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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성흥산 대조사(扶餘 聖興山 大鳥寺) 2018. 12. 23. = 2

백련암 2019. 2. 25. 01:13

부여 성흥산 대조사(扶餘 聖興山 大鳥寺)  2018. 12. 23.



범종각 : 사물이 없이 오롯이 범종만이 걸려있다.



범종



        

파랑새와 범종각




冥府殿(명부전)



육환장(六環杖)이 아닌 법륜(法輪)을 들고 계시는 지장보살



지장보살 후불탱의 삼존상 =  중앙의 지장보살(地藏菩薩) 무독귀왕(無毒鬼王)과 도명존자(道明尊者)



지장보살의 권속인 十王들(시왕들)



시왕이 탱으로 그려져 있다.  시왕들의 이름이 다 지워져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점안은 안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염라대왕이 자리가 없어 이쪽으로 넘어왔음





     





     



     



地藏菩薩



山神閣(산신각)



     

山神閣(산신각)과 懸板(현판)



산신단



독성단





♧尋牛圖(심우도)♧

선종(선종)에서 방황하는 자신의 본심을 발견하고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야생의 소를 길들이는 데 비유하여

 10단계로 나누어 그린 그림을 "심우도(尋牛圖)"라 한다.

선의 수행 단계를 소와 동자에 비유하여 도해한 그림으로서, 수행 단계를 10단계로 하고 있어서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한다.


중국 송나라 때 만들어진 보명(普明)의 심우도와 확암(廓庵)의 심우도가 우리나라에 전해지는데 대부분 확암의 심우도가 많다.


1. 尋牛(심우) : 자기의 본심(本心)인 소를 찾아 나선다. = 尋牛


 茫茫撥草去追尋(망망발초거추심) : 망망한 수풀을 헤치고 소의 자취를 찾노니  

水濶山遙路更深(수활산요로갱심) : 강물은 넓고 산은 험하며 길은 더욱 깊기만 하다.  

力盡神疲無處覓(역진신피무처멱) : 힘이 다하여 기력이 떨어져 지쳐도 찾을 길 없는데 

  但聞楓樹晩蟬吟단문풍수만선음) : 다만 숲속 나뭇가지엔 매미 우는 소리만 들리네


수행을 하려고 發心한 수행자가 아직은 禪이 무엇이고 본성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찾겠다는 열의로 공부에 임하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본래 잃은 것이 없는데 무엇을 찾는단 말인가?  깨달음을 등지니 번뇌에 휩싸여 잃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2. 見跡(견적) : 소는 못보고 소의 발자취만 발견한다. 見跡


水邊林下跡偏多(수변임하적편다)  :  물가와 나무 아래 수많은 발자국

芳草離披見也麽(방초리피견야마)  :  풀이 우거졌으나 이를 헤치고 찾아본다. 

縱是深山更深處종시심산갱심처)  :  비록 이곳이 산이 깊고 골짜기가 깊다 해도 

遼天鼻孔怎藏他(요천비공즘장타)  :  요천(遼天)의 비공(鼻孔)이 어찌 그것을 감출 수 있겠는가.


본성을 찾으려고 일념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다가 보면 본성의 자취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는 것을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는것을 상징한 것임

교법(敎法)의 가르침에 의해 선학(禪學)과 그 뜻을 알고 가르침을 살펴서 심성(心性)의 자취를 깨닫는다.

아직 깨달음의 문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이제 겨우 심성의 자취를 깨닫는 단계를 나타낸다.



3. 見牛(견우)  :  소를 발견한다.  = 見牛


黃鶯枝上一聲聲(황앵지상일성성)  :  나뭇가지 위에 지저귀는 금빛 꾀꼬리

日暖風和岸柳靑(일난풍화안류청)  :  따뜻한 날 화창한 바람에 언덕 위 버들가지 푸르네  

只此更無回避處(지차갱무회피처)  :  다만 이것이니 어찌 다시 회피할 것인가?  

森森頭角畵難成(삼삼두각화난성)  :  삼삼한 두각 그림으로 그릴 수 없노라


견우는 동자가 멀리 있는 소를 발견한 것을 묘사한것임 이는 오랜 노력과 공부끝에 본성을 깨달음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음을 상징하고 있다.

