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대종사 사리탑(생멸연대 : 1912년 ~ 1993년)♠
소중한 가르침, 무소유의 청빈한 삶, 장좌불와의 올곧은 수행정신으로 유명하신 성철큰스님의 부도탑입니다.
♠퇴옹당 성철 대종사 사리탑♠
나를 찾아가는 禪의 공간
성철스님<1912년 ~ 1993년>은 해인총림의 방장과 대한불교 조계종의 6대. 7대 종정을 역임하며 올 곧은 수행정진과 중생을 향한 자비의 실현.
서릿발같은 사자후로 근. 현대 한국불교사에 큰 영향을 끼치셨다.
성철스님의 사리를 모신 이 사라탑은 통도사 적멸보궁을 기본형으로 하여 우리나라 전통 부도의 아름다움을 현대적 조형언어로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가운데 구는 완전한 깨달음과 참된 진리를 상징하고, 살짝 등을 맞대고 있는 반구는 활짝 핀 연꽃을 표현하며, 크기가 다른 정사각형의 3단 기단은
계. 정. 혜 삼학과 수행과정을 의미한다.
사리탑을 둘러싸고 있는 참배대는 앞쪽에서 뒷쪽으로 가면서 서서히 높아졌다가 낮아지는데, 이것은 영원에서 영원으로 흐르는 시간의 무한성을 상징한다.
1998년 성철스님의 열반 5주기에 회향하였으며, 여기는 성철스님께서 늘 말씀하신 "자기를 바로 보라"는 가르침이 살아있는禪 의 공간이다.
해인사 성철스님문도회
스님을 이야기 할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를 말합니다. 하지만 이는 스님 말씀 중의 일부이구요,
전체를 말하면 이렇습니다.
. 원각이 보조하니 적과 멸이 둘이 아니라.
. 보이는 만물은 관음이요.
. 들리는 소리는 묘음이라.
.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시회대중은 알겠는가 ?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혜암대종사 사리탑(생멸연대 : 1920년 ~ 2001년)♠
스님은 그렇게 평생을 올곧은 수좌의 모습으로 정진하다가 2001년 12월31일 세납 82세, 법랍 56세로 원당암 미소굴에서
후학들에게 “인과가 역연하니 참선 잘하라”고 당부한 후
“나의 몸은 본래 없는 것이요. 마음 또한 머물 바 없도다. 무쇠소는 달을 물고 달아나고. 돌사자는 소리 높여 부르짖도다”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했다.
혜암 스님이 입적한 후 미소굴에는 스님의 유물로 주장자, 안경, 회중시계, 돋보기, 그리고 ‘금강경’ 한 권이 있을 뿐이었다.
♠혜암대종사 행적비♠
♠자운당대종사 사리탑(생멸연대 : 1911년 ~ 1992년)♠
♠자운대종사 탑비명♠
♠일타스님의 사리탑(생멸연대 : 1929년 ~ 1999년)♠
♠일타스님의 행적비♠
♠영암당 임성대종사 사리탑(생멸연대 : 1907년 ~ 1987면)♠
♠영암대종사 사적비♠
♠경하율사 탑(생멸연대 : 1869년 ~ 1957년)♠
♠동광당 명진대화상 사리탑(생멸연대 1939년 ~ 1998년)♠
♠명진 대화상 행적비♠
♠용성대선사 사리탑(생멸연대 : 1846년 ~ 1940년)♠
3·1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 중에서 불교 대표는 2인이었다. 용성과 용운이다. 용성은 깨달은 스님으로 한용운의 사형이었고, 용운 스님은 독립운동에 사형인
용성 스님을 끌어들이려고 그렇게 노력하였으며, 님의 침묵의 님은 부처님이라는 뜻인데, 독립운동에 참여해 달라는 간청에는 침묵한 채, 참선만 하고 앉아 있는 깨달은 사형에 대해 쓴 것이라고도 알려져 있다.<한용운스님이 쓰신 님의 침묵에 대하여...>
♠용성대선사 사적비♠
♠고암대종사 사리탑(생멸연대 : 1899년 ~ 1988년)♠
♠고암대선사의 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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