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이야기=고려외

700년 만에 다시 오신 아름다운 고려의 님이여!

백련암 2010. 11. 2. 01:44

국립중앙박물관 특별기획 "고려불화 대전." 

고려불화 1000년 보존의 비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고려불화가 고국을 찾아왔다.

'고려불화 대전 - 700년 만의 해후'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고려불화가 한 자리에 모인 특별한 전시회다.

국내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14세게 고려 혜허스님의 "수월관음도<일본센소지 소장>"등 일본, 미국, 유럽등에 소장 돼 있는 고려불화 61점을

비롯해 동시대 중국 및 일본에서 제작된 불화 20점, 그리고 고려불화의 전통을 계승한 조선전기 불화 5점, 고려시대 불상과 공예품 22점등

총 108점이 전시되고 있다.

 

지금껏 고려불화를 주제로 열린 전시회 가운데 작품의 규모 면에서 단연 최대를 자랑한다.

이번전시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타의에 의해 고국을 떠야야 했던 고려불화의 고향방문이라는 서글픈 의미 때문이다.

고려불화는 고려인들의 높은 미적 안목과 화려하게 꽃피웠던 불교문화, 그리고 신심이 깊이를 엿볼수 있는 최고의 종교 예술품인 동시에

문화재 해의 유출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증인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고려불화는 전 세계에 걸쳐 약 160여 점 가량으로  이가운데 고작 12점 만이 국내에 있으며 120여점이 일본의 박물관과 사찰에 소장

되어있다. 나머지 고려불화들이 일제강점기 등 근 현대 역사의 혼란기를 틈타 해외로 밀 반출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전시회에 선보이는 고려불화의 상당수는 일본을 비롯해 각국의 박물관이나 개인의 소정작품을 빌려온 것으로

특히 일본세소지소장 "수월 관음도" 네르 미술관 소장 "지장보살도", 오타카시 소장 " 관경16관변상도" 등 대다수가  대다수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공개 되는 작품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에 따르면 전 세계 44곳에 달하는 작품 소장기관들과 소장자들은 불화의 훼손을 비롯해 혹여 작품을 돌려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다는 걱정에 작품대여를 극도로 꺼렸다. 하지만 상당수 소장자들  "불화도 자신의 고향엔 한 번은 가보고 싶을것" 이라면 전시회 출품을

승락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로 고국을 떠났고, 이제 다시 고향을 찾아 온 고려불화 언제쯤 이 같은 해후가 다시 이뤄질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있을지

기약 할 수 없기에 벅찬 감동과 함께 가슴저린 아련함으로 다가오는 자리다

 

 

◈쪽물과 광물성 염료로 탈색 - 부패방지

 

들기름 - 인두 사용한 독특한 연마기술도 한 몫 

 

한국 미술사의 정수, 동양 채색화의 백미라 일컬어지는 고려불화(高麗佛畵)는 한국 회화사의 정점을 이루고 있는 걸작이다.

고려의 불자들은 안료의 혼합을 피해 색의 선명함을 극대화하고, 금니를 사용해 불화에 생명력을 넣어 고려불화라는 독창적인 미술세계를 열어 보였다.

특히 화려함을 최대한 극대화시켜 역설적이게도 경건함으로 반전시키는 절묘한 고려불화의 세계는 그 자체로 이미 세간의 예술을 뛰어넘어

종교적인 신비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고려불화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회화적인 아름다움만은 아니다. 숯과 소금, 창문의 크기를 조절해 완벽한 항온 · 항습의 기적을 만들어 낸

해인사 장경판전이나 한치의 오차를 인정하지 않는 완벽한 조화미의 석굴암에서처럼 고려불화에는 아름다움을 후대에 그대로 전하고픈

조상들의 과학 정신이 지문처럼 남아 있다.

700∼800년의 긴 세월의 풍상을 겪으면서도 탈색되지 않고 영롱한 색상을 간직한 고려불화.

