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이야기=고려외

국립중앙박물관 :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12

백련암 2019. 4. 16. 17:41

국립중앙박물관 :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12


      

                                     安珦肖像(안향초상)                                                        李穡肖像(이색초상) : 보물 제1215호   시대= 조선 18세기 작가미상


이색(李穡, 1328-1396)이 오사모(烏紗帽)와 담홍색 단령(團領)을 착용하고 서대(犀帶)를 한 반신상이다.

이색은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문인으로 1348년 원나라 국자감의 생원이 되어 성리학을 연구했다. 이 초상은 필선 위주로 얼굴을 표현하고 선염이 거의 없는

고식이다. 사모 높이가 평편하고 좁고 긴 양각이 아래로 쳐져 있으며 단령의 깃이 좁은 여말선초의 상복(常服) 차림을 보여준다. 

이색의 초상은 여러 차례 이모되었는데 여말선초의 초상화법과 양식을 보여주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족자 장황의 뒷면 하단에는 다음과 같은 화기가 적혀있다.

"마전영당(마전은 지금의 경기도 연천군 안에 있던 고을 이름)의 구본을 기묘년 3월에 다시 꾸민다. 옛 족자에 후학 허신이 쓴 찬문이 있다.

화백 최근배에게 부탁하여 이 본을 따라 정성껏  3본을 그려 덕산의 누산, 장단의 오이릉, 평산의 영귀사에 각각 봉안한다. 

[麻田影堂舊本  己卯 三月日改幀  舊幀有後學許祳書贊 囑畵 伯崔根培 依此 本謹寫三本 各奉安德山樓山長湍 吳李陵 平山 詠歸祠]

  [마전영당구본  기묘 삼월일개정  구정유후학허신서찬 촉화 백최근배 의차 본근사삼본 각봉안덕산루산장단 오이릉 평산 영귀사]"



  安珦肖像(안향초상)  : 국보 제111호      시대 = 조선 16세기 중엽.    傳(전) 李不害(이불해, 1529-?)

안향(安珦, 1243-1306)은 한반도에 최초로 주자성리학을 전파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제현(李齊賢, 1287-1367)과 같은 제자로 육성함으로써

고려 말 신진사대부 대두의 기초를 닦았던 인물이다. 고려시대 안향의 초상은 1318년 원나라 화가가 그려 문묘(文廟)에 봉안한 문묘본과,

이를 저본(底本)으로 하여 안향의 고향 흥주(興州, 지금 영주시 순흥읍 일대)에 이모한 흥주향교본(興州鄕校本)이 있었다.

이 작품은 1559년 이불해(李不害, 1529-?)가 흥주향교본을 모사한 모본으로 보인다.

화폭 상단에는 안향의 진영(眞影)이라는 화제(畵題)와 함께 안향의 아들 안우기(安于器, 1265-1329)가 쓴  찬문이 활달한 행서체로 옮겨져 있다.

대학자로서의 경륜과 인자한 덕성을 드러내면서도 단아한 체구와 당당한 자세를 더욱 강조하여, 이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신진사대부의 등장을 선언하고 있다.



『東人之文五七[동인지문오칠]』권7 - 권9  :  보물 제1089호     시대 = 고려 14세기

고려 후기의 문신었던 졸옹(拙翁) 최해(崔瀣, 1288 - 1340)가 엮은 시선집(詩選集)으로, 권 7 - 권9가 수록된 1책만 남아 있다.

신라 말 최치원(崔致遠)부터 고려 충렬왕 때까지 명현(名賢)의 저술을 엮어『東人之文[동인지문]』이라 하고, 시와 문장, 변려문(騈儷文)을 엮은 것을

각각「五七[오칠]」「千百」「四六[사륙]」이라하였다고 한다.

고려 문인들이 즐겼던 시문(詩文)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어서 한문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바위산 높고 높아 그 깊이를 알 수 없네,     그 위에 높은 누각이 있어 하늘 끝에 닿았네

북두칠성으로 은하수 길어다 차를 달이는 밤     차 끓는 연기가 달의 계수나무를 감싸네

-진각국사 혜심(1178 - 1234), 隣月臺(인월대)에서 -


- 차를 향유하다. -

화로의 센불에 손수 차를 달이니     찻잔 빛깔과 차 맛이 서로 뽐내네

향긋한 맛 입속에 부드럽게 녹으니     내마음어머니 젖내 맡는 어린아이 같도다

- 이규보-



청자 주자와 받침 = 靑磁瓜形注子, 承盤(청자과형주자, 승반)  :  시대 = 고려 12세기      소장 = 영국 피츠윌리엄박물관


비색 청자,

붉은 흙이 푸른 옥으로 탄생하다.

