로 문화재청은 2008년 천연기념물 제496호로

지정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비단벌레 날개는 그 독특한 빛깔이 황금빛과 잘 어울려 신라시대 왕 등 최상위 계층이 사용한 장식품에 활용

됐다. 왕릉급 무덤인 금관총, 고구려 고분 등에서도 관련된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경주박물관은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의 현상 유지를 살피면서 한편으론 화학약품처리법, 진공동결건조처리법 등 보존

처리방법을 간접적으로 연구 중이다. 신용비씨는 "우선 정확한 변색 원인을 밝히고 확실한 보존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며 "하루빨리 국민들에게 공개될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 복원품.

 

 

1500여년 전 신라의 문화수준을 잘 보여주는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는 황남대총 남분(남쪽 봉분)에서 출토됐다.

국내에서 가장 큰 무덤인 황남대총은 남분과 북분이 붙어 있는 쌍분(일명 표형분)으로 5세기 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초기 무덤들이 밀집된 현재 '대릉원'(경주시 황남동·사적 제512호) 안의 천마총 동쪽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

황남대총은 남북 120m, 동서 80m, 높이 23m의 거대한 규모로 발굴 조사는 천마총 발굴이 끝난 직후인 1973년부터 1975년까지 이뤄

졌다. 발굴 당시인 1975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딸인 박근혜 현 대통령과 함께 현장을 찾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경주관광개발계획'을 의욕적으로 추진했고, 이에 따라 '경주고적발굴조사단'이 구성돼 천마총을 시작으로 왕릉

급 고분 발굴이 잇따라 이뤄졌다. 고적발굴조사단은 원래 황남대총을 먼저 발굴하려 했으나 규모가 너무 커 상대적으로 작은 천마총을

시험 삼아 먼저 발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남대총은 발굴 결과 5만8000여점에 이르는 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와 그야말로 문화재 '보물 창고'로 확인됐다.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을 통틀어 규모가 가장 큰 무덤에 걸맞게 출토된 유물도 매우 풍부하고 화려하다. 특히 2만20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된 남분에선

금동관과 남자 뼈 일부가, 3만5000여점의 유물이 확인된 북분에선 금관과 '夫人帶(부인대)'라는 명문 유물이 나와 남분은 왕, 북분은

왕비 무덤으로 분석된다. 발굴 조사 과정에서 북분이 남분을 침범하면서 조성돼 북분이 나중에 만들어진 사실도 드러났다.

< 경주 | 도재기 기자 jaekee@kyunghyang.com >  경향신문|경주 | 도재기 기자|입력2013.04.26 2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