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북도 = 心 산사 길없는길

익산시 여산면에 있는 남원사와 이리초교, 이리여고의 오층석탑, 쌍릉(무왕과 선화공주)

백련암 2014. 2. 21. 00:21

논두렁 사이에 연꽃밭과 함께 아담하게 위치한 도량, 익산 독자천 옆 남원사

 

통일신라시대인 831년(흥덕왕 6년)에 진감국사 혜소 스님이 법당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한다.

그 후의 연혁은 자세히 전하는 것이 없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폐사가 되었는데, 1591년(선조 24)에 남원부사 윤공이 부임차 남원으로 가던 중 이곳에 머물 때 꿈에 석불이 나타났다.

다음날 일어나 꿈속의 그곳을 파보니 석조연화대좌 위에 있는 미륵불상이 나왔고 석조거북과 오층석탑도 출토되었다.

이에 3칸의 법당을 짓고 이름을 남원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당시의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현재 절에는 실제로 탑비를 받치는 귀부 용도로 만든

석조 거북이 전한다.

 

근래에는 1946년에 한성이 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뒤 중건했다.

최근에 와서는 주지 혜돈 스님이 주석중인데, 스님이 오기 전에는 미륵전, 종각 및 지금의 대웅전 앞에 16평의 요사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가람 규모는 스님의 주석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 많다.

 

교구본사인 금산사 주지 월주 큰스님의 도움으로 7,250만원의 국가보조금을 받아 주지 혜돈스님이 8천만원의 자체 부담금을 들여

불기 2534년(서기 1990년)에 상량하고 불기 2536년(서기 1992년)에 건평 20.5평의 대웅전을 낙성하였다.

스님은 1992년 대웅전, 이듬해 요사채를, 그리고 1994년에는 해탈문을 새로 지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88호로 지정된 미륵전,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문화재로는 대웅전에 봉안된 석불좌상과  대웅전 앞의 다층석탑 1기가 있다.

석불좌상의 좌대는 중대석 각 면에 안상(眼像)을 조각하고 고사리무늬와 꽃봉오리무늬를 넣어 아름답게 꾸민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석불은 뒤에 새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다층석탑은 기단의 하부가 매몰된 상태로서 1층 탑신과 1층 옥개석까지는 원래의 것이고 그 이상의 것은 원형이 아니며,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절은 신라시대 사찰로 전하고 있으나 현존하는 사찰 내 유적이나 유물 가운데서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확인된 것은 아직 없다.

 

해탈문(解脫門)

1994년에는 해탈문을 새로 지었다. 절로 들어가는 문으로 되어있어 해탈문이 아닌 일주문 느낌이 든다.

 

 

해탈문(解脫門)  = 안 쪽에서 본 해탈문의 모습

 

 

종각(鐘閣)

1982년에 조성된 종각의 크기는 정면 1칸, 측면 1칸이고 사각 주초 위에 6각과 원형 두리기둥으로 지었으며

시멘트 기와를 지붕으로 이었다. 내부의 범종은 불기 2526(1982)년에 주성하였다.

 

 

종각옆에 있는 오층석탑

 

대웅전(大雄殿)

내부에는 석가삼존상을 모셨고, 불화로는 후불탱이 있고 그 좌우에는 산신탱과 칠성탱, 신중탱이 모셔져 있다.

 

 

법당내부 삼존상

주존불은 석가모니불좌상이 중앙에 있고, 그 좌우에는 지장보살좌상과 관음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전각 중앙에는 후불탱이 모셔져 있다. 이와 함께 불기 2526년에 금어 김연호(金沿昊)가  조성하였다.

 

 

신중탱(신중탱)

 

 

칠성탱(七星撑)

불기 2526년에 금어 김연호(金沿昊)가  조성하였다.

 

 

산신탱(山神撑)

불기 2526년에 금어 김연호(金沿昊)가  조성하였다.

 

 

 

 

요사채

 

 

미륵전(彌勒殿)

 

현재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88호로 지정되어 있다. 내부의 닫집아래에 미륵석조상을 두었으며 석조좌대가 있다.

