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북도 = 나를 찾아서...

2019. 4. 14. 禮山 靑陽 長谷寺(예산 청양 장곡사)

백련암 2019. 4. 21. 15:26

忠南 禮山 靑陽 長谷寺(충남 예산 청양 장곡사)


장곡사는 850년(신라 문성왕 12년)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이 창건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오랜 세월동안 변천되면서

지금은 大雄殿이 上 · 下 두 곳으로 나누어 있는 천년의 역사를 지닌 정통사찰이다.  

도립공원 칠갑산 서쪽에 위치한 장곡사는 국보 2점 보물 4점의 국가지정문화재와 지방 문화재 1점을 비롯한 

많은 비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보물 제162호로 지정된 장곡사 上 大雄殿의 바닥은 마루가 아닌 무늬가 있는 전돌(벽돌)을 펴 놓은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으며,

下 大雄殿은 맞배지붕의 소규모 건축인데도 다포(多包)집 계통의 공포(栱包)를 받쳐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또한 上 · 下 大雄殿  내부의 약사여래는 일념으로 기도하면 난치병이 낫는 가피력을 지닌 영험 있는 부처님으로 유명하여

전국에서 많은 신도들과  관광객이 찾아와 기도를 하고 있다.



장곡사 가는 길은 벗꽃이 만발하여 꽃구경 나들이로도 그만이다.







등산로 안내도



一柱門(일주문)

절 입구에 양쪽 하나씩의 기둥으로 세워진 건물을 일주문이라고 부른다.  일주문을 경계로 문밖을 속계.  문안을 진계라고 부른다.

일주문의 기둥이 한 줄로 늘어선 것은 세속의 번뇌로 흩어진 마음을 사찰에 들어섬으로써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상징적 의미,

즉 일심(一心)을 뜻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인 것입니다.



장곡사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인 一柱門이다.

일주문의 규모는 일주삼간(一柱三間)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일주삼간이 뜻하는 바는 <법화경>의 회삼귀일사상(會三歸一思想)과 연관됩니다.

문을 경계로 문 밖을 속계(俗界)라 하고 문안을 진계(眞界)라 하며, 일주문을 들어설 때 일심에 귀의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장곡사 입구에서 본 일주문                                                                                   경내에서 바로본 일주문



경내에서 바로본 일주문 현판의 글씨가 다르다.

천년의 역사가 있는 절입니다 그러나 사천왕문이나 금강문은 없습니다.



좌측에 보이는 건물 심검당입니다         중앙 범종루입니다          우측으로 운학루가 있습니다.



雲鶴樓(운학루)



雲鶴樓(운학루)

 


雲鶴樓(운학루) 앞면 하 대웅전 정면에 있다. 신도가 많았을 때는 강당으로 쓰였을 것이다.

지금은 오래된 안 쓰는 편액과 다양한 물건을 보관하는 곳이 되었다.



운학루 앞쪽에 쓰여진 칠갑사 장곡사 현판이 붙어있다.





운학루에 모셔져 있는 아미타불 탱화 새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왜?...



     

운학루 안에 모여져 있는 현판들



     



     

운학루 기둥에 쓰여있는 재미있는 글귀



담장



누가 묵고 있는 방일까요?



산신각에서 내려다 본 하대웅전과 그 외 전각들



수각(감로수)



甘露水(감로수)



甘露水(감로수)



奉香閣(봉향각)  아마도 주지스님이 묵고 계신곳인가보다.



長谷寺說禪堂(장곡사설선당)  :  시도유형문화재 제151호     시대 = 조선    종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설선당

장곡사는 통일신라 문성왕 12년(850)에 보조선사가 처음 세운 절로, 그 뒤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많은 수리가 있었으나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경사지를 닦아 위아래에 절터를 만들었는데 아래쪽에 설선당이 위치한다.

