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북도 = 나를 찾아서...

법주사 경내 또 다른 절집 수정암와 조각공원

백련암 2015. 6. 9. 22:58

비구니 도량 수정암

 

수정암은 속리산 수정봉 아래 자리한 법주사 산내암자로 법주사 입구에 위치한 비구니 스님 선방으로 553년(신라 진흥왕 14년)에 의신(義信)조사께서

창건하시고 그간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커다란 자연석 2개가 석문 역할을 하고 있고 암자의 앞으로는 맑은 시냇물이 굽이쳐 흐르고 있다.

 

일제 침략기인 1914년에 비구니 장태수(張泰守)스님이 머물면서 극락전 등을 중창하고, 그후로 선방, 요사 등을 중건, 중수를 거듭하여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로 지켜오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정봉 거북바위에 내려오는 설화 : 법주사 미륵신앙 축의 주봉인 수정봉에 올라가보면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다.

그 바위의 머리가 중국을 향하고 있어서 중국의 재화가 조선으로 흘러들어간다고 하여 그 바위의 목을 잘랐다고 한다.

그리고 그 위에 탑을 세워 중국의 재화가 조선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고 하는데, 이것을 효종 4년(1653)에 옥천 군수 이두양이

머리를 잇게 하고 그 후 충청병마절도사 민진익이 관찰사 임의백에게 일러 탑을 헐게 하였다고 한다.

이는 당시 지식인들의 숭명사대(崇明事大)의 명분으로 불교를 탄압한 일화가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도 수정봉에 가보면 아픈 상처의 흔적을 간직한채 묵묵히 법주사를 품고 있다.

 

水晶庵(수정암) : 전통사찰 제 36호

수정암은 553년(신라 진흥왕 14년) 의신(의신) 스님이 법주사와 함께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창건 이후의 연혁은 거의 전하지 않으며, 근대에 들어와 1914년에 태수(泰守)수님이 칠성각, 독성각, 산신각, 대선방 등을 새로 지었다.

1960년에는 선방 건물을 중수하였고, 1973년에는 극락전, 진영각, 그 이후 요사등의 전각들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양쪽으로 커다란 바위 2개가 일주문역할을 하는 석문이다.

석문안으로 수정암 초파일 등이 보인다.

 

 

烏大宗師浮屠塔(김오대종사부도탑)

 

 

中興主 坦應堂碑(중흥주 탄응당비)

俗離山 法住寺中興主坦應大師碑銘(속리산 법주사 중흥주 탄응대사비명)

 

 

大禪師震河堂碑(대선사진하당비)

故 法住寺住持 震河大禪師碑銘(고 법주사주지 진하대선사비명)

 

 

 

 

수정암 부도탑과 석비

 

 

 

 

 

 

化主 比丘尼 泰守碑(화주 비구니 태수비)

俗離山 法住寺 水晶庵 化主 比丘尼 泰守碑銘(속리산 법주사 수정암 화주 비구니 태수비명)

 

 

 

 

水晶庵 金剛門(수정암 금강문)

 

 

水晶庵(수정암) 현판

 

 

   

대문에 금강역사가 그려져 있으니 금강문이다.

 

 

極樂殿 懸板(극락전 현판)

 

 

極樂殿 三尊像(극락전 삼존상)

 

 

보은 법주사 수정암 석조여래좌상 (報恩 法住寺 水晶庵 石造如來坐像)  :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 70호    시대 =  조선시대

 

수정암은 법주사 암자로서 보은군지에 의하면 1914년 張泰守 비구니가 창건하였으며, 1973년 極樂殿과 眞影閣, 요사채 등을 중건하였다.

극락전 내에는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협시보살 등 3구의 불보살상이 봉안되어 있고 이 불상들과 거리를 두고

우측에 석조 여래좌상 1구가 봉안되어 있는데 정확한 연혁은 알 수 없고 오랫동안 수정암 비불로 전해져 왔다고 한다.

전고 92㎝인 이 석조 불상은 상호가 동체부에 비하여 큼직하며 턱을 숙이지 않고 정면을 주시하고 있는 형상으로

肉髻가 정연하고 미간에는 백호가 표현되어 있다.
눈은 반개하였으며 코는 후육하게 표현하였고, 입술은 도톰하면서도 입가로 옅은 미소를 띠고 있어

 석조불상으로는 보기 드물게 잘 정제된 자비원만상이다.
兩耳는 비교적 짧은 편이고, 목에는 三道의 표현이 보이는데 전체적으로 두껍게 개금되어 또렷하지는 않고,

法衣는 痛肩이며 흉부아래에 두꺼운 大衣가 표현되고 있다.
우수는 5지를 편 채 무릎 위에서 가지런히 밑으로 향하여 觸地印을 하였는데 손가락이 상당히 크게 표현 되었으며

좌수는 長指와 藥指, 所持로 엄지를 감싸고,  검지를 수평으로 펴서 손바닥을 위로하여 우측 발 위에 놓았다.
손가락이 감싸여 작게 표현된 손바닥 안에 別造의 원형 지물을 놓고 있어 약사여래로 전래되고 있다.

