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 은입사 포류수 금문 정병(靑銅 銀入絲 蒲柳水 禽文 淨甁) : 고려 12세기 國寶 제 92호. = 청동 은입사 물가 풍경 무늬 정병
0.5mm 굵기의 은사로 버드나무와 갈대, 오리와 기러기 등 다양한 물가 풍경을 표현한 전형적인 형태의 고려시대 정병이다.
주구와 밑판을 따로 만들어 몸체에 붙였는데, 첨대를 별도로 제작하여 붙인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확실하지 않다.
주구가 붙는 몸체의 구멍은 바깥에서 안쪽으로 뚫어서 만들었다. 주구의 뚜껑과 병목 윗부분에는 투각한 은판에 덮여 있는데,
원래는 금도금이 되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병 내부도 초록색 녹으로 덮여 있다.
㉠ ㉡
녹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아름답고 예쁘게도 스는구나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녹하고는 차원이 다른것 같습니다.
㉠버드나무가 한눈에 보이며 기러기가 날아갑니다. 아래쪽을 보면 물가에는 오리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갈대가 바람에 날리고 강에는 낚시꾼이 낚시를 하고 또 한쪽에는 배를 타고 노를 젓는 어부도 보인다.
㉠ ㉡
지금은 눈에 보이다 싶이 무늬는 선명한데 초록색녹으로 덮여있어 또 다른 조화를 이루고 있다.
꼭 곱게 단장하려 분가루를 정성드려 칠해놓은 듯이 보인다.
㉠갈대와 낚시하는 사람 기러기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뒷쪽그림 ㉡주입구 정면으로 본 것
정병은 맑은 물을 담아두는 병으로, 본래 승려가 지녀야 할 열 여덟 가지 물건 중 하나였으나 점차 불전에 바치는 깨끗한 물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었다.
불교의식을 할 때 쇄수게(灑水偈)를 행하면서 의식을 인도하는 승려가 솔가지로 감로수를 뿌림으로써 모든 마귀와 번뇌를 물리치도록 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고려시대의 정병은 대체로 몸체가 계란형이며, 매끈하게 빠진 긴 목 위로 뚜껑 형태의 둥근 테가 놓인다.
그 위로 다시 대롱형의 물을 넣고 빼는 첨대(尖臺)가 솟아 있으며, 몸체 한쪽에는 중간을 잘록하게 좁힌 비녀처럼 생긴 귀때[注口]가 튀어나와 있다.
정병은 물가의 풍경을 담아냈는데, 언덕 위로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 물 위로 노를 저어가는 어부와 낚시꾼 등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아름다운 정경이다. 이 모든 풍광이 표면에 홈을 파서 은선을 두드려 박는 은입사 기법으로 장식되었다.
병의 긴 목에는 구름무늬, 동체의 어깨와 굽 주위에는 여의두무늬[如意頭文], 귀때에는 풀무늬[草文]가 입사되었다.
은을 돌린 굽은 지금은 파랗게 녹슨 몸체와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청동제의 병에 은상감을 한 예는 적지 않으며, 이러한 기법이 고려청자에도 통용되어 주목된다.
단지. 청동 금은 입사 호(靑銅 金銀 入絲 壺) : 통일신라(통일신라) 9-10세기
필통. 철제 은입사 피통(鐵製 銀入絲 筆筒) : 조선(朝鮮) 19世紀
①다뉴세 문경(多 鈕細文 鏡) ②청동은입사 향로개(靑銅 銀入絲 香爐蓋)
①다뉴세 문경(多 鈕細文 鏡) :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 기원전 4-3세기 출토 = 충남 아산(忠南 牙山) . 주조하여 만든 잔무늬 거울
②청동 은입사 향로개(靑銅 銀入絲 香爐蓋) : 고려(고려) 12-13세기. 홈을 파고 은실을 넣은 향로 뚜껑
나비 귀 후비개 청동경(靑銅 鏡) : 고려시대(高麗時代)
은제 용형 파수 잔(銀製 龍形 把手 盞) = 용 모양 손잡이 잔
은제 도금 타출 표형 병(銀製鍍金打出瓢形甁) : 고려 12세기(高麗 12世紀) = 넝쿨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긴 병
은제 화장 합(銀製 化粧 盒) : 조선 18세기(조선 18세기) = 구슬무늬를 찍어 새긴 화장품 그릇
㉠ ㉡
㉠은제 도금 봉황연당초문 합(銀製 鍍金 鳳凰蓮唐草文 盒) 고려(고려) 12-13세기 = 정으로 새긴 봉황무늬 그릇
㉡ 청동투조만자문향로(靑銅透彫卍字文香爐) : 고려후기(高麗後期) = 卍자무늬 향로
사자 장식 청동 정형향로(獅子 裝飾 靑銅 鼎形香爐) : 고려 후기(高麗 後期) = 사자 장식 정형향로
주전자 청동 주자(靑銅 注子) : 고려시대(高麗時代)
청동 은입사 옴자만자 정병(靑銅 銀入絲 옴字卍字禽文 淨甁) : 고려(高麗) 12-13세기 = 절 만자와 옴자가 새겨져 있는 정병
정병은 부처에게 바치는 깨끗한 물을 담는 병으로, 승려가 지녀야하는 18가지 필수품의 하나였다.
