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북도 = 나를 찾아서...

禮山 靑陽 長谷寺(예산 청양 장곡사)= 1

백련암 2019. 4. 21. 23:24

禮山 靑陽 長谷寺(예산 청양 장곡사)= 1

충남 청양군에 있는 칠갑산은 그리 높은 산이 아니다. 해발 561m밖에 안 되는 유순한 형태의 산세를 가지고 있는 차령산맥의 한 자락이다.

장곡사(長谷寺)는 이름이 말해주듯 긴 계곡(사람들은 흔히 '아흔 아홉 계곡'이라 부른다)에 자리하고 있는 절이며,

공주에 있는 마곡사와 예산의 안곡사 그리고 청양의 운곡사와 함께 '사곡사(四谷寺)'의 하나라고도 한다.


장곡사는 우리나라에서 대웅전을 두 개 가지고 있는 유일한 절이다. 그리고 절마다 한 두 개쯤은 솟아 있는 탑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두 개의 대웅전이 동남향과 서남향으로 좌향을 달리하여 거의 일직선상으로 경사진 비탈의 위와 아래에 있는데

그 위치에 따라 각각 "상 대웅전"과 "하 대웅전" 이라 불린다.


전해지는 설화 중 하나는 칠갑산 남동쪽 자락에 있던 도림사가 임진왜란 때 불탄 뒤 남아 있던 대웅전을 장곡사로 옮겼으리라는 추측이다.

장곡사는 약사여래도량이다. 약사여래도량이란 병든 사람에게 희망과 꿈을 줄 수 있는 도량을 말한다.


상 대웅전에서는 주로 스님들이, 하 대웅전에서는 일반 신도들과 신병기도를 위해 장곡사를 찾은 스님들이 기도를 올리던 곳이 아닌가 추측하는 설화다.


하 대웅전이 서남향으로 자리를 잡고 있음에 비하여 상 대웅전은 동남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상 대웅전은 보물 16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비로자나부처님이 주불로 모셔져 있다. 그리고 협시불로 약사여래부처님과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상 대웅전 자체가 보물이지만 상대웅전에는 국보 58호로 지정된 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연화대좌와 보물 174호인 철조비로자나좌상 부석조대좌가 있다.

장곡사 상대웅전은 말 그대로 보고인 셈이다.



     

上 大雄殿으로 가는 계단 길



靑陽 長谷寺 上 大雄殿(청양 장곡사 상 대웅전) : 보물 제162호     시대 = 고려

장곡사는 칠갑산에 있는 사찰로 신라 후기 보조국사가 세웠다고 한다.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으나 조선 정조 1년(1777) 고쳐 짓고 고종 3년(1866)과 1906년, 1960년에 크게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은 지형을 따라 위아래에 2개의 대웅전이 있는 특이한 배치를 하고 있다.

상·하 대웅전은 서로 엇갈리게 배치되었는데, 상대웅전은 하대웅전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상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특이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건물 안쪽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으며, 그 중에는 통일신라 때 것으로 보이는 잎이 8개인 연꽃무늬를 새긴 것도 섞여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들의 짜임수법이 특이하여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청양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국보 제58호)와 청양 장곡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보물 제174호) 등 귀중한 문화재를 보관하고 있다.

<문화재청 글>



鐵造 阿彌陀佛坐像(철조 아미타불좌상)



      

鐵造 阿彌陀佛坐像(철조 아미타불좌상)



鐵造 阿彌陀佛坐像(철조 아미타불좌상)




靑陽 長谷寺 鐵造毘盧遮那佛坐像 및 石造臺座(청양 장곡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  : 보물 제174호     시대 = 고려

충청남도 청양 칠갑산에 자리잡은 장곡사의 상대웅전 안에 모셔져 있는 불상으로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삼각형에 가까운 작은 얼굴에는 긴 눈썹과 가는 눈, 작은 코와 입 등이 표현되어 다소 세속화된 모습이다. 어깨는 넓지만 볼륨은 약화되었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만을 감싸고 있는데, 드러나 있는 오른쪽 어깨가 너무 소홀하게 처리된 느낌이다.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데 이는 비로자나불만이 취하는 독특한 손모양으로 부처와 중생이 하나라는 의미를 지닌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원래의 것이 아니라 석등 대좌를 가져다 놓은 것으로 불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어색한 모습이다.

부처의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光背)는 나무로 만들었는데, 머리광배·몸광배 안에 꽃모양의 장식이 채색되어 있다.

광배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가 채색되어 있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옆에 놓여 있는 청양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국보 제58호)의 광배와 같은 양식이다.

전체적으로 평범한 얼굴, 빈약한 체형, 허술한 오른쪽 어깨의 처리 등에서 9세기 중엽 비로자나불 양식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으며,

 괴산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433호)과 거의 같은 유형의 작품으로 보인다. 철조비로자나불좌상부 석조 대좌



      

靑陽 長谷寺 鐵造毘盧遮那佛坐像 및 石造臺座(청양 장곡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  : 보물 제174호

불상 = 철,     대좌 =  화강암

불교의 진리(眞理)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좌상(毘盧遮那佛坐像)은 상 대웅전(上 大雄殿)의 높은 석등대석(石燈臺石) 위에 양쪽 발을 각각

무릎 위에 올려 놓은 결가부좌(結跏趺坐) 한 모습이다.  머리는 곱슬머리이며 얼굴은 이마가 좁은 느낌을 주는데, 

얼굴의 전체 모습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점차 좁아진 삼각형의 모양이다. 법의(法衣)는 왼쪽 어깨에 걸쳐 있고, 두 손은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다.

