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3
청자 어룡 모양 주자 = 靑磁魚龍形注子[청자어용형주자] : 국보 제 61호, 시대 = 고려 12세기
청자 어룡 모양 주자 = 靑磁魚龍形注子[청자어용형주자]
청자 주자와 받침 = 靑磁注子, 承盤(청자주자, 승반) 청자 연꽃 넝쿨무늬 주자 = 靑磁 堆花 蓮唐草文 注子(청자 퇴화 연당초문 주자)
청자 주자와 받침 = 靑磁注子, 承盤(청자주자, 승반) : 시대 = 고려 12세기
청자 연꽃 넝쿨무늬 주자 = 靑磁 堆花 蓮唐草文 注子(청자 퇴화 연당초문 주자) : 시대 = 고려 12세기
청자 연꽃 넝쿨무늬 주자 = 靑磁 堆花 蓮唐草文 注子(청자 퇴화 연당초문 주자) 상단 세밀도
◎八關會(팔관회)
팔관회는 하늘의 신령과 오악(五嶽), 명산(名山), 대천(大川), 용신(龍神)등 토속신께 제사를 지내는 고려 최고의 국가 행사입니다.
고려 국왕은 문무백관과 지방관, 외국의 사신단이 위계에 따라 자리한 행사를 주관하며, 고려 국왕 중심의 질서를 만들고,
천자국 고려의 위상을 과시했습니다. 팔관회는 여러 물건이 오가는 교역과 문화 교류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사신과 상인은 다양한 물산을 바쳤고, 하례가 끝나면 그에 대한 답례로 연회가 열렸습니다.
이때 송, 여진, 탐라, 일본 등 각국의 상인과 수많은 고려인이 몰려와 물품을 거래했습니다.
◎서긍이 본 고려
1122년 예종(睿宗)이 승하하자, 이듬해 6월 북송 휘종(徽宗)은 위로의 뜻을 전하기 위해 200명의 넘는 대규모 사절단을 고려로 파견했습니다.
사절단의 일원으로 고려에 한 달 남짓하게 머물렀던 서긍(徐兢)은 보고 들은 문물을 상세히 기록하고 직접 그림을 그려 황제에게 올렸습니다.
그로부터 4년 후 북송은 금에 의해 멸망하였고 그림은 전란 속에 사라져 문장만이 전하게 돕니다.
이국인의 눈으로 본 고려는 어떤 모습이었고, 우리가 기억하는 고려와 어떻게 달랐을까요?
서긍의 고려 견문 보고서 『宣和奉使高麗圖經[선화봉사고려도경]』知不足齋本[지부족재본] : 宋[송] 1124년 청대 재간행
서긍(徐兢)은 한 달 남짓한 체류 기간 동안에 보고 들은 고려의 역사 · 정치 · 경제 · 문화 · 종교 등 거의 모든 부분을 글과 그림으로 정리하여
『宣和奉使高麗圖經[선화봉사고려도경]』(이하 고려도경)40권을 엮어 송(宋) 휘종(徽宗)에게 바쳤다. 안타깝게도 현재 그림 부분은 없어지고 글만 전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고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며『고려도경』이 유통되었고, 중국에서도 고증학의 영향으로 재조명을 받으면서 여러 종류의 목판본이 전하게 되었다.
이 책은 청나라 때 포정박(鮑廷博)이 편찬한 <知不足齋叢書[지부족재총서]>에 실린 판본이며, 1910년에 조선 고서 간행회에서 인쇄한 것이다.
청자 구름 학 국화무늬 피리 =靑磁象嵌雲鶴菊花文笛(청자상감운학국화문적) : 시대 = 고려 13세기 소장 =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청자로 만든 피리는 아주 드물다, 대부분 장식적인 요소가 강해서 악기보다는 보고 즐기는 완상용(玩賞用)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몸체에는 학과 구름, 국화절지무늬를 흑백 상감으로 새겼다. 여백을 적당히 두고 구성이 여유롭다. 피리 윗부분과 아랫부분에는 백상감으로 뇌문(雷文)을 넣었다.
앞면에는 여섯 개의 구멍이 있으며, 옆으로 살짝 비껴 1개의 구멍을 뚫었다. 의례를 행할 때 이와 같은 악기로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였을 것이다.
