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북도 = 心 산사 길없는길

화암사 : 대추가 유명한 경천에 있다. 지금은 복분자도 많이 재배한다.

백련암 2015. 4. 3. 21:48

몇 년 전에 어딘가를 가다가 길을 잃어 헤메다 화암사라고 쓰여있는 이정표를 보았다. 에라 이왕 못 찾는것 절에나 가 보자 하고

이정표대로 가다가 그 또한 길을 헤메이게 되었다. 꼬불 꼬불 골목길을 더듬어 찾아간 곳 불명산, 산 이름조차 예사롭지가 않게 느껴졌던 곳

그 땐 장마철이라 절을 찾아 올라가면서 시원한 폭포에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면서 찾아갔던 곳이다.

 

그 때 우화루를 보수중이라 제대로 못 보고와 아쉬운 마음에 다시 찾아가 본다. 그리고 그 때 갔다와 인터넷에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절로 기록되어 있다. 아! 내가 그렇게 좋은 곳에 갔다 왔었다는 것에 기분이 참 좋았다.

화암사는 금산사 말사이며 천년을 드나들면서 손 한번 타지 않은 절을 문화재청에서 우화루와 입구를 보수 수리하였다.

그러나 우화루에는 들어갈 수도 걸터 앉을 수도 없다 너무 오래되어서 마루바닥이 내려 앉아 사고날까 싶어 못들어가게

금줄을 쳐 놓았다.

 

 

불명산과 화암사라는 이정표가 있는 이 곳 숲이 너무 울창하게 우거져 하늘이 잘 안보이는 곳이다.

 

 

봄에 전령사인 복수꽃이 활짝 피어있다.  춥고 힘든 겨울을 지나 온 힘을 다해 터져나온 꽃봉우리

 

 

 

 

하산할 때 쯤은 따뜻한 햇살에 맞춰 활짝 피어 있다.

 

 

 

 

 

 

노란 복수초 군락지

 

 

147계단이 된다는 철계단은 힘들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예쁜 꽃그림과 시로 장식되어 있어 읽으면서 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름 장마철엔 곳곳이 다 폭포이다. 그 또한 볼 만하다.

 

 

여기서 부터 화암사 입구이면서 시작이 된다.

 

 

어린이 미술 조각 대회가 있었나보다. 온통 꽃과 조각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여느 범종보다 더 예쁜 범종은 누구의 작품...

 

 

이것은 탑이네요

 

 

역시나  범종입니다.

 

 

이 연꽃은 백련이네요 예쁘게도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전설 속에 있다는 연꽃일겁니다.

 

 

네 맞습니다 나도 반해서 자꾸 오고 싶은 절이나 대중 교통이 없어 내게 차가 주어진 시간에만 오게 하네요

그래서 더욱 더 꼭 꼭 숨어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눈앞에 화암사가 나타났다. 이 계단만 오르면 앞이 확 트인 절앞이 될 것이다.

 

 

 

 

佛明山 花巖寺(불명산 화암사)

밖에서 볼 때 2층의 건물이다 안에서 볼때는 1층인 땅과 거의 같게 놓았다.

그래서 밖에서는 2층이지만 안쪽에서 보면 1층 집으로 보이게 한 건물이다.

 

 

佛明山 花巖寺(불명산 화암사)현판

 

 

                 完州 花巖寺 極樂殿(완주 화암사 극락전)  :  국보  제316호   시대 =  조선시대

 

화암사는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있는 절로 본사인 금산사에 딸린 절이다.

절을 지을 당시의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원효와 의상이 유학하고 돌아와 수도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 문무왕 이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극락전은 1981년 해체 · 수리 때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조선 선조 38년(1605)에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앞면 3칸 · 옆면 3칸 크기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며 소박하고 작은 규모를 보이고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 가운데칸 뒤쪽에는 관세음보살상을 모셨으며, 그 위에 지붕 모형의 닫집을 만들어 용을 조각하였다.

화암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하앙식(下昻式) 구조이다.

하앙식 구조란 바깥에서 처마 무게를 받치는 부재를 하나 더 설치하여 지렛대의 원리로 일반 구조보다 처마를 훨씬 길게 내밀 수 있게 한 구조이다.

국이나 일본에서는 근세까지도 많이 볼 수 있는 구조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것으로 목조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의 글>

 

 

花巖寺 極樂殿(화암사 극락전)  : 국보 제 316호

극락전 건물은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하앙식 구조물로 조선 선조 38년(1605년)에 지은 것이다.

하앙은 기둥과 지붕 사이에 끼운 긴 목재인데 처마와 나란히 경사지게 놓여 있다. 이것은 처마와 지붕의 무게를 고르게 받친다.

극락전 앞쪽 하앙에는 용머리를 조각하였으나 건물 뒤쪽 하앙은 꾸밈없이 뾰족하게 다듬었다.

건물안에는 아미타 삼존불상이 있다. 하앙식 구조는 중국과 일본에서 많이 볼 수 있지만 한국에는 이 건물뿐이므로

목조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화암사의 안내 글>

 

 

 

 

극락전 삼존불상

 

 

 

 

화암사동종 (花岩寺銅鐘)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40호   시대 = 조선시대

 

이 동종은 극락전 안에 있으며 전체 높이 140㎝, 몸체 높이 85㎝, 밑 지름 70㎝이다.

