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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촉사 = 석등, 오층석탑. 종루, 미륵보살 어머니상(비로자나석불) 종루(鐘樓)

백련암 2013. 3. 9. 15:54

 

미륵보살상이 있는쪽의 전경

 

 

 

 

석등(石燈) : 보물 제 232호.  시대 : 고려

석조미륵보살 앞에 세워져 있는 이 석등은 높이가 5.45m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이다.

하대석은 각 면에 3개의 안상(眼象, 코끼리 눈을 본떠 만든 장식 문양)이 새겨져 있고 8잎의 복연문(伏蓮紋)이 조각되어 있다.

간주석(竿柱石)은 둥근 기둥에 마디를 장식하였는데  중앙 마디에는 꽃이 새겨져 있다.

상대석은 앙련(仰蓮)을 조식하고 그 위에 판석을 올렸다.

이 위에 4개의 기둥을 세워 화사석(火舍石)을 구성하고 있다. 옥개(屋蓋)는 이층으로 귀꽃이 장식되어 있으며,

옥개 정상에는 연꽃 봉우리 형태의 보주가 올려졌다.

 

4각의 석등으로 화사석(火舍石)이 중심이 되어 아래에는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석조미륵보살입상과 함께 고려 광종 19년(968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남한에서는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다음으로 거대한 규모를 보여준다.

특시 화사는 물론 기둥에 이르기 까지 전형적인 8각 석등의 양식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석등 조성 양식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석등이다.

 

 

  

        ↑2층으로 이루어진 화사석은 1층에 4개의 기둥을 세워 지붕돌을 받치도록           각 층에 지붕들은 처마가 가볍게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하였는데 기둥이 빈약한 반면 창은 매우 넓다.                                                   네 귀퉁이에는 큼직한 꽃 조각이 있어 부드러운 조화를 이룬다.

                                                                                                                           꼭대기는 불꽃무늬가 새겨진 큼직한 꽃봉우리 모양의 장식을 두었다.

 

 각 층에 지붕들은 처마가 가볍게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네 귀퉁이에는 큼직한 꽃 조각이 있어 부드러운 조화를 이룬다.

 꼭대기는 불꽃무늬가 새겨진 큼직한 꽃봉우리 모양의 장식을 두었다.

 

 

아래 받침돌과 위에 받침돌에 새겨진 굵직한 연꽃무늬가 두터움을 드러내고 있다.

위 아래 양끝에는 두 줄기의 띠를 두르고, 중간에는 세줄기의 띠를 둘렀다.

 

 

  

            가운데 받침은 각이 없는 굵고 둥근 기둥으로 세웠는데 위 아래 양끝에는                                    *아래받침돌에 새겨진 연꽃무늬*

            두 줄기의 띠를 두르고, 중간에는 세줄기의 띠를 둘렀다. 특히 중간의 세줄기                                아래 기둗에 두 줄기의 띠를 두르고 있다 

            중에서 가장 굵게 두른 가운데 띠에는 여덝송이의 꽃을 조각하여 곱게 장식하였다.

 

 

                                                     

석등(石燈)

 

 

위에서 내려다 본 석등(石燈) : 보물 제 232호 고려시대

석등이란 어두운 중생의 마음을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로 비추어 불성(佛性)을 밝혀 주는 등인데 처음에는 실용적 성격이 강했으나

후대에는 불전(佛殿)이나 탑 앞에 설치하는 장식적인 건조물로 변했다.

 

화사석(火舍石)의 기둥이 가늘어 불안한 느낌을 주지만 형태의 장대함과 수법의 웅장함이 고려시대 제일가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사적비에 의하면 불상이 968년(고려 광종 19년)에 조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고려시대 석등의 대표작이다.

 

석등사이로 내다보는 미륵보살입상

 

 

석탑(石塔) : 시대 : 고려

석등과 배례석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탑신(塔身)은 4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기단은 지하에 묻혀 단층기단이고 면석에는 안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기단부와 탑신부 사이에 별석을 두어 고려시대 석탑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낙수면과 맨 위의 옥개석 층급 받침 사이는 넓은 편이며, 체감비로 보아서는 3층의 탑신과 옥개석이 없어진 5층석탑으로 보입니다.

상륜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고 높이 343cm로 맨 윗층의 옥개와 하단의 갑석(甲石)에 약간 결실이 있지만 비교적 원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배례석(拜澧石) : 시도유형문화재 제 53호, 시대 : 고려*

부처님께 예(禮)를 올리던 곳에 놓은 직사각형의 받침돌(臺石)로  바닥에서 2단의 직각 괴임을 새기고, 그 사방의 면석(面石)에는

안상(眼象)을 새겼다. 윗면에는 가운데 커다란 연꽃을 중심으로 좌우에 그보다 적은 연꽃 두 송이를 돋을 새김 하였다.

