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북도 = 천년!.. 감동..그리고.

통영 미래사 = 미륵의 섬에 미륵 부처님이 오실 절이라는 뜻에 미래사(彌來寺)

백련암 2014. 7. 3. 17:53

이곳은 미륵도라는 섬이다. 미륵의 섬에 미륵부처님 오실 절이라는 뜻에 미래사(彌來寺)

미래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미래사는 효봉스님의 상좌였던 구산스님이 석두, 효봉 두 큰스님의 안거를 위해 지었다고 한다.

 

미래사는 근세의 큰 스승이셨던 효봉대종사(曉峰大宗師)를 모시기 위해 서기 1954년 갑오년에 전 승보종찰 방장 구산종사(九山宗師)께서

두어칸의 토굴을 지었으니 미래사의 시작이다.

 

효봉스님이라는 큰 그늘에는 항시 눈푸른 수행자, 삶의 길을 묻는 신자들이 끊이질 않았다. 제자로는 구산, 일각, 법홍, 보성, 원명, 박완일,

고은 등 헤일 수 없음이요 당시 출가한 이로는 수신, 구암, 법정등이셨다.

 

면면히 이어져온 미래사를 오늘의 모습으로 중창하신분은 서기 1996년에 입적하신 자항당(慈航堂)종욱회상(宗旭和尙)이셨다.

하나의 도량을 일군다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귀한 일인가 30여년 동안 네동을 짓고 헐었으며 1986년에 대웅전을 중건하고 뒤이어 1988년에

삼층석탑을  1989년에 요사 2채와 삼회문을 짓고 1994년에 범종각을 세웠다고 합니다.

 

종각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십자팔작누각이며 삼층석탑속에는 티벳트에서 모셔온 부처님의 진신사리 3과가 봉안되어 있다고 합니다.

절입구에는 석두, 효봉 두 큰스님의 부도탑과 사리탑비가 서있고 그 아래쪽에 효봉스님이 만년에 안거하시던 토굴과 미륵석불이 있습니다.

 

특히 아자형(亞字 십자팔작누각)의 범종루는 보기드문 형태의 수작으로 꼽힌다.

 

 

미래사 표지석

미래사 입구 여기서 조금 걸어 들어갑니다. 미래산 정상에서도 내려오다보면 미래사로 내려가는 길이 표시되었습니다.

좀 가파르기는 하여도 주변경관이 너무 좋아 내려올만합니다.  미래사를 가고자 할 때는 케블카를 편도로 끊으셔야 합니다.

용화사와 미래사<남쪽에 있는 절>는 정 반대편에 서로가 있고 미래산 정상에서 모두 내려가는 길이 있습니다.  

 

 

彌來寺(미래사) 현판

 

 

미래사 현판에 백중을 기해 금난방(禁亂房)을 써 붙이셨습니다. 안에는 삼회도인문(三會度人門)이란 글도 써 있습니다.

三會度人門(삼회도인문)이란 : "미래에 오실 미륵불이 삼회에 걸쳐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미래사 안 쪽에서 바라본 입구

 

 

삼회도인문(三會度人門)

 "미래에 오실 미륵불이 삼회에 걸쳐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도솔영당(도率影堂)

도솔영당 = 석두스님과 효봉스님, 중창주인 인 종욱스님등 아홉 스님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① 白雲寶洪禪師 眞影(백운보공선사 진영)    ② 龍嶽慧堅禪師 眞影(용악혜견선사 진영)    ③ 白荷晴旻禪師 眞影(백하청민선사 진영)

 

㉠ 九山秀蓮禪師 眞影(구산수연선사 진영)     ㉡ 石頭寶澤禪師 眞影(석두보택선사 진영)     ㉢ 曉峰學訥禪師 眞影(효봉학눌선사 진영)

 

앞에 놓인 전패의 글 : 悟證無生 隨緣行化 石頭大宗師 覺靈(오증무생 수연행화 석두대종사 각영)

전패(殿牌)란 : 사찰에서 기원문을 적고 공경과 예배를 드리기 위해 만든것이다.  

 

 

① 溪峰巖雨禪師 眞影(계봉엄우선사 진영)      ② 香峰香訥禪師 眞影(향봉향눌선사 진영)      ③ 華峰柳葉禪師 眞影(화봉류엽선사 진영)

 

 

진사리 보탑(眞身舍利寶塔)

하늘도 뚫를 듯이 힘찬느낌, 땅도 내려 누룰듯 우직하게 서 있는 석탑,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의 진신치아 사리가 모셔져있다.

 

 

진사리 보탑(眞身舍利寶塔)

 

 

 힐링의 공간. 미래사 편백림

 

숲은 치유의 공간이다.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데 숲만한 곳도 없다. 숲 중에서도 편백나무 숲을 으뜸으로 쳐준다.

