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북도 = 나를 찾아서...

2016. 12. 17. 공주 태화산 마곡사

백련암 2016. 12. 20. 01:40

공주 태화산 마곡사 : 시대 = 삼국시대 백제

충남(忠南) 공주시(公州市) 사곡면(寺谷面) 운암리(雲岩里)의 태화산(泰華山) 동쪽 산허리에 자리 잡은 마곡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제 6교구본사(本寺)이다.

"春마곡" 이란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봄 볕에 생기가 움트는 마곡사의 태화산은 나무와 봄꽃들의 아름다움이 빼어납니다.

마곡사 사적입안(事蹟立案)의 기록에 따르면 "마곡사는 640년[百濟[백제]." 무왕[武王 41년)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고려 명종(明宗) 때인 1172년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중수하고 범일[梵日]대사가 재건하였다고 합니다.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다시 중수하고 각순(覺淳)대사가 보수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세조가 이 절에 들러 '영산전(靈山殿)' 이란 사액(賜額)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신라의 고승 자장 율사가 창건할 당시만 하더라도 30여 칸에 이르는 대사찰이었으나 현재 마곡사는 대웅보전(大雄寶殿,  보물 제 801호)을

 비롯한 대광보전(大廣寶殿, 보물 제 802호), 영산전(靈山殿, 보물 제 800호), 사천왕문, 해탈문, 등의 전각들이 가람을 이루고 있다.

이 밖에도 도량의 성보(聖寶)로는 5층 석탑(보물 제 799호) 범종(梵鍾, 지방유형문화재 제 62호), 괘불(掛佛) 1폭, 목패(木牌)

세조가 타던 연(輦), 청동 향로(지방유형문화재 제 20호)가 있으며 감지금니묘법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제 6권(보물 제 270호)과

감지은니묘법연화경(紺紙銀泥妙法蓮華經) 제 1권(보물 제 269호)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태화산 마곡사 一柱門(일주문) = 마곡사로 들어서면서...



마곡사에서 나오는 길에



태화산 마곡사란 글이 새겨져 있는 표지석



찻집 = 다루정



    



  마곡사 입구에 있는 팔각정 쉼터



마곡사가 관음성지라는 것을 알리는 팻말



洗心橋(세심교)



麻谷寺 解脫門(마곡사 해탈문)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 66호     시대 = 조선

마곡사는 백제 무왕 41년(640)에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전한다.

절 경내에는 응진전을 비롯하여 대웅전, 영산전, 대광보전, 홍성루 등 많은 건물이 남아 있다.

해탈문은 마곡사의 정문으로 이 문을 지나면 속세(俗世)를 벗어나 불교 세계(法界[법계])에 들어가게 되며,

 해탈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하여 해탈문(解脫門)이라 한다.

중앙 통로 양쪽 편에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과 문수동자상(文殊童子像)과 보현동자상(普賢童子像) 을 모시고 있다.


고종 1년(1865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麻谷寺 解脫門(마곡사 해탈문) 懸板(현판)



金剛力士像(금강역사상)과 普賢童子像(보현동자상)이 모셔져 있다.


♣♣♣

대체로 탑 또는 사찰의 문 양쪽을 지키는 수문신장(守門神將)의 구실을 담당하며, ‘인왕역사(仁王力士)’라고도 한다.

이 신은 여래의 온갖 비밀된 사적(事迹)을 알고 5백 야차신(夜叉神)을 거느리면서 천불(千佛)의 법을 수호한다고 한다.

보통 사찰 문의 왼쪽에는 밀적금강(密迹金剛),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이 서 있다.

이 중 나라연금강은 천상계의 역사로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가 된다고 한다.

밀적금강은 손에 금강저(金剛杵)라는 무기를 가지고 항상 부처님을 호위하는 야차신으로,

부처님의 비밀한 사적을 들으려는 서원을 세웠으므로 밀적이라고 한다.


이들의 머리 뒤에는 커다란 원형의 두광(頭光)이 있다. 이는 이들이 단순히 힘센 이가 아니라 신성한 지혜를 고루 갖추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보통 나라연금강은 입을 크게 열어 ‘아’ 하고 소리를 내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밀적금강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흔히 입을 열고 있는 역사를 ‘아금강역사’, 입을 다물고 있는 역사를 ‘훔금강역사’라고 하는데, 이때의 ‘아’는 범어의 첫째 글자이고, ‘훔’은 끝 글자이다.