일찍이 통일신라 석굴암의 범천상(梵天像)에 보이며 고려시대에 유행하여 청동과 청자로 많이 제작되었다.
특히 정병 표면을 파고 은실을 끼워 넣는 입사(入絲)기법을 사용하여 물가풍경을 그림처럼 장식한 예가 많다.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靑銅 銀入絲 蒲柳水禽文 淨甁) : 고려(高麗) 12-13세기 = 물가 풍경무늬 정병
정병은 부처에게 바치는 깨끗한 물을 담는 병으로, 승려가 지녀야하는 18가지 필수품의 하나였다.
일찍이 통일신라 석굴암의 범천상(梵天像)에 보이며 고려시대에 유행하여 청동과 청자로 많이 제작되었다.
특히 정병 표면을 파고 은실을 끼워 넣는 입사(入絲)기법을 사용하여 물가풍경을 그림처럼 장식한 예가 많다.
정병(淨甁) : 통일신라(統一新羅)
운봉사 청동 유개호(雲峰寺靑銅有蓋壺) : 고려(高麗) 13세기
사찰의 공양구로 특별히 제작되어 운봉사에서 사용하던 항아리이다. 다리부분에『운봉사전래[雲峰寺傳來]』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금제 도금 파 잔(金製 鍍金 把 盞) : 고려(高麗) 12-13세기 = 잔과 잔 받침
화장 용구(化粧 用具) : 조선(朝鮮) 1779年 경. 출토 = 정조 후궁 원빈 홍씨묘(正祖 後宮 元嬪 洪氏 墓)
원빈 홍씨는 정조 2년(1778년) 정조의 후궁이 되었으나 이듬해 병으로 사망하였다. 합 하나는 유리로 만들어졌고, "수복강녕(壽福康寧)" 이란
글자가 새겨진 호는 은제(銀製)이며 나머지 두 개의 합은 여러 색깔의 유약을 입히는 칠보(七寶)기법으로 장식되었다.
위에 사진 설명 문↑
금동 용두 장식(金銅龍頭裝飾) : 고려(高麗) = 용머리 모양 장식
속은 비어있고 끝에 여러개의 못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길게 튀어나온 나무를 장식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용상(龍床)이나 가마 등에 붙어 있던 장식으로 추정된다.
철제 금은입사 모란당초문 경가(鐵製 金銀入絲 牡丹唐草文 鏡架) : 고려(高麗) 12-13세기
거울을 거는 화장구로 맨 위 연꽃 봉오리에 거울에 매단 끈을 걸었다. 철로 형태를 만든 뒤, 봉 표면 전체에 홈을 파고
두 마리의 봉황을 금실로, 넝쿨무늬는 은실로 박아 넣었다.
거울을 거는 화장구로 맨 위 연꽃 봉오리
청동거울(銅鏡) : 고려시대(高麗時代)
거울은 청동기시대에 제사장 또는 부족장의 권위를 상징하며 주술적인 도구로 사용되었다. 거울이 주술적인 성격에서 완전히 버서나 일상용품으로
널리 사용된 때는 고려시대이다. 당시의 정서를 반영하는 다양한 무늬가 새겨져 있고 사용하기 편리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또한 거울을 걸어두고 사용할 수 있도록 거울걸이도 만들어졌다.
