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북도 = 나를 찾아서...

무학대사의 깨달음과 낙조로 유명한 서산 간월암

백련암 2014. 4. 7. 13:56

간월암(看月庵)은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위치한 암자이다.

조선 초 무학대사가 창건하였으며, 만공대사가 중건하였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다른 암자와는 달리 간조시에는 뭍과 연결되고 만조시는 섬이 되는 신비로운 암자로 만조시에는 물 위에 떠 있는 암자처럼 느껴진다.

밀물과 썰물은 6시간마다 바뀌며, 주위 자연경관과 고찰이 어우러져 관광객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소장 문화재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4호인 목조보살좌상이 있다.

간월암은 도량이 작다 보니 주법당과 산신각, 해신당, 요사채 정도가 가람을 이룬다.

 

간월암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창건한 암자로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달을 보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이름지어 졌다고 하는데

조선 초 무학사라고 불리웠지만 퇴락되어 절터만 남은 것을 1914년 송만공대사가 지금의 간월암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간월암의 유래♣

간월암은 과거 피안도(彼岸島) 피안사(彼岸寺)로 불리며 밀물 시 물위에 떠 있는 연꽃 또는 배와 비숫하다하여 연화대(蓮花臺)

또는 낙가산(落伽山) 원통대(圓通臺)라고 부르기도 했다.

고려말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던 중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우쳤다하여 암자이름을 간월암(看月庵)이라 하고, 섬 이름도 간월도라 하였다.

이후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간월암이 폐사 되었던 것을 1941년 만공선사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만공선사는 이곳에서 조국해방을 위한 천일기도를 드리고 바로 그 후에 광복을 맞이 하였다고 전한다.

 

간월암은 밀물과 썰물때 섬과 육지로 변화되는 보기드문 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특히 주변의 섬들과 어우러진 낙조와 함께

바다위로 달이 떠 올랐을 때의 경관이 빼어나다.

 

밀물 시 물위에 떠 있는 연꽃 또는 배와 비숫하다하여 연화대(蓮花臺) 또는 낙가산(落伽山) 원통대(圓通臺)라고 부르기도 했다.

물이 빠졌을 때의 모습

 

밀물 시 물위에 떠 있는 연꽃 또는 배와 비숫하다하여 연화대(蓮花臺)  또는 낙가산(落伽山) 원통대(圓通臺)라고 부르기도 했다.

 

 

연등이 수평선위에 떠 있습니다.

 

간월암으로 들어서는 순간 눈에 제일먼저 들어오는 분수대

 

 

 

 

칠원성군의 모습

지붕이 다 낡아 현판도 없는 전각 칠원성군과 나한님이 모셔져 있고 천정에는 물고기가 매달려 있다.

 

천정에 메달려있는 물고기 형상

 

독성(나한상)

 

 

독성 탱화

 

 

독성각이다 이곳에 칠원성군도 함께 모셔져 있다. 정면의 모습

 

 

독성각의 옆면의 모습

 

간월도 간월암의 관음전

 

 

간월암 현판

 

 

서산간월암목조보살좌상 (瑞山看月庵木造菩薩坐像) : 충남 유형문화재 제 184호  朝鮮時代

소재지 =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 1길 119-29호  사진= 문화재청

 

간월암 목조보살좌상은 양식적으로 볼 때 1600년 전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규모가 작은 삼존불상의 협시보살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갸름한 타원형의 얼굴에 높이 솟은 보계, 부드러운 옷주름 등에서 형식화하기 시작하는 임진왜란 이후의 보살상과 차별성이 있다.

 

간월암 목조보살좌상(충청남도 유형문화재184호)

간월암 법당엔 목조보살좌상이 주불로 모셔져 있다. 언뜻 봐서는 관음이신가 했는데 보관 속에 아미타불이 뵈질 않는다.

문화재청 자료를 보면, '양식적으로 볼 때 1600년 전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규모가 작아 삼존불상의 협시보살로 조성됐던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고

되어 있다.  42센티미터인 보살좌상에 맞춰 지장보살상도 자그만하다.

 

 

지장보살과 지장탱화

 

 

신중단 신중탱화

 

 

간월암 용왕단

 

용왕

 

산신각(山神閣)

 

 

산신탱(山神撑)

 

 

요사채 벽화

 

 

 

 

입구 인 일주문

 

 

일주문 입구

 

석가탄신일의 연등 밝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