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석가탄신일을 기하여 상주 용흥사 괘불
국립중앙박물관은 2018년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여 괘불전 ‘세 부처의 모임-상주 용흥사 괘불’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2006년 5월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보여 온 한국의 괘불 전시 중 열세 번째 전시입니다.
괘불掛佛은 사찰의 야외 의식에 거는 큰 불화입니다. 이번에 공개하는 <상주 용흥사 괘불>(보물 제1374호)은 1684년(숙종 10년) 꽃내음 가득한 5월,
연악산 용흥사에 90명이 넘는 많은 인원이 동참하여 조성했습니다. 괘불은 석가모니불과 약사불, 아미타불의 모임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세로 10m, 가로 6m가 넘는 대규모의 화면에는 모임에 참여한 보살, 제자, 사천왕 등 40여 명의 인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모임의 주재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교주 석가모니부처로, 그의 몸에서 발하는 영롱한 빛은 모임의 시작을 알립니다.
약사부처는 질병의 고통이 없는 유리광세계를, 아미타부처는 즐거움만이 가득한 극락세계를 다스립니다.
사람들은 세 부처에게 살아서는 무병장수하고, 죽어서는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용흥사 괘불은 현재 전해지고 있는 괘불 가운데에서는 이른 시기에 제작된 불화로, 300여 년 전의 그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선명하고 화사한 색채,
다채로운 문양은 절로 감탄을 자아냅니다.
특히 연꽃과 다양한 꽃, 넝쿨, 상서로운 구름무늬 등이 괘불을 가득 채운 점은 보는 이들의 눈을 아주 즐겁게 합니다.
이번 전시는 사찰의 큰 행사 때에만 모습을 드러내 평소에는 보기 힘든 용흥사의 대형 괘불을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괘불을 보관하는 함과 함께 익살스런 표정의 <나한상>, 신들의 모임을 그린 <신중도>, 지옥의 왕 중 다섯 번째 왕 염라대왕을 그린 <현왕도> 등도
함께 선보이므로, 천년고찰 용흥사의 숨결을 느끼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龍興寺 三佛會 掛佛幀(용흥사 삼불회 괘불탱) : 보물 제 1374호. 시대 = 조선
삼세불(아미타불, 석가여래, 약사여래불)의 주변은 뚯깊은 자리를 찬탄하기 위해 모인 38명의 인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전체 길이가 10미터를 넘는 대형 괘불화로 중앙의 석가모니불도를 비롯하여 좌측(향우(向右))에 약사불도, 우측(향좌(向左))에
아미타불도를 별도로 그려 배치함으로써 삼세불(三世佛) 성격을 띠고 있다.
17세기 이후 유행한 군집도 형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 그림은, 화면을 상·중·하 3단으로 구분하여 중단에는 3불, 하단에는 각 협시보살상들과
동 · 남방천왕, 상단에는 서· 북방천왕 및 타방불과 10대제자, 용왕 · 용녀, 성문중, 화불 등을 배치하였다.
각기 인물의 성격에 따른 복식과 손의 모습, 취하고 있는 자세와 지물, 색채 등만이 약간씩 다를 뿐 화면의 구성과 인물의 배치 및 위치,
구름 모양과 색채, 천개, 석가모니불로부터 뻗쳐 나가는 빛줄기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완벽하게 좌우대칭을 이루어 형식적인 면이 엿보인다.
하지만 밝고 화사한 색채의 사용과 세련된 필선에 의한 인물의 묘사로 인하여 활기가 넘쳐난다.
이 그림은 조성시기가 1684년으로 빠르고 보존상태 또한 양호할 뿐 아니라, 화사한 색채의 사용과 세련된 필선의 구사,
독특한 화면구성 등에 있어 기타 17세기 괘불탱들과는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주존불인 석가모니불에서 보이는 뾰족한 육계 및 새끼손가락을 벌린 채 길게 뻗어내린 오른손의 모습은,
죽림사세존괘불탱(1622년)으로부터 보살사영산회괘불탱(1649년) · 안심사영산회괘불탱(1652년)에까지 이어지는
특징으로 17세기 불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문화재청의 글>
2018 괘불전 상주 용흥사 괘불의 세 부처의 모임
중앙의 석가모니불도를 비롯하여 좌측(향우(向右))에 약사불도, 우측(향좌(向左))에 아미타불도를 별도로 그려 배치함으로써
삼세불(三世佛) 성격을 띠고 있다.
