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북도 = 천년!.. 감동..그리고.

해인사내 산내암자 = 희랑대(希朗臺) = 희랑대사, 독성, 산신,

백련암 2013. 4. 22. 03:39

희랑대(希朗臺) = 나반존자 기도도량

희랑대(希朗臺)는 희랑대사가 머물던 곳으로서 자연이 이루어낸 기기묘묘한 지형과 빼어난 경치로 말미암아 일찍이 금강산의 보덕굴에

비유되곤 한다. 희랑대의 삼성전(三腥殿)에 모셔진 독성님은 그 영험이 불가사의 하다고 해서 기도처로 퍽 유명하다.

지족암(知足庵)은 신라말과 고려초에 걸쳐 살았던 고승 희랑(希郞)대사의 기도처로 본디 이름을 도솔암이었다.

 

◈역사

해인사 조사였던 고려시대 희랑대사의 진영상(眞影像)으로 경상남도 합천의 해인사에 모셔져 있다.

고려 건국 당시 해인사 승려들은 견훤을 지지하는 남악파(南岳派)왕건을 지지하는 북악파(北岳派)로 나뉘어 있었는데

희랑은 북악파의 종주(宗主)였다. 이 像(희랑대사)은 화엄종 북악파의 진면목을 적절하게 묘사하여 화엄종의 진리를 무언(無言)의

 형상을 통해서 지금까지 끊임없이 설법하고 있는 우리나라 초상의 최고 걸작이다.

앞쪽은 건칠기법으로 뒷쪽은 나무로 제작한 이 상은 체구에 비해 머리가 다소 큰 편이다. 얼굴은 길고 이마에는 주름살이 깊이 파였으며,

자비로운 눈매, 우뚝 선 콧날, 잔잔한 입가의 미소는 노스님의 인자한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여윈 몸에는 흰 바탕에 붉은 색과 녹색 점이 있는 장삼을 입고 그 위에 붉은 바탕에 녹색 띠가 있는 가사를 걸치고 있는데

그 밑에 금색이 드러나는 것으로 미루어 원래 모습에는 금빛이 찬연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생략할 곳은 과감히 생략하고 강조할 곳은 대담하게 강조하여 노스님의 범상하지 않은 위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서

인간적인 따뜻한 정감을 느낄 수 있다.

만들어진 연대는 고려 초인 930년경 이전으로 추정되며, 진영 조각의 진수를 가장 잘 묘사함으로써

10세기 중엽 조각 가운데 최고의 걸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유일한 승려의 진영 조각이라는 점에서도 미술사적 가치가 큰 작품이다.

 

 

법회가 있을 때 법회를 하는 강당이다. 작고 좁지만 알찬 곳 희랑대

스님께서 6월 쯤 공양간 공사를 들어간다고 하시던데 좁은 절벽위에 지어진 건물, 늘릴 곳도 없고,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바위에서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獨聖(독성)의 영험이 깃든 기도처 希郞臺(희랑대) 전경

 

 

희랑대에서 본 건너편에 있는 지족암

지족암(知足庵)은 신라말과 고려초에 걸쳐 살았던 고승 희랑(希郞)대사의 기도처로 본디 이름을 도솔암이었다.

 

 

희랑대에서 본 지족암

 

 

희랑대(希朗臺)

 

 

獨聖殿 懸板(독성전 현판)

 

 

獨聖殿(독성전) 주련

那畔神通世所稀(나반신통세소희) = 나반존자 신통력은 세간에서 찾아보기 힘드나니,

行藏現化任施爲(행장현화임시위) = 나타나고 사라지며 교화하심 마음대로 베푸시네.

松巖隱跡經千劫(송암은 적경천겁) = 솔숲사이 바위틈서 비밀스레 천겁이나 지내시며,

生界潛形入四維(생계잠형입사유) = 중생계에 은밀하게 파고들어 사방으로 가득하네.

 

 

 

 

등 긁는 나반존자 벽화

 

 

이번 6월부터 공사에 들어간다고하시는 공양간

 

 

 

 

도반이신 거사님과 보살님

 

 

 

희랑대 주지스님이신 경성스님이시다.

 

 

오늘은 희랑대 계시는 경성스님께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점점 모습이 희랑대사와 닮아가고 계시네요._()()()_

 

 

해인사 성보박물관  =   건칠희랑대사좌상  : 보물 제 999호   시대 : 고려

소재지 =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해인사 (치인리)

희랑조사(889년~956년)는 통일신라시대 말기부터 고려시대 초기까지 활동한 해인사의 고승으로 화엄학의 대가이며,

그는 화엄 북악파(北岳派)의 종주(宗主)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가 후 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공을 세웠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 조각상은 우리나라에는 유래가 많지 않은 실존했던 승려의 목심건칠 초상조각으로 노스님의 반듯한 모습이 꾸밈없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은 나무 표면에 올이 고운 삼베를 붙이고 다시 그 위에 채색하였는데 제작연대는 고려시대 10세기 중엽으로 추정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심건칠 초상조각 으로 제작기법이나 당시의 불상양식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조각상은 국내 최고(最古)의 목심건칠 좌상으로 상의 반듯한 모습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살아계시는 듯 생동감이 있다.

