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템플스테이와 부처님이야기

축생전 이야기 = 돼지. 고양이. 두루미

백련암 2011. 12. 23. 02:27

1.돼지

  

8계 지키며 성불 꿈꾸다 ‘고기’로 전락

 

지글지글 굽던 ‘돼지고기’는 하늘에선 제독이었다. 10만 수군을 이끌던 천봉원수(天蓬元帥)였다. 천봉원수는 아홉 날 쇠스랑 하나로 무력을 뽐내며

하늘 수군을 수족처럼 부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마늘과 고추에 된장을 찍어 쌈을 싸 입으로 가져가던 ‘돼지고기’가 사실 핏줄 선 팔뚝을 자랑하며,

권력을 휘두르던 존재였다는 거다.


어쩌다 ‘고기’로 전락했을까. 먼저 돼지로 환생한 이유를 ‘서유기’가 소상히 밝히고 있다. 평소 색을 밝히는 게 흠이었다.

천봉원수가 술자리서 선녀를 희롱했고, 하늘에서 쫓겨난 원수는 돼지로 몸을 바꿨다. 자업자득인 게다.

 

다행히 인생역전 기회는 왔다. 관세음보살에게 서역으로 가는 스님 한 분 잘 모시면 성불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능히 깨달으라’는 법명 저오능(猪悟能)도 받았다. 부처님 된다는데 앞뒤 잴 것 없지 않은가. 오신채와 육식을 끊는 등

8가지 계를 지키며 지내다 인도로 법 구하러 순례 중인 삼장법사 현장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계율을 철저히 지키라며 팔계(八戒)라고 불렀다.

우여곡절 끝에 임무를 완수하자 석가여래께 각자 벼슬을 받았는데, 팔계는 공양 음식을 먹는 정단사자(淨壇使者)에 임명됐다.

나름 출세한 셈이다.

 

경남 밀양시 표충사 대웅전 기와지붕 추녀마루 위 장식용 기와인 잡상(雜像)으로도 등장한다. ‘어우야담’은 잡상이‘서유기’ 등장인물을

형상화한 것으로 궁궐과 사찰을 수호한다며 돼지를 잡상 서열 3번째라고 했다.


상징처럼 굳어진 부정적 이미지는 별 수 없다. 5백 권속을 데리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던 돼지왕은 한 마리 호랑이를 만났다.

길을 비키라는 호랑이 말에 돼지왕은 무리들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고 평소처럼 허세 작렬하며 말을 건넨다.

“대대로 내려온 갑옷을 입고 싸우자”며 돼지똥을 온몸에 칠갑한다. 역한 냄새를 참지 못한 호랑이는 “더러워서 피한다”고 자리를 뜬다.

돼지왕은 더욱 더 의기양양 한다.

 

‘중아함경’에 전하는 이 설화는 맑고 향기로운 수행을 택한 납자들이 세속 물욕에 찌든 이들과 다투지 말라는 얘기다.

돼지왕의 어리석음도 꾸짖고 있다.


돼지가 인간 눈에 띈 뒤부터 대대로 내려온 안 좋은 이미지는 낙인이 됐다. 개, 고양이와 달리 살찌고 더럽다는 이미지까지 천형처럼 더해졌다.

선녀에게 수작 건 죄로 하늘서 쫓겨난 뒤 돼지로 태어난 것도 모자라 아예 먹거리로 떨어진게다.

여인을 탐한 죄는 지금도 계속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 소, 닭, 돼지는 총 7억4000여만 마리가 도축됐다.

우리는 1인당 총 50.4kg의 고기 중 돼지고기 19.3kg을 먹어치웠다.


꼭 돼지만 탓할 문제일까. 이미지는 인간이 만들었다. 지나친 육식으로 인한 환경오염 등은 말해 입 아프다. 육식에 따른 동물학대도 돼지에겐 고통이다.

세상 빛 본지 얼마 안 돼 생식기가 잘린다. 수퇘지 고기 특유의 노린내를 인간이 싫어해서다. 스트레스로 서로 꼬리를 문다며 이빨과 꼬리도 잘라버린다.


그 많은 업은 누가 책임질까.‘능엄경’은 말한다. “고기 먹는 자들은 서로 살생해 먹는다.

이 생에서는 내가 너를 먹고 다음 생에서는 네가 나를 먹는 악순환을 영원히 끊지 못한다.”

생명 있는 모든 존재가 업에 따라 윤회한다는 부처님 가르침이 과연 어디까지 통용될까.

