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북도 = 나를 찾아서...

수덕사 1020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주변과 견성암

백련암 2014. 3. 13. 22:58

 

소림초당(小林草堂)

소림초당(小林草堂)은 만공스님이 1920년대 중반 덕숭산 산중턱에 지은 암자다. 굽은 목재의 자연미 그대로 집을 지어 볏짚이엉을 얹었다.

그야말로 아담한 초당이다. 소림초당은 정면3칸 측면2칸 집이다. 하방과 중방 상인방등 자연목재를 사용했기에 초당의 창호는 그야말로 이색적이라고

할 수 있다. 초당의 창호에는 봉창이 있으나 개방되지 않는 곳이라 일반인들은 볼 수가 없다. 그래도 갱진교(更進橋)는 건너가 볼 수 있다.

 

=최인호작 길없는 길 중에서=

만공스님은 의친왕한테 거문고를 받아 덕숭산으로 돌아가 산중턱에  소림초당(小林草堂)이란 작은 암자를 세우고 벽에 이 거문고를 걸어두고는

한적할 때마다 이 거문고를 퉁기면서 법곡(法曲)을 타고 하였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의친왕과 만공, 두 사람이 단 한번의 만남으로 사제의 연을 맺고 그 후로는 서로 인연이 닿지 않아 다시는 죽을 때 까지

만나지를 못하였다 하더라도 서로 신표로 주고 받은 염주와 거문고를 통하여 언제나 한결같이 서로 따뜻한 정을 주고 받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달 밝은 밤이면 만공스님은 초당 앞 계곡 위에 나가 다리 위에 앉아서 거문고를 퉁기면서 연주를 하였다고 하는데 이 다리의 이름을 

스스로 갱진교(更進橋)라 이름하였었다. 

만공이 계곡 앞의 절벽 위에 다리를 놓고 이 다리의 이름을 갱진교라 지은 것은 석상(石霜) 화상이 말한 "간두진보(竿頭進步)"라는 유명한

화두에서 따온 것이었다. 석상화상은 1040년에 죽은 옛 중국의 선사이다.

 

참 진리의 다다르는 길은 스스로 이르렀다고 생각되었을 때의 자만과 자족을 버리고 그 이른 경지에서 다시 한발자국 더 걸어가 백척간두의

허공 속에 자기를 던져, 깨친 것도 모두 죽여버려야 한다는 처절한 구도정신을 암시하고 있는 구절인 것이다. (禪의 世界)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다시 한발자국 나아간다는 "갱진일보(更進一步)"의 정신을 새기기 위해서 계곡의 절벽 위에 다리를 세우고

이 다리의 이름을 갱진교(更進橋)라 이름한 만공은 시도 때도 없이 다리 위에 거문고를 들고 나와서 노래를 부르곤 하였었다.

그가 부른 노래 한 수가 오늘도 남아 전하고 있다.

 

適存弄世客 遊興 更進橋(적존롱세객 유흥갱진교)

마침 세상을 희롱하는 객 하나 있어 갱진교 다리 위에서 즐겨 노나니

流水西來曲 樹葉迦葉舞(유수서래곡 수엽가엽무)

흐르는 물소리는 조사의 서래곡이요 너울거리는 나뭇잎은 가섭의 춤이로다.

 

그렇제만 불안해서 합부로 건널수도 없고 지금은 이 갱진교도 출입금지이다. 다리 중간부분이 금이가 있어 혹시 건너다 다리가 끓어질 수도있다.

금이간 부분이 약간 휘어져 있음 보기만 해도 불안하게 보였음

 

 

관음바위. 관세음보살상(觀音岩 觀音菩薩像)

수덕사대웅전 서쪽 정혜사 산길로 오르기 전 관음보살이 현현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관음바위와 관음보살입상이 있다.

관음보살이 현신하여 수덕사가 창건되었다는 창건설화가 전해져오는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모든 소원이 성취된다는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만공탑(滿空塔) : 충청남도 등록 문화재 제 473호.

 

  

 만공탑(滿空塔) = 충청남도 등록 문화재 제 473호. 정혜사 바로 밑 1080계단으로 내려가는  곳에 있음

만공스님의 부도탑이다. 동경미술학교 출신으로 만공스님의 제자였던 박중은 스님에 의해서 만공스님을 추모하기 위해 1947년에 제작된 것으로

현대적 조형감각이 돋보인다.
 
원형의 2단 초석위에 세워진 부도탑은 모두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상륜부라고 할 수 있는 맨 윗부분의 둥근 원석 안에는 만공스님의 사리가 안치되어 있다.

가운데 팔각의 세 기둥은 불교의 불(佛)·법(法)·승(僧) 삼보를 상징한다.