청자 꽃모양 발 = 靑磁花形鉢(청자화형발) : 시대 = 고려 12세기 소장 =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서긍은『고려도경』에서 "도기의 색이 푸른 것을 고려인은 비색이라고 한다. 근년에 들어와 제작이 섬세해지고 광택이 더욱 아름다워졌다."라고 적었다.
서긍이 기술했던 비색의 고려청자는 맑고 푸른 빛깔이 ㅇ은은하게 감도는 최고 수준의 자기였다. 도자기 빛깔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유약이다.
비색청자의 유약층은 초기의 청자보다 2-4배 정도 두꺼워 깊고 푸른 유색을 띤다. 유약 성분과 번조 분위기 조절은 비색청자 제작의 핵심 기술이었다.
고려인은 이 기술을 얻기 위해 오랜기간 실험과 노력을 하였고 이 작품들은 그 결과이다.
청자 사자장식 향로 = 靑磁獅子 蓋香爐[청자사자개향로] : 국보 제 60호 시대 = 고려 12세기
서긍은『고려도경』에서 고려의 각종 문물에 대하여 평을 덧붙였다. 그중 "산예출향(狻猊出香) 역시 비색인데, 위에는 쭈그리고 있는 짐승이 있고
아래에는 연꽃이 있어 그것을 받치고 있다. 여러 기물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라는 내용이 관심을 끈다.
서긍이 목격했던 연꽃 받침이 있는 예는 아니지만, 이 향로를 떠올리게 하는 기록이다.
뛰어난 조형미와 청자 유색이 어우러져 고려 상형청자(사물의 형태를 만든 청자) 가운데 수작(秀作)으로 손꼽힌다.
나전 대모 국화 넝쿨무늬 합 = 螺鈿玳瑁菊唐草文三葉形盒[나전대모국당초문삼엽형합] : 시대 = 고려 12세기. 소장 =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세 개의 둥그런 잎 윗부분이 서로 연결된 모양의 합으로 이와같은 형태는 고려 상감청자나 주칠기(朱漆器)에도 보인다.
뚜껑과 몸체의 옆면은 너전으로 국화 넝쿨무늬를 장식하고, 뚜껑 윗면에는 얇게 저민 대모(玳瑁, 거북등껍질) 뒷면을 칠해서 자연수럽게 색을 내는 기법으로
꽃무늬 3개를 장식햇다. 각 면의 테두리는 꼰 금속선을 사용했고, 넝쿨문늬의 줄기는 단선(單線)의 금속선을 사용하였다.
서긍은 고려의 나전을 보고 "세밀함이 뛰어나 가히 귀하다"고 평가했다.
세밀함과 화려함의 절정을 보여주는 이 나전칠기에서 고려 장인의 창의성과 기술력을 엿볼 수 있다.
청자 용무늬 발 = 靑磁鉢[청자발] : 시대 = 고려 12세기 소장 = 영국 피츠윌리엄박물관
청자 용머리 장식 붓꽂이 = 靑磁透刻龍頭飾筆架[청자투각용두식필가] : 시대 = 고려 12세기
붓을 꽂아 보관하는 붓꽂이(筆架[필가])다 고려 청자 문방구 가운데 이러한 예는 많지 않다. 요삼채(遼三彩)에 유사한 형태의 붓꽂이가 알려져 있어서
양식적 연관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북송 자기와 다른 특성을 지닌 요삼채 중 일부를 고려 왕실에서 선호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름다운 조셩과 유색, 다양한 장식기법이 조화를 이룬 최상급 청자다.
청자병(청자병) : 시대 = 고려 12세기 소장 =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개경의 왕릉
왕릉의 부장품은 고려 왕실 미술의 품격을 보여줍니다. 대몽 항쟁기 임시 수도였던 강화도에 묻힌 몇몇 왕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고려 왕릉은 개경
인근에 조성되었습니다, 『고려사』를 비롯한 각종 문헌에는 80여 기의 왕릉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왕릉이 이미 도굴되어 흩어졌고,
그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17대 인종(仁宗, 재위 1122-1146)과 19대 명종(明宗, 재위 1170- 1197)의 무덤에서 나온 청자는 고려 왕릉의 부장품을
살펴볼 수 있는 매우 드문 예로, 왕실의 고상하고 기품있는 취향을 보여줍니다.