물에는 짠맛이 있으나 보기만 해서는 모른다. 맛을 보아야 짠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즉 본성을 찾기 위한 선은 남이 하는 것을 보기만 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자기가 직접 체험해야만 깨칠 수 있고 본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4. 得牛(득우)  :  야생의 소를 잡는다.  =  得牛


葛盡精神獲得渠(갈진정신획득거)  :  정신을 가다듬어 소를 얻었지만  

沈强力壯卒難除(심강역장졸난제)  :  사납고 힘이 세어 다루기 어렵도다. 

時有纔到高原上(시유재도고원상)  :  어느 때는 높은 산 위에 이르고  

又入煙雲深處居(우입연운심처거)  :  혹은 깊은 구름 속에 숨으려 한다.


득우(得牛)는 동자가 소를 붙잡아서 막 고삐를 낀 모습이다. 이 경지를 선종(禪宗)에서는 견성(見性)이라고 하는데,

마치 땅 속에서 아직 제련(製鍊) 되지 않은 금광석을 막 찾아낸 것과 같은 상태라고 한다.

이때의 소의 모습은 검은색으로 표현하는데 아직 삼독(三毒)에 물들어 있는 거친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에서 검게 표현한 것이다.



5. 牧牛(목우)  : 소를 길들인다.  = 牧牛


鞭索時時不離身(편색시시불리신)  :  채찍과 고삐를 쉼 없이 사용하여 곁에서 여의지 말라  

恐伊縱步入埃塵(공이종보입애진) 그대가 한 걸음 한 걸음 애진()으로 들어감이 두렵다.  

相將牧得純和也(상장목득순화야)  :  그러나 끌어내어 길들이고 순화되어  

羈鎖無拘自逐人기쇄무구자축인)  : 채찍과 고삐에 구애되지 않더라도 스스로 사람 따르네


목우(牧牛)는 자연스럽게 놓아 두어도 저절로 가야할 길을 갈 수 있도록 거친 소를 길들이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삼독의 때를 지운 보임(保任)의 단계로서, 선에서는 이 목우의 단계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한번에 유슌하게 길들여야지

만약  이때 달아나면 그 소를 다시 찾는다는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특별히 주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소는 길들여진 정도에 따라 차츰 검으색에서 흰색으로 바뀌어지고 있다. 깨달음이란 외부의 경(境)에 의해서 오직 자신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소의 고삐를 더욱 단단히 잡아서 늦추지 말고 머뭇거리는 생각이 싹트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6. 騎牛歸家(기우귀가)  :  소를 타고 무위(無爲)의 깨달음의 세계인 집으로 돌아온다(騎牛歸家).  =  騎牛歸家


騎牛迤麗欲還家(기우이려욕환가)  :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네  

羌笛聲聲送晩霞(강적성성송만하)  :  강적의 피리 소리 저녁 노을 속에 울리고 있네

 一拍一歌無限意(일박일가무한의)  :  한 박자 한 곡조마다 무한한 뜻이 담겨 있으니

知音何必鼓唇牙(지음하필고진아)  :  그 지음 어찌 헛된 말하리


기우귀가(騎牛歸家)는 동자가 구멍없는 피리를 불며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때 소는 완전히 흰색으로서 특별히 지시를 하지 않아도 동자와 일체가 되어서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때 구멍없는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상징하고 있다. 이미 본성을 찾았으니 모든 것이 완숙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몸을 소 등에 올려 놓고 하늘을 쳐다보니, 소는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잡아당겨도 서지 않으며, 오직 본향을 말없이 향하고 있다.



7.忘牛存人(망우존인)  :  이제 소는 달아날 염려가 없으므로 소 같은 것은 모두 잊어 버리고 안심한다.  =  忘牛存人


騎牛已得到家山(기우이득도가산)  :  소를 타고 본향으로 돌아오니 

牛也空兮人也閑(우야공혜인야한)  :  소는 간 곳 없고 사람은 한가롭다.

紅日三竿猶作夢(홍일삼간유작몽)  :  해가 석 자나 떴는데도 늦잠을 자니 오히려 꿈이러니  

鞭繩空頓草堂間(편승공돈초당간)  :  소용없는 고삐와 채찍은 초당간에 던져 두노라.