또 기단부라 할 수 있는 8각기단은 팔정도(正見, 正思惟,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 正念, 正定)를 나타낸다.

팔정도란 열반에 이르기 위해 실천하는 8가지의 올바른 길이다.
 
팔각의 세 기둥사이에는 세 개의 면석이 들어가 있는데, 서측면에는 만공스님의 서체로 세계일화가 새겨져 있으며 중앙전면에는 만공탑이라고 적혀있다.

동측면에는 만공스님의 생애가 간략하게 적혀있고 그 옆으로 스님의 법훈이 적혀있다. 현재표기로 옮겨 적는다.

 

◁만공스님의 법훈▷

사람이 만물(萬物) 가운데 가장 귀(貴)하다는 뜻은 [나]를 찾아 얻는데 있느니라.
 
불법(佛法)은 이론(理論)이나 사량(思量)으로  아는 도리(道理)가 아니니라.
 
허공(虛空)이 가장 무서운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물심(物心)이라면 우주(宇宙)의 총칭(總稱)인줄 알지마는 우주의 정체(正體)는 따로 있느니라.
 
나의 법문(法門) 못 듣는 것이 나의 임종게(臨終偈)니라.

 

 

약사여래불상(藥師如來佛像)과 석등

 만공스님의 미륵상 = 일제시대에 만공스님이 세운 미륵석상으로 그 조형미를 떠나 스님의 족적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큰 의미를 새기게  된다.

 

 

약사여래불상(藥師如來佛像)

약사여래불상(藥師如來佛像)은 손가락의 표현이 정교한 양손으로는 정병을 감싸안듯이 쥐고 있다.

 

  

           ↑↑보살의 머리에는 높은 보관을 쓰고 있으며 화불이 보관에 새겨진 관음보살상이다.                      ↑↑석등                                                                 

 

  

약사여래불상(藥師如來佛像) = 좌우의 모습

 서쪽으로 나있는 산길 1020계단(정확하지는 않지만 혹자는 1200계단이라고 함)을 오르다보면 정혜사 가는 길 우측으로

1924년 만공스님에 의해 조성 봉안된  관음보살입상이 있다. 이 석불을 놓고 미륵불로 보는 이들도 있으나, 화불이 보관에 새겨진 관음보살상이다.

화불은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어머니의 상호를 형상화하였다고 한다.

 

석불은 7m가 넘는 거대한 입상으로 자연암벽을 깍아 조상하였다. 사각의 좌대 배면은 후암벽과 붙어있과 석불은 환조로 조형되었다.

전체구성은 탑파 형식을 차용해 조상한 듯 축대를 쌓아 지대석처럼 다진 뒤에 기단과 석불입상을 조상했다.

석불이 세워진 하부에는 2층의 기단식 좌대이고 사각의 보관 위에도 탑의 상륜부처럼 낙수면이 있는 지붕돌처럼 이중의 보개를 얹었으며 보주가 올려져 있다.

 보살의 머리에는 높은 보관을 쓰고 있으며 굴곡이 없는 신체위에 선각된 천의를 입고 있다.

손가락의 표현이 정교한 양손으로는 정병을 감싸안듯이 쥐고 있다. 정병 안에는 생노병사에서 오는 중생의 8가지 고통을 덜어주는 감로수가 들어있다.

1층기단의 하대갑석에는 '세존응화이천구백오십일년갑자동십만공계수봉안(世尊應化二千九百五十一年甲子冬十滿空稽首奉安)'이라는 명문이 보인다.

석불입상 앞에는 장방형의 배례석이 있으며 육각석등 한기가 조성되어 있다.

 

 

향운각(香雲閣)

정혜사 오르기 전 우측으로 향운각(香雲閣)이 있다. 향운각으로 들어가기 전에 만공스님이 조성하신 관음보살입상을 먼저 친견해야 한다.

그 후에 대나무로 둘러싸인 약수터를 지나자마자 다듬어지지 않은 돌담이 보이는 향운각으로 진입할 수 있다.

건물은 정면3칸 측면2칸으로 겹처마이고 팔작지붕집이다. 묵언수행하시는 스님이 정진중인지라 조용조용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큰절 수덕사에서도 덕숭산 정상으로 시선을 돌리면 11시방향으로 산중턱 쯤 자리한 향운각이 보인다. 숲속 한가운데 위치한 암자다.

출입금지 표시가 작은 기왓장에 써 있었습니다.

 

어제는 하루종일 비와 우박이 쏟아지더니 오늘 이 자리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네요.

비가 아니라 눈이라 너무 좋았습니다.  어제부터 비와 우박과 눈까지...!! 

 

약수터

1020계단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약사여래불입상을 보고 그 옆에 이 약수터가 있습니다. 물 맛이 좋아요.

