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 관음보살 좌상(金銅觀音菩薩坐像) : 고려(高麗) 14세기
갸름한 얼굴에 화려한 장식으로 뒤덮인 신체 등에서 라마 불상 양식의 영향이 엿보인다.
가부좌한 자세에서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그 위헤 오른팔을 자연스럽게 올려놓은 뒤 왼손으로 바닥을 짚는 윤왕좌(輪王坐)의 앉음새를 취하고 있다.
윤왕좌(輪王坐)는 원래 인도 신화에서는 이상적인 제왕인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취하는 자세이다.
금동 불 좌상(金銅 佛 坐像) : 통일신라(統一新羅) 8세기 말- 9세기 초. 일명 = 부처
금동 약사불 입상(金銅 藥師佛 立像) : 통일신라(統一新羅) 8세기
약사불(藥師佛)불은 갖가지 질병을 고쳐주고 재난(災難)에서 벗어나게 하며 음식과 옷을 제공해 준다고 한다.
보살신분이었을 때는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내용물 포함한 12가지 큰 소망을 지녔고,
부처가 된 후에는 동쪽에 위치한 유리광세계(琉璃光世界)를 다스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약사신앙이 유행하였다.
이 시기 약사불상은 주로 둥근 약단지를 손에 들 모습의 단독상으로 만들어졌다.
여러 방향에 머무르는 부처를 표현한 사방불(四方佛)에는 동쪽에 머무르는 부처로 표현되었다.
금동 약사불 입상(金銅 藥師佛 立像) 살짝 옆으로...
금동 약사여래 입상(金銅 藥師如來佛 立像) : 통일신라(統一新羅) 8세기 후반 寶物 제 328호
약사불은 갖가지 질병을 고쳐주며 재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음식과 옷을 제공하는 등,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의 이익과 매우 가까운 부처이다.
보살 신분이었을 때는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한 12가지 큰 소원을 지녔고,
부처가 된 후에는 동방에 위치한 유리광세계(琉璃光世界)를 다스리게 되었다. 약사불상은 일반적으로 둥근 약단지를 든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약사불상이 본격적으로 유행한 것은 통일신라시대이다. 주로 독립상으로 제작되었지만,
여러 방향에 머무르는 부처를 표현한 사방불(四方佛)에서는 동방에 머무르는 부처로 표현되었다.
금동 약사여래 입상(金銅 藥師如來佛 立像) 살짝 옆으로... 寶物 제 328호
금동 약사불 입상(金銅 藥師佛 立像) : 통일신라(統一新羅) 8세기
금동 약사불 입상(金銅 藥師佛 立像) : 통일신라(統一新羅) 8세기 살짝 옆으로 틀어 선 모습으로
금동 반가사유상(金銅 半跏思惟 像) : 삼국시대(三國時代) 6세기 후반 國寶 제 78호
반가사유상은 왼쪽 무릎 위에 오른쪽 다리를 걸치고 오른쪽 손가락을 살짝 뺨에 댄 채 깊은 생각에 잠긴 보살상의 모습이다.
이러한 자세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한 것으로,
중국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하나의 도상으로 확립되었다.
중국에서는 초기에 인생의 덧없음을 사유하던 싯다르타 태자상으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점차 미륵보살상으로 자리 잡았으며
한국의 삼국시대 반가사유상도 대부분 미륵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에 쓰고 있는 화려하고 높은 보관(寶冠)은 목걸이, 팔찌 등은 화려하면서도 번잡하지 않고 세련된 조각 솜씨를 보여준다.
보관(寶冠)은 해와 초승달 모양이 결합된 특이한 형식으로 "일월식보관(日月飾寶冠)"이라고도 한다.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으며, 자연스러운 반가좌의 자세, 몸 앞에서 교차된 천의자락과 허리띠의 율동적인 흐름은 세련된 조각 솜씨를 보여준다.
주조 기법은 내부가 비어있는 중공식中空式이며,
금동불로서는 비교적 크기가 큰 편임에도 불구하고 두께가 3~8mm에 지나지 않는 뛰어난 주조 기술을 보여준다.
금동 반가사유상(金銅 半跏思惟 像)좌측의 모습
금동 반가사유상(金銅 半跏思惟 像) 우측의 모습
금동 반가사유상(金銅 半跏思惟 像) 뒷부분 모습
금동 반가사유상(金銅 半跏思惟 像) 살짝 좌측으로 돌아가려는 듯한 모습
금동 반가사유상(金銅 半跏思惟 像) 정면의 모습
금동 반가사유상(金銅 半跏思惟 像) : 삼국시대(三國時代)
금동 반가사유상(金銅 半跏思惟 像) 상단부분, 하단부분 세밀도
금동 반가사유상(金銅 半跏思惟 像) : 삼국시대(三國時代)
금동 반가사유상(金銅 半跏思惟 像) : 삼국시대(三國時代) 7세기 전반 寶物 제 331호
네모난 대좌(대좌) 위에 앉아 있어 "방형대좌(方形臺座)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으로도 불린다.
이 반가사유상은 머리에 큼직한 보발이 드러나 있으나, 머리 앞과 좌우에 세 개의 구멍이 나 있어 원래는 보관을 썼던 것으로 추정된다.
얼굴은 긴 장방형에 턱선은 둥글다. 상반신의 몸매가 무척 가늘고 긴 것이 특징이다. 몸에는 길게 X자 모양의 영락(瓔珞) 장식을 드리웠다.
사유의 모습에 걸맞게 최대한 숙여야 할 얼굴을 들고 있어 이에 따라 오른쪽 뺨에 대고 있는 오른팔도 지나치게 길게 표현하였다.