이 금강역사의 입은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과 통일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의를 입지 않고 옷을 허리에 걸친 채 주먹을 쥐어 밖에서 안으로 한 팔을 올리고 한 팔을 내린 자세를 취하거나,

한 손으로 칼을 잡고 있는 모습 등을 취하기도 한다.



金剛力士像(금강역사상)과 文殊童子像(문수동자상)이 모셔져 있다.  = 흠 금강역사



흰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동자



    

밀적금강은 입을 굳게 다물어 "흠" 금강역사                                                               나라연금강은 입을 크게 열어 "아" 금강역사



청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동자



겨울나무에 빨간 연등을 달아 놓은 추리가 새롭다. 아 예쁘다.



해탈문의 뒷모습





麻谷寺天王門(마곡사천왕문)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 62호     시대 = 일제강점기

마곡사는 백제 무왕 41년(640)에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전한다. 

절 경내에는 천왕문을 비롯하여 대웅전, 영산전, 대광보전, 홍성루 등 많은 건물들이 남아 있다.

천왕문은 조선 후기에 세웠으며, 건물에 남아 있는 기록으로 보아 1910년에 고쳐 지었다고 한다.


절 입구에서 두 번째 있는 문인 천왕문은 앞면 3칸 · 옆면 2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천장은 지붕의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으로 꾸몄고, 안쪽에는 동서남북 4지역을 지키는 사천왕상과 그림이 있다.

<문화재청의 글>



麻谷寺天王門(마곡사천왕문) 懸板(현판)

천왕문(天王門)은 해탈문(解脫門)에 이어 마곡사 두 번째 대문으로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 안쪽에는 동서남북의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인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안치되어 있다.

사천왕은 천상계(天上界)의 가장 낮은 곳인 사천왕천(四天王天)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할하는 신적 존재로

부처님이 계신다는 수미산(須彌山)의 중턱 사방을 지키면서 인간들이 불도(佛道)를 따라 사는지 살피어

그들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천왕문 옆에 있는 향나무



西方 廣目天王(서방 광목천왕)                                                    北方 多聞天王(북방 다문천왕)



    



    



東方 持國天王(동방 지국천왕)                                                          南方 增長天王(남방 증장천왕)



    



    



天王門과 極樂橋(천왕문과 극락교)





極樂橋(극락교)



極樂橋(극락교)와 연등 추리







極樂橋(극락교)



梵鐘樓(범종루)

범종루에는 사물이 있다. = 사물 : 법고, 범종, 운판, 목어



大光寶殿과 大雄寶殿 全景(대광보전과 대웅보전 전경)  =  사진 문화재청



大光寶殿과 五層石塔(대광보전과 오층석탑)



公州 麻谷寺 大光寶殿(공주 마곡사 대광보전)  :  보물  제802호     시대 = 백제

이 건물은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本殿)이다. 임진왜란으로 불 타 없어진 것을 순조 13년(1813년)에 다시 지었다.

건물 내부에는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동쪽을 바라보며 모셔져 있으며,

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유형문화재 제 191호)가 봉안되어 있다.

내부 바닥에는 참나무로 만든 돗자리가 깔려 있으며, 전면 창호에는 다양한 꽃살 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대광보전은 안팎으로 구성과 장식이 풍부하고 건축 수법이 독특한 건물로 조선 후기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公州 麻谷寺 大光寶殿(공주 마곡사 대광보전)  :  보물  제802호     시대 = 백제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설과 신라의 승려 무선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세웠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신라말부터 고려 전기까지 폐사되었던 절로 고려 명종 2년(1172) 보조국사가 절을 다시 세웠으나 임진왜란 뒤 60년 동안 다시 폐사되었다.

훗날 조선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가 대웅전 · 영산전 · 대적광전 등을 고쳐 지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 해탈문 · 천왕문과 일직선으로 놓여 있다.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건물로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불에 타버렸던 것을 조선 순조 13년(1813)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5칸 · 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앞면 5칸에는 3짝씩 문을 달았는데 문살은 꽃 모양을 섞은 조각으로 장식하였고 가운데 칸 기둥 위로 용 머리를 조각해 놓았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몄고, 불단은 서쪽으로 마련하였는데 불단 위에는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닫집을 정교하게 꾸며 달았다.