약수터 옆 대나무숲사이로 들어가면 향운각이 있는데 이곳은 출입금지가 되어있습니다. 수행중입니다.

 

사면 석불(四面 石佛)

 

  

사면 석불(四面 石佛)

 

사면 석불봉안(四面 石佛奉安)

<원문>이 사면 석불은 1983년에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화저리에서 발지된 백제시대 유일의 사면불을 그대로 재현하여

四方에 약사불,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미륵존불을 조성한 불상으로 박태화거사의 정성으로 2008년 납월에 봉안하게 되었다.

덕숭총림 수덕사

 

수덕사에서 부터 사면석불, 향운각 관음보살입상 만공탑 정혜사로 들어가는 문과 일직선인 것 갔네요

 

견성암  

수덕사 서편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견성암(見性菴)은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 선방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원래는 정혜사 동쪽에 초가로 지어져 있었으나 만공스님의 뜻에 따라 1930년 도흡스님이 창건한 이래 개축을 거듭했다고 전한다.

1965년 벽초스님에 의해 법당을 인도식 2층 석조 건물로 조성하여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서선당 동선당 요사 등의 전각을 건립하여

오늘날에 이르는 가람을 자랑하고 있다.  

 

비구니 수행정진 제일선원으로 널리 알려진 이곳 선방에서는 일백여명이 넘는 비구니스님들이 깨달음의 세계를 향해 정진하고 있다.

2층 법당으로 들어가는 복도에는 만공스님의 친필인 칠근루(七斤樓)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칠근루는 우리가 먹는 쌀 한 톨에는 일곱 근의 농부땀이 베여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뜻을 지녔다.

 

2층법당 안으로 들어서면 간소하고 소박함이 물씬 베여나와 그야말로 청정도량임을 다시한번 각인시켜준다.

개화기의 여류시인 김일엽 스님이 수도정진한 곳으로도 유명세를 가하고 있다.

 

불단에는 본존으로 석가모니불을 봉안했고 협시로 관음보살좌상과 입상을 조성했다.

관음보살좌상은 정혜사 관음전의 관음보살상과 조각형태에서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으나 조각가가 동일인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후불탱화는 수덕사 산내암자 곳곳에서 보이는 금어 정연스님 작으로 보이며, 또 법당안에는 산신탱과 현왕탱 신중탱이 봉안되어 있다.

 

견성암의 사액은 2층의 인도식 전각 앞에 걸려있는데, 암자의 한자가 암자암(庵)자가 아닌 맑은 풀을 상징하는 풀암자암(菴)를 써넣었다.  

 

견성암 법당이 있는 2층건물

2층 법당으로 들어가는 복도에는 만공스님의 친필인 칠근루(七斤樓)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칠근루는 우리가 먹는 쌀 한 톨에는 일곱 근의 농부땀이 베여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뜻을 지녔다.

 

 본존으로 석가모니불을 봉안하였고 협시불로 백의관음보살과 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있다.

 

 너무나 아름다우신 백의 관음보살상(白衣 觀音菩薩坐像)

정혜사 관음전의 관음보살상과 조각형태에서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으나 조각가가 동일인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런 보살상을 보셨나요 전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어 참 재미있게보면서 보고있음 절로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틀리겠지만 확인해보면 눈이 한쪽은 좀 크고 한쪽눈은 윙크하듯이 약간 작아져 보인다.

또 다른 한 마음은 한쪽은 쌍거풀이 있고 한쪽은 쌍커풀이 없어져 부은듯한 모습으로도 보인다.

그렇게 그 모습을 계속보고 있음 재미가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나 우리들은 삶(욕심)만을 위해 두 눈 크게뜨고 멀리있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사방을 두리번 거릴때

잠시 나마 한 쪽 눈을 작게뜨고<마음을 내려놓고> 큰 눈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작은 무엇인가를 보라는 뜻으로서 무엇인가를 알려주려는 메세지는 아닐까 싶다.

 

수덕사에 가시면 꼭 견성암에 들려보세요 이곳에 필수는 둘러보실 때 꼭 묵언을 하시고 눈으로만 모든것을 담으세요.

아무리 해제때라도 공부하시는 스님들이 계속 상주해 계십니다. 

법당에 가셔서 108배를 하시고 앉아서 차분하게 부처님을 바라보시면 부처님도 환하게 웃고 계십니다. 비구니도량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이나 푸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마치 부모가 계시는 집으로 돌아온 느낌입니다.

 

 

본존인 석가모니불

 

 

 

정혜사 백의관음보살좌상(定慧寺 白衣觀音菩薩坐像)입니다 비교해 보세요

제 눈에는 비슷은 해보이는데 정혜사 관음보살은 남성스러움이, 견성암 관음살상은 인자한 여성인 어머니의 모습이 느껴지네요

 

 견성함 관음전입니다 2층법당을 돌아서 좁은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있습니다.

