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본사와 사찰 벽화 이야기

조계종단 교구본사 = 송광사, 대흥사, 관음사

백련암 2010. 8. 15. 03:25

 대한불교조계종 제 21교구 본사 조계총림 승보사찰 송광사

 禪之宗刹 曹溪叢林 松廣寺

 

 

불교에서는 참으로 귀하고 값진 보배로 세가지를 들고 있다. 그래서 삼보(三寶)라고 한다. 그 세가지는 부처님(佛) 가르침(法) 승가(僧)이다. 

불교인의 신앙은 바로 이 세가지 보배를 값지고 귀한 것으로 알고 그에 귀의해 가는 것이다.


한국 불교에는 일찍부터 세 가지 보배를 가리키는 삼대 사찰이 있고 이를 삼보사찰(三寶寺刹)이라고 한다.

경남 양산의 통도사, 경남 합천의 해인사 그리고 전남 순천의 송광사이다.
통도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있기 때문에 불보사찰(佛寶寺刹),

해인사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의 경판이 모셔져있기 때문에 법보사찰(法寶寺刹),

그리고 송광사는 한국불교의 승맥(僧脈)을 잇고 있기 때문에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고 한다. 


송광(松廣)이라는 이름에는 몇가지 전설이 있다.
첫째는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셔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절이라는 뜻이다.
곧 '송(松)'은 '十八(木)+公'을 가리키는 글자로 18명의 큰스님을 뜻하고, '광(廣)'은 불법을 널리 펴는 것을 가리켜서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서 불법을 크게 펼 절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보조 국사 지눌스님과 연관된 전설이다.

곧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옮기기 위해 터를 잡으실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깍은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떨어져 앉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다한다.

이 전설을 토대로 육당 최남선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솔개의 사투리)라 하여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 풀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찍부터 산에 소나무(솔갱이)가 많아 '솔메'라 불렀고 그에 유래해서 송광산이라 했으며 산 이름이 절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하면 송광사는 신라말 혜린(慧璘)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송광산 길상사(吉祥寺)였으며 100여 칸쯤 되는 절로 30, 40명의 스님들이 살 수 있는 그리 크지않은 규모절이었다고 한다.

그 뒤 고려 인종때 석조(釋照)대사께서 절을 크게 확장하려는 원을 세우고 준비하던 중 타계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50여년 동안 버려지고 페허화된 길상사가 중창되고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정혜결사가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부터이다. 지눌스님은 9년 동안의(명종 27년1197년 ~ 희종 원년) 중창불사로 절의 면모를 일신하고

정혜결사운동에 동참하는 수많은 대중을 지도하여 한국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였다.
이 때부터 송광사가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정유재란, 6.25사변 등 숱한 재난을 겪었으나 지속적

중창불사로 지금의 위용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우화각 =연못위에 홍교를 가설하고 그위에 세운 누각이다 일명 능허교라고도 한다

 

=찾아가는길 = 기차여행=

1) 용산역 출발<오전 6시 40분 KTX> = 익산역 하차<오전 8시 31분>, 환승 순천행으로 <08시 50분차 무궁화>= 순천역 하차 <10시 56분 도착>

    순천역 앞에서<오전 11시 5분~10분정도차 이차를 놓치면 1시간은 기다려야 함> 시내버스 111번 송광사행 탑승 종점하차

 

2) 용산역 출발<오전 7시 20분 KTX> = 익산역 하차<오전 9시 11분>, 환승 순천행으로 <10시 8분차 무궁화>= 순천역 하차 <11시 58분 도착>

    순천역 앞에서  시내버스 111번 송광사행 탑승 종점하차 ** 이시간대는 차오는 시간을 맞출수가 없음 고생하였음

 

** 용산역에서 우선 KTX 를 타고 익산까지 <2시간소요> 하차해서= 무궁화나 새마을로 환승 = 순천역 하차<2시간소요> 송광사까지 <1시간 30~40분소요>


 

대한불교조계종 제 22교구 본사 대둔산 대흥사

 

 

 

=응진전앞 삼층석탑 보물제 320호=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에는 다양한 창건연기가 전하고 있다. 이들 창건연기는 역사적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사찰의 전통과 사상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참고할 필요가 있는데 대흥사에도 몇 가지 창건 연기가 전하고있다.

대흥사의 창건연기를 전하고 있는 자료로는『죽미기(竹迷記)』,『만일암고기(挽日菴古記)』,『북암기(北菴記)』등이 있으며,

1823년(순조23) 간행된『대둔사지(大芚寺志)』는 이들 자료를 종합한 내용과 함께 이때까지의 사찰역사를 총정리 해놓은 중요 자료이다.