청자는 중국 사람들이 귀하게 여긴 푸른 옥과 색이 비숫할 뿐만 아니라 표면의 매끄러운 촉감도 유사합니다.

이러한 촉감은 청자에 덧씌운 유약(釉藥) 덕분인데, 이 유약이 그릇의 "색"을 표현하는 데도 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청자의 색은 유약층 아래의 흙이 우리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청자의 색은 엷은 녹색부터 연한 푸른색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한데, 이 중 고려청자의 비색(翡色)은 어떤 색에 가까울까요?



靑磁 甁(청자 병)  :  시대 = 고려 12세기      소장 = 영국 피츠윌리엄박물관



      

1.청자 모란 동자무늬 완                                                                                        2.청자발

1.청자 모란 동자무늬 완(靑磁陽刻牡丹童子文碗[청자 양각모란동자문 완])  :  시대 = 고려 12세기      소장 = 영국 피츠윌리엄박물관

2.靑磁 鉢(청자 발) : 시대 = 고려 11-12세기  소장 :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청자 버드나무 학 연꽃무늬 매병 = 靑磁象嵌梅甁[청자상감매병]  :  시대 = 고려 13세기.    소장 = 영국 피츠윌리엄박물관



                                                       청자 꽃잎모양 접시  : 시대 = 고려 12세기                              靑磁 楪匙(청자접시) : 시대 = 고려 12세기



     

金銅大勢至菩薩坐像(금동대세지보살좌상)  : 보물 제1047호     시대 = 고려 14세기

지혜로 중생의 어리석음을 없애준다는 대세지보살로 연꽃대좌 위에 앉아 있는 작은 금동상이다.

머리에는 꽃무늬와 갖가지 보배로 화려하게 장식된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표현되었다.

보관 정면에 보병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오른손에 들려있는 경전과 함께 이 보살상이 대세지보살임을 알려준다.


신체에 비해 작은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으며 세련된 모습으로 탄탄한 인상을 준다.

신체 또한 매우 탄력적인데 가슴은 양감있게 표현됐으나, 허리와 배는 거의 구별되지 않게 하여 날씬한 모습이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자락은 등에 짧은 스카프로 표현되었으며, 가슴까지 바싹 치켜 입은 치마는 정면에서 주름을 지게하여 띠를 매고 있다.

퍼지는 치마를 매기 위해 허리에 또하나의 띠를 묶은 것이 특징적이이며 온몸에 크고 화려한 구슬 장식을 휘감고 있다.

대좌는 연잎이 3겹으로 중첩된 연꽃대좌인데, 연잎은 테두리에 단이진 특징적인 모습이다.


불상의 얼굴표정, 날씬한 허리, 치마의 주름단과 허리띠, 전신의 구슬장식, 연꽃무늬 등을 종합해 보면 14세기 말 내지 15세기 초의 보살상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펌)



      



    

좌우 측면모습


     




자주빛 황금 = 紫磨金(자마금)

최상품의 금으로 쓴 보현보살의 열 가지 소원

53인의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간 선재동자(善財童子)의 순례여행



원명 = 紺紙金泥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 변상도



화엄경 보현행원품 = 大方廣佛華嚴經普賢行願品[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 : 보물 제752호     시대 = 고려 1334년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紺紙金泥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은

당나라 반야(般若)가 번역한 『화엄경』정원본 40권 가운데 권34에 해당하며, 보현보살이 선재동자에게 부처의 공덕을 얻기 위해 닦아야 할

10가지 계율을 설법한 보현행원품의 내용이 들어있다.

검푸른 종이에 금가루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썼으며,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고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4㎝, 가로 11.5㎝이다.


권의 첫머리에는 고려 충숙왕 복위 3년(1334)에 원나라의 안새한이 부모의 훌륭한 가르침을 기리기 위하여 만들었음을 알 수 있는 간행기록이 있다.

이어 설법한 내용을 요약하여 그린 변상도(變相圖)가 금색으로 세밀하게 그려져 있으며, 그 뒤에는 본문이 역시 금색으로 쓰여져 있다.