나한탱은 불기 2964년에 그려서 봉안한 것이다. 예전에 봉안되어 있다고 하는 1937년에 그린 영산회상탱은 현재 소재를 알 수 없다.

 

 

미륵전

 

 

미륵전 석불좌상(彌勒殿 石佛坐像)

 

방형의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의 얼굴은 결실되었고 지금의 상호는 뒤에 새로 모신 것임을 직감할 수 있을 정도로 몸 전체와 불균형을 이룬다.

방형대좌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있는데 법의는 통견이지만 가슴과 오른쪽 어깨를 거의 드러내고 있어 마치 편단우견처럼 보인다.

왼손은 가슴에 대고 보주를 든 모습으로 금물로 도색되었으며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을 짓고 있다.

 

대좌는 네모난 방형좌로 하대석과 중대석만 남아 있고 상대석이 없어 그 대신 판석을 마련해 그 위에 불상을 안치했다.

하대석은 두겹 연꽃의 앙련으로서 연화대 위에 3단의 중대받침이 있고 그 위에 굽형의 받침이 있다.

중대석은 방형으로 각면마다 안상을 배치하였는데, 앞면에는 안상 내부에 꽃잎 장식을 조각했다.

 

 

미륵전 신중탱화(神衆撑)

 

 

미륵전 석불좌상(彌勒殿 石佛坐像) 옆면

 

 

오층석탑(五層石塔)

 

전체적으로 파괴가 심하게 되어 지대석도 없고 탑식도 일부 자연석을 활용하였던 것을 1988년 보수, 정비하고

그 옆에 보수한 내용을 적은 빗돌을 세웠다.

지대석은 보수 할 때 새로 만들었는데 2매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 면석은 1매석으로 우주와 탱주를 새겼다.

갑석은 상면이 볼록한 형태이며 1단의 탑신받침을 새겼는데 몰딩한 흔적이 보인다.

1층 탑신도 1매석으로 우주를 새겼는데 갑석의 탑신받침과 잘 맞지 않아 본래는 1층 탑신이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1층의 옥개석은 파손이 심한데 3단의 옥개받침이 낮게 새겨져 있고, 전각의 반전은 거의 없다.

2층부터의 탑신석은 모두 새로운 부재로 보수하였으나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

2층 이상의 옥개석은 본래의 부재이며 1층 옥개와 같은 형태이다. 위층으로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작품으로 생각된다.

 

 

 

 

◆이리초등학교와 이리여고의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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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동오층석탑(이리여자고등학교) 익산시 향토유적 제 12호

소재지 = 전북 익산시 남중동 201-5

 

익산시 향토유적 제 12호인 남중동 5층석탑은 전라북도 익산시 남중동 이리여자고등학교 화단에 있는 석탑이다.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2003년 11월 5일에 익산시 향토유적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절터에 있던 것을 이리여자고등학교 화단으로 옮겨왔다고 전하고 있다.

전체높이는 2.74m이다. 1층은 탑신 폭 47cm, 높이 10cm이며, 5층은 탑신 폭 24cm이다. 

높이와 너비 등에서 작고 아담한 느낌을 주며, 모서리가 풍상에 깍여 닳은 모습을 보여 준다.

 

기단부는 2매의 지대석 위에 1매의 각각의

면석과 갑석으로 이루어졌고 기단 갑석이 1층 옥개석 폭만큼 줄어들어 안정감이 적어지는 고려시대 석탑에서 보이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탑신부는 5층으로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1매석으로 구성되었고 각 층의 면석에는 도드라지게 우주(모서리기둥)를 모각하였으며,

1층 탑신석에 비하여 위층의 탑신의 높이가 크게 줄어들지 않아 비교적 안정된 느낌을 준다.   

옥개석은 3층의 층급받침이 있으며 낙수면과 우동마루의 경사는 심하지 않으나 옥개석의 합각에서는 반전을 이루어 경쾌한 느낌을 준다.

5층 옥개석 위에는 노반과 앙화(仰花), 수연이 함께 표현된 듯한 큼직한 상륜부가 놓여있다.