 

 관음전에 모셔져 있는 후불탱에는 부처님을 비롯해 가섭존자 관세음보살 아난존자 지장보살이 그려져 있다.

 

관세음보살좌상(觀世音菩薩坐像)

 

 신중단 신중탱화

 

 이 또한 신중단 신중탱화인데 예전에 본 법당에 있던것을 이곳에 모셨다고 한다.

 

 산신탱 (관음전에 모셔져 있다.)

 

칠성탱 (관음전에 산신탱 옆에 모셔져있다.)

 

** 여행중에 있었던 일 **

12일 초행인 수덕사를 찾아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가다가 길을 잘못들어 견성암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비는 쏫아지고 길은 잃고 당황하여

주변을 살펴보니 노비구니 스님이 우산을 받고 걸어오는 보습을 보고 너무 반가운 마음에 스님을 부르고 인사를 하고 정혜사를 가는데 길을 잘못들었다고

하니 몸소 입구까지 나오시면서 길을 안내해주시면서 이 빗속에 그 경사진길을 갈수 있겠느냐고 맑은날도 힘든데 하시면서 가다가 못 갈 것같으면

이곳에 주차하고 걸어올라가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겠다고 한번 올라가보고요 라고 하고 인사를 하고 출발했으나 그야말로 십리는커녕 단 3분도 못가서 그 경사진길과 구불구불한 길을 보고

놀라 도저히 운전을 할 자신이 없어 견성암게 주차하고 걸어올라갔습니다.

 

보통은 그 자리에서서 손짓만으로 알려주시고 말텐데 너무나 친절하게 웃으시면서 안내를 해주시는 노스님께서는 마치 인로왕보살님 같았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_()()()_

 

 다음날 다시 비를 맞으며 견성암에 갔을 때 어제 만난 노스님을 혹시나 만나지지 않을까 하고 바로 차를 타지 않고 주변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러다 법당에 잠깐들려 삼배라도 올리고 가자고 하고는 법당으로 올라가 예를 올리고 난 후 먼저 다가와주신 비구니스님의 자상한 설명은

너무 고마웠습니다.

정진중이신 가운데 낯선이들의 방문이 그리 반갑지만은 안았을텐데 보살의 미소로 환하고 아름다운 표정으로 다가와 주신스님께 너무 고맙습니다.

견성암에 정진중인 모든스님들게 삼배를 올립니다. 성불하세요_()()()_

 

◈찾아가는 길 = 기차, 버스, 택시

▶기차 

첫번째 = 용산에서<KTX>로 천안 아산행 승차 = 천안아산하차<소요시간 36분>  = 천안 아산역에서 <무궁화열차>로 홍성행으로 환승합니다.<소요시간 47분) 

            홍성하차 합니다. 시간적으로 11분 차이 남.

 

두번째 = 용산에서<무궁화호>로 홍성행 승차 = 홍성하차<소요시간 2시간 9분>입니다.  *새마을열차도 있는데 소요시간이 1시간 56분입니다.

             그럴바엔 무궁화열차로 가는게 낳을것같습니다. 무궁화보다 11분빠릅니다.

 

요금은 = 무궁화는 \9200원  새마을호는 \13700원입니다. ▶11분 빠른값이 \4500원 차이가 납니다. 기차의 쾌적함이 있겠지요.

             저는 여행을 즐겨하지만 버스를 멀미가 심해 못 탑니다. 그래서 항상 기차나 택시를 이용하거나 그리 멀지 않는 1시간 거리는 도보로 여행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KTX도 타고, 새마을도 타게되고, 무궁화같은경우엔 환승으로 많이 타고 다녀보았는데 옛날같지 않고 무궁화도 괜찮습니다.

            그야말로 재수없는 날엔 새마을이 무궁화만도 못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홍성하차하여 택시를 타던지 아님 버스를 타고 수덕사로 가면된다.

   홍성에서 택시를 탈 경우 요금은 \15,000원 그런데 일부는 2만원에서 ~ 25,000원 달라는 사람도 있다. 흥정할 것 <소요시간 20분> 동생은 \15천원에 왔음

   홍성에서 버스를 탈 경우 = 홍성 버스터미널로 가서 수덕사행 승차 = 수덕사 하차 = 주차장보임

 

※예산을 통해 가고자 하시는 분들은 서울역에서 예산행을 타시고 예산에서 하차하여 = 예산 버스터미널레서 수덕사행 버스를 타시면 됩니다.

   예산에서는 택시비나 교통비가 배로 듭니다. 당연히 시간도 더 들고요

 

예산에서 택시비는 \3만원 이것도 역시 부르는게 값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