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이야기=고려외

아! 고려불화 = 2탄

백련암 2010. 11. 6. 01:34

미륵하생경변상도<고려 1294년>일본 묘만지<妙滿寺>

미륵삼존을 중심으로, 주위에 제석천, 범천, 십대제자, 십이신장 등.

 

미륵하생경변상도<고려 1294년>

미륵삼존을 중심으로, 주위에 제석천, 범천, 십대제자, 십이신장 등.

 

 

아미타불도<고려후기>= 비단에 색 *있는 곳 = 일본 교쿠린인<玉林院>소장  일본 중요문화재

 

아미타불은 화려하게 장식된 높은 연화좌 위에 앉아 설법하는 자세이다. 머리에는 나발을 표현하고, 가슴에는 卍자, 양 손과 발바닥에는 법륜을 그렸다

 

아미타불도<고려후기> 세밀도

 

위그림처럼 도교적이며 민속적인 분위기를 띠는 문수, 보현보살의 도상은 중국 원대 불화 혹은 그것을 모본으로 하여 그려진 일본 불화에서도 볼 수있다.

 

아미타삼존도<고려 1330년> = 비단에 색 *있는 곳 = 일본 호온지<法恩寺>소장  일본 중요문화재

 

아미타삼존도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세지보살로 이루어지나 여기에 아난과 가섭을 더한 특수한 형식의 아미타 삼존도이다.

 

아난은 양손을 합장하고 가섭은 발우를 받쳐 들고 있다. 협시보살이 모두 연화좌위에 양다리를 포개고 앉은 자세로 표현된 것은 고려불화의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관세음보살은 버드나무 가지를,세지보살은 경책이 놓인 연꽃줄기를 들고 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고려불화가 대부분 권문세족등 귀족계층의 후원으로 제작되었는데 이작품은 화기에 의해 향도<香徒>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음이

명시되어있다는 점이다. 香徒는 신라시대부터 시작된 불교 신앙결사의 한 형태로 , 수행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특히 佛事를 위한 경제적 보시의 성격이

짙은 모임이었다.  *향도들은 주로 불상, 불화, 종, 탑 등을 조성 하였다 

 

아미타삼존도<고려 1330년>좌측의 보살도= 관세음보살

 

아미타삼존도<고려 1330년> 우측의 보살도 = 세지보살

 

아미타삼존도<고려후기>= 비단에 색  *있는 곳 =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중품중생인을 결하고 높은 대좌 위에 앉은 아미타불이 입상의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을 거느리고 있는 설법도 형식의 아미타 삼존도이다.

얼굴이 정방형에 가깝고 당당하고 중량감 있는 신체를 가진 아미타불에 비해 보살은 세정한 비례를 보인다.

두 보살은 모두 사라<紗羅>를 착용한 모습으로, 투명하고 우아한 표현에서 고려 불화의 수준 높은 기법을 볼 수 있다. 관음보살은 좌상의화불이 표현된 보관을

쓰고 왼손에는 정병을 , 오른손에는 버즈나무 가지를 들었다. 세지보살은 정병이 표현된 보관을 쓰고 양손을 가슴 앞으로 모아 끈이 달린 경합을 감싸 쥐고 있다.

『관무량수경』에서 설하는 16관중  제 11상에서 세지보살의 모습을 "육계 위에 보병<寶甁>이 있어 온갖 光明이 가득하여 두루 佛事를 나툰다고" 묘사하는데,

보관에 그려지는 정병의 표현은 이에 입각한 것이다

 

아미타 삼존도<고려후기>=비단에 색  *있는 곳 = 일본 네즈미술관<根津美術館>소장

 

설법도 형식에서 두손모두 엄지와 중지를 붙인 상태로 오른손은 가슴 높이로 세워 들고 왼손은 명치 높이로 눕혀 든 모습을 보이는 데 비해, 이 작품에서는

오른손은 손가락을 붙이지 않고 있으며, 왼손을 옆구리 정도로 내려 들고 있다.