시공을 초월해 오늘날 우리가 고려불화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불화 속에 담긴 과학정신의 덕분이다.

고려불화의 1000년 보존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떠나는 여정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염색이다.

고려사람들은 비취빛 쪽빛(감색)을 좋아해, 종이에 쪽물을 들여, 금과 은으로 사경 한 ‘감지금(은)니사경’을 펴냈다.

 

인류가 펴낸 책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우리 민족의 또 다른 걸작이다.

그러나 고려 사람들은 이 쪽물을 비단 종이에만 사용하지 않고 불화를 그리기 위한 천에도 사용했다. 쪽빛은 금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역할도 하지만,

방충 방습 효과와 함께 천의 장력을 향상시켜 쉽게 썩거나 상하는 것을 방지하는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고려불화를 재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쪽물 염색에서 불화공부를 시작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렇게 만든 천에 고려사람들은 광물질로 구성된 염료를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 중국과 중앙 아시아에서 돌에서 추출한 광물질 염료를 수입해 사용했다.

 햇볕을 쪼여도 돌은 탈색이 되지 않듯이, 광물질로 구성된 염료는 세월이 지나도 상하거나 변색되지 않고 천연의 색상을 유지하는 뛰어난 재료다.

그러나 고려사람들은 수입한 염료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염료의 성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됐는데 이런 노력의 결과로 나온 것이

고려불화의 대표적인 채색법인 배채법(背彩法)이다.  염료를 천의 뒷면에 두껍게 발라 앞으로 색이 배어 나오게 하는 채색방법으로,

천에 묻은 염료가 외부 물질에 의해 벗겨지거나, 떨어지는 것을 근원적으로 방지하는 독창적인 방법이다.

간혹 일본이나 중국에도 배채법을 사용한 경우가 발견되고 있기는 하지만, 배채법은 고려불화를 구별하는 기준이 될 정도로 중요한 독창적인 채색방법이다.

물론 염료와 함께 이겨 사용된 아교의 성분도 불화의 부식을 막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마지막 고려불화의 완성에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연마 과정이다.

연마에는 보통 인두와 법유(들기름)이 사용됐을 것이라 추정되고 있다.

연마 과정은 방수와 방습, 방충을 효과를 내는 최상의 방법으로 고려불화의 주존불의 얼굴이나 손과 발이 무엇으로 연마한 듯한 압축감과

미끈함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연마 과정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고려불화 비밀은 원색, 금니, 효과" 

 

정우택교수, 고려불화 심포지움에서 주장

심오한 불교, 정신담긴 " 마이크로 세계"

고려불화 ' 예배용 - 공덕용' 놓고는 이견

 

고려불화의 빼어난 아름다움은 원색과 금니(金泥)의 효과를 극대화시킨 데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우택 동국대 교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10월 28일 동관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미술 심포지엄에서 “고려불화는 색, 선, 문양의 자기주장과 억제

특히 치밀한 표현의지의 산물”이라며 “고려불화는 구성요소들의 조화와 마이크로 세계의 구현을 통해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숭고한 부처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 고려인들의 미적․ 정신적 창조물”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현존하는 고려불화는 기본색인 붉은색, 녹청색, 군청색이 대부분으로 모든 안료는 이들 원색을 그대로 사용하며, 가사, 대의, 치마 등

동일 부분에서는 색상의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 동일한 색감의 안료로 전면을 칠했다. 이렇게 대부분의 고려불화에서 원색을 고집하는 이유는

안료를 섞으면 채도와 명도가 떨어져 선명함을 잃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그는 추정했다.

 

특히 정 교수는 고려불화를 그린 화가들은 금니를 대단히 효과적으로 사용했음도 깊이 있게 조명했다.