광배(光背)는 나무로 새긴 배 모양(舟形[주형])인데.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은 연꽃무늬로 꾸몄고 둘레에는 불꽃 무늬를 새겼다.

대좌는 3단으로 하단은 엎어진 연꽃, 중단은 8각의 돌기둥, 그리고 상단은 위로 핀 연꽃을 화강석에 각각 새겨 조성하였다.

대좌(臺座)에 비해 불상이 전체적인 모습이 빈약하고, 얼굴의 세부는 불명확하다. 고려 초기 충북 괴산의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상 계열을 잇고 있는

 일련의 철불로 중요시되며, 신앙적으로도 의의가 깊은 불상이다. 전체적으로 신라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다.



鐵造毘盧遮那佛坐像(청양 장곡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



靑陽 長谷寺 鐵造藥師如來坐像 및 石造臺座(청양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 : 국보 제58호     시대 = 통일신라

충청남도 청양군 칠갑산에 자리잡은 장곡사 상 대웅전(보물 제162호) 안에 모셔져 있는 철불좌상으로, 나무로 된 광배(光背)를 배경으로

거대한 사각형의 돌로 만든 대좌(臺座) 위에 높직하게 앉아 있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아담하게 표현되어 있고, 얼굴은 둥글고 단아한 모습이다.

신체는 건장하고 당당한 편이지만 양감이 풍부하지 않고 탄력적인 부피감도 줄어 들어 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오른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도록 하고 있으며, 무릎 위에 놓인 왼손에는 약항아리가 얹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없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만을 감싼 옷은 느슨하게 처리되었고, 옷주름 또한 드문드문 표현되었다.


4각형의 대좌는 불상보다 훨씬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 · 중 · 하 3단 형태의 이 대좌는 하대넓고 높은 반면에 중대와 상대는 상대적으로

낮고 작은 편이다. 바닥돌은 매우 넓은 편인데, 사방 모서리에 기둥을 세운 흔적이 있어 불상을 모시던 공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대에는 엎어 놓은 연꽃무늬를 새기고 각 모서리에는 귀꽃을 큼직하게 조각하였다.

중대의 각면에는 큼직한 눈모양의 안상(眼象)을 새기고, 상대에는 활짝 핀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광배는 원래 돌로 되었을 것이나 파손되어 조선시대에 나무광배로 대체한 것 같다.

광배 중심부에는 꽃무늬, 주변에는 불꽃무늬를 새기고 있어 신라말과 고려초에 유행하던 광배를 모방하여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이 불상은 특이한 탑 모양의 대좌와 감실형의 구조, 그리고 단아한 철불양식을 보여주는 9세기 말 양식을 계승한 10세기 초의 뛰어난

불상으로 평가된다.<문화재청의 글>



      


鐵造藥師如來坐像 및 石造臺座(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 : 국보 제58호   철 = 불상,    대좌 = 화강암

상대웅전(上 大雄殿)의 석조대좌(石造臺座)에 봉안된 철조약사여래좌상이다. 화강암으로 된 사각형 대좌(臺座)의 네 귀퉁이에는 기둥을 세웠던

둥근 자리가 있다. 3단의 지대석 위에 있는 상대는 위로핀 연꽃, 하대는 엎어진 연꽃으로 꾸몄고, 하대석 네 귀퉁이에는 다시 귀꽃으로 장식하였다.

중대는 전 · 후에 2개씩, 그리고 좌우에 1개씩의 안상(眼象)을 조각 장식하여 화려한 느낌이 든다.

불상은 대좌에 비해 작은 편이나 단정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머리는 나발(螺髮)이며 법의(法衣)는 오른쪽 가슴이 드러난 우견편단(右肩偏袒)이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놓았고, 왼손에는 질병과 무지(無智)의 병까지 고쳐준다는 약사여래에서 볼 수 있는 약단지를 들고 있다.

불상 뒤에 있는 광배(光背)는 나무로 된 배모양(舟形[주형])인데, 연꽃과 모란으로 장식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의 주변을 불꽃문양으로 꾸몄다.



鐵造藥師如來坐像(철조약사여래좌상)



      



釋迦牟尼佛 撑畵(석가모니불 탱화)




長谷寺 上 大雄殿(장곡사 상 대웅전) : 보물 제162호     시대 = 고려시대 건립, 조선말기 중수

장곡사는 850년(신라 문성왕 12년)에 보조선사(普照禪師)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하는데, 오랜세월 동안에 변천이 있어 지금은 대웅전이  상 · 하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상 대웅전은 고려시대에 처음 건립되었고, 조선말기에 고쳐지었다. 건물은 약간 높이 설치된 기단 위에 둥근 자리가 있는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배흘림이 뚜렸한 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다. 다포(多包) 식이지만 평방(平枋)이 없고,

기둥 사이에 공간포(空間包)가 하나씩만 배치되는 등 주심포(柱心包) 양식의 특징도 함께 갖고 있다.

기둥머리에는 굽 받침과 같은 고려시대 특징이 일부 남아 있으나 쇠서(우설[牛舌])와 보머리는 조선 중기 이후의 수법을 보이고 있어 중간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여래(釋迦如來)를 주존으로 모시는 것이 보통이나 이곳에는 2기(基)의 석조대좌(石造臺座) 위에

철조 약사여래좌상(鐵造 藥師如來坐像)과 철조 비로자나불좌상(鐵造 毘盧遮那佛坐像), 좌측으로는 철조 여래좌상(鐵造 如來坐像)을 모시고 있다.



神衆檀(신중단)





철조 아미불 좌상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철조 약사여래불 좌상



상 대웅전과 응진전

 






釋迦牟尼佛(석가모니불)









나한들



응진전 신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