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와 미륵부처님 |
미륵부처님이 상주하는 도량 법주사를 대표하는 팔상전과 미륵금동대불의 모습.
◈자애로운 미륵불 미소, 고단한 중생 보듬다.◈
흥선대원군, 엽전 주조 위해 문화유산 ‘훼손’ 복원에 64년 걸려…천년불교 상징으로 우뚝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이유는 ‘희망’이다.
가난한 여인이 내생에 좋은 몸으로 태어나기를 희망하며 동냥으로 얻은 전 재산을 털어 밝힌 연등은 밤이
새도록 꺼지지 않았다. IMF라는 극한의 경제 위기에서도 한국은 희망을 이야기했고,
단기간에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럼 불교는 희망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미륵부처님’은 미래에 오실 부처님이다. 그리고 중생과
함께 하시는 부처님이다. 그래서 희망의 부처님이다.
신라 진표율사는 국내 3대 미륵도량을 창건했다. 전북 완주 모악산 금산사, 금강산 발연사,
그리고 충북 보은 속리산 법주사다. 지난 22일 법주사를 찾았다.
중학교 때 수행여행부터 9번째 방문길이다. 속리산 문장대를 아홉 번 오르면(九峰山, 속리산의 옛 명)
극락정토에 간다고 했는데, 아홉 번 오르지는 못했지만 9번 바라보러 가는 길이다.
“사람들은 서로 죽이고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남편에게 공경할 줄 모르게 될 것이다. 이때 이 중생들
가운데서 이렇게 서로 죽이는 것을 싫어하여 잘못을 깨닫고 마음을 돌려 착한 일을 행하기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때 미륵불이 나타나 도를 이루어 법을 설하고 수천의 비구를 거느릴 것이다” <아함경>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33년)에 의신스님이 창건했다.
이후 진표율사가 중창을 하면서 금산사에 이어 미륵도량으로 발전하면서 60여 동의 건물과 산내 70여 암자
를 거느린 대찰이 됐다. 그리고 임진왜란으로 인해 많은 건물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돌다리 건너기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법주사에는 수많은 유물들이 전해오고 있다. 법주사 이름을 떠올리면 함께 떠오르는 단어가
정이품송이다. 세조가 행차를 할 때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고 해 벼슬을 받은 그 나무는 지금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돼 있다. 또 망개나무도 천연기념물이다. 법주사를 대표하는 팔상전, 쌍사자석등, 석연지
등 국보를 시작으로 대웅보전, 원통보전, 사천왕석등을 비롯한 보물 12점, 지방유형문화재 19점이 자리해
있다. 그야말로 문화재의 보고다.
법주사의 가장 중요한 성보는 법주사 팔상전 옆에 위치한 미륵대불이다. 국보도, 보물도 아니지만
천년불교의 역사를 대변하며, 중생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미륵부처님이다.
33m 높이의 미륵불은 진표율사가 청동으로 주조했다고 한다. 조선말 흥선대원군이 무분별한 공사를 진행
하면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당백전(當百錢)을 주조했다. 당백전을 찍기 위해 청동이 필요했던
흥선대원군은 천년문화유산을 훼손했다.
1939년 한국 근대조각의 선구자로 불린 김복진 선생이 독립의 염원을 담아 시멘트로 대불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작불사는 6.25사변으로 인해
중단됐다가 1963년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조선 순종
의 비 이방자 여사의 시주로 완공을 봤다.
하지만 시멘트는 부재의 성격상 100년을 넘지 못했다. 1987년 시멘트 미륵대불을 그대로 본떠 청동대불
을 조성했다. 쓰인 청동만 116톤이었다고 한다.
당시 문화재 전문가와 서울대 비철금속 연구진이
함께 참여해 이뤄낸 성과였다.
그리고 2000년 들어 불상에 금박을 입히는 개금불사
를 시작했다. 순금 80kg이 소요된 이 불사가 17개월
만에 완공되면서 비로소 미륵금동대불의 원형이 완성된 것이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사업이 클로즈업 돼
떠오른다.
조선을 망하게 만든 무리한 건축공사로 인해 흥선대원군은 천년 문화재를 훼손했다.
국가 예산을 쏟아부면서 전국에 이런저런 공사가 진행중이다. 또 천문학적 예산이 들어갈 4대강 사업 과정
에서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훼손될 것이라도 한다. 대불을 세우는데 64년이 걸렸다면,
전국에 걸쳐 훼손되는 문화유산, 자연환경을 되돌리려면 도대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미륵부처님을 친견하고 희망을 노래하려 했는데 다시 가슴이 막막해져 오는 느낌이다.
삼배를 올리고 부처님을 올려다 뵈었다. 그 미소.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막아주며 던지는 그 미소.
중생들의 허황된 놀음에 부처님은 미소로 답을 하고 계셨다.
법주사에서 꽃피운 미륵사상은 전국으로 번져 통일신라 후기 불교의 중심을 이루었다.
중생과 함께 하려는 미륵불의 마음은 시골 촌로의 손으로 조성돼 논 한가운데 모셔지기도 했다.
미륵불이 유독 돌로 조성된 것이 많고, 법당 밖에 모셔지는 경우가 많은 것도 특이한 점이다.
귀족이 아니면 법당에 들어가지 못하는 시대 상황을 그려내 듯, 미륵부처님은 법당밖에서 절을 찾아오는
고단한 중생들을 맞이했다. 때론 마을 입구에 세운 돌장승을 미륵불이라고 부르면서 중생들은 그들의 희망
을 부처님께 털어놨다.
미륵부처님이 상주하는 도량, 속리산 법주사. 그래서 법주사 템플스테이는 기다림의 여행길이다.
그리고 희망을 담아가는 문화체험의 기회다.
■ 법주사 템플스테이는… 어린이 가족단위 체험 프로그램 ‘풍성’
법주사는 일반인과 어린이가 포함된 가족 단위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가족 템플스테이는 황토염색과 부모님께
편지쓰기, 협동화 그리기, 천연비누 만들기 등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여름이면 속리산 계곡에서 물놀이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일반인을 위한 수련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참선을 위주로 강의와 참선을 번갈아 진행한다.
시간 중간에 법주사 문화유산 해설과 일주문에서 미륵전까지 삼보일배도 진행한다.
이를 통해 참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제공한다.
프로그램 진행을 담당하고 있는 연복흠 씨는 “법주사 템플스테이는 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한 고찰의 멋과
속리산의 맑은 기운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전통불교문화체험의 시간”이라며 “단체의 경우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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