오늘도 저팔계는 가마솥 불판 위에서 노릇노릇 구워져 사람들 입에서 성불중이다. 돼지를 성불시킨 업은 어떤 몸을 받을지 두렵다. 


 

1. 고양이

 

장화 대신 불심 챙겨…화두에도 등장

 

▲오대산 상원사 고양이 석상.

                                                                          


요즘 함께 영화에 출연했던 슈렉보다 유명한 캐릭터가 떴다. 장화 신은 고양이다.

장화 신은 고양이의 애교가 스크린에 비출 때면 신음 섞인 탄성이 객석을 장악한다. 소위 ‘내가 제일 잘 나가’는 동물이다.


장화와 모자 그리고 칼로 무장한 서양 고양이와 달리 불심 챙긴 고양이도 있다. SBS 동물농장에서 소개한 상주 용흥사 ‘해탈이’다.

법당 안에서 오매불망 부처님만 바라보고 꼼짝 않는 해탈이 모습이 제작진 카메라에 잡혔고, 놀라운 사실은 꽁치 조림을 마다하는 등 육식을 하지 않았다.

울지도 않아 ‘4년 째 묵언수행’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했다.

사연인 즉 용흥사 인근에서 상처 입고 떨고 있던 새끼 고양이 해탈이를 발견한 스님과 묵언은 물론 살생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단다.


‘왕의 고양이’도 있다. 조선시대 세조는 단종을 죽인 죄책감에 시달렸는데 전신에 종기가 돋고 고름이 나는 피부병에 신음했다.

상원사에서 참회기도를 올리며 병이 낫길 기원하던 중 문수동자에게 등을 맡긴 뒤 피부병은 사라졌다.

가피를 입은 뒤 다시 상원사를 찾은 세조가 곧바로 법당에 올라 예배를 드리고자 할 때였다. 어디선가 고양이가 나타나 세조의 옷자락을 물고 놓지 않았다.

이상히 여긴 세조가 호위무사들에게 법당을 살피라 했고 뜻밖에 불단 밑에서 자객을 발견했다.

세조는 상원사에 고양이를 위한 밭, 묘전(猫田)을 하사하고 한 쌍의 묘상을 석물로 만들어 안치했다. 고양이를 죽이지 말고 잘 보호하라는 왕명까지 내렸다.

서울 근교에도 여러 절에서 묘전을 설치해 고양이를 키웠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지금도 서울 봉은사 소재 밭이 묘전이라 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당시 부처님께 바치던 쌀을 ‘고양이를 위한 쌀’이라는 뜻으로 ‘고양미’로 불렀다고도 한다. 혹자는 ‘고양미’가 ‘공양미’로 발음이 변했다고 한단다.


화두에도 고양이가 등장한다. ‘무문관’ 14칙 ‘남전참묘(南泉斬猫)’다. 남전화상 회상에서 고양이 새끼를 두고 스님들이 다투자 남전화상

이 “누구든지 한 마디 말하면 살리고 그렇지 못하면 단칼에 베겠다”고 했다. 대중이 우물쭈물하자 새끼 고양이를 벴다.

이 소식을 들은 조주는 말없이 신발을 머리 위에 올리고 방을 나갔고, 남전화상은 “조주가 있었다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다”고 말한 일화에서 온 화두다.


애교가 많아 반려동물로도 인기인 고양이는 언제부터 안방까지 들어왔을까. 제법 그럴듯한 설화가 있다.

잉어로 변한 용왕 아들을 낚았던 어부는 잉어를 놓아준 대가로 여의주를 받고 부자가 됐다. 이를 탐낸 방물장수 할멈이 여의주를 훔쳤고,

격분한 어부집 개와 고양이가 할멈 집에 잠입했다. 개는 망을 보고 고양이는 쥐왕을 볼모로 잡아 쥐떼를 시켜 여의주를 찾아냈다.

아뿔싸. 여의주를 입에 물고 개 등을 타고 강물을 건너던 고양이가 여의주를 물에 빠뜨렸고, 둘은 앙칼지게 싸우다 개만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고양이는 어부가 잡아 올린 물고기 중 죽은 것들 배를 뒤져 여의주를 찾아 주인에게 건넸고,

이때부터 개는 방 밖에 고양이는 이부자리를 차지했다. 개가 고양이와 눈만 마주쳐도 짖어대는 이유다.


그러나 길고양이는 삶과 죽음 경계에서 오늘도 외줄을 탄다. 장화 대신 불심을 갑옷처럼 두르면 무엇 하나. 굶주림에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고,

차는 남전화상이라도 되는 양 무자비하게 고양이를 벤다. 연일 날이 차다.

