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 불 입상(金銅 佛 立像) : 통일신라(통일신라) 8세기 일명 = 부처
금동 불 입상(金銅 佛 立像) 상단부분 세밀도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한 미소를 띠고 있어 친근감을 준다.
금동 불 입상(金銅 佛 立像) : 삼국시대(三國時代) 신라(新羅) 7세기 전반 일명 = 부처
편단우견(偏袒右肩, 오른쪽 어깨는 드러내고 겉옷인 대의를 왼쪽 어깨와 오른쪽 허리에 걸친 모습)의 옷을 입고, 허리를 약간 꺽은 자세를 취하며,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 동그란 물건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한 미소를 띠고 있어 친근감을 준다.
이러한 형식의 불상은 삼국시대 신라 지역에서 특히 유행하였다.
금동 불 입상(金銅 佛 立像) : 삼국시대(三國時代) 신라(新羅) 7세기 전반 일명 = 부처
금동 광배(金銅 光背) : 삼국시대(三國時代) 백제(百濟) 7세기 전반 일명 = 광배(부처에게서 나오는 빛 장식)
출토지 = 충남 부여 부소산(忠南 扶餘 扶蘇山)
금동 광배(金銅 光背) : 삼국시대(三國時代) 백제(百濟) 7세기 전반
부처나 보살에게서 나오는 빛을 표현한 광배는 머리에서 나오는 빛(頭光)과 몸에서 나오는 빛(身光)으로 이루어진다.
이 광배는 원형인것으로 미루어보아, 두광미을 알 수 있다.
두 개의 금동판을 중앙과 가장자리에 작은 쇠못을 박아 결합하였다. 뒷면에는 "하다의 장법사(何多宜藏法師)"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광배를 만든 사람과 관련된 것이다.
금동 불 좌상(金銅 佛 坐像) : 조선(朝鮮) 1628年. 출토지 = 경기도 남양주 수종사 오층석탑(京畿道 南楊州 水鍾寺 五層石塔)
◈조선시대의 불상(朝鮮時代 佛 像)◈
조선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에, 고려시대와 같이 국가주도의 불교문화는 융성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불교는 1천년 넘게 우리 민족의 생활 깊숙이 파고든 역사를 바탕으로 그 전통을 면면이 이어갔다.
조선 초기에는 태조(太祖)나 세조(世祖)와 같은 군왕을 비롯한 왕실의 후원 아래 수준 높은 불상을 만들기도 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승병(僧兵)들이 큰 활약을 함에 따라, 전란 이후에는 전쟁에서 훼손된 많은 절과 불상을 새로 짓고 만들었다.
지방에 있던 승려 장인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이 시기 불상은 대부분 조선 초기에 비해 형태가 단순하고 세부 묘사가 적은 소박한 모습은 띤다.
금동 불 좌상(金銅 佛 坐像) : 조선(朝鮮) 1628年. 출토지 = 경기도 남양주 수종사 오층석탑(京畿道 南楊州 水鍾寺 五層石塔)
금동 불 좌상(金銅 佛 坐像) : 조선(朝鮮) 1628年. 출토지 = 경기도 남양주 수종사 오층석탑(京畿道 南楊州 水鍾寺 五層石塔)
호신 불 상(護身 佛 像) : 고려(高麗) 1156年. 일명 =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상 호신불(몸에 지니는 작은 부처)
호신 불 상(護身 佛 像) : 고려(高麗) 1156年.
호신 불 상(護身 佛 像) : 고려(高麗) 1156年. = 각종의 호신불들
이 불감은 개인적인 신앙을 위해 휴대용으로 제작된 것이다.
불감 안에는 중생을 구제해 주는 관음보살(觀音菩薩)과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이 들어 있다.
1156년 사망한 남원군(南原郡) 부인 양씨(梁氏)의 석관(石棺)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한다.
호신 불 상(護身 佛 像)
호신 불 상(護身 佛 像) 신장상들
금동 관음보살 좌상(金銅觀音菩薩坐像) : 고려(高麗) 14세기. 일명 = 관음보살
보관에 화불(化佛. 중생구제를 위해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 부처)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보살상임에도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손갖춤을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아미타불의 협시(脇侍, 본존불 좌우에 있는 부처나 보살)인
관음보살상 역시 아미타불이 맺는 구품인(九品印)을 맺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금동 대세지 보살 입상(金銅大勢至菩薩立像) : 고려(高麗) 1333년. 일명 = 대세지보살 <아미타삼존불의 협시>
금동 아미타불 좌상(金銅阿彌陀佛坐像) : 고려(高麗) 1333年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
아미타삼존불의 구성은 주로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중심으로 관음보살(觀音菩薩)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 보좌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미타불은 서방에 위치한 극락정토(極樂淨土)에 머무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각각 자비(慈悲)와 지혜(智慧)를 상징하며, 두 보살은 모두 중생(衆生)이 아미타불이 제시한 구원의 세계에 이르도록 도와준다.
