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암은 여느 기도도량과는 달리 역사가 긴편은 아니다 고종 9년(1872년)에 고상진(高尙鎭)이라는 거사가 창건했으니 이제 130여 년 남짓 법등을 이어왔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자리잡은 삼각산 삼성암(三聖庵)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의 직할사찰이다.
1872年(고종 9年) 고상진(高商鎭)거사가 창건하고, 창건 초기에는 소난야(小蘭若)라고 불렸던 삼성암은
"우리나라 중부제일의 독성기도 도량"으로 유명하다.
삼각산 "힘있는 지세(地勢)"의 최꼭지점에 있는 삼성암은 독성(獨聖)의 상주처로 이름난 대웅전을 중앙에 두고 독성각과 칠성각이 좌우에 자리잡은
유서 깊은 도량이다. 전국서 영험좋기로 유명한 삼성암은 질병에 걸린자, 병을 낫게 해주고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몸 달아하는 이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줌으로써, 마침내 좋은 결과를 얻도록 돕는다.
해인사 주지를 역임하셨고 현재 삼성암 회주이신 세빈스님(현 원심원사 주지)이 1970년대초부터 지대한 기도와 원력으로 시작한
중창불사가 세칸인 법당을 오늘날 대한민국 제일의 독성 기도도량으로 거듭나도록 했다.
오늘도 삼성암에 오르면 삼각산 온 사방에 염불소리 독경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퍼진다.
삼성암의 청건 연기는 1943년에 태흡(泰洽) 스님이 폭우로 무너진삼성암을 중건하면서 지은〈화계사 삼성암 중건기(華溪寺 三聖庵 重建記)에
자세히 적혀있다.〈중건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수록돼 있다.
한양에 살던 신도 박선묵(朴先默)거사는 16세에 발심하여 불교에 귀의하였다. 그는 한양의 신도 유성종(劉聖鍾), 서윤구(徐潤龜), 고상진(高商鎭),
이원기(李元基), 장윤구(張潤九), 유재호(留在護) 등 7인의 신도와 함께 고종 7年(1870年) 봄에 현재의 사찰이 있는 화계사 뒤
천태굴(독성이 수도하던 곳이 남인도 천태산이다)에서 3일 동안 지성껏 독성기도를 드렸다.
정성을 다한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천태굴 아래 반석에서 잠깐 쉬게 되었다.
이때 박선묵(朴先默)이 고상진(高商鎭)에게 말했다.“나 같은 범부의 눈으로 보더라도 이곳은 그윽하여 아주 빼어난 신령스런 구역이라 할 만합니다.
만약에 암자 하나를 지어 두셋 도반과틈을 내어 참배하며 때로는 기도하고 때로는 양성도 한다면 이 어찌대장부로서 통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암자를 짓자는 박선묵의 말에 고상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창건을 논의한 몇년 뒤, 기도했던 그곳에 고상진 거사가 1872년 봄 여러칸의 정사(精査)를 짓고, 이름을 작은절이라는 뜻에서 "소난야"로 명명했다.
그 뒤 임신년(1872) 봄에 고상진이 몇 칸의 정사를 얽어 `소난야(小蘭若)'라는 현판을 걸고 부근의 산지를 사들여 사유로 삼았다.
박선묵은 고상진의 행동에 느낀 바 있어 10년 뒤인 신사년(1881)년에 독성각을 새로 짓고 절 이름을 지금의 삼성암으로 바꾸었다.” 이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삼성암은 박선목(朴先默)의 발의로 고상진(高商鎭)이창건한 재가불자들의 소박한 수행도량이었다. 삼성암은 천태굴이라는기도처를 기반으로 해서 창건된 사찰이다. 이와 관련해 진호 석연(震湖 錫淵) 스님은 〈봉은본말사지(奉恩本末寺誌)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도선 스님이 삼각산을 살펴보다가 암자 뒤에 있는석굴에 이르러 그 기이함을 매료되어 여러 달 동안 머물렀다.
이 때문에 후세에 일반인들이 스님의 자취를 추모하여 석굴에서 기도하거나 숨어 수행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때로는 암자터에 몇간의 초가집을 지었던 적도 있었는데, 어느 세월엔가 빈터가 되었다.”여기에서 말하는 석굴이 `천태굴'이다.
천태굴에서 도선 스님이 수행했다는 전설을 사실 그대로 믿기는 어렵겠지만 삼성암이 창건 이전부터 기도도량으로 유명했던 곳임을 말해주는
기록이라 할 것이다.삼성암은 창건 이후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소박한 기도도량으로 경영되었던 것 같다.
1936년 봄에 동운 스님이 칠성각과 요사채를 개축·수리하고 돌다리를 놓았는데, 〈중건기〉에 “이 때에 이르러 삼성암이 암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암은 암자로서의 면모를 갖춘지 몇 년 지나지 않아 홍수로 폐허가 되고 만다.
1942년 7월의 일이었는데, 동이를 쏟아붓듯이 내린 비에 계곡물이넘쳐 휩쓸려 오는 흙과 돌에 절이 무너졌다.
