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북도 = 나를 찾아서...

2018. 12. 23. 扶餘 聖興山 大鳥寺(부여 성흥산 대조사)

백련암 2019. 2. 24. 20:27

2018. 12. 23.  扶餘 聖興山 大鳥寺(부여 성흥산 대조사)

충남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성흥산(聖興山) 자락의 대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입니다.

대조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는데 부여읍지(扶餘邑誌)에 의하면 인도에 가서 범본(梵本) 율장(律藏)을 가지고 돌아와서

백제 불교의 방향을 중흥시킨 겸익(謙益)이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 사적기(寺蹟紀)를 참작하여 기록한 현판에 의하면 대조사는 527년(성왕 5년) 담혜(曇慧)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창건주에 대한 설은 다르지만 대조사는 6세기 초에 창건된 천년고찰입니다. 두 기록이 다른 까닭은 알 수 없으나 6세기 초에 건립된 것은 확인된다.

그후 고려 원종때 진전장로(陳田長老)가 중창하였고, 20세기에는 명부전, 종각, 미륵전을 각각 신축하였으며,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용화보전,

명부전, 산신각,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있는데 특히 대웅전 뒤에 있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보물 제 217호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대조사 설화

백제 성왕(재위 523-554년)이 재위 당시 한 노승이 성황산 커다란 바위 아래 암자를 짓고 참선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꿈에 한 마리의 황금빛 새 한 마리가 서쪽에서 날아와 지금의 대조사가 있는 곳에 날아와  노승이 암자를 지은 곳의 큰 바위를 향해

날갯짓을 하는 것이 었다.  새의 날개에 반사된 황금빛이 바위에 닿자 바위 안에서 관세음보살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몇날 며칠 같은 꿈을 꾸자 노승은 이를 가림성주에게 알렸고, 가림성주는 성왕에게 기이한 일을 전했다.


마침 성왕은 공주에서 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기려했는데, 그 일이 길조라 생각하며 지금의 대조사에 사찰을 짓게했다.

천도를 위해 공사를 앞당기려 많은 사람을 투입했으나 일은 진척되지 않았다.

그러자 어느 날  한 마리 황금빛 새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를 부르니 사람들은 피곤을 잊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초 10년의 공사기간을 5년으로 줄이게 되어 지금대조사가 완공되었다.  

그래서 사찰 이름을 큰 새가 찾아왔다 해서 대조사(大鳥寺)라 했다고  전해진다.



扶餘大鳥寺石造彌勒菩薩立像(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 보물 제217호     시대 = 고려   높이 = 10m

보물 제217호. 충청남도 부여군 대조사에 있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이다. 보살의 머리 위부분과 원통형 보관(寶冠 : 보배로운 모자)이

이어지는 부분이 보수되었으며, 왼쪽 어깨 일부가 부서진 상태이다. 보살상은 약 10m의 크기이다.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에 관한 명문이나 문헌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인 조성 배경은 알 수 없다.

비록 석조보살상이 미륵보살이라고 명명되고 있지만, 그 근거는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특징은 길쭉한 삼각형에 가까운 조형, 면류관(冕旒冠 : 왕이 쓰던 네모난 모자)과 유사한 방형 보개,

원통형 보관 등 고려시대 전기에 충청도 지방에서 유행하던 석조 불상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보물 제218호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과 형식적인 면에서 유사하다.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입상은 3개의 바위를 이어서 만들어진 것임>

다만 이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전체적인 비례가 좋고, 하나의 돌을 다듬어 조각하였다는 점과 부드러운 모델링을 구사하고 있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통견(通肩 : 옷이 양쪽 어깨를 덮고 있는 것) 형식의 법의(法衣 : 보살상의 옷)를 입고 있으며,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양 손으로 금속제의 연꽃 가지를 잡고 있다. 약 5등신(等身)의 신체 비례를 갖추고 있으며,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폭이 넓어져 안정감을 준다. 머리 위에는 원통형의 보관과 그 위에 가로로 긴 장방형의 보개(寶蓋 : 보배로운 덮개)를

2중으로 올려놓았다. 아래쪽의 보개 밑면에는 빗물이 얼굴로 타고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가장자리 부분을 돌아가면서 얕게 파내었다.

네 모서리에는 장식을 매달기 위해 뚫은 구멍이 남아 있으며, 지금도 동령(銅鈴 : 청동 방울)이 매달려 있다. 원통형 보관에는 특별한 문양이

확인되지 않는다. 이들 보관과 보개는 보살상과 따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원래부터 이러한 형태를 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보살상은 하관(下官)이 넓은 삼각형의 얼굴에 부리부리한 눈, 부은듯한 눈두덩, 살짝 굽은 콧등, 음각으로 새겨진 콧날, 긴 인중, 살짝 내민 입술,

얇고 섬세하게 조각된 귀를 가지고 있다. 상호(相好 : 얼굴)는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이다. 또한 정갈하게 빗은 머리카락은 정면과 측면, 뒷면까지 세밀하게

 표현되었다. 양쪽 귀 뒤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양어깨 위를 덮고 있다. 목에는 한 줄의 음각으로만 표현된 삼도(三道 : 세 개의 선)가 있다.