우리나라에서 아미타삼존불은 삼국시대에 등장하여 8세기에 크게 유행하였다. 이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도 많이 만들어졌다.
금동 관세음보살 입상(金銅 觀世音菩薩 立像) : 고려(高麗) 1333年. 일명 = 관세음보살<아미타삼존불의 협시>
금동 불 입상(金銅 佛 立像) : 통일신라(統一新羅)
금동 반가사유상(金銅 半跏思惟 像) : 삼국(三國) 7세기 전반 國寶 제 83호
왼쪽 무릎 위에 오른쪽 다리를 걸치고 고개 숙인 얼굴의 뺨에 오른쪽 손가락을 살짝 대어 깊은 명상에 잠긴 모습의 반가사유상이다.
이러한 상은 원래 석가모니가 태자였을 때 인생의 덧없음을 사유하던 모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중국에서는 이러한 상을 태자사유상(太子思惟像)이라고 하였다.
반가사유상은 이 像과 같이 하나의 독립된 형식으로도 만들어졌다.입가에 머금은 생기있는 미소, 살아 숨쉬는 듯한 얼굴 표정, 부드럽고 유려한 옷주름,
상체와 하체의 완벽한 조화, 손과 발의 섬세하고 미묘한 움직임 등 모든 것이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된 동양불교 조각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일본 고류 사(廣隆寺)의 목조반가사유상과 모습이 비슷하여 영향 관계가 주목되는 상이기도 하다.
금동 반가사유상(金銅 半跏思惟 像)의 살짝 우측의 선 세밀도 *백제의 미소로도 불린다.*
금동 반가사유상(金銅 半跏思惟 像)의 우측면 세밀도
금동 반가사유상(金銅 半跏思惟 像)의 상단 세밀도
반가사유상은 한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을 뺨에 댄체 생각에 잠긴 모습의 상이다. 이러한 자세는 인간의 生老病死를 고민하며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이 상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머리에는 삼산관(三山冠)또는 연화관(蓮花冠)이라는 낮은 관을 쓰고 있다.
상반신에는 옷을 전혀 걸치지 않고 목걸이만 착용하고 있으며, 하반신에는 율동적인 치맛자락이 다리를 감싸며 대좌를 덮고 있다.
신라계 승려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 고류사(광륭사[廣隆寺])의 붉은 소나무(赤松, 적송)로 만든 반가사유상(國寶 1호)과 유사하다.
금동 반가사유상(金銅 半跏思惟 像)의 좌측 전체의 세밀도
금동 반가사유상(金銅 半跏思惟 像)의 전면 뒷태의 세밀도
금동 반가사유상(金銅 半跏思惟 像)의 살짝 좌측의 모습
◈국보78호 금동반가사유상(金銅半跏思惟像)
반가사유상은 반가좌(半跏坐)라는 특이한 자세 때문에 얼굴과 팔, 다리, 허리 등 신체 각 부분이 서로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치마의 처리도 매우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반가사유상의 등장은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조각사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 중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은 풍부한 조형성과 함께 뛰어난 주조기술을 선보이는 동양조각사에 있어 걸작으로 평가되는 작품입니다.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란?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의 자세는 출가 전에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인 6~7세기에 크게 유행하였으며, 대다수가 독립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국보 78호 반가사유상과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이 있는데, 이 두 상은 반가사유 형식의 불상에서뿐만 아니라
석굴암 조각과 더불어 우리나라 불교조각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우리나라의 반가사유상은 일본의 아스카(飛鳥), 하쿠호(白鳳)시대의 반가사유상 제작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반가사유상의 존명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미륵보살로 보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이는 미래에 태어나 성불하는 구세주 미륵보살의 행적이 과거 싯다르타 태자의 그것을 비슷하게 따른다는 경전의 내용과 관련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국보 78호 반가사유상(國寶 78호 半跏思惟像)의 조형적 아름다움
국보 78호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국보 83호 반가사유상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 반가사유상은 우선 화려한 보관이 눈에 띕니다.