태흡 스님은 이때의 상황을 〈중건기〉에 “맑은 밤이면 부처님의 이마 위로 별들이 빛나고 비오는 때면 신중탱화에 물이 흐르니
한갖 사람들만 슬퍼할 뿐만 아니라 神들도 울었으며, 山이 찡그리고 시내가 울부짖기에 이르렀다”고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화계사 주지였던 회경(會鏡) 스님이 삼성암에 주석하던 중현(重玄) · 성섭(性攝)스님 등과 중건을 발원해 절을 일으킨다.
삼성암은1961년부터 성공 · 세민 스님의 노력으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됐다.이미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삼성암은 운문사 사리암과 함께
대표적인 독성기도 도량이다.
독성(獨聖)은 나반존자(那畔尊者)라고도 한다. 나반존자는 부처님으로부터 혼자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수기를 받고 남인도천태산에서
혼자 道를 닦아 연각(緣覺)을 성취했기 때문에 `독성'이라고도 일컫는다.
독성은 말세 중생의 복덕을 위해 출현했기 때문에 복을 희구하는 신도들의 경배대상이 된다고 한다.
삼성암은 그 명성에 걸맞듯 기도 후 병을 고쳤다거나 아들을 낳았다거나 하는 등의 수많은 영험담이 전해오고 있다.
안팎 곱사등을 치료한 임수동씨의 영험담도 그 중의 하나다. 충남 공주에 미곡상을 하는 임선달이라는 사람에게는 수동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 병이 들어 곱사등이가 되었다. 임선달은 아들의 병을 고쳐주고자 이곳저곳 알아 보았지만 병이 깊어갈 뿐이었다.
하루는 친척 중의 한 사람이 찾아와 “성현께 정성을 들여보는 것이어떻냐”고 권유해 삼성암에서 50일 간 독성기도를 드렸다.
50일째 되던 날도 임수동은 밤 늦도록 나반존자를 부르며 기도를 드리다 잠이 들었다. 꿈 속에서 한 소년이 찾아와 임수동을 어떤 노인에게 데리고 갔다.
노인은 넓은 반석 위에 앉아 색동옷을 입은 18명의동자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임수동이 절을 하자 장애인인 것을위로해 주며
소매 속에서 금과 은으로 만든 침을 꺼내 가슴과 등에 놓았다. 노인은 침을 놓은 후 “한달 후에는 병이 완쾌될 것이니 속히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임수동은 노인에게 무수히 예배하다 깨었는데, 이후로 매일 눈에 띌 정도로 몸이 자유로워져 한달 후에는 완전히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임수동이 나은 것을 보자 삼성암에 있던스님들과 대중들이 “부처님과 나반존자님의 위신력이 대단하다”며 찬탄했다.
[법보신문 이창윤 기자]
매표소를 지나자 삼성암의 이정표가 나타난다.
삼성암으로 가는 길입니다. 평평한것같은데 올라가다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108배하는것보다 더 땀이 났네요
북한산국립공원 안내도
다 왔네요 앞에 일주문이 보입니다.
일주문에 걸어놓은 연등이 너무 예쁩니다.
그런데 여기 일주문 현판은 삼성암이 아닌 삼성사라고 되었네요 어찌된일인지...
삼각산 삼성사란 현판
本空堂 性學大禪師(본공당 성학대선사) 사리탑
보광당 중현대선사비(寶光糖 重玄 大禪師碑)
비구 만월당 현종종사탑(比丘滿月堂玄宗宗師塔)
각 부분별 세밀도
화계사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탑들이 화려하면서 조형물들이 많이 조각되어있다.
삼성암 경내들 들어가는 입구이다.
종무실 건물
명부전(冥府殿)
지장전(地藏殿) 혹은 명부전(冥府殿) = 가운데 지장보살님만 모시고 그 주위로 단을마련하고 영구위패를 모셨다. 많은 영구위패들이 안치되어있다.
도리천(道利天)에서 석가여래의 부촉을 받고 매일 선정(禪定)에 들어가 중생들의 근기를 관찰하며 석가, 미륵 두부처님 시대의 중단 부처님이 없는
세계에서 육도(六道)중생을 교화하는 대비보살님이시다.
편안하여부동(安忍不動[안인부동])함이 대지(大地)와 같고 삼매가 깊고 세밀함은 (靜0深密[정0심밀])함은 비장(秘藏)과 같으므로 지장(地藏)이라고 한다.
지장보살은 당장 성불을 이룰수가 있으나 중생들의 제도를 위하여 성불을 미루고 계시는 보살님이시다.
지옥의 문앞에서 지옥중생들이 안타까워 울고계신다는 보살님으로 특히 참회를 할 때 의지하여 기도하면 가피가 좋다.
지장본원경(地藏本願經)에『현재와 미래의 하늘과 사람 대중들을 내가 지금은근히 너에게 부촉하니 대신통방편(大神通方便)으로 제도하여
모든 악한세계에 떨어지지 않도록하라』고 하셨다.