본존은 얼굴과 턱선이 풍만하고 손의 표현이 두툼하며, 육신부의 윤곽을 표현하는 주선이 다른작품에 비해 굵고 경직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둔중하고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협시보살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본존은 육신부 전체를 금니로 칠한 데 비해 보살의 육신부는 살구색을 칠하였고

본존보다 밝고 발그레한 주선과 붉은 바림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아미타 삼존도<고려후기> 아미타불 세밀도

본존은 얼굴과 턱선이 풍만하고 손의 표현이 두툼하며, 육신부의 윤곽을 표현하는 주선이 다른작품에 비해 굵고 경직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둔중하고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아미타 삼존도<고려후기> 하단 보살들의 세밀도

 협시보살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본존은 육신부 전체를 금니로 칠한 데 비해 보살의 육신부는 살구색을 칠하였고

본존보다 밝고 발그레한 주선과 붉은 바림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아미타팔대보살도<고려후기>=비단에 색 *있는 곳 = 일본 고후쿠고코쿠젠지<廣福護國禪寺>소장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아미타불 아래로 여덟 보살이 좌우 네 명씩 서 있는 구도로, 보살이 약간씩 몸을 튼 모습과 변하 있는 시선 처리, 자연스러운 묘법 등

에서 아미타팔대보살도 중 시대가 이른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아미타불의 향좌측 제일 앞에 서 있는 보살은 보관에 화불이 있고 내려뜨린 왼손에

정병을 들고 있다.  이 보살과 대칭되는 위치의 보살은 보관에 정병이 있고 왼손에 경합을 들고 있다. 이러한 지물과 보관 위의 상징물은 순희<淳熙> 10년

<1183년>명 지온인<知恩院>소장 (아미타정토도)등 남송대 불화에서 관음보살, 세지보살을 표현한 전형직인 방법이다.

서방극락정토에 중생을 왕생시키고자 하는 아미타불의 본원을 성취하는 실천자 무리로서 팔대보살이 아미타불과 함께 신앙되었다고 생각된다.

 

아미타 팔대보살도<고려후기>하단 보살  세밀도

 

아미타 팔대보살도<고려후기>=비단에 색  * 있는 곳 = 일본 도쿄예술대학<東京藝術大學>소장

 

아미타불 아래 여덟 보살의 몸이 향하는 방향이 엄격한 좌우 대칭을 이루어 고후쿠고코쿠젠지<廣福護國禪寺>소장본에 비해 한층 정적이고 경직된 느낌을 준다.

고려 말로 갈수록 구도가 좌우대칭을 강조하게 되고, 조선시대 예배화에 보이는 정면성으로의 지향이 뚜렸해진다.

이 작품에서는 통상 앞줄 중앙에 배치되는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뒷줄에 배열되었는데, 이러한 예는 고려의 아미타팔대보살도 중 유일하다.

이는 달리 보면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본존 가까이로 이동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조선 전기에 들어서면 관음보살, 세지보살을 제외한 다른 보살들의

지물이 점차 사라지거나 연꽃으로 획일화되면서 화면에서 아미타삼존만 개별성을 갖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이 이미 이때 부터 감지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미타 팔대보살도<고려후기> 하단 팔대보살 세밀도

 

아미타 팔대보살도<고려1307년> 칠 위에 금 (앞면)    *있는 곳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앞면에 그려진아미타팔대보살도의 불보살은 모두 측면으로 살짝 몸을 돌리고 있어 얼굴이 갸름하게 묘사 되었다. 다른 아미타팔대보살도에 비해 큰 지물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앞줄 중앙 좌측의 보살은 왼손에 발<鉢>을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는 버드나무 가지를 잡고 있다. 관음보살의 도상으로 정병 대신 이러한

 지물이 채택된 것은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의 도상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가로 22.5cm, 가로 13cm, 두께 1cm의 목판에ㅣ 옻칠을 하고 금선묘로 앞면에 아미타팔대보살도, 뒷면에 금강산담무갈보살<金剛山曇無竭菩薩>및 지장보살을

그린 독특한 형식의 불화이다. 어딘가에 꽂아두고 봉안했던 것으로 보이며 하단 가장자리에 2개의 촉이 남아 있다. 촉과 촉 사이 공간에 "대덕십일년정미팔월일

근하노 영동원 □ 득 □ 大德十一年 丁未 八月 日 謹畵魯 英同願 □ 得 □ " 라는 발원 명문이 있어 이 불화가 충렬왕 33년인 1307년 8월에 노영<魯英>이라는

화사<畵師>가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연대가 확실한 아미타팔대보살도 중 가장 이른 예이다.