청동 도장 = 靑銅印[청동인] : 시대 = 고려 12세기
◎인종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
고려 제 17대 임금인 인종(仁宗, 재위 1122-1146)의 장릉(長陵)에서 나왔다고 전해지는 부장품이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일본인 사이에서
고려청자 수집 열풍이 일어났고, 개경 인근의 수많은 왕릉과 무덤이 도굴되었다. 인종 장릉 부장품 역시 1916년에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구입한 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仁宗諡冊[인종시책]>을 비롯하여 <청자 참외모양 병>, <청자 합>, 청자 뚜껑 잔>, <청자 받침대>,
<청동 도장>, <은제 숟가락과 청동 젓가락>, <청동내함>과 <석제 외함>이 인종의 장릉에서 나왔다고 전한다.
청자는모두 4점으로 , 정제된 기형에 맑고 청아한 느낌을 준다. 12세기 전반 고려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다.
은제 숟가락과 청동 젓가락 = 銀匙箸[은시저] : 시대 = 고려 12세기
청자 참외모양 병 : 靑磁瓜形甁(청자과형병) : 국보 제 4호 시대 = 고려 12세기
靑磁盒(청자합), 청자 뚜껑 잔(靑磁有蓋盞[청자유개잔]) : 시대 = 고려 12세기
청자 받침대 = 靑磁方形臺[청자방형대] : 시대 = 고려 12세기
1.청자 여지 넝쿨무늬 대접(靑磁象嵌茘枝唐草文大楪[청자상감여지당초문대접]), 2.청자 여의두무늬 접시(靑磁陽刻如意頭文楪匙[청자양각여의두문접시])
3.청자 접시(靑磁楪匙[청자접시]), 4.청자 연꽃무늬 퇴주기(靑磁蓮花文退酒器[청자연화문퇴주기]) : 시대 = 고려 13세기 명종 자릉출토
◎명종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
명종(明宗, 재위 1170- 1197)은 고려 제 19대 임금으로, 인종의 셋째 아들이다. 명종의 능인 지릉(智陵)은 개성시 장풍군 지릉리에 위치한다.
1916년 도굴 사건을 계기로 조선총독부에서 조사에 착수하여 무덤 구조와 부장품 등을 확인하였다. 조사된 부장품은 발, 완, 접시와 같은 생활 용기가
대부분이며 제기로 분류할 수 있는 타호(唾壺)가 포함되었다. 상감과 틀로 문양을 찍어내는 압출양각(狎出陽刻) 등의 장식기법이 사용되었고
문양은 구름과 학, 연꽃 , 연잎, 국화, 여지무늬 등이며 유색은 전반적으로 맑은 비색을 띠고 있다.
문헌에는 1202년에 지릉이 조성되었다고 하지만 1255년(고종 42)에 몽골군에 의해 훼손되었던 지릉을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어
일부 부장품이 새롭게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禮器(예기)
탁월한 기술력과 수준 높은 고려의 미감이 결합되어 탄생한 고려청자는 왕실에서 사용하는 예기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고려 왕실은 왕권에 대한 명분을 세우고 국가체제를 굳건히 확립하기 위해 중국의 예제(禮制)를 수용하고 선진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 힘썼습니다.
정밀한 기형 상징적인도상, 아름다운 비색은 왕실의 권위와 취향을 대변합니다.
개국공신에게 하사한 잔과 잔받침 = 木製托盞(목제탁잔) : 보물 제 451호, 시대 = 고려 발굴 = 안동 태사묘
태조 왕건이 안동에서 후백제의 견훤(甄萱, 867-936)을 물리칠 때 큰 공적을 세웠던 세 인물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장정필(張貞弼, 초명 張吉[장길])의 유품으로 전하는 잔과 받침이다. 공로를 인정받아 각각 개국공신과 태사(太師, 왕의 스승)란 칭호를 받았다.
<옥으로 만든 피리[玉笛[옥적]>, <여지무늬 허리띠 장식[荔枝文金帶[여지문금대]>, 도 함께 있었다고 하는데, 피리는 현재 전하지 않는다.
잔의 겈과 안은 모두 주칠(朱漆)을 했고, 굽과 가장자리에는 흑칠(黑漆)을 했다. 잔과 받침의 형태가 개성 부근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하다.
목제보관함도 함께 전한다.