[창건설]
426년(백제 구이신왕7)의 신라 정관존자(淨觀尊者) 창건설이다. 신라의 정관 스님이 426년 대흥사 산내 암자의 하나인 만일암을 창건,

이후 508년(무녕왕8)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선행(善行) 비구가 중건하였다고하나 안타깝게도 이 자료에서 

창건주로 소개한 정관존자는 생애나 활동 내용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죽미기』는544년(신라 진흥왕5) 아도화상(阿度和尙)의창건설을 전하며, 자장(慈藏)스님과 도선(道詵)스님이 계속해서

중건하였다는 기록도 함께 실려 있다. 현재 사찰 내에서는 대체로 아도화상의 창건설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써는 대흥사의 정확한 창건 시점을 밝히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라고 하겠다. 하지만 지금 응진전(應眞殿) 앞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의 제작 연대가 통일신라 말기 경으로 추정되고 있는 상태이므로 대흥사는 늦어도 통일신라 말기 이전에 창건된 고찰로 보아야 한다.

또한 정관존자나 아도화상 같은 분들이 창건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점은 그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대흥사의 전통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중시되어야 할 내용이다.

 

제22교구 본사로 대둔사(大芚寺)라고도 한다. 창건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신라말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13명의 대종사(大宗師)와 13명의 대강사(大講師)를 배출한 명찰로 임진왜란 뒤에야 비로소 선교양종(禪敎兩宗)의 대도량으로 면모를 갖추었다.

가람배치는 절터의 북쪽에서 흘러내리는 금당천(金塘川)을 중심으로 별원의 성격을 지닌 남원과 북원으로 되어 있다.

북원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원은 천불전과 서산대사의 유물이 있는 표충사(表忠寺) 일곽,

다도(茶道)로 유명한 초의선사(草衣禪師)가 중건한 대광명전(大光明殿) 일곽으로 나뉜다.

대웅전은 1665년(현종 6)부터 1667년에 걸쳐 심수(心粹)가 중창했는데 앞면 5칸, 옆면 3칸의 다포집으로 내부는 단조로우며 

현판은 조선 후기의 명필 이광사(李匡師)가 썼다. 대웅전 앞 백설당에는 김정희가 쓴 '무량수전'(無量壽殿)이란 편액이

동쪽 응진전 앞에는 대흥사응진전전3층석탑(大興寺應眞殿前三層石塔:보물 제320호) 1기가 있다. 천불전(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48호)은 1811년(순조 11)

불탄 것을 1813년 중건한 것으로, 6년에 걸쳐 경주 옥돌로 만든 천불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2호)이 봉안되어 있고,

천불전 좌우에는 학승들이 기거하는 용화당(龍華堂: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3호)과 강사가 기거하는 건물이 있다.

1669년 건립된 표충사(전라남도 기념물 제19호)는 대흥사의 대표적 건물로 앞면 3칸의 맞배집이다.

서산대사·사명대사·처영(處英)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으며, 편액은 정조의 친필이다. 표충사 삼문(三門) 밖에는 2층 누각인 의중당(義重堂)이 있는데

앞면 5칸, 옆면 3칸의 맞배집으로 봄·가을에 있던 표충사 제사 때 가지고 온 제물을 처리하던 곳이다.

의중당 동쪽에는 서산대사의 유품을 비롯하여 사중유물(寺中遺物) 총 24종을 보관하고 있는 보장각(寶藏閣)이 있다.

표충사 동쪽 300m쯤에 있는 대광명전(전남 유형문화재 제94호)은 조선 후기 초의가 건립한 앞면 3칸, 옆면 3칸의 맞배집으로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을 봉안했다.

특히 초의가 직접 단청했다고 전하는 천장의 연꽃무늬와 운학(雲鶴)문양은 뛰어난 형상미색채감각으로 높이 평가된다.

대광명전 옆에는 고승들의 영정이 봉안된 앞면 9칸의 보련각과 요사채가 있다.

그밖에 사천왕을 봉안한 천왕문과 역대고승들의 부도·비석을 봉안한 비전(碑殿)이 있는데, 이 비전에는 서산대사부도(전남유형문화재 제57호)를

비롯해 대흥사 대종사 13명과 대강사 13명의 부도 및 비가 있다.

 

 

대흥사(大興寺)는 근대 이전 대둔사와 대흥사로 불리었다가 근대 이후 대흥사로 정착되었다. 해남 두륜산(頭輪山)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이 곳 대흥사는 한국불교사 전체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도량으로서 특히 임진왜란 이후 서산(西山)대사의 의발(衣鉢)이 전해지면서

 조선불교의 중심 도량이 되었고,  한국불교의 종가집으로 그 역활을 다해온 도량이다.