변상도<문화재청 펌>





권말<문화재청 펌>



大方廣佛華嚴經普賢行願品[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



은제 금도금 표주박모양 병과 고리= 銀製鍍金打出文瓢形小甁, 銀製鍍金環[은제도금타출문표형소병, 은제도금환] : 시대 = 고려



     

  은제 금도금 표주박모양 병= 銀製鍍金打出文瓢形小甁                                                                                  은제 금도금 표주박 모양 병



     

좌측 3번 = 銀製鍍金環[은제도금환] : 시대 = 고려

우측 = 은제 금도금 표주박모양 병과 고리= 銀製鍍金打出文瓢形小甁, 銀製鍍金環[은제도금타출문표형소병, 은제도금환] : 시대 = 고려

 


     

                                                      은제 금도금 표주박모양 병= 銀製鍍金打出文瓢形小甁                                                          



은제 금도금 칼집 =  銀製鍍金粧刀子[은제도금장도자]  : 시대 = 고려



은제 금도금 칼집 = 銀製鍍金粧刀子[은제도금장도자]  : 시대 = 고려



◈금속공예 기법의 정점, 타출 기법

고려인의 뛰어난 기술력은 청자뿐 아니라 금속 공예에서도 발견됩니다.

 타출 기법은 금속판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정을 두드려 마치 부조(浮彫)처럼 무늬가 튀어나오도록한 장식 기법입니다.

고려 금속공예품 중에는 은으로 표주박 모양 병이나 장도집을 만든 후 무늬를 매우 도드라지게 표현하여 장식성을 한껏 드러낸 것이 있습니다.

다시 표면에 금을 도금한 병이나 장도집은 고려 금속공예품의 화려함을 잘 보여줍니다.




◈고려의 찬란한 기술과 디자인

고려의 수도 개경은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신도시로,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이었습니다.

또한 예로부터 한반도에 다양한 문화를 전한 중국과 지리적으로도 가까웠습니다. 한 국가의 중심도시가 되자, 당(唐)의 수도 장안(長安)이 그랬듯이

주변 국가의 물산(物産)이 개경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고려는 외국인에게 포용적이었습니다.

고려를 침입했던 요(遼)나라 포로 가운데 정교한 솜씨를 가진 사람을 개경으로 데려와 공예품을 제작하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고려는 외부에서 전해진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고려만의 문화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고려를 대표할 만한 공예품인 나전칠기나  청자는 중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고려는 송나라에 나전으로 만든 벼룻집 등을 선물한 정도로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서긍이 극찬했던 것처럼 고려의 나전칠기는 높은 수준의 기술과 섬세함으로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이름이 높았습니다.

도자기 또한 청자 제작에 집중하여 아름다운 비색을 탄생 시켰으며 흰색, 붉은 색, 금색 등을 더해 다양한 청자를 만들었습니다.

고려의 공예품은 기술적으로도 뛰어났지만, 재료가 가진 색을 다채롭게 표현함으로써 시각적인 쾌감도 선사했습니다.

 


     

청동 은입사 물가풍경 무늬 정병                                                                                    표충사 청동 은입사 향완

청동 은입사 물가풍경 무늬 정병 = 靑銅 銀入絲 蒲柳水禽文淨甁[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 국보 제92호     시대 = 고려 12세기

고려시대 대표적인 금속 공예품의 하나로 높이 37.5㎝의 은입사로 시문된 정병(淨甁)이다.

둥근 몸체의 어깨와 굽 위에 꽃무늬를 두르고, 그 사이에 우거진 갈대와 수양버들이 늘어진 언덕이 있으며, 주위로 오리를 비롯하여 물새들이 헤엄치거나,

날아오르는 서정적인 풍경을 묘사하였다. 먼 산에는 줄지어 철새가 날고 있고, 물 위에는 사공이 조각배를 젓고 있다.

이들은 모두 청동 바탕에 문양 부분을 파낸 뒤 은을 박아 장식한 은입사(銀入絲) 기법으로 시문하였다.

물을 따르는 부리에는 뚜껑이 덮혀 있는데 구멍을 뚫어 장식하는 기법으로 덩굴 무늬를 새기고, 그 옆면에는 연꽃 무늬를 배치하였다.

목 부분의 둥근 테두리에 덮힌 뚜껑에도 은판(銀板)을 뚫을새김으로 장식하였다.

이 정병은 형태에 있어서 안정감 있고 유려한 곡선미를 보여주며, 무늬를 표현함에 있어서도 고려 전기부터 크게 발달된 입사기법(入絲技法)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현존하는 고려시대 은입사정병은 여러 점이 알려져 있으나, 이 정병은 푸른 색조와 어우러진 문양의 서정성이 돋보이는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표충사 청동 은입사 향완 = 表忠寺 靑銅 銀入絲 香垸[표충사 청동 은입사 향완] : 국보 제75호     시대 = 고려 1177년

향완이란 절에서 의식을 행하거나 불단에 올려놓고 향을 피우는데 사용된 공양구이다.