마치 탑처럼 보이는 장식이 솟아 있는 이 보관은 태양과 초승달을 결합한 특이한 형식으로 흔히 일월식(日月蝕)이라고 합니다.
일월식의 보관 장식은 원래 사산조 페르시아의 왕관에서 유래․발전하여 비단길을 통해 동쪽으로 전파되면서 보살상의 보관으로 차용되었는데,
인도 간다라의 보살상이나 중국 돈황석굴, 운강석굴, 용문석굴 등지에서 다양한 예가 나타납니다.
정면에서 이 반가사유상을 보면 허리가 가늘며 여성적인 느낌이 들지만 측면에서 보면 상승하는 힘이 넘쳐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탄력 넘치는 신체의 곡선이 강조되었고 양쪽 어깨로부터 끝이 위로 올라와 날카로움을 한층 더해주고 있는 천의자락은
유려한 선을 그리면서 몸을 감싸고 있습니다.
양 무릎과 뒷면의 의자 덮개에 새겨진 주름은 타원과 S자형의 곡선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변화무쌍한 흐름을 나타냅니다.
반가좌의 자세도 극히 자연스럽습니다. 그것은 허리를 약간 굽히고 고개는 살짝 숙인 채 팔을 길게 늘인 비사실적인 비례를 통하여
가장 이상적인 사유의 모습을 창출해낸 조각가의 예술적 창의력에서 비롯됩니다.
더욱이 뺨 위에 살짝 댄 오른손 손가락은 깊은 내면의 법열(法悅)을 전하듯 손가락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오묘합니다.
한마디로 이 불상의 조형미는 비사실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종교적 아름다움, 곧 이상적 사실미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고졸한 미소와 자연스러운 반가좌의 자세, 신체 각 부분의 유기적 조화, 천의자락과 허리띠의 율동적인 흐름, 완벽한 주조 기법 등,
우리는 이 금동불에서 가장 이상적인 반가사유상의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이 상은 내부가 흙으로 채워진 중공식(中空式) 주조 기법을 사용하였습니다. 크기가 1m에 가까워서 금동불로는 비교적 큰 상임에도 불구하고
구리의 두께가 2~4mm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얇은 두께를 고르게 유지하기 위하여 머리까지 관통하는 수직의 철심과 어깨를 가로지르는 수평의 철심을
교차시키고, 머리 부분에 철못을 사용하였습니다. 고도의 주조 기술이 뒷받침되었기에 이처럼 아름답고 생명력 있는 불상의 제작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과의 비교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 삼국시대 7세기 전반, 금동 높이 93.5cm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 삼국시대 7세기 전반, 금동 높이 93.5cm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국보 78호 반가사유상과 쌍벽을 이루는 삼국시대에 제작된 대표적인 반가사유상입니다.
그러나 두 상은 조형적인 면에서 뚜렷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머리에 쓴 보관의 형태입니다.
국보 83호 상은 머리에 낮은 관을 쓰고 있는데, 이는 삼산관(三山冠) 또는 연화관(蓮花冠)이라고 합니다.
또한 국보 78호 상과 달리 상반신에는 옷을 전혀 걸치지 않았으며, 단순한 목걸이만 착용하였습니다.
단순하지만 균형 잡힌 신체, 자연스러우면서도 입체적으로 표현된 옷 주름, 분명하게 표현된 이목구비로 보아 6세기 후반에 제작된
국보 78호보다 조금 뒷 시기인 7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대체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크기가 93.5cm로 금동으로 만든 반가사유상 중에서 가장 클 뿐만 아니라,
일본 교토(京都) 고류지(廣隆寺) 목조반가사유상과 매우 닮아, 우리나라 불상의 고대 일본 전래와 관련하여 주목을 받고 있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한편,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의 제작국과 관련하여 정확한 출토지가 알려져 있지 않아 백제 혹은 신라의 것이라는 여러 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신체와 천의의 힘찬 기세, 고구려에서 특히 중국의 북위와 동위시대 양식의 불상이 크게 유행한 점,
그리고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도 양식과 흡사한 점으로 미루어 고구려 불상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로는 하나의 특정 국가를 지목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는 이 반가사유상이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범용적 예술성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고 하겠습니다.
국보 78호 반가사유상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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