 

풍담(風潭) 스님으로부터 초의(草衣)스님에 이르기까지 13 대종사(大宗師)가 배출되었으며, 만화(萬化)스님으로부터 범해(梵海)스님에 이르기까지

 13 대강사(大講師)가 이 곳에서 배출되었다.

암울했던 조선시대의 불교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존재는 한국불교의 오늘이 있게 한 최대원동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대흥사는 호국불교(護國佛敎)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 도량이다. 서산대사의 구국 정신은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지금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표충사(表忠祀)는 개인의 수행에 앞서 국가의 안위를 보다 우선시했던 한국불교의 전통을 대표하는 전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매년 학생들과 시민들이 이곳에서 서산대제 및 나라사랑을 위한 각종 행사에 참여해 오고 있다.

 

조선중기 이후 수많은 선승(禪僧)과 교학승(敎學僧)을 배출하면서 한국불교의 중심도량으로 성장한 대흥사.

한국불교의 가장 대표적인 호국도량의 위상을 간직하고있는 이 곳 대흥사는 지금도 성불(成佛)과 중생구제의 서원을 간직한

뭇스님들의 정진이 끊이지 않는 청정수행도량이다.



 

=찾아가는 길 = 기차와 버스 병행 여행=

 KTX =  광주행열차 = 광주까지 3시간 소요 = 광주 터미널에서 해남행 버스  = 해남까진 2시간소요 

           목포행열차 = 나주까지 2시간 50분소요 = 영산포 터미널에서 해남행버스 = 해남까지 1시간 소요

용산역 ⇒ 광주행 열차. 광주역 ⇒ 광주버스터미널(택시 기본요금) ⇒ 해남행 버스
용산역 ⇒ 목포행 열차. 나주역 ⇒ 영산포 터미널(택시 기본요금) ⇒ 해남행 버스(권장) 
 


대한불교조계종 제 23교구 본사 제주도 관음사

 

 

 

= 관음사 입구 =


관음사는 제주시 아라동 387번지 한라산(漢拏山)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23교구 본사다.

해발 650m 지점에서 관음사를 감싸고 있는 한라산은 면적 약92km, 높이1,950m의 휴화산으로, 가히 제주의 심장이라 할 만한 우리나라 3대 영산 중의

하나이다.  과거에는 영주산(瀛州山), 부라산(浮羅山), 두무악(頭無岳)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다.

현재 '한라'라는 이름은 "운한(雲漢)을 끌어 당긴다"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며, 운한은 은하수를 말한다. 

 

■ 창건

근대 제주불교의 모태라 할 수 있는 관음사는 이처럼 신비로운 영산 한라산의 동쪽 기슭 아미봉(蛾眉峰)에서 태동했으며,

1908년 해월굴에서 기도를 시작한 봉려관(蓬廬觀, 1865~1938)스님에 의해 창건되면서 부터이다.

안봉려관 스님은 관세음보살의 지극한 신통력을 믿고 남은 생을 부처님 품안에서 살기를 발원, 출가 삭발을 결심하고,

1907년에 전라남도 해남군 대흥사에서 12월 8일 성도절을 맞아 유장스님을 은사로 하고 청봉(靑捧)스님을 계사로 하여 산중에서 성대한 수계식을 치렀다. 

출가한 이듬해인 1908년 봄 제주시 화북으로 돌아와 불사를 계획하여 같은 해 10월에는 지금 해월굴에 터를 잡고, 백일간 관음기도를 시작으로

기유년(1909)음력 4월 8일, 김석윤 스님과 함께 초가 법당으로 관음사를 창건했으며, 

경술년(1910)에는 경상남도 통영 용화사에서 용봉화상과 안도월 스님이 불상과 각 탱화를 이운해와 관음사에 봉안하였다.

이듬해인 병진년(1911)에는 서울에서 불경을 수 백권을 구입하여 왔고, 일본 오사카에서 금종을 가져와 일체의 병발이 완비됨으로

점차 근대 제주불교의 구심점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제주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불교의 교세가 강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18세기 초 이래 20세기 초까지 약 200여 년 간 이른바

무불시대(無佛時代: 1702년(조선 숙종) 이형상 제주목사의 훼볼로 승려도 사찰도 없는 무불(無佛)시대)로 한 때 불연(佛緣)이 끊길

위기에 처해 역사이래 가장 암울한 시기를 보내야 했다.