몸에 좋은 피톤치드(phytoncide)가 많기때문이다.

편백나무에서 가장많이 나온다는 피톤치드는 1943년 러시아 태생의 미국 세균학자 왁스먼이 처음으로 발표한 말로,

러시아어로 "식물의"라는 뜻의 "phyton"과 "죽이다"라는 뜻의 cide가 합쳐진 것이다.

예로부터 삼림욕을 하면 식물에서 나오는 각종 항균성 물질을 이르는 피톤치드가 몸속으로 들어가

나쁜 병원균과 해충, 곰팡이 등을 없애는 구실을 한다는 속설이 전해져왔다.

실제 나무가 내 뿜는 피톤치드는 아토피나 피부질환, 스트레스 해소, 심폐기증 강화등의 효과적이라는 점이 각종 연구 논문에서 발표됐다.

 

 

미래사에는 편백나무 숲이 있습니다. 산책하기에도 너무 좋은 곳입니다.

 

피톤치드(phytoncide) 란 : 나무는 자신을 각종 세균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발산해내는 테르펜이라는 성분이 있으며

숲속의 향긋한 냄새를 만들어 낸답니다.

 

피톤치드 효과는 피톤치드를 몸에 받아 들이면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집중력과 기억력을 향상시킵니다.

피톤치드는 면역력을 높여주러 감기나 비염, 천식환자들에게 큰 힘을 발휘합니다.

식물고유의 피톤치드 향은 식품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통영에 가시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쯤은 가보았으면 합니다.

 

 

지나는 길에 팬션촌 마당에 놓인것을 찍어보았음

 

 

사천왕문 누각에 그려진 四天王象(사천왕상)들 

 

 

사천왕문 누각에 그려진 四天王象(사천왕상) 

서방 광목천왕(지불 용, 여의주)     북방 다문천왕(지물  보탑과 깃)

사실 사천왕에 대해서는 잘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다 지물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 그 또한 정확치가 않다.

어느사찰은 비파를 들고 계신분이 북쪽이라고 하고 어느 사찰에서는 동쪽이라하고 이런 부분에서 정확히 정리를 해 주었으면 한다.

 

 

 

 

 

 

사천왕문 누각에 그려진 四天王象(사천왕상)들 

 

 

동방 지국천왕(지물 비파)   남방증장천왕(지물 칼)

여기에 기록한 것은 불갑사 박물관에서 본 것을  쓴것이다.

 

 

 

 

 

 

원효대사 소를 타며 스님이 경전을 씀

 

신라시대에 불교에 관심이 많은 무열왕이 고승대덕(高僧大德)100명을 초청하여 인왕반야경 강설할 스님을 구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상주사람들) 원효대사(元曉大師)를 추천했다.
왕에게 경전(經典)을 강설(講說)할 스님이라면 불경을 깊이 공부한 학승(學僧)이 아니면 힘든 일이었다.


무열왕(武烈王)도 원효가 불경에 깊이 통달해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흔쾌히 허락하였으나, 원효대사를 시기 질투하는 스님들이

"원효는 스님으로서 요석공주와 파계(破契)하여 스스로를 소성거사(복성거사)라하며 저자거리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춤추고 노래(무애가)를 부르며

광대처럼 돌아다니므로 백고좌 대회에 끼일 자격이 없다"고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 백고좌법회에 끼이지 못하였다.


그 무렵 원효스님는 호거사에서 우연히 금강 삼매경이란 처음 보는 경을 연구하며 절의 허드렛일(부목)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이무렵 무열왕은 당나라에서 금강 삼매경(金剛三昧經)을 선물 받고 고승대덕들에게 연구하여 강론(講論)시키기로 마음먹고 황룡사에 대규모의

법회(法會)를 열도록 명하고 금강 삼매경을 강론할 스님을 찾던 중 대안(大安)스님이 원효(元曉)스님을 추천을 하였다.

원효스님은 몇날며칠을 꼬박 밤을 새며 금강 삼매경소5권을 백고좌 법회가 열리기 전날 밤 늦게 까지 완성하여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있던 중에

밤사이에 원효스님을 시기 질투하는 무리들이 책을 몽땅 훔쳐갔다.


드디어 날이 밝아 황룡사에서 대법회가 열리는 날 아침에 책이 없어진 것을 안 원효스님은 황룡사로 향하는 길에 소달구지를 타고 가면서

소머리에 난 양뿔 사이에 책상을 놓고 금강 삼매경소 5권을 줄여 3권의   책을 다시 써서 황룡사에 도착하였다.