 

담무갈보살. 지장보살도<고려 1307년> 칠 위에 금 (뒷면)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뒷면은 크게 상. 하로 화면이 구분되는데,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회양<淮陽>. 정양사조<正陽寺條>『유점사사적기*楡岾寺事蹟記』

「말사표훈사지* 末寺表訓寺誌」연혁<沿革> 편의 기사로 보아 상부의 그림은 고려 태조가 금강산 정양사에 오르던 도중 배점<拜岾>에서 무릎을 끓고 절을

올리며 고려에 의한 완전한 통일을 기원하자 담무갈보살이 그의 권속과 함께 모습을 나타냈다는 내용을 그린 것으로 해석된다.

화면 왼쪽 중간 부분에는 엎드려 예경의 자세를 취한 인물 앞에 太祖라는 부기<附記>가 보인다.

하부의 중심인물은 원형보주를 들고 민머리의 형상을 한 것으로 보아 지장보살을  그린 것으로 생각되며, 지장보살의 왼쪽과 오른쪽 하단에서 참례하고

있는 자세의 인물들 옆에는 각각 화사인 노영의 이름과 □□ <祿始?>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노영은 무신정권기 최우의 원찰이 었던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의 벽화를 그린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화면의 테두리를 금강저 문양으로 장식하는 것,

빈 공간을 구름 문양으로 가득 채우는 것, 사경변상도<寫經變相圖>에 등장하는 금강역사의 무기를 연상시키는 유난히 큰 금강저 지물 등 사경변상도와의

깊은 연관성을 보여주는 이 작품으로 노영이 벽화뿐만 아니라 사경변상도나 예배용 불화까지도 넘나드는 뛰어난 기술을 구사한 화사 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미타불도<고려후기>= 비단에 색  * 있는 곳 = 일본 쇼보지<正法寺>소장.  일본 중요문화재

 

내영도 형식의 아미타불도이다. 왼손을 가슴 높이에 올리고, 오른손을 아래로 내린 채 앞으로 진행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부처의 신체는 균형이 잡히고 꼿꼿이 선 채 허리를 앞으로 약간 내밀고 있어 당당한 느낌을 준다. 부처의 가슴에는 卍자가 있으나

손바닥의 법륜은 없다.  부처의 육신부는 살구색, 가사는 붉은색 선을 그어 입체감을 주었다.

 이마의 경계선과 귀 주변, 귓바퀴 안쪽, 눈썹, 수염 부분에는 가는 먹선으로 터럭의 올까지 세심하게 표현하였다.

눈썹은 윗부분을 청색, 아랫부분을 녹색으로 그려 이중선을 구사하였다.

 

아미타불도<고려후기> 세밀도

 

아미타불도<고려후기> 네 부분의 세밀도

 

고려 14세기  * 있는 곳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얼굴이 계란형으로 갸름하면서도 부피감이 있으며, 미목구비가 단정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결과부좌한 자세에 오른손을 들어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왼손은 내려서 역시 엄지와 중지를 맞댄 아미타구품인의 수인을 취하고 있다. 머리의 중앙 계주, 속옷인 승강기<僧脚崎>의 띠매듭과 왼쪽 가슴에

달린 마름모꼴의 치레 장식, 왼쪽 팔뚝위에 겹쳐진 옷주름 형식 등은 고려 후기 불상의 특징이다. 이러한  계열의 불상은 고려 후기 14세기에 유행한

양식의 전형적인 작품으로, 이후 조선 전기 불상으로의 가교역할을 한 것으로도 평가 된다.

 

이부처님을 보면서 의 감동은 뭐라 표현 할 수가없어 가슴이 콱 막히는 느낌이였다. 금방 눈을 번쩍 뜰 것 갖고 금방이라도 일어 설것 같은 느낌이였다.

감동 또 감동 이였습니다...

 

대세지보살 입상 : 金銅 大勢至菩薩 立像 = 고려시대(高麗時代) 1333년  *있는 곳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두 보살 모두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화려하다.

 

관음보살 : 金銅 觀音菩薩 立像 = 고려시대(高麗時代) 1333년   *있는 곳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앞서의 아미타불좌상과 같은 고려 후기 14세기에 유행했던 전형적인 양식 계열의 금동제 관음. 세지보살입상이다. 

이 중 관음보살상 내부에서는 복장이 발견되어 지순<지순> 4년(1333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두 보살상은 비록 자세의 차이는 있으나 높은 상투의 표현이나 둥글고 넙적한 얼굴, 다섯 줄로 늘어진 목걸이의 처리 등 세부표현은 대부분 유사하다.

 

아미타불도<고려후기>=비단에 색  * 있는 곳 = 우학문화재단 소장  *보물 1238호

 

대의자락이 바람이 부는 것처럼 화면 오른쪽으로 날리도록 하여 화면에 운동감을 주려 하였으나 자연스러운 느낌은 다소 떨어진다.