망우존인(忘牛存人)은 집에 돌아와 보니 애써 찾던 소는 온데간데 없고 자기만 남아 있다는 내용이다.

결국 소는 마지막 종착역인 심원(心源)에 도착하게 하는 방법이었으므로,

이제 고향 집과 고향 산천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방법은 잊어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땟목을 타고 피안에 도달하면 땟목을 버려야 한다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8. 人牛具忘(인우구망)  :  다시 사람도 소도 모두 본래 空임을 깨닫는다.  =   人牛具忘


鞭索人牛盡屬空(편삭인우진속공)  :  채찍과 소와 사람이 모두 공하니 

碧天遼濶信難通(벽천요활신난통)  :  맑고 푸른 하늘 멀고 높아 소식 전하기 어려워라

紅爐焰上爭容雪(홍로염상쟁용설)  :  끓는 솥에 어찌 흰 눈이 남아 있겠는가 

到此方能合祖宗(도차방능합조종)  :  이어 이르러 비로소 조종(祖宗)과 하나가 되도다.


인우구망(人牛具忘)은소를 잊은 다음 자기 자신도 잊어 버리는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서 텅 빈 원상(原象) 만을 그리게 된다.

객관적인 소를 잊었으면 이번에는 조관적인 자신(동자)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는 원리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원상은 주객 분리(主客 分離) 이전의 상태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초월한 경지에 이르니 전부가 오직 空이다.

부처가 있는 곳에서도 노닐지 않고, 부처가 없는 곳에서도 급히 달려나와 두 곳 모두에 집착하지 않으니

마음은 오직 허허로울 뿐이다. 백 가지 새들이 만 가지 꽃을 물어 오더라도 모두 오직 한바탕 웃음으로 그친다는 뜻이다.



9. 返本還源(반본환원)  :  꽃은 붉고 버들은 푸른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깨닫는다.  =  返本還源


返本還源已費功(반본환원이비공)  :  본향으로 돌아옴도 이미 헛된 공이니 

爭如直下若盲聾(쟁여직하약맹롱)  :  모두 장님과 귀머거리와 같이 되어  

庵中不見庵前物암중불견암전물)  :  암자에 앉아 앞의 것을 보지 않아도 

水自茫茫花自紅(수자망망화자홍)  물은 저절로 잔잔하고 꽃은 스스로 붉다.


반본환원(返本還源)은 이제 주객이 텅 빈 원상 속에 자신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침을 묘사한다.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조그만한 번뇌도 묻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참된 지혜를 상징한 것이다. 

인생이란 본래 청정하여 한 티끌의 미혹도 받지 않는다.  유상(有相)의 영고성쇠(榮枯盛衰)를 보고, 무위(無爲)의 적정(寂靜)에 도달하니,

눈 앞에 보이는 것 모두가 환상과 같다고 하는 실상을 바로 알라는 내용이다.



10. 入廛垂手(입전수수)  :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  入廛垂手


露胸跣足立廛來(노흉선족입전래)  :  가슴을 헤치고 맨발로 거리에 서니

抹土塗灰笑滿顋(말토도회소만시)  :  흙을 바르고 재투성이지만 얼굴 가득한 웃음 

不用神仙眞秘訣(불용신선진비결)  :  신선의 비결 쓰지 않고

直敎枯木放花開(직교고목방화개)  :  바로 가르쳐 마른 나무에 꽃이 피게 한다.


입전수수(入廛垂手)는 지팡이에 큰 포대를 메고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는 모습을 묘사했다.

이때 큰 포대는 중생들에게 베풀어 줄 福과 德을 담은 포대로서, 불교의 궁극적인 뜻이 중생의 제도에 있음을 상징한 것이다.

사립문 닫고 홀로 앉으니 아무도 그 크고 넓고 편안한 마음을 알리 없다. 자기의 모든 것을 묻어 버리고, 앞의 현인(賢人)들을 뒤좇던 길도 모두 져버렸다.

오직 마음속엔 空이 있을 뿐이다. 표주박 차고 거리에 나가 지팡이를 짚고 집집마다  다니며 스스로 부처가 되게 하고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불국(佛國)을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대조사 종무실 한참 공사중이라 그런지는 모르지만 온기가 하나도 없이 어수선하고 설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