한편, 보살상의 몸은 고려시대 전기에 충청도 지방에서 유행한 석조 불상과 같이 대충 돌을 다듬은 다음, 간략하게 표현하였다.

각 진 어깨, 모호하게 처리된 양 손, 법의의 주름 표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보살상의 몸은 사실적이라기보다는 그저 표현을 위한 표현에 그치고 있다.

특히 오른쪽 팔 뒤로 넘어 온 법의 자락은 마치 칼로 도려낸 듯 딱딱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 나마 목 뒤를 감고 있는 옷깃의 입체적인 처리와

가슴걸이 영락 장식의 섬세한 표현이 약간의 사실감을 부여해 준다.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방형(方形)의 보개와 원통형 보관, 5등신에 가까운 신체 비례, 부리부리한 눈, 넓은 하관 등을 통하여 볼 때,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모델로 하여 고려시대 전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전기에 유행했던 지방적인 특징을 지닌 대표적인 예이다.

보살상에 보이는 형식과 양식은 충청도 지방을 중심으로 유행하였던 것으로서 고려시대 전기의 불상 연구에 있어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백과사전>



扶餘 大鳥寺 石造彌勒菩薩立像(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  보물 제217호      시대 = 고려

고려시대에 유행한 거대한 석조미륵보살의 하나로 논산에 있는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과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다.

미래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보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높이가 10m나 되는 거구이다.


머리 위에는 이중의 보개(寶蓋)를 얹은 네모난 관(冠)을 쓰고 있으며 보개의 네 모서리에는 작은 풍경이 달려있다.

관 밑으로는 머리카락이 짧게 내려져 있는데 이와 같은 머리모양은 관촉사 석조미륵보살도 마찬가지이다.

얼굴은 4각형으로 넓적하며, 양쪽 귀와 눈은 크나 코와 입이 작아서 다소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양 어깨를 감싼 옷은 두껍고 무거워 보이는데 매우 투박한 모습이다.

팔의 윤곽은 몸통에 붙여 옷자락으로 겨우 표현되었고, 손도 간신히 나타냈는데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배에 대어 연꽃가지를 잡고 있다.

보살상 앞에는 제사 음식을 차려 놓기 위하여 판판한 돌을 마련해 놓았다.


전반적으로 관촉사 석조미륵보살과 함께 동일한 지방양식을 보여주는 보살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문화재청>



어느 분이 가져다 놓았는지?. 석조미륵불 옆 작은 공간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이 앉아 계신다.



石造 彌勒菩薩立像(석조 미륵보살입상)

이 석불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거대한 미륵불이다.

크기에 비해 세부 묘사가 없으며, 조각 기법이 세련되지 않은 점과 신체의 비례가 어울리지 않는 점 등이 관촉사 미륵보살상과 비슷하다. 

특히 충남 지방 일원에 이같이 거대한 양식을 가진 석불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 것은  이 지방에 유행한 미륵 신앙에서 연유한 듯하다.

<대조사 글> 

 


원통보전(관음전)의 지붕 위로 보이는 石造 彌勒菩薩立像(석조 미륵보살입상)



龍華寶殿(용화보전)



龍華寶殿 懸板(용화보전 현판)



阿彌陀佛 幀(아미타불 탱화)



神衆檀 (신중탱화)



대조사 법당 예불종



종의 용뉴



스님과 바둑내기





 


대조사 원통보전과 탑



圓通寶殿(원통보전, 즉 관음전)



원통보전의 문살의 꽃과 연꽃문살





扶餘 大鳥寺 木造菩薩坐像(부여 대조사 목조보살좌상)  :  시도유형문화재 제205호      시대 =  조선

원통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보살상은 얼굴이 작고 무릎이 넓어 신체의 비례가 안정감과 균형감이 있으며 상호는 가늘며 반개한 눈, 반듯한 코, 정갈하고

가는 입매, 살짝 올라간 미소를 짓고 있다. 화염문이나 구름문양으로 장식한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보계는 가늘고 낮게 뒤로 말려있다.

법의는 배 밑에서 갈라져 들어가는 옷자락으로 장식성이 뛰어나다.

수인은 중품하생인을 결하고 있으며 17세기에 유행하였던 보살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관세음 보살과 좌우보처인 남순동자와 용왕이 함께 모셔져 있다.