상단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 : 팔부중, 금강역사등 여러 인물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금강역사, 위제희왕비, 아사세왕, 팔부중, 용녀, 용왕, 타방불, 사천왕 등
하단에는 세 부처를 모시는 보살들 : 우측부터 대세지, 관음, 보현, 문수, 월광, 일광보살등과 사천왕이 함께 있습니다.
龍興寺 三佛會 掛佛幀(용흥사 삼불회 괘불탱) : 보물 제 1374호. 를 담았던 함
존자는 엄숙한 표정으로 금강령과 염주를 들고 있다.
나한 = 木造 羅漢像(목조 나한상) : 시대 = 조선 18세기 상주 용흥사
나한은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은 성자를 가리킨다. 수행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 경지인 아라한과(阿羅漢課)를 얻은 불제자이다.
불 보살에 버금가는 신통력으로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소임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나한은 일찍부터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자 예배와 신앙의 대상으로 인식되어 왔다.
용흥사 나한전에는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취한 십육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이 나한상은 용흥사 나한전에 모셔져 있는 십육나한 중 두 존자이다.
왼쪽의 존자는 엄숙한 표정으로 금강령과 염주를 들고 있다.
반면 오른쪽 존자는 소년과 같은 앳된 얼굴로 사자를 타고, 두 손은 사자의 귀를 잡고 있다.
존자는 소년과 같은 앳된 얼굴로 짖꿋게 두 손은 사자의 귀를 잡고 올라타고 있습다.
존자가 타고 있는 사자상
尙州 龍興寺 神衆圖(상주 용흥사 신중도)
尙州 龍興寺 神衆圖(상주 용흥사 신중도) : 시대 = 조선 1836년
인도의 고대신으로 부터 비롯된 신들의 모임을 그린 신중도이다 (용흥사 신중도)는 제석부의 우두머리인 제석천과
천룡부의 우두머리인 위태천을 화면에 그렸다.
제석천은 하늘에 사는 천신의 우두머리로, 각종 번을 들고 있는 천녀와 천동이 그 주위를 호위하고 있다.
이들이 무장하지 않은 천신의 무리라면, 그 뒤를 따르는 신은 위태천과 무장신이다.
위태천은 인도 힌두 신화에서 전쟁신의 하나인 스칸다에서 유래한다.
용맹스런 신 스칸다는 가루라로부터 독수리를 선물 받아 탈 것으로 삼게되는데, 불교에 흡수된 이후에도 독수리깃이 달린 투구는
위태천을 식별하는 도상 중 하나가 되었다. 위태천은 부처님의 말씀을 지키며 불사리와 경전의 수호를 맡는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상주 용흥사 괘불 설치가 끝난 후 주지스님이 마지막 예를 올리고 있습다.
상주 용흥사 부터 중앙박물관까지의 괘불 이운 모습의 화면
용흥사 괘불전 끝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여신 : 마디야 프라데시 또는 라자스탄, 굽타 시대 6 - 7세기
사암으로 만들어진 이 부조의 중앙에는 풍만한 가슴을 지닌 여인이 여러 명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러한 모습은 불교의 하리티와 자이나교의 암비카와 같은 여신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리티는 원래 아이들을 잡아먹는 악귀였으나 부처에게 감화된 후 불교의 신이 되었다.
암비카는 자이나교의 22벙째 지나인 네미나타와 관련된 약시이다. 여신 모두 아이들을 수호하는 모신의 역할을 담당한다.
문설주 부조 : 라자스탄 또는 우타르 프라데시, 9 - 10세기
9 - 10세기 라자스탄과 우타르 프라데시 지역에는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된 힌두교와 자이타교 사원이 많이 지어졌다.
이 조각은 이러한 사원 입구의 문설주로, 당시 유행한 여러 가지 모티프가 조각되어 있다.
깊이 조각된 5개의 작은 감실(龕室)에는 각기 다른 자세의 남녀 한 쌍이 등장하며, 그 사이에는 마카라(고대 인도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물고기)가,
왼쪽에는 나가니(신격화된 코브라의 여성형)와 덩굴 줄기로 이루어진 장식 문양이 표현되어 있다.
누운 자세의 여신 : 마다야 프라데시, 1173년
낮은 침대에 누워있는 여신의 머리를 시종이 가꾸어주고 발바닥에 벌레 추출물로 만든 붉은 안료인 알락타카를 칠해주고 있다.