육계가 낮은 편이고, 대의 자락을 어깨로 넘기지 않고 팔에 두른 점이 특징적이다. 가슴에 卍자, 오른손 손바닥에 법륜이 표현되어 있다.

연화원문을 사용하고 끝단에는 별도의 당초문을 사용하여 장식하였다.

치마와 대의에는 운문과 봉황문을 구사하였고 치맛단은 풍성한 꽃무늬로 장식 하였다.

 

아미타삼존도<고려후기>= 비단바탕에 채색  * 있는 곳 =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 국보 218호

 

아미타불이 보살(지장보살, 관세음보살)들을 거느리고 왕생자를 극락으로 맞이하러 오는 내영도 형식의 고려불화입니다. 

아미타불의 머리에서 뻗어 나온 빛은 두손을 모으고 무릎을 끊은 왕생자를 감싸면서 그가 아미타불에 의해 극락왕생의 길로 곧 인도 될것임을 강하게 암시한다.

앞으로 나와 왕생자에게 다가선 관음보살은 허리를 굽혀 왕생자가 탈 금련화<金蓮花>를 내밀고 있다.

 

◎인간이면 누구나 죽은 후 내세에 좋은곳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근본적인 염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왕생하게 될 극락정토는 청정하고 안락한 곳이자  생로병사의 괴로움이 없고 생사윤회를 초월한 곳입니다.

 

불교에서 정토는 아미타여래의 서방극락정토, 비로자나불이 주재하는 화엄정토, 동방에 위치한 약사정토, 관음정토 등 다양합니다.

그 중에서 아미타부처와 서방 극락에 관한 이야기는『아미타경』,『무량수경』,『관무량수경』이라는 정토삼부경에 자세히 실려있습니다.

아미타여래를 공경하며 염불하면 누구나가 최상의 세계인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고 믿었고,

아미타여래가 직접 극락정토에 갈 왕생자를 맞으러 오는 극적인 장면인 <내영도>로 재현된 것입니다.

 

그림을 보면 아미타여래는 연꽃좌대를 딛고 왕생자를 맞이하고 있으며, 아미타여래의 백호에서 부터 나온 빛이 합장하고 있는 왕생자를 비추고 있습니다.

왕생자의 시선 역시 아미타여래를 향하고 잇어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대감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미타여래의 앞쪽으로는 화불이 모셔진 보관을 쓰고 아미타여래보다 한 걸음 앞으로 나온 관세음보살이 허리를 굽히고 연꽃대좌를 내밀어

왕생자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적극적인 자세에서 관세음보살의 역할을 분명하게 읽을 수 있는데, 이러한 형상은『관무량수경』의 내용을 충실히 옮긴 것입니다.

 

그 오른쪽에는 무명을 깨치는 보주(여의주)를 든 지장보살이 왕생자를 바라보고 있는데,

이 불화에서 보듯 아미타여래의 협시로 대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이 등장히기도 하는데 이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조성된

아미타삼존도의 특징적인 요소입니다.

 

*일반적으로 아미타불이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인데 비해, 여기서는 세지보살 대신 보주를 든 지장보살이 그려진 점도 특이한 점이다.

 

이 그림은 일찍이 일본으로 유출된 작품으로 1978년 일본 나라국립박물관과 야마토문화관에 전시되어 수준 높은 고려불화로 평가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호암미술관이 구입하여 1984년 국보로 지정되었고, 삼성미술관<리움>에서 소장. 관리되고 있습니다.

 

아미타삼존도<고려후기> 아미타불과 지장보살 세밀도

 

아미타삼존도<고려후기> 관세음보살이 허리를 굽혀 왕생자가 탈 금련화를 내밀고 있다. 관세음의 세밀도

 

아미타 삼존도<고려 후기>=비단에 색   * 있는 곳 = 일 본 도쿄국립박물관<東京國立博物館>소장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을 거느리고 왕생자를 맞이하러 오는 내영도 형식의 아미타삼존도이다. 이작품은 특히 아미타 삼존의 발 아래 구름표현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은 바 있다.

내영도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구름이 거의 필수적인 도상적요소인 데 비해 고려불화 내영도에는 구름이 없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형식은 내영도가 아니라

수기도<授記圖>, 즉 수기를 주는 장면이라 주장되기도 하였다.

 

아미타 삼존도<고려 후기> = 세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