연꽃은 단판(單瓣) 8엽(葉)이며 중앙에는 커다란 둥근자리(圓座)가 있고, 그 안에는 가운데 1개와 그 주위에 8개의 자방(子房)이

연주문(蓮珠文) 처럼 돌려쳐 있는데 음각(陰刻)으로 새겼다. 연꽃의 잎 끝이 뾰족하며 그 사이에 다시 중판(重瓣)의 연꽃 잎을 뾰족하게

돋을 새김 하였다. 제작연대에 대한 이설(異說)이 많으나  제작기법으로 보아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입상과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어 진다.

 

 

옆면

 

 

배례석(拜澧石) : 시도유형문화재 제 53호,   시대 : 고려

길이 204cm, 폭 103cm, 높이 40cm의 장방형으로 2단의 직각 괴임을 하고 그 위의 면석(面石)에는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는데,

앞부분에는 3개, 측면에는 2개가 새겨져 있다.

윗면에는 단판 8엽의 연꽃 3송이가 있는데, 중앙의 꽃이 좌우의 꽃보다 크며 뛰어난 수법으로 돋을새김 하였다.

연꽃 중앙의 원 안에는 자방(子房)이 연주문처럼 돌려서 음각하고 연꽃의 잎은 뽀족하며 그 사이에 다시 중판의 연꽃잎이 양각되어 있다.

이 배례석은 보물 제 218호인 석조미륵보살입상과 제작연대가 같은 고려시대작품으로서

마멸되지 않고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우수한 작품으로 꼽힌다 

 

 

파괴된 옆면 쪽

 

 

 

 

종루(鐘樓)

다수의 현판이 걸려 있다. 중앙에는 해탈의 길로 승화시켜주는 의식구 범종이 매달려 있다.

 

 범종(鐘樓 梵鐘)

범종의 장엄한 소리는 중생을 착한 길로 인도하며 해탈의 길로 승화시켜주는 의식구로써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고 있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조성된 것이다. 완만한 원통형 곡선의 몸체에는 주악비천상(奏樂飛天像)과 당초문 등의 문양이 주조되어 있다.

종의 꼭대기에는 굵은 음통과 용뉴가 조각되어 고리의 기능을 하고 있다.

 

 

종루 편액(鐘樓 扁額)

종(鐘)을 걸어두는 누각을 '종루'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종과 함께 중요하게 여기는 북을 걸어 두는 '고루(鼓樓)'와 마주보며 조성된다.

 

 

 

논산 관촉동 비로자나석불입상(論山灌燭洞 毘盧那石佛立像)

관촉사 주차장에서 오른편 골짜기 쪽으로 가다보면 민가 아당에 모셔져 있다. 사람들이 "은진미륵 어머니"라고 하는데 실제로 불상의 모습이

마음씨 좋은 시골 아주머니 같은 풍모이다.

 

 

논산 관촉동 비로자나석불입상(論山灌燭洞 毘盧那石佛立像) : 충남 유형문화재 제 88호

부처가 설법한 진리가 태양의 빛처럼 우주에 가득 비추는 것을 형상화 한 것이 비로자나불이다.  관촉사입구 대정운사(大正雲寺)라고 하는 사찰 터에

있었던 것을 최근에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받침은 직사각형의 형태이며 안상(眼象)을  정면 3개, 측면 2개씩 새겼다. 불신(佛身)을 보면 낮은 육계(肉계)를 지닌 머리는 윤곽을 뚜렸하게

새겼으며  귀가 어깨까지 내려와 있다. 얼굴은 풍만한 모습을 지니고 있고 눈은 은행알처럼 생겼으며 코의 윤곽을 선으로  표시하였다.

얼굴에 비해 입은 작으며 턱에 있는 U자형의 깊은 선이 특이하다.

목이 짧아도 삼도(三道)는 표현되지 않았고, 법의는 양쪽어깨에 걸쳐 잇으면서 부드럽게 늘어져 있다.

허리 아랫부분은 좌우 대칭이나 발의 모습은 생략되었다. 몸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은 형태 라든지 부드러운 옷 주름 등에서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다 먼저 조성되었다 하여 민간에서는 "은진미륵"의 어머니부처라 불리어지기도 한다.

 

 

 

논산 관촉동 비로자나석불입상(論山灌燭洞 毘盧那石佛立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