종의 맨 윗부분에는 꽃을 세워 도드라지게 장식한 문양이 있다. 어깨에는 간략화된 꽃무늬 띠를 둘렀다. 어깨 아래로는 4개의 유곽이 있고,

그 사이에 보살상을 새겼다. 유곽은 길이 25㎝, 폭 25㎝이며, 덩굴무늬로 장식된 곽 안에는 9개의 유두가 있다.

유곽 밑에는 금철대시주(金鐵大施主), 동철대시주(銅鐵大施主), 보시(布施), 공양(供養) 등의 문자판이 새겨 있다.

<문화재청의 글>

 

극락전 안에 있는 이 동종은 조선 시대에 만든 것으로, 전체 높이 107㎝, 밑 지름 70㎝이다.

종 머리에는 용모양의 고리가 있고, 종 어깨위 가장자리에는 꽃잎무늬 장식이 줄지어 있다. 그 밑으로는 폭이 8cm인 간소한

꽃무늬 띠를 둘렀다. 전하는말에 따르면 이 종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광해군(1608년 ~ 1623년) 때 다시 만들었는데,

밤이면 저절로 종이 울려 스님과 신도를 깨웠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무기로 쓸 쇠붙이를 얻으려고 일본 헌병대가 몰려오자

저절로 종이 스스로 울려 스님들에게 미리 위험을 알렸고, 스님들이 종을 땅에 묻었다가 광복 후에 꺼냈기에

이 종을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화암사의 글>

 

 

극락전 하앙식 = 외부 전면 공포 = 용머리가 일렬로 만들어져 있다.

 

 

아마도 아름다웠을 거다 단청이 모두 지워져 흔적만이 남아있다 이 자체가 세월이였다.

 

 

희미하게 나마 비천상이였던 것 같다.

 

 

비파를 타고 있는 비천상

 

 

 

 

피를 불고 있는 비천상

 

 

 

역시 피리를 불고 있는 천상의 여인

 

 

장구치는 천상의 여인

 

 

극락전 뒷면 외부 귀공포

 

 

극락전 건물 뒷모습의 귀공포 세밀하게(하앙식) 뾰족하게 다듬었다. 

난 건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다른 절집과 앞뒤 모두 달라 보여 찍고 살펴보니 이것을 하앙식이라고 한단다.

우리나라에 단 한 곳뿐인 이곳의 건물은 예쁘고 정감이 간다.

 

 

"□" 자 형식의 화엄사의 전경

입구에 적묵당이 있고 마주보는 쪽에는 불명당이 있으며 극락전 맞은편에는 우화루가 있다.

이번에 가보니 명부전을 지어놓으셨다.

 

 

寂默堂(적묵당)

 

 

寂默堂(적묵당) 현판

 

寂默堂(적묵당) 석가래에 핀 연꽃

 

 

  佛眀堂(불명당)

 

 

  佛眀堂(불명당) 옆모습

 

 

  佛眀堂(불명당) 현판

 

 

啜英齋(철영재)

철영재. 숭록대부 판중추원사

성달생(1376년~1445년)은 사육신 성삼문의 조부로서 세종 때 전라관찰사를 거처간 후 훗날 퇴락 해 가는 화암사를 중창 불사하였다.

이에 후대 화엄사에서는 성달생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짓고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누구의 것일까요. 이름 없는 부도 1기

 

 

 

 

완주 화암사 우화루 (完州 花巖寺 雨花樓)  :  보물  제662호     시대 =  조선시대

 

 1981년 해체 · 수리 때 발견한 기록으로 조선 숙종 37년(1711)까지 여러번에 걸쳐 수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우화루는 화암사 경내에 있는 극락전 정문과 같은 성격의 누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 광해군 3년(1611)에 세운 것으로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수리한 건물이다.

규모는 앞면 3칸 · 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1층은 기둥을 세워서 바깥과 통하게 하고,

뒤쪽에는 2층 마룻바닥을 땅과 거의 같게 놓아 건물 앞쪽에서는 2층이지만 안쪽에서는 1층집으로 보이게 한 건물이다.

 

 

우화루(雨花樓) 현판

 

 

우화루(雨花樓)에 매달려있는 목어

 

 

우화루(雨花樓) 안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우화루(雨花樓) 안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지금은 다 닿고 벗겨져서 형체만이 남아있다.

 

 

우화루(雨花樓) 안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우화루(雨花樓) 안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우화루(雨花樓) 안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우화루(雨花樓) 천정 석가래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우화루(雨花樓) 내부 밖에는 금줄이 쳐져있다 바닥이 내려 앉을까봐 사람들을 들어가지 못하게 해 놓았다.

 

 

화암사로 들어가는 입구와  밖에서 본 우화루(雨花樓)

1층은 기둥을 세워서 바깥과 통하게 하고, 뒤쪽에는 2층 마룻바닥을 땅과 거의 같게 놓아

건물 앞쪽에서는 2층이지만 안쪽에서는 1층집으로 보이게 한 건물이다.

 

 

이렇게 보니 더욱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