상륜부는 1매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보통 노반과 앙화 위에 복발이 놓이는 것과 달리 복발 대신 수연과 같은 구조물이 놓여 있는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작고 아담한 느낌의 남중동오층석탑   남중동오층석탑은 높이와 너비 등에서 작고 아담한 느낌을 주며,

모서리가 풍상에 깎여 닳은 모습을 보여준다.

혹시 산속의 작은 절 입구에 있었다면 어울릴 듯한 모습이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석탑으로는 익산시 마동 260-2번지의 이리초등학교의 정원에도 하나가 있다.

이 탑은 모양이나 크기로 보아 남중오층석탑과 매우 유사하다.

 

 

5층 옥개석 위에는 노반과 앙화(仰花), 수연이 함께 표현된 듯한 큼직한 상륜부가 놓여있다.

상륜부는 1매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보통 노반과 앙화 위에 복발이 놓이는 것과 달리 복발 대신 수연과 같은 구조물이 놓여 있는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남중동오층석탑은 전라북도 익산시 남중동 이리여자고등학교 화단에 있는 석탑이다.

 

 

남중동오층석탑이 있는 전라북도 익산시 남중동 이리여자고등학교 교문

 

 

이리초교의 오층석탑

이리초등학교의 정원에 있는 탑은 모양이나 크기로 보아 남중오층석탑과 매우 유사하다.

 

 

 

 

◈익산 쌍릉

 

익산쌍릉은 백제말기 굴식 돌방무덤으로 1963년 1월 21일에 사적 제87호로 지정되었다.

봉분이 동서로 약 200m의 사이를 두고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의 능은 ‘대왕뫼’라 불리며, 서쪽의 능은 ‘소왕뫼’라 불린다.

내부는 모두 부여 능산리 고분 돌방과 같은 형식으로, 백제 말기인 7세기 전반의 형식이며

부근의 미륵사지가 백제 무왕 때 창건되었음을 감안하면 이 능은 무왕과 왕비의 능묘일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국경을 초월한 아름다운 사랑, 1400년을 지난 이 순간도   익산시 석왕동에 자리하고 있는 굴식 돌방무덤이다.

2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약 150m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그 중 크고 북쪽에 있는 무덤은 ‘말통대왕릉’ 또는 ‘대왕릉’으로 불리어지고 있으며,

남쪽에 있는 규모가 약간 작은 능은 ‘소왕릉’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의 ‘말통’은 서동의 이름인 마동이 잘못 전하여 진 것이라고 한다.

 

이 무덤은 고려 충숙왕 13년 왜구의 노략질로 인하여 여러 차례 도굴되었는데 1917년 일인학자에 의하여 발굴이 실시되었다.

이 무덤의 형식은 크기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부여 왕릉이 자리하고 있는 능산리 굴식 돌방무덤과 같은 형식의 판석제 굴식 돌방무덤이다.

조사된 사실로 미루어 사발형 토기 1점을 제외하고는 유물은 도굴 당하였으나, 

나무널은 복원하여 국립전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이와 같은 무덤은 백제에 있어서 7세기 전반기에 나타나는 무덤양식으로 백제 무왕의 미륵사지의 창건이나

왕궁평성의 조성과 관련지어 본다면 백제 무왕과 그 부인인 선화비의 무덤일 가능성이 많은 곳이다.

 

 

쌍릉(雙陵)중에 무왕의 묘소임 사적 제 87호

 

이 능은 대왕릉(大王陵)이다. 백제 말기 무왕(武王 600年 ~ 641年)의 능으로 추정되며, 좌향은 남향이다.

1917년 발굴조사 결과에 의하면 원형의 봉토(封土) 주위에는 호석(護石)을 두른 흔적이 있으며,

내부에는 석실(石室)이 마련되어 있다.

 

대왕릉의 현실은 장방형으로 벽은 화강암 판석을 다듬어세웠으며 천정과 벽 사이에 육각형의 말각부재(抹角部材)를 끼워 구축하였다.

현실 중앙에는 화강암의 관대(棺臺)가 있는데,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모양으로 그 위에 둥근뚜껑을 덮은 목관이 놓여 있었다.

 

 

익산 쌍릉 사적 제 87호라고 쓰여있음

 

 

 

 

소왕릉(小王陵)

이 소왕릉은 선화공주(善花公主)의 능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