약합으로 보이는 이 지물은 무게로 볼 때 석재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이 불상은 안정감과 비례감이 뛰어난 불상으로 상호는 원만 상으로 잘 정제되어 있으며 지물로 볼 때 약사여래로 추정된다.

수정암 극락전에 봉안된 이 불상은 머리가 몸에 비해 상당히 큰 편이나 상호는 원만 상으로 이목구비가 잘 정제되었고 어깨와 가슴 등은 당당한 편이다.

전체적으로 두껍게 개금되었는데 수인으로 볼 때 약사여래로 짐작되고 있다.

규모는 소형이지만 상호의 정제미와 동체부의 자태 의문대의 표현이 우수하다고 하겠다.

단아한 상호의 표현과 위축되지 않은 턱과 어깨, 법의 표현 등 양식적으로 볼 때 조선후기의 소작으로 추정되며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문화재청 상세 안내문>

 

 

보은 법주사 수정암 석조여래좌상 (報恩 法住寺 水晶庵 石造如來坐像)  :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 70호    시대 =  조선시대

수정암 극락전 안에 모신 불상으로 높이 92cm이며, 정확한 조성연대는 알 수 없다. 이 석조 불상은 얼굴부위가 몸체부보다 크며

턱을 숙이지 않고 정면을 주시하고 있는 형상으로 머리털이 있는 부분이 고르고 이마부위에 백호가 표현되어 있다. 

눈은 반쯤 떴으며, 코는 두껍게 표현하였고, 입술은 도톰하면서도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어 석조 불상으로는 보기 드문 얼굴형상을 보여준다.

손가락이 감싸여 작게 표현된 손바닥 안에 별도로 제작된 원형 지물을 놓아 약사여래로추정된다.

석조불로 제작되었으나 나중에 금칠을 다시 한 불상이다.

<수정암 안내문>

 

 

산신탱과 칠성탱

극락전 안에는 치성광여래와 산신이 함께 모셔져 있다. 독성도 치성광여래 쪽으로 있는데 여기에는 안나타나있다.

 

眞影閣(진영각)

 

 

眞影閣(진영각)

 

 

眞影閣(진영각) 현판

 

 

寂默堂(적묵당)

 

 

寂默堂(적묵당)

 

 

水晶禪院(수정선원)

 

 

禪悅堂(선열당)

 

 

禪悅堂(선열당)

 

 

禪悅堂(선열당)현판

 

 

六和堂(육화당)현판

 

 

六和堂(육화당)

 

 

창고

 

불도화

 

거북바위 =  수정봉 정상에 있는 넓고 편편한 큰 바위에 대한 다양한 전설이야기

옛날 당나라 태종이 세수를 하는데 세숫물에 큰 거북그림자가 비치었다. 이상히 여긴 태종은 유명한 도사를 불러 물으니

도사가 대답하기를 동국(한국) 명산에 큰 거북의 물형이 당나라를 향하여 많은 당나라 재보(財寶)를 동국으로 들어가려 함이니

사람을 보내어 도욱 방방곡곡을 탐색하여 큰 거북모습의 물형을 없애라 하였다.

태종은 도사의 말대로 사람을 보내어 사방을 찾다가 마침 속리산 수정봉의 거북돌을 발견하고 돌거북의 목을 차르고서도

안심이 안되어 돌거북 등어리 위에 10층의 석탑을 쌓아서 거북의 정기를 눌렀다 한다.

그리하여 목은 끊어지고 탑에 눌린 돌거북이 되고 말았다.

 

전설 2

옛날 수정봉의 산신이 산봉우리를 정리하다 보니 커다란 바위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않고 제멋대로 자리를 변경하였는지라

괘씸하게 생각하여 너는 이 수정봉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무용지물이다 하고 산봉우리밑으로 굴려 버렸는데

 그 바위가 현재 위치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전설 3

또 일설에는 하늘나라의 궁전에서 정원사가 돌사이에 낙엽이 쌓여있으므로 그 낙엽을 걷어내고 바위를 옮겨 놓다

실수를 하여 지구상에 떨어지게 되었고 정원사는 기왕에 떨어질 바에야 명산인 속리산에 떨어지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떨어져 내려온 바위라 하여 추래암이라고 한다.

 

 

 

= 조각공원=

 

 

 

 

 

 

 

 

 

 

 

 

 

 

 

 

 

 

 

 

 

 

 

 

 

 

 

 

 

 

 

※▶찾아가는 길

 남부터미널 - 속리산행 버스(3시간 30분소요) 일일 3회  ·  동서울터미널 - 속리산행 버스(3시간 30분소요)일일 13회

(서울에서 오실 때는 청주까지는 오는 차가 많이 있으니, 청주에 오셔서 환승하시는 것이 편합니다. 속리산행 버스도 청주에 정차합니다.)

청주 속리산행버스(1시간 30분소요) 첫차 06:40/막차 20:40/일일 26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