 

 

1. 두루미

선인과 노닐다 월정사 창건설화에 등장

 


▲오대산 적멸보궁 두루미.


밤과 낮으로 딱 12번 운다. 깃털은 어찌나 흰지 진흙탕에서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암수는 160년에 만나 눈만 마주치면 잉태한다.

1600년 동안 먹지도 않는다. 물만 마신다. 날개 달린 동물 우두머리고 선인이 타고 다닌다. 2000년을 산다해 장수를 상징하고 고고함과 청초함에

높은 관직을 뜻하기도 한다. ‘상학경기(相鶴經記)’가 서술한 동물이다.


오대산 적멸보궁에도 이 새 그림이 있다. 두루미다. 보통 학이라 불린다. 두루미는 줄곧 옛 얘기에서 학으로 등장한다.

황새나 두루미, 백로 등을 두루뭉술하게 학으로 말해 왔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은 두루미를 고고하고 도를 통달한 그 무엇으로 여겼다.

학을 물건에 새기면 장수와 행복, 풍요도 따른다고 믿었다. 눈만 마주쳐도 새끼를 낳는다니 두말하면 입 아프다.


두루미는 불교와 인연이 깊었다. 스님이나 단청장이었다. 오대산 월정사 전신(前身)격인 자장율사의 모옥(茅屋, 띠나 이엉 따위로 지붕을 인 초라한 집)

얘기에 두루미가 등장한다. ‘삼국유사’ 제3권 제4 탑상편 대산월정사 오류성중조 기록이다.

자장율사가 오대산에 처음 이르러 문수보살을 친견하려 산기슭에 모옥을 짓고 살았으나 보지 못했다. 이에 율사는 떠났고 뒤에 신효거사가 모옥에서 살았다.


왜 신효거사는 율사의 모옥에서 살았을까. 그는 고기가 아니면 끼니를 먹지 않는 어머니를 위해 사냥으로 고기를 구했다.

마침 길에서 학 5마리를 보고  활시위를 당겼다. 허나 ‘살생 미수’에 그친다. 활은 학 1마리 날개 깃 한 조각만 떨어뜨린다.

그 깃으로 눈을 가리고 사람을 보니 모두 짐승으로 보이자 아예 자기 넓적다리 살을 베어 어머니께 바쳤다.

 

그는 출가한 뒤 깃으로 눈을 가려도 사람으로 보이는 곳에 살고자 길에서 늙은 부인에게 물었다. 노부인은 “북쪽으로 향한 골짜기가 살 만하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는 관음보살 가르침인 것을 알고 자장율사 모옥에 들어가 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님 5명이 오더니 생뚱맞게 가사 한 폭을 달라고 했다. 영문 몰라 하던 그는 다른 스님이 깃을 말하자 깃을 내줬다.

스님이 가사의 뚫어진 폭 속에 깃을 갖다 대니 서로 꼭 맞았다! 그는 스님들과 작별하고 나서야 이들이 다섯 성중 화신임을 알았다.

월정사 9층 석탑이 다섯 성자 자취라고 일연 스님은 말한다.


전해지는 얘기에 따르면 무주 안국사 극락전 단청은 두루미 솜씨란다. 주지스님이 단청을 그릴 스님을 찾고 있었다.

어느 날 하얀 도포를 입은 노인이 나타나 “100일 동안 안을 보지 말라”며 단청을 시작했다. 마음에 일어난 호기심을 어쩌랴.

주지스님이 단청 99일째 안을 들여다보고 말았고, 노인은 온데간데없고 붓을 입에 문 학이 놀라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그래서 극락전 단청이 미완성이라나.


온천이 유명해진 데도 두루미가 공(?)을 세웠다.  절름발이 노파가 3대 독자 외아들 결혼 문제로 부처님께 지성으로 기도드릴 때 일이다.

꿈에 선인이 “그대 다리를 먼저 고치라”며 절름거리는 학을 보고 따라하라 이른다.

과연 다리 다친 학이 들판 연못에서 사흘을 머물다 다리를 고쳐 날아갔고, 노파도 뜨거운 물에 다리를 담그니 다리가 나았다.

외아들도 장가를 갔다 한다. 바로 온양온천이다.


어딜 가나 두루미는 입에 꽃이나 불로초를 물고 있다.

늙지 않고 천수를 바라는 우리네 탐심일 게다. 악업이 새 몸 받아 지옥이나 축생계로 떨어지는 게 무서워서 일까.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