그는 “일본 게죠인(華藏院)의 ‘지장시왕도’, 가가미진자(鏡神社)의 ‘수월관음도’와 같이 금으로 문양과 묘선만이 아니라 용, 봉황 등 각종 형상을

매우 능숙하게 그려냈다”며 “이러한 사례들을 볼 때 고려불화의 화가들에 있어 금은 궁극적으로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는 도구였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또 고려불화에만 등장하고 있는 ‘당초원문(唐草圓文)’에도 주목했다. 당초원문은 국화문, 봉황문 등 다양한 문양 중에도 가장 독특한

문양으로 다른 나라의 불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려불화만의 독특한 양식이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색채의 단순성을 완화시키기 위해 얇은 묘선으로 면을 작게 구분했고 그 위에 다시 문양을 그려 넣음으로써 화면에서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했던 것”이라며 “복층적 묘사를 통해 ‘마이크로 세계’를 형성해 심오한 정신세계와 신비한 미의 세계를 창출해 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정 교수는 고려불화의 조성 배경으로 왕실과 권문세가들의 현실구복 및 내세구제의 경쟁적인 공덕신앙이 자리 잡고 있으며,

고려불화는 예배용이 아닌 공덕용이라고 주장했다. 종파의 사상과 배경은 해당 사찰의 주불전(主佛殿)과 주존상(主尊像)의 도상분석으로

규명하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고려불화는 사찰에 봉안해 예배하는 용도가 아니라 기복적인 의도로 조성된 것으로

당시 종파의 교리적 배경 규명의 단서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려불화의 화기를 중심으로 발원 시주자를 분석한 김정희 원광대 교수도 “고려시대에는 왕실과 관인(문신․무신․내료 등), 승려, 향도 및

 개인 등 다양한 계층에서 불화조성에 참여했음을 볼 수 있었다”며

“이것은 고려후기에 기복불교가 성행하면서 이러한 당시 불교 성격이 곧 고려불화의 발원 시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은영 동아대 교수는 이와는 전혀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일본 교토 쇼보지(正法寺) 소장 ‘아미타독존도’ 뒤쪽에서 복장(腹藏)유물이 부착됐음을 소개한 박 교수는 “복장물은 불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오장육부(五臟六腑)와 같은 것으로 이는 고려시대 불화가 불상처럼 예배의 대상으로 모셔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물방울속에 수월관세음보살

142×61.5 일본 센소지  일본 내에서도 공개된 적이 없어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불화 가운데 하나다.

필선이 가늘고 섬세하며 강한 채식 대신 차분하면서도 단계적인 하이라이트 효과를 주고 있는 수작이다.

 

고려불화은 세계적으로 총 130여점이 남아있으나 일본에 100여점, 구미에 10여점 등 대부분이 해외에 반출됐으며, 국내에는 10여점만이 개인소장되고 있다.


  

 

 

 

 

화엄정토사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화엄정토변상도' 이 변상도의 제작시기에 대해 홍교수는 "12세기말 13세기초에 걸쳐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화엄정토사상을 확산시켰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13세기 중엽에 제작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변상도를 감정한 홍윤식(동국대 박물관장)교수는 "그동안 화엄정토사상을 가람배치로 표현한 사찰(부석사)은 확인됐으나 불화로 표현한 것은

이번에 처음 발견됐다"고 지적하고 "이런 이형 고려불화는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처음 소개되는 것이어서

13세기 고려불화연구에 획기적 자료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홍교수는 이어 불화 아래쪽에 보이는 다섯 여래의 수인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아미타여래, 석가여래, 아미타여래, 비로자니불, 아미타여래임을

밝힐 수 있었다고 지적하고 이는 "아미타불의 세계를 그린 것으로 추정되지만 비로자니불을 표현한 것으로 보아

화엄정토를 그린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일본 도쿄에 거주하고 있는 독일인 클라우스 나우만의 소장품인 이 변상도는 비단 바탕에 폭 58.5㎝,높이 1백31.1㎝의 크기이며

상태가 매우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