청자 이룡무늬 잔받침 = 靑磁陰刻螭龍文盞托[청자음각이룡문잔탁] 청자 용무늬 잔 받침 = 靑磁陰刻龍文盞托[청자음각용문잔탁]
시대 = 고려, 소장 = 영국 피츠윌리엄박물관 시대 = 고려
잔을 받침으로, 두 잔 받침의 형태나 문양 구성이 비슷하다. 잔대 아래에는 음각으로 새긴 뇌문(雷文)이, 펼쳐진 손잡이 부분에는 도마뱀처럼 생긴 독특한 형태의
이룡(螭龍)이 새겨져 있다. 이룡무늬는 고려청자 일부 기종에서만 드물게 발견된다. 대부분 양질 청자인 점으로 보건대 왕실 및 귀족의 한정된 계층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왕실의 제사 공간에서 차를 담는 용기로 사용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으며, 특별한 용도로 제작된 작품으로 생각된다.
청자 이룡무늬 잔받침 = 靑磁陰刻螭龍文盞托[청자음각이룡문잔탁] 청자 용무늬 잔 받침 = 靑磁陰刻龍文盞托[청자음각용문잔탁]
청자 도철무늬 향로 = 靑磁 陽刻 饕餮文 香爐[청자 양각 도철문 향로] : 시대 = 고려 12세기
고려에서는 성종 대부터 본격적인 예제(禮制)가 개혁을 시작하여 의종 대『詳定古今禮[상정고금례]』를 완성한다.
북송의 예제를 수용하고 북송에서 보낸 제기를 받기도 하였다. 예제 개혁은 체계적인 국가 통치기반을 세워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려 향로의 문양이 중국 청동기에서 가장 높게 평가되는 상대(商代) 후기 청동기의 문양을 따른 것이어서,
당시 고려왕실에서 주도했던 예제개혁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1. 잔과 잔받침 =托盞[탁잔], 2.잔과 잔받침 =托盞[탁잔] : 시대 = 고려 재질 = 녹나석
◎돌로 만들어진 고려의 禮器(예기)
차(茶)나 술을 담을 때 사용하는 잔(또는 완)과 받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돌(石材)로 그릇을 만드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매우 귀중하게 여겨졌다. 『고려사』에는 예종이 서경(지금의 평양)을 방문했을 때 반룡산(盤龍山)에서 보옥을 발견하였는데,
옥장(玉匠)에게 명하여 제기를 만들어 태묘(太廟)에서 관제(祼祭)를 지낼 때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희소성과 미적인 가칠글 동시에 지니고 있어서 왕실의 의례를 위한 예기로 추정된다.
1. 잔과 잔받침 =托盞[탁잔], 2.잔과 잔받침 =托盞[탁잔]
「대」가 새겨진 백자 타호 = 白磁 "大"字銘碗[백자 "대"자명완] : 송나라
◎개성 곡령리에서 나온 중국 자기
개성시 인근 곡령리에서 나왔다고 전한다. 곡령리는 지금의 해선리에 해당하는데 이 지역은 고려 왕릉이 다수 조성되었던 곳으로 알려져 ㅇㅆ다.
그릇이 모두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덤이나 구덩이에 묻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차를 따를 때 사용하는 완(碗)
두점과 합(盒), 베계, 유병(油甁)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려시대 사람들의 다양한 중국자기 사용 예를 살펴볼 수 있다.
청자 보상화무늬 꽃모양 접시= 靑磁陽刻寶相花文花形盤[청자양각실상화문화형반] 청자 칠보무늬 대접= 靑磁陽刻七寶文大楪[청자양각칠보문대접]
청자 인물무늬 주자 = 靑磁刻花人物文注子[청자각화인물문주자] : 송나라
백지 흑화모란 넝쿨무늬 병 = 白地黑花甁[백지흑화병] 백유 모란 무늬 병= 白釉黑掻落牡丹문 병[백유흑소낙모란무늬 병]
고려 무덤 출토 송나라
백유 모란 무늬 병 백지 흑화모란 넝쿨무늬 병
녹유 모란 덩쿨무늬 표주박 모양 병 = 綠釉刻花◇枝牡丹文葫◇병[녹유각화가지모란문호◇병] : 송나라
흑유주자 = 天目釉蓋付水注[천목유개부수주] : 송나라
흑유완= 黑釉盌[흑유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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