 

 

陜川 海印寺 乾漆希朗大師坐像(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  보물 제 999호     시대 = 고려

해인사 조사였던 고려시대 희랑대사의 진영상(眞影像)으로 경상남도 합천의 해인사에 모셔져 있다.

고려 건국 당시 해인사 승려들은 견훤을 지지하는 남악파(南岳派)와 왕건을 지지하는 북악파(北岳派)로 나뉘어 있었는데

희랑은 북악파의 종주(宗主)였다. 이 상은 화엄종 북악파의 진면목을 적절하게 묘사하여 화엄종의 진리를 무언(無言)의 형상을 통해서

지금까지 끊임없이 설법하고 있는 우리나라 초상의 최고 걸작이다.

앞쪽은 건칠기법으로 뒷쪽은 나무로 제작한 이 상은 체구에 비해 머리가 다소 큰 편이다. 얼굴은 길고 이마에는 주름살이 깊이 파였으며,

자비로운 눈매, 우뚝 선 콧날, 잔잔한 입가의 미소는 노스님의 인자한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여윈 몸에는 흰 바탕에 붉은 색과 녹색 점이 있는 장삼을 입고 그 위에 붉은 바탕에 녹색 띠가 있는 가사를 걸치고 있는데

그 밑에 금색이 드러나는 것으로 미루어 원래 모습에는 금빛이 찬연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생략할 곳은 과감히 생략하고 강조할 곳은 대담하게 강조하여 노스님의 범상하지 않은 위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서

인간적인 따뜻한 정감을 느낄 수 있다.

만들어진 연대는 고려 초인 930년경 이전으로 추정되며, 진영 조각의 진수를 가장 잘 묘사함으로써 10세기 중엽 조각 가운데

최고의 걸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유일한 승려의 진영 조각이라는 점에서도 미술사적 가치가 큰 작품이다.

사진출처 = 문화재청 사진

 

 

독성전에 계시는 나반존자님이시다.

이 나반존자님은 그 기도 영험이 불가사의하다고 한다.

 

 

那畔尊者(나반존자)

 

 

성보박물관 =  해인사  =  나반존자(那般尊者) 희랑대 독성각  :  제질 : 목불상

삼성전(三腥殿)에 모셔진 독성님은 그 영험이 불가사의 하다고 해서 기도처로 퍽 유명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도를 닦아 깨달음을 증득하여 연각의 지위에 있는 분을 독성(獨聖)이라  하며

나반존자나 빈두로존자 또는 빈드로 파라타 존자로 불리워지는 부처의 제자 16나한 중의 한 분으로

사찰에서는 독성각(獨聖閣)에 모셔지며 산신. 칠성과 함께 삼성각에 모셔지기도 한다.

 

변함이 없이 운행되는 우주의 법칙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며, 삼명(三明)과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능력을 지녔다. 

삼명은 전생을 꿰뚫어 보는 숙명명(宿明明) 미래를 보는 천안명(天眼明) 현세의 번뇌를 끊을 수 있는 누진명(漏盡明)을 말 한다.

이러한 능력으로 자리이타, 곧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므로 중생의 공양을 받게 되었다.

 

나반존자는 이와 같이 과거 현제 미래의 모든 일을 꿰뚫어 알고 남을 이롭게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 말법시대의 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준다는 생각에 억불정책의 조선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의 귀의처가 되었다.

"언제나 선정에 들어서 응공함이 한량없어 정성껏 기도하하여 소원을 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 그 소망을 성취시켜 주며

능히 천 가지 재난을 소멸하고 만가지 덕을 성취케 하여 준다" 하여  조상들의 극진한 공양을 받아왔다.

 

인도의 나반존자이지만 나반존자를 섬기는 나반신앙은 남방불교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테베트 등에서도

 전혀  보이지 않는 한국불교 툭유의 신앙형태로 사찰내의 별도 전각에 오셔져  신앙되어왔다. 

 

 

독성전에 모셔져 있는 산신탱

 

 

 

칠성탱

 

 

地藏菩薩(지장보살)과 희랑대사상은 스님이 계시는 종무실에 모셔져 있다.

 

 

希郞臺 地藏菩薩(희랑대 지장보살) 

 

 

 

 

성보박물관  =  해인사  =  조사도(祖師圖)  : 시대 : 조선후기 1892년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과 이정 스님과 가운데 계신분이 희랑대사라고 합니다.

 

세분 스님의 모습을 나한도(羅漢圖) 형식으로 그린 독특한 그림이다. 가운데 인물은 희랑조사로 조사상과 같이 가슴에 구멍이 나있게 그려졌다.

세분의 조사들 뒤에는 천녀(天女)와 천동(天童)이 시립(侍立)하고 있는데 스님들보다 작게 표현되었다.

광서(光緖) 18년 임진(壬辰年 1892년) 윤 6월 1일에 조성되어 해인사의 해행당(解行堂)에 봉안되었다는 화기를 지니고 있다.

 

◈화기 : 광서십팔년임진윤육월초십조성우해인사봉안우해행당 

光緖十八年壬辰閏六月初十造成宇海印寺奉安宇解行堂

 

 

희랑대

 

 

희랑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