황룡사법회에는 무열왕을 비롯한 문무백관들을 비롯한 고승대덕과 요석공주도 참석하였다. 
드디어 금강 삼매경 강론이 시작되자 원효대사를 시기 질투하던 고승대덕들도 그의 물 흐르듯 도도하고 매끄러운 강설에 저절로 찬양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법회를 대 성황리에 끝내고 마지막에 원효대사는

"지난날 나라에서 100개의 서까래를 구할 때는 그 속에 끼일 수 없더니 오늘 아침 한 개의 대들보를 '구하는 일에 나 홀로 끼이는 구나"라고

그 자리에 참석한 스님들을 향하여 뼈있는 훈계의 한마디를 하자
백고좌 법회에 참석하였던 고승대덕들은 부끄러워하면서 깊이 참회(懺悔) 하였다고 한다.

 

 

미래사 벽화로는 십우도가 그려져 있다.

 

 

 

 

 

 

 

 

 

 

 

 

 

 

 

 

 

 

설산동자(雪山童子)의 구법(求法) _부처님의 전생담에 관련된 벽화 

 

설산동자는 전생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수행하시던 시절의 이름으로 오로지 해탈의 도를 얻기 위해 가족도 부귀영화도 버리고 수행하고 있었다.

마침 이를 본 제석천은 설산동자의 이러한 뜻의 진심을 의심하였고, 그 의지를 시험하기 위해 무서운 나찰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諸行無常 是生滅法 (제행무상 시생멸법)” 이라는 게송의 반을 읊어 주었다.

 이세상의 모든 존재는 항상함이 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생하고 멸하는 우주의 법칙이다.
 

설산동자는 이 소리를 듣고 무한한 기쁨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사막을 헤매다 극적으로 구원자를 만난 기쁨과도 같았다.

‘확실히 이 세상 만물은 무상하며, 생하여 멸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는 하늘의 소리다.’

 

그는 급히 일어났다.    “저의 주위에 누가 계신지요?”

 

그러나 주위에는 무시무시한 나찰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설산동자는 나찰에게 물어보려고 앞으로 나아가,

“이 게송의 의미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한결같이  가르치는 바른 길입니다. 그런데 나찰이여, 당신은 어디서 이처럼 거룩한 게송을 들었습니까?”

 

“나는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며칠 동안 먹지를 못해 다만 배가 고플 뿐이다.

 이 게송은 허기와 갈증에 지쳐 그저 헛소리를 해본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내게  먹을 것을 달라.”

 

“나찰이여, 만약 그 게송의 전부를 알려 준다면 당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나머지 게송을 읊을 기력마저 없으니 더 이상 말을 시키지 마라.”

 

“그렇다면 무엇을 원하십니까?”

 

“나는 인간의 살과 피를 원한다.”

 

“잘 알았습니다. 제게 나머지 게송을 마저 들려주시면 이 몸을 당신의 먹이로 바치겠습니다.”

 

“아니, 그대는 오직 여덟 글자 때문에 자신의 몸을 바치겠다는 말인가?”

 

“흙으로 만든 그릇 대신에 칠보를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릇을 버릴 수 있듯이 나는 이 육신을 버려 부처님의 도를 얻고자 합니다.

당신은 왜 나를 믿으려 하지 않습니까? 모든 부처님께서 이를 증명해 주실 것입니다.”

 

정녕 그렇다면 내가 그 게송을 마저 들려주지.” 나찰은 드디어 엄숙한 표정이 되어 나머지 게송을 읊었다.

 

“生滅滅已 寂滅爲樂 (생멸멸이 적멸위락)”

그러므로 생하고 멸하는 것 마저 멸한다면,  고요하고 진정한 열반의 락을 얻게 되리라.

 

그리고 나서 나찰은 말했다.
“자, 그대의 원을 들어주었으니 이젠 당신의 육신을 내게 바쳐라.”
 게송의 반을  듣고 난 설산동자는 한없이 기뻐하며 이 시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바위나 돌, 나무, 등에 새겨두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그리고는 나찰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무 위에서 몸을 던졌다. 그러나 그의 몸이 땅에 채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의 몸을 받쳐주었다.

그가 놀라 쳐다보니 나찰로 변신하였던 제석천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설산동자의 몸을 사뿐히 땅에 내려놓은 제석천은 천신들과 함께 수행자의 발 아래에 엎드려 공손히 예배하였다.

 

 

십우도 벽사이 기둥에 그려 넣어진 부처님,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동자등의 불화들

 

 

석가모니 불

 

지장보살

 

관음도

 

여래불

 

기둥에 그려진 불화 동자가 피리를 불고 있음 심우도의 마지막 기둥의 그림

 

 

甘露水 현판 佛乳井(불유정)

 

 

甘露水 현판 佛乳井(불유정)

 

 

甘露水 현판 佛乳井(불유정)

감로수 현판에는 "불유정"이라 쓰여 있다. "생명의 근원이 물인 것처럼 인생의 근원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뜻을 가지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