이 여인이 걸친 장신군는 결혼한 여인의 치장법과 관련이 있어, 힌두 신의 배우자를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침대 가운데 흘러 내린 담요 위에 연대를 알려주는 명문이 남아있다.
문수보살 : 팔라 시대 12세기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이 비상에는 한 쪽 다리를 내린 유희좌의 자세로 사자 위에 앉아 있고, 손으로는 설법인을 취하고 있다.
왼팔을 끼고 올라간 연꽃 위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경전이 놓여 있다. 양측에는 협시보살이, 위쪽에는 5명의 작은 부처가 조각되어 있다.
기단의 중심에는 코끼리 머리가, 측면애는 무릎을 끓고 앉아 있는 신도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부처의 생애가 표현된 비상(碑像) : 팔라시대 10세기
석가모니의 생애에서 중요항 8가지 사건(八相)을 표현하고 있다. 중앙의 부처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자세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성도(成道)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주위로 왼쪽 하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탄생, 녹야원(鹿野苑)에서의 첫 설법.
도리천(忉利天)에서 내려오는 이야기, 열반, 성난코끼리를 다스린 사건, 사위성(舍衛城)에시 기적을 일으킨 장면,
원숭이가 꿀을 바치는 장면이 배치 되었다. 광배에는 연기법송(緣起法頌), 기단에는 발원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보관을 쓴 부처 : 팔라 시대 10 -11세기
인도에서 보관을 쓴 모습의 부처는 6세기 경에 등ㅈㅇ하여 10세기 이후 보편적인 도상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엄숙하고 육중한 느낌을 주는 얼굴과 섬세하게 묘사된 화려한 관, 목걸이 등 장신구의 조화에서 팔라 조각가의 뛰어난 실력을 확인할 수 있다.
사냥꾼과 옷을 바꿰입는 장면
이야기 부조 간다라, 2 - 3세기
간다라 지역에서 발견된 이야기 부조는 원래 불교 사원의 성소(聖所)와 스투파의 표면을 장식했던 것이다.
현존하는 유물에서는 대략 10가지의 본생(本生)과 70가지의 불전(佛傳)이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부처의 가르침과 보살행의 중요성을 신도들에게 재미있고 쉽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出城(출성) 성을 탈출하는 장면
出城(출성)
칸타카의 출생
붓다와 선인
녹야원에서의 첫 설법
세명의 여인
외래의 신과 모티프 : 간다라, 2 - 3세기
간다라 미술에는 인간 모습의 상반신에 물고기 꼬릴 지닌 모습의 그리스계 신 트리톤이나
디오니소스 계열 모티프인 술이 담긴 가죽보따리를 든 젊은이와 꽃줄을 든 동자가 등장하여,
다양한 문화를 수용한 이 지역 미술의 특징이 드러난다.
악기를 연주하는 젊은이와 여인들의 경우 신체 표현, 자세 복식에서 고대 지중해 미술의 영향도 찾아볼 수 있다.
트리톤
인간의 모습의 상반신에 물고기 꼬리를 진닌 모습의 그리스계 신 트리톤
악기를 연주하는 젊은이
꽃줄을 든 동자
보살 부처
스투코 상 : 간다라 3 - 4세기
스투코는 석회, 모래, 물을 섞은 조각 재료이다. 먼저 돌과 점토로 심을 만들고 그 위에 스투코를 씌우거나, 스투코만으로 형태를
완성한다. 현존하는 간다라의 스투코 상은 4 - 5세기에 제작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탁실라와 같은 지역에서는 3세기의 것으로 보이는
예가 발견되기도 했다.
보살이 새겨진 부조
간다라 미술
넓은 의미의 간다라는 오늘날 피키스탄에 속하는 페샤와르 분지, 스와트, 탁실라,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분지와 잘랄라바드 일대를 포괄한다.
이 지역은 서아시아, 남아시아, 중앙아시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여러 왕조의 진출과 교역 활동을 통해 일찍부터 다양한 문화가 소개되었다.
이 지역에서 기원후 1 - 5세기에 제작된 미술을 "간다라 미술"이라고 한다. 간다라는 마투라 지역과 더불어 인간의 모습을 한 불상(佛像)이
처음으로 제작된 곳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동서 문화교류의 중심지답게 이 지역의 불상은 인도, 헬레니즘, 로마, 파르티아적인 요소가 복합된 양상을 보인다.
미륵보살 보살
미륵보살 : 간다라 2 - 3세기 = 간다라 지역에서 제작된 여러 유형의 보살상 중에서 미륵보살은 판별하기가 가장 쉽다.