"杭州" 銘 銅鏡("항주"명 동경) : 송나라 개성 출토 일명 = "항주[杭州]" 글씨가 새겨진 개성 출토 중국 거울
"杭州大陸家靑銅照子(한주대륙가청동조자)" 라는 명문이 새겨진 청동겨울이다. 명문으로 볼 때 중국 "항주"의 "대륙가"라는 공방에서 제작되어
고려에 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형태 · 내용의 거울이 고려와의 교류가 특히 활발하던 송대에 많이 만들어진 점. 항주의 위치 등으로 볼 때
북송이나 남송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煌丕昌天" 銘 航海圖文 銅鏡("황비창천" 명 항해도문 동경) : 시대 : 송나라~ 금나라, 또는 고려
"煌丕昌天(황비창천)" 이라는 명문과 함께 범선과 일상, 월상, 용 등의 문양을 새겨 놓았다.
이들 문양은 바다의 神山(신산)을 찾아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황비창천"이란 "밝게 빛나는 창성한 하늘"이란 의미로서, 신선이 사는 별천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거울은 송나라~금대에 걸쳐 중국에서 다량 수입되었고, 고려에서 이들을 본떠 만들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철제 은입사 접문 연초합(鐵製銀入絲蝶文煙草盒) : 조선(朝鮮) 18-19세기 = 나비무늬 담배합
金屬活字 "復"(금속활자 "복") : 시대 : 고려 전(傳) 개성 출토 일명 = 고려시대 실물 금속활자
개성 지역의 개인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고려시대 실물 금속활자이다.
활자 꼴이 가지런하지 않고 활자 네 변의 길이가 앞뒤로 차이가 있다. 뒷면이 타원으로 오목하게패여 있는데 이는 구리의 소비량을 줄이는 단계로
개량한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비록 주조 방법이 서툴지만, 고려 금속활자의 주조와 조판 기술사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실물 자료이다.
고려 금속활자의 실물은 이것 외에도 북한 개성 박물관(개성시 옛 성균관 건물)에 한 점이 더 소장되어 있다.
靑銅 印(청동 인) : 시대 : 고려 개성 출토 일명 = 청동 도장
개성에서 출토된 청동제 도장들로 관료층에서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손잡이는 사자나 물고기등의 동물 모양을 하고 있다.
도장면에는 글자 외에도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하학적 무늬가 표현되곤 한다.
靑磁 印(청자 인) : 시대 : 고려 개성 출토 일명 = 청자 원숭이 모양 도장
靑銅 淨甁(청동 정병) : 시대 : 고려
정병(淨甁)은 목이 긴 형태의 물병으로 원래 종교적 의물이었다. 가장 깨끗한 물을 담는데,
깨끗한 물(淨水)은 사람들의 목마름과 고통을 씻어준다고 생각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 사찰 뿐만 아니라 도교사원, 관청 등에서 두루 사용하였고 부잣집에서는 생활용품으로도 사용하였다.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의『고려도경』에서는 귀부인을 묘사하면서 부잣집에서 정병(淨甁)을 쓰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귀부인의 화장은 향유(香油) 바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분을 바르되 연지는 칠하지 아니하고 …
부잣집에서는 큰 자리를 깔고서 시비(侍婢)가 곁에 늘어서서 각기 수건과 정병(淨甁)을 들고 있는데 비록 더운날이라도 괴롭게 여기지 않는다.
靑銅 印(청동 인) : 시대 : 高麗 仁宗 24년(1146년) = 인종의 무덤에 넣은 청동 도장
불법 수호를 상징하는 동물인 사자 두 마리가 앞발을 보주(寶珠)를 받치고 서 있는 모양의 도장이다.
도장 면의 도형은 아직 그 의미가 판독되지 않았으나, 죽은 인종의 권위를 드높이는 상징물일 가능성이 크다.
조선시대에 죽은 왕은 왕의 시호를 올리면서 생전의 덕행을 기록한 옥책과 함께 시호를 새긴 도장을 함께 만든 점도 참고할 만하다.
'불화이야기=고려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립중앙박물관 = 또 다른 이야기 도자기 (0) | 2014.03.23 |
---|---|
국립중앙박물관 = 도자기 (0) | 2014.03.23 |
38년째 빛 없는 수장고서 잠자는 비운의 유물… ‘빛’ 볼 날은 언제 (0) | 2013.04.27 |
해인사 성보박물관 = 조사들의 진영 (0) | 2013.04.22 |
해인사 성보박물관 = 탱화들과 세조어진, 최치원, 희랑대사, 나한상 (0) | 2013.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