장곡사의 2개 대웅전 중에 하대웅전과 같이 조선 중기에 지어진 설선당은 하대웅전 왼쪽에 동향하여 세워진 스님들의 거처이다.

건물 앞면에 ‘설선당’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어 말씀을 논하고 참선을 위한 곳인 동시에 비구니 스님들이 수도하는 곳임을 나타낸다.


건물 앞쪽에서 보면 오른쪽 3칸은 기둥이나 지붕을 받치는 공포가 정교한 구조와 양식을 보여 원래의 건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왼쪽으로 이어지는 2칸은 그 구조와 양식이 변형을 보이고 있어 이는 후에 보수되었거나 다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長谷寺(장곡사) 현판과 說禪堂(설선당) 현판이 나란히 걸려있다.   장곡사 현판에는 임자 10월 국무총리 김종필 글과 낙관이 있다.



長谷寺說禪堂(장곡사설선당)  :  시도유형문화재 제151호       현재는 종무실과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다.



說禪堂(설선당)에 붙어있는 건물  = 공양간인 부엌의 모습

장곡사는 통일신라 문성왕 12년(850)에 보조선사가 처음 세운 절로, 그 뒤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많은 수리가 있었으나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경사지를 닦아 위아래에 절터를 만들었는데 아래쪽에 설선당이 위치한다.

그러나 왼쪽으로 이어지는 2칸은 그 구조와 양식이 변형을 보이고 있어 이는 후에 보수되었거나 다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부엌안에 모셔져 있는 조왕신  =  조왕신(竈王神)은 부엌을 맡은 신으로, 불의 신이라고 믿었다.

조왕신은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옥황상제께 고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화신(火神)이다. 부엌신, 아궁이신, 또는 부뚜막신이라고도 한다.

火神이기 때문에 우리의 가옥에서는 부엌에 모시며, 주부들의 神이다.

주부들은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부뚜막에 걸터앉거나 발을 딛지도 않았다. 또 가정이 번창하도록 기원하며 절을 한다.

조왕신은 가정의 모든 일을 관장하지만, 특히 재산과 태어난 아기의 건강을 맡고 있다. 그래서 부녀자들은 삼신과 더불어 성주신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竈王神(조왕신)은 福을 주는 神 = 이야기 한마당 설화

민속학자인 최래옥 국어교육학과 교수(1940년-)는 1993년에 쓴 이야기책인 『되는 집안은 가지 나무에 수박 열린다』에서

조왕신을 복을 주는 신이라고 했다. 생계가 해결되지 않아서 야반도주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를 쫓아오는 이가 있었는데 조왕신이었다.

부뚜막신이라 집주인을 따라다닌단다. 조왕신을 원망하자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부뚜막에서 물을 끓이라"고 했고,

여가가 늘어난 집주인은 손재주를 발휘해서 바구니를 만드는 수공업을 했다. 그때부터 집안살림이 나아졌단다.

조왕신은 아침에 연기를 타고 올라가서 상제께 복을 받아오는 일을 했다. 그런데 집주인이 늦잠을 자니까 연기를 탈 수 없으니 복을 받아오지 못했던 것이다.



竈王神(조왕신) 탱화





尋劍堂(심검당)



尋劍堂(심검당) 懸板(현판)



拈花室(염화실)



拈花室(염화실)



金堂(금당)



좌측 = 나무아미타불자가 새겨진 석비

중앙 비석은 국보 제 58호라고 쓰여진 상태에서 이끼인지 곰팡이 인지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국보 58이란 글로서 모든 답은 나와있다.즉 상 대웅전 鐵造藥師如來坐像 및 石造臺座(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을 말하는 것임을

우측 = 보물 제162호 장곡사 상 대웅전 표식석비



부조물 석재들



梵鐘閣(범종각)



梵鐘樓(범종루)

종각안에 있는 법고는 오랜 세월에 의해 구멍이 나있었다. 화려한 단청도 모두 없어졌다. 화려함 속에 세월을 느껴지게하는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