이처럼 핍박받아온 제주불교가 새로운 중흥의 시기를 맞이하는 계기가 됐으며, 제주도 내 다수의 사찰 창건과 불교중흥에 일생을 바쳐 제주사회의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분이다.

 

■ 창건 이후의 연혁

 

1911년 사찰령, 1915년 포교규칙이 선포되면서 일제의 보다 치밀한 감시 하에 많은 변화를 맞게 되었다.

창건 초기 독자적으로 활동하던 관음사는 일제의 포교규칙에 따라 행정 구역상 전라남도에 속해있어 1918년 6월 11일 해남 대흥사(大興寺)의 말사로

등록되어 설치 허가를 받게 되었다.

1920년 중반까지 대흥사 주지였던 이화담 스님과 백취운 스님이 관음사 포교담당자로 등록되어 있었으나,

이시기 관음사의 활동은 중앙교단과는 별개로 제주지역 불교의 자생력에 힘입어 활동하였으며 그 배경에는 조선 불교 포교사

이회명(李晦明,1866-1952)스님의 포교활동의 영향이 컸다.  회명스님은 당시 포교사로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던 분이며 관음사를 기반으로

제주지역 포교에 나서면서 근대 제주불교는 새로운 도약기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이처럼 관음사 창건 이후 급성장한 제주불교의 힘은 1924년 음력 4월 8일에 있었던 관음사 중창 낙성식에서 확실히 나타났으며,

이 행사는 근대 제주불교 역사에 한 획을 그어 놓은 일대사건이었다.


한편 이 날 관음사는 창건 초기부터 제주불교 중흥에 힘써온 안도월 스님을 초대주지에 임명했으며, 1924년 11월 제주불교협회를 창설하면서

포교활동은 커다란 진전을 했으며 1925년에는 현 제주시 중앙로에 시내 포교당인 대각사(大覺寺: 관음사를 대신하여 포교활동을 펼치기 위해 세워진 포교당)를 건립했으며, 이 같은 관음사의 포교활동은 제주불교의 질적, 양적인 발전을 동시에 가져왔다.

1936년에는 창건의 역사와 함께 초대주지 안도월 스님이 입적하고, 상좌 오이화 스님이 뒤를 이어 2대주지에 임명되엇다.

이에 관음사는 전라남도 담양 출신인 국상원의 후원으로 그 해부터 대대적 불사를 시작으로 1937년에 대웅전,보제루,해월각, 해탈문을 완공하였다. 

그러나 1937년 7월 20일 경내에 화재로 모두 소실 됐으며, 1941년 2월 5일 중건 불사에 착수 재도약에 나섰으나,

1949년 2월 12일(음 1월 15일) 군경에 의해 사찰이 전소되었다.  이 때에 일부 불상만 간신히 화를 면하였을 뿐 모두 소실되었다.

 

■ 관음사의 중창

 

1954년 7월 15일 제주시 도남동 856번지에 보현사를 창건하면서 재건 움직임이 시작됐으며, 1955년 4월 16일 봉불식을 거행하면서

관음사 포교당(옛 대각사)과 함께 한라산 중턱에 위치한 관음사를 대신하여 시내 포교당으로서의 업무를 시작하였다.

1962년에 관음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 본사로 지정되어 제주불교를 대표하는 교구 본사로서의 역활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폐허가 된지 20여년이 지난 1969년에 이르러 대웅전 준공을 시작으로 복원해, 1970년 선방, 1971년 영산전, 1972년 해월각, 1973년 사천왕문, 1974년 일주문,

 1975년 종각, 1978년 서향각과 삼성전을 완공하고 오이화 스님의 비석을 세워 비전을 마무리하고 1987년 제정된 전통사찰보존법에  따라

 1990년 6월 16일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

제주의 과거와 현재가 온전히 숨쉬고 있는 한라산 관음사는 제주의 미래를 붙들고 있어, 제주불교의 버팀목 역활을 하고 있다.

최근에 관음사는 소중한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고 민족과 세계의 평화를 발원하기 위하여 대대적 성역화 불사를 진행 중에 잇다.

일주문에 들어서면 사천왕문 앞까지 좌우와, 사천왕문에 들어서 경내까지 미륵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미륵대불과 초전법륜상의 대불이 모셔져 있다.

이와같은 성역화 불사는 현재 많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한라산에 오르려고 관음사를 제대로 돌아보지를 못하였다 내려와서 봐야지 했지만 힘이 딸리어다음으로 미루고 서울로 향한다.

 

= 찾아가는 길 = 비행기 =

김포공항에서 출발 = 제주도 공항도착 = 관음사 부근 공항버스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