안팎으로 구성과 장식이 풍부하고 건축 수법이 독특한 건물로 조선 후기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大光寶殿의 毘盧遮那佛(대광보전의 비로자나불)




대광보전 불상위의 닷집 =  문화재청 펌



毘盧遮那佛(비로자나불)



대광보전의 神衆檀(신중단)





獨聖檀(독성단)



대광보전의 獨聖(독성) 혹은 羅漢(나한) 내부 벽화



대광보전의 내부 벽화



대광보전의 내부 벽화



대광보전의 비로자나불 뒤 벽면에 그려져 있는 관음보살도



대광보전의 비로자나불 뒤 벽면에 그려져 있는 관음보살도



법당용 예불종



대광보전 외벽에 그려진 금강역사



대광보전 외벽에 그려진 벽화



대광보전 뒤 벽면



大光寶殿 · 大雄寶殿(대광보전과 대웅보전)



대광보전 문살은 꽃 모양을 섞은 조각으로 장식하였고 가운데 칸 기둥 위로 용 머리를 조각해 놓았다.



公州 麻谷寺 五層石塔(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 보물  제799호     시대 = 고려시대  높이 = 약 8.4m

마곡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으며, 구한말에는 독립운동가 김구와도 인연이 깊었던 사찰이다.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던 일본인 장교를 죽인 후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에 숨어서 승려로 지냈는데,

지금도 대광보전 앞쪽에는 김구가 심었다는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절마당에 우뚝 서 있는 이 탑은 탑 전체의 무게를 받쳐주는 기단(基壇)을 2단으로 쌓고, 그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올린 모습이다.

탑신의 몸돌에는 부처, 보살 등을 조각해 놓았고, 지붕돌은 네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보이는데, 현재는 5층 지붕돌에만 1개의 풍경이 남아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이 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으로, 중국 원나라의 라마탑과 그 모습이 비슷하다.


길쭉한 감이 있어 안정감은 적으나 당당한 풍채로 버티고 서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머리장식의 독특한 모습으로 보아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 후기 즈음으로 여겨진다.

즉 고려 후기 당시 원나라와의 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라마교 계통의 문화도 고려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 탑은 그 문화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탑 안의 보물들을 거의 도난당하였으나, 1972년 해체하여 수리하는 과정에서 동으로 만든 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다.



大光寶殿앞에 있는 五層石塔(대광보전 앞에 있는 오층석탑)

이 탑은  고려 말기에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탑으로 다보탑이라고도 불린다.

2층 기단 위에 5층의 몸돌(塔身[탑신])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올렸다. 1층 몸돌에는 자물쇠를 새겼으며, 2층 몸돌에는 사방을 지키는 사방불(四方佛)을 새겼다.

머리장식으로 라마탑에 보이는 풍마동(風磨銅) 장식을 두었는데, 전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이다.

대광보전 화재 때에 훼손되어 원래 탑재가 아닌 화장암으로 보수한 곳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마곡사 안내 설명문>



라마탑에 보이는 풍마동(風磨銅) 장식

5층의 몸돌(塔身[탑신])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올렸다.

머리장식으로 라마탑에 보이는 풍마동(風磨銅) 장식을 두었는데, 전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이다.



    


오층석탑의 4면의 모습


    



公州 麻谷寺 五層石塔(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2층탑신의 사방불상



2층탑신의 사방불상



2층탑신의 사방불상



2층탑신의 사방불상



2층탑신의 사방불상



    

風鐸(풍탁)

현재는 5층 지붕돌에만 1개의 풍경이 남아 있다.





應眞殿 · 白凡堂(응진전과 백범당)



白凡堂(백범당)

마곡사는 구한말에는 독립운동가 김구와도 인연이 깊었던 사찰이다.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던 일본인 장교를 죽인 후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에 숨어서 승려로 지냈다.



白凡堂(백범당) 懸板(현판)





김구선생님이 직접쓰신 행복이란 두 글자





김구선생의 좌우 인사들

사진 보면 김구선생님의 왼쪽은 완장을 찬 좌익인사들이 있고 오른쪽을 보면 넥타이를 맨 우익인사들이 서 있습니다.



백범 김구선생님의 초상화



양심건국이란 글 역시 백범선생의 글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