미륵보살은 머리카락을 리본 모양이나 커다란 상투 모양으로 묶고 왼손에는 물병을 드는 것이 특징이다.
이 보살은 왼손이 파손되어 물병을 확인할 수 없지만, 미륵보살의 전형적인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보살의 뚜렸한 이목구비,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옷자락, 사실적으로 표현된 장신구는 모두 간다라 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보살 : 간다라 2 - 3세기 = "보살"은 깨달음을 얻기 전의 석가모니를 가르키는 말이었으나, 대승불교의 흥기와 함께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하면서
다른 중생을 구제한는 존재를 기리키게 되었다. 살은 세속인 중에서 가장 훌륭한 차림새를 한 왕공 귀족의 모습을 모델로 한다.
여기서는 도티라고 불리는 치마를 걸치고, 상반신에는 숄을 두르고 여러 가지 장신구를 착용하였다.
시바와 파르바티 : 라자스탄 9 - 10세기
굽타시대 이후 북인도에서 유행한 시바 像 형식 중 하나로, 시바 사원의 외벽에 마련된 독립된 성소에 모셔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황소 난디를 탄 시바와 파르바티를 중심으로, 기단 양측에는 이들의 아들인 가네샤와 카르티케아가 앉아 있고,
윗부분에는 브라흐만, 비슈누 그리고 브라흐마니를 비롯한 7명의 모신(母神)이 등장한다.
시바와 파르바티
윗부분에는 브라흐만, 비슈누 그리고 브라흐마니를 비롯한 7명의 모신(母神)이 등장한다.
시바와 파르바티
인간을 닮은 신들
인도 미술에서 인간의 형상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종교 미술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수많은 신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상화되었다.
이들은 종종 감각적이고 에로틱한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현재의 기준으로 상당히 "세속적"으로 느껴지는 이러한 표현이 종교적 맥락에
등장하는 현상은 인도의 미술뿐만 아니라 신화, 문확, 음악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간 신체의 감각적인 아름다움은 영혼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여겼고, 신의 몸이 지닌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것은
신성(神性)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였다.
성스러운 커플이 즐겁게 사랑을 나누는 신상(神像)을 보면서 신도들은 자신들도 그러한 축복을 받기를 희망했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문화
이 전시실에서 소개하는 "인도"는 현재의 인도 공화국을 비롯하여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스리랑카를 포함한
남 아시아를 가리킨다. 동남아시아는 인도차이나 반도와 이를 둘러싼 섬들을 기리키며, 현재의 국가로는 미얀마, 타이,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포함한다.
삼각형 모양의 북부 지역과 역삼각형 모양의 남부 지역을 포개놓은 듯한 모습의 인도아대륙(印度亞大陸)은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과 맞먹는 면적을 지닌 거대한 땅으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해왔다.
북쪽으로는 히말라야, 힌두쿠시와 같은 험준한 산맥이 가로막고 있으며, 나머지 면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인더스 강을 중심으로 한 북서부 지역은 아리아인, 그리스인 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이 침략했던 곳으로, 역사적으로 외래문화의 유입이 가장 활발했다.
갠지스강 유역은 비옥하고 천연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이를 바탕으로 브라만교, 불교, 힌두교, 자이나료 등 인도의 대표적 종교가 흥기했다.
데칸공원을 중심으로 한 서인도 지역에서는 해안가를 따라 해상교역의 중심지로 번영했고, 산악지대에는 많은 석굴사원이 개착되었다.
인도아대륙의 남쪽은 북쪽의 아라안계와 구별되는 드라비다계 문화의 중심지로, 독특한 불교, 힌두교 문화를 꽃피웠다.
동남아시아는 인도와 중국 사이에 윛한 지역으로 토착적인 전통 위에 양자의 영향을 선별적으로 수용하여 독자적인 문화를 탄생시켰다.
특히 인도 지역과는 기원전부터 해상교역을 통한 교류가 활발하여, 일찍이 인도의 불교, 힌두교를 비롯하여 정치 · 사회적 제도와 문자 등이
이 지역에 전해졌다. 10세기 전후로는 인도와 중국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동남아시아의 지역적 특성이 분명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베트남 중부와 참파왕국, 캄보디아의 크메르 왕국, 타이의 수코타이 왕국, 인도네시아의 사일렌드라 왕국, 미얀마의 파간 왕국은
당시의 정치적, 경제적 번영과 수준 높은 문화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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