칠성단에 치성과여래와 좌우보처인 일광 · 월광보살 그리고 칠원성군들



신중단(신중탱화)



金鼓(금고) 혹은 반자(쇠북)라고도 부른다.  =  예불 동종자리에 금고를 놓기도 한다.



법당안에 모셔져 있는 용화선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扶餘大鳥寺木造菩薩坐像(부여 대조사 목조보살좌상) : 충남도 유형문화재 제205호     시대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5호. 불상 높이 82.5㎝, 무릎 너비 55.5㎝. 대조사(大鳥寺) 원통보전에 봉안된 목조보살좌상이다.

대조사 목조보살좌상은 고개를 앞으로 숙인 자세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으며, 무릎이 높고 넓어 안정적인 비례를 보인다.

얼굴은 사각에 가까운 방형이며, 꽃 · 구름 · 화염보주로 장식된 화려한 보관과 그 옆으로 휘날리는 곡선적인 관대, 그리고 간결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옷주름 등이 특징이다. 방형의 넓적한 얼굴에 기다란 눈, 오뚝한 콧날,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긴 입술을 표현하여 근엄하고도 자비로운 인상을 준다.


착의법은 편삼과 대의를 입은 변형통견식이며 밋밋한 가슴 위로 수평의 승각기가 보인다.

옷주름이 간결하면서도 예리하고 깊이감이 있어 강한 힘이 느껴지며 오른쪽 발목에서 반전되어 직선으로 늘어뜨린 옷주름이나 왼쪽 무릎에 넓게

지그재그식으로 맞주름이 잡힌 옷자락 등은 이 불상의 독특한 특징 중의 하나이다. 수인은 중품하생인을 취하였다.


안정감 있는 비례에 넓적한 방형의 얼굴, 그리고 화려한 보관과 수평으로 휘날리는 관대의 표현과 양감 있는 옷주름 등이 특징이며,

 이는 혜희(慧熙, 惠熙)가 조성한 1655년 보은 법주사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1호), 1662년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1660호)과

유사하다. 그러나 혜희가 조성한 불상들의 결가부좌한 다리 앞의 가운데 옷주름은 곡선적인데 반해

대조사 불상은 직선적으로 처리하여 차이점도 발견된다. 따라서 대조사 목조보살좌상은 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혜희 또는 혜희에게 영향을 받은 조각승에 의해 17세기 중반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세나 안정적인 신체 비례, 방형의 얼굴에 변형통견식 착의법 등 조선 후기 17세기 불상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인다.

여기에 얼굴의 세부 표현이나 옷주름, 보관의 표현 등에서 17세기 중엽경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조각승 혜희의 특징과 조형성이 발견된다.

이 목조보살좌상은 보존 상태가 좋고 조형성이 뛰어나 17세기 불상이나 혜희 유파 연구에 있어 가치가 있다고 평가된다.



관세음보살께 예배하는 좌우보처인 남순동자와 용왕



扶餘大鳥寺木造菩薩坐像(부여 대조사 목조보살좌상)



법당 內 관세음보살의 벽화







백련벽화



홍연벽화



大鳥寺石塔(대조사석탑)  :  문화재자료 제90호      시대 = 고려

대조사 원통보전 앞에 서 있는 탑으로, 일부만 남아있던 것을 1975년에 다른 일부를 찾아 다시 세운 것이다.


탑은 전체의 무게를 지탱해 주는 기단(基壇)을 2층으로 마련하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인데,

탑신의 2·3층 몸돌과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새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기단은 각 층마다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 뜬 조각을 두었다.

탑신의 지붕돌은 밑면에 받침을 두었는데, 1·2층은 3단, 3층은 2단으로 새겨 불규칙한 모습이다.

지붕돌의 처마는 가운데에서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 이르러 가볍게 위로 들려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비율이 비교적 낮아 안정감을 주고 있는 탑으로,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大鳥寺石塔(대조사석탑)  :  문화재자료 제90호      시대 = 고려

석불과 같이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석탑이다. 원래 지붕돌만 남아 있었는데 1975년 부근에서 몸체돌을 발견하여 복원하였다.

이 지방에 있는 다른 탑과 달리 통일신라 이후 유행한 3층 석탑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형태로 보아도 신라탑 양식을 띄고 있다.

탑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보관하던 장소로 예배대상이 었으나 후에 금당 불상의 비중이 커지면서 절의 중요한 상징적인 시설물이 되었다.

이 절은 관음보살이 새가 되어 날아와 앉은 자리에 세웠다고 해서 대조사라 부른다.



이 집에는 누가 사용하는 것일까요 너무 한적하고 예쁜집



한적한 곳에 소박하고 따뜻한 집



佛乳井(감로수)



시주자 이름인것 같다. 굳이 이렇게 金琪桓(김기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