특히 이처럼 완형(盌形)의 몸체에 나팔처럼 벌어진 자리와 원반형 받침을 지닌 형태를 향완이라 불렀다.

경상남도 밀양 표충사에 있는 청동 향완은 높이 27.5㎝, 입지름 26.1㎝의 크기이다.

향완에 무늬를 새기고 그 틈에 은실을 박아서 장식한 은입사(銀入絲) 기술이 매우 정교하면서도 세련된 작품이다.

향완의 형태는 주둥이 부분에 넓은 전이 달린 몸체와 바깥으로 벌어진 나팔모양의 받침을 갖춘 모습이,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전과 몸체가 닿는 부분을 둥글게 처리하고 받침 둘레의 가장자리에 얕은 턱을 만들어 안정감을 주었다. 높이나 너비의 비율도 거의 1:1을 이룸으로써

균형잡힌 비례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넓은 전 윗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6개의 원 안에 ‘범자(梵字)’를 은입사하였으며,

그 사이사이에 구름무늬를 장식하였다. 몸체에도 역시 굵고 가는 여러 선으로 원 안에 굵게 은입사한 ‘범자(梵字)'가 4곳에 배치되어 있다.

받침에는 구름과 용무늬를 장식하였는데, 굵고 가는 선을 이용하여 능숙하게 표현된 용의 모습에서 고려시대 뛰어난 은입사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넓은 전의 안쪽 면에는 57자의 은입사로 된 명문을 새겼는데, 내용으로 미루어 고려 명종 7년(1177)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국내에 남아있는 향완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려 향완 연구에 귀중한 편년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원래 이 향완이 있었던 곳이 현재의 표충사가 아닌 창녕 용흥사였음을 알 수 있지만 언제, 어떻게 해서 표충사에 전래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청동 은입사 봉황무늬 합                                                                            1. 2. 3번 은제 곷 모양 잔, 4번 청자 풀꽃무늬 잔


청동 은입사 봉황무늬 합 = 靑銅 銀入絲 鳳凰文盒[청동 은입사 봉황문합] : 국보 제171호     시대 = 고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뚜껑이 있는 그릇(합)으로 높이 9.9㎝, 아가리 지름 18.3㎝의 크기이다.

고려시대에 크게 유행한 문양을 파내고 은실을 박아 장식하는 은입사 기법을 사용하여 제작한 그릇으로, 아래 몸통과 뚜껑의 크기가 같아 안정감 있게보인다.

뚜껑과 몸통 위·아래 가장자리는 모를 깎아 둥글게 처리하였는데, 이러한 형식은 고려시대 철기, 자기, 상자, 합들에서 많이 보이는 양식이다.

뚜껑 윗면 중앙에 봉황이 있고, 그 주위에 꽃무늬와 덩굴무늬로 장식하였다. 바깥 가장자리의 경사면에는 은입사 기법으로 덩굴무늬를 장식했다.

뚜껑과 몸통의 측면에는 양식화된 덩굴무늬가 있다. 전면을 가득히 채워 정교한 수법의 은입사 기법으로 정교한 문양을 새긴 점에서 ,

은입사 기법이 한창 성행하였던 11∼12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용도면에서 사찰에서 사용된 향합으로 추측된다.



청동 은입사 봉황무늬 합<문화재청 펌> 윗면



     

청동 은입사 봉황무늬 합<문화재청 펌>

청동과 은의 만남, 금색과 은색의 조화

청자만 다채로운 색으로 장식도니 것은 아닙니다. 금과 은, 청동과 은이 만나 금색과 은색의 조화를 보여줍니다.

고려시대 유행한 입사(入絲)는 청동에 은선을 넣어 장식하는 기법입니다. 금색과 은색이 대비되기 때문에 디자인적인 효과는 부분 금도금과 유사합니다.

색상의 대배를 보여주는 금속공예품에서 고려미술의 다채로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2. 3번 은제 곷 모양 잔 = 銀製 花形盞(화형잔) : 시대 고려.     4번 청자 풀꽃무늬 잔 = 靑磁陽刻草花文盞(청자양각초화문잔) : 시대 = 고려



1번 은제 꽃 새무늬 팔찌 = 銀製 花鳥打出文釧[은제 화조타출문천] : 시대 = 고려

2. 3번  은제 허리띠 장식 = 銀製帶金具[은제대금구]  :  시대 =  고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