다른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에 비해 사각의 넓고 높은 대좌 위에 앉아 있는 점이 특이하다.
像 전체에 가득한 정적인 분위기, 극단적인 대좌와 추상화를 통한 대담한 조형적 변형 등에서 백제적인 조형 감각이 드러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금동 반가사유상(金銅 半跏思惟 像) : 삼국시대(三國時代) 7세기 전반 寶物 제 331호
약간 옆으로 비스듬히 돌아선 모습
금동 반가사유상(金銅 半跏思惟 像) : 삼국시대(三國時代) 7세기
금동 보살 입상(金銅 菩薩 立像) : 삼국시대(三國時代) 고구려(高句麗) 6세기 寶物 제 333호.
머리에 세 개의 장식이 솟아 있는 보관을 쓴 보살입상이다. 대좌와 몸체를 함께 주물하였으며, 대좌 아래에 별도의 대좌와 결합하기 위한 꽂이가 길게 나 있다.
목에는 목걸이를 하고 천의를 X자로 엇갈리게 걸쳤는데 옷자락은 양쪽으로 갈퀴모양으로 뻗쳐 있다. 가슴 부분에서 비스듬히 걸친 속옷이 보인다.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왼손은 여원인을 취하였다. 뒷면은 어깨와 무릎 쪽에 광배와 결합하였던 꽂이가 있을 뿐, 거의 평면처럼 처리하였다.
금동 보살 입상(金銅 菩薩 立像) : 삼국시대(三國時代) 고구려(高句麗) 7세기 전반. 출토지 = 강원도 영월(江原道 寧月)
왼쪽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오른쪽으로 하체를 기울여 몸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표현된 보살상이다.
긴 신체와 목걸이 형태는 중국(隨나라)불상의 영향을 보여준다.
따로 주조하여 결합했던 양팔에 걸친 천의는 남아있지 않고 현재는 끝자락만 대좌에 넘어있다.
금동 불 입상(金銅 佛 立像) : 삼국시대(三國時代) 고구려(高句麗) 7세기 전반. 출토지 = 강원도 횡성(江原道 橫城).
균형 있는 신체 비례와 입체감이 조화를 이룬 불상이다. 지그시 감은 눈과 잔잔한 미소, 차분한 얼굴 표현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층층이 흘러내리는 옷주름과 내의를 묶은 매듭도 섬세하게 표현된다.
소조 보살 입상(塑造 菩薩 立像) : 삼국시대(三國時代) 고구려(高句麗) 6세기 중엽. 출토지 = 평남 평원 원오리 절터(平南 平原 元五里 寺址)
1937년 평양 부근 원오리의 옛 절터에서 발견된 것으로, 흙을 구워 만든 불 · 보살상 수백 개의 파편 가운데 하나이다.
틀을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표면에 흰색이나 붉은색을 칠한 흔적이 남아있다.
옷주름 아랫부분은 간격이 촘촘하고 끝자락이 양측으로 삐친 모습을 하고 있어 중국 북위(北魏) 불상의 영향이 느껴진자.
금동 불 좌상(金銅 佛 坐像) : 고려(高麗) 14세기
부처 = 금동 불 입상(金銅 佛 立像) : 삼국시대(三國時代) [백제(百濟)] 6세기 중엽. 출토지 = 충남 서산 보원사 터(忠南 瑞山 普願寺 址)
◈신라 불상(新羅 佛像)◈
신라는 삼국 중에서 가장 늦은 6세기 전반에 불교를 공인했다.
이에 따라 현존하는 대부분의 신라 불상은 6세기 후반과 7세기에 만들어진 비교적 늦은 시기에 것들이다.
여기에는 금동이나 돌로 만든 부처, 보살, 반가사유상이 포함되어 있다.
신라 불상은 중국 북위(北魏)와 동위(東魏) 불상의 영향을 보이는 예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불상은 중국 북제(北齊), 북주(北周)의 입체감 있는 불상의 영향이 직 · 간접으로 보이거나.
신라만의 묵직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특징으로 한다. 7세기에는 특히 화강암을 깍아 만든 비교적 큰 석불과 마애불을 많이 만들었는데,
이는 훗날 석굴암으로 대표되는 통일신라 석불 조성의 밑바탕이 되었다.
경패(經牌) = 금동 경패(金銅 經牌) : 고려시대(高麗時代). *경패(經牌) 란 : 경전 이름을 새겨 경전함에 매다는 패
경패는 불경을 넣는 나무 상자 옆에 달아서 경전 이름과 번호를 표시하는 데 사용하였다.
앞면은 뱀과 신장(神將)을, 뒷면은『대방광불화엄경 권 제 오십본[大方廣佛華嚴經卷第五十本]』이라는 불경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경상 = 청동 관음보살 경상(靑銅 觀音菩薩 鏡像) : 고려시대(高麗時代)
정면을 향하고 있는 관음보살상이 새김 기법으로 묘사되었다.
이 경상은 "호주(湖州)" 라는 명문이 있는 거울의 반사면에 상을 새겼는데 관음보살이 왼쪽 무릎을 세운 후 그 위에 왼팔을 올려놓은 자세로 앉아있다.
경상 = 청동 경상(靑銅 鏡像) : 고려시대(高麗時代)
경상이란 얇은 청동판에 부처와 보살 등을 새긴 것이다. 거울의 반사면에 부처나 보살을 새겨 넣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네 가장자리에 구멍이 뚫려 있어 휴대용이거나 어딘가 부착시켜 놓았던 장식용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 있는 경상은 주로 고려 후기인 13-14세기의 것이다.
대부분 기복(祈福)신앙의 대상인 관음보살(觀音菩薩)과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多聞天)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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