▶주 련◀
地藏大聖 威神力(지장대성위신력) = 지장보살 대성인의 위신력은
恒河沙 劫薛亂眞(항하사 겁설난진) = 끝없는 세월동안 말해도 다 할 수 없네
見問 瞻禮 一念間(견문첨례일념간) = 보고 듣고 우러러 한 생각 도안만이랄도 예를 올리면
利益人天 無量事(이익인천무량사) = 인천의 한량없는 일들에 이익이 되게 하시네
범종각
근년에 새로지어진 종각이 수려하다.
범종
범종의 용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입상(觀世音菩薩立像)
궁중 청신녀 공덕비 = 상궁 청신녀 윤씨 실상행 헌답기념비(尙宮 淸信女 尹氏 實相行 獻畓紀念碑)
상궁 청신녀 윤씨 실상행 헌답기념비(尙宮 淸信女 尹氏 實相行 獻畓紀念碑)
성모각(聖母閣), 칠성각(七星閣) 이렇게 두가지 이름의 현판이 걸려있다. 대웅전 옆에 있음
성모각(聖母閣), 칠성각(七星閣) 이렇게 두가지 이름의 현판이 걸려있다.
칠성각엔 성모각(聖母閣)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주원영(朱源榮)가사의 글씨이다.
칠성각 벽화 호랑이가 그려져 있음
칠성각 뒤편 바위에 뭐라 씌어있는데 너무 많이 마모가 되어 알아볼 수가 없다.
산신탱
칠성각에 모셔진 산신탱화는 1908년 석옹 철유(石翁喆裕)스님이 출초(出草)하고, 두흠(斗欽), 윤오(允旿)스님 등의 화승(畵僧)이 참여해
삼각산 수국사에서 그려진 것을 삼성암으로 옮겨왔다 한다.
호랑이에 기대앉은 백발노인의 근엄한 모습이나 천연스럽게 누워 있는 호랑이의 표현 등이 특히 뛰어나다.
칠원성군
대웅전
5칸으로 된 다포팔작집이며 약 40평 청기와집이다. 내부에는 수려한 닷집 아래 중앙에 아미타불과 좌우 관세음, 지장보살등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사이에는 지금 삼존불이 모셔지기 전 본존불이던 자그마한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 내부
이 부처님은 6.25때 심원사(지금의 윈심원사 : 소재지가 예전에는 강원도 철원군이었으나 지금은 경기도 연천군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었음)가
불타게되자 거기 살던 스님들이 천불전에 있던 부처님을 업고 피난하여 모셔오게 된 것이라고 한다.
삼존불 양쪽으로 아미타 천불이 봉안되어 있따. 법당 서북방향에 있는 독성각을 향해 기도할 수 있도록 투명유리를 설치한 독성단도 마련되어 있으며
신중목각탱화도 봉안되어 있고 영단도 성치되어있다. 육중한 연화무늬문짝들도 일품이다.
▶주 련◀
天上天下 無如佛(천상천하 무여불) = 천상천하에 부처님같은 분이 없어서
十方世界 亦無比(시방세계 역무비) = 온 세계에서 비교할 자가 없으니
世問所有 我盡見(세문소유 아진견) = 세상의 모든 것을 내가 다 보아도
一切無有 如佛者(일체무유 여불자) = 정말로 부처님 같은 분이 없네
독성각(獨聖閣)
삼성암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다. = 홀로 머무는 성자라는 뜻을 가진 독성(獨聖) "나반존자"를 모시고 있다.
남쪽의 청도 운문사(雲門寺)사리암과 더불어 중부지방의 독성기도 영험도량으로 유명하다.
독성나반존자 예찬
三角山上 獨修禪定 那般尊者(삼각산상 독수선정 나반존자) = 삼각산위에서 홀로 선정을 닦고 계시는 나반존자
天上人間 應供福田 那般尊者(천상인간 응공복전 나반존자) = 천상과 인간들의 공양을 마땅히 받아복밭이 되시는 나반존자
不入涅槃 待俟龍華 那般尊者(불입열반 대사용화 나반존자) = 열반에 들지 않고 미륵세계를 기다리며 중생을교화하시는 나반존자
※☆나반존자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몸과 마음을 재계하여야 하고 공양물도 제대로 갖추어야하며 정성도 지극히 기울여야 한다.
특히 자식을 얻고자하는 사람이나 대입을 비롯한 각종시험원만합격 그리고 취직 및 진급소원자들에게 기도 가피가 많다.
독성각
삼성암 전경
향기가 너무 좋아 찍어 보았다. 녹차 나무는 아닌것 같고 뭔지는 모르나 향이 너무 좋다.
그런데 꽃은 녹차꽃과 비슷하게 생겼다. 녹차꽃 보다는 좀 크고 약간 길죽하다.
이것은 불두화가 아닌 수국인데요...
등과 야생화
삼성암에서 나와 좌측길을 따라 올라가면 칼바위 능선이 나오는가 보다 가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 이정표=
화살표 따라 약 20분정도 길 따라 가면 화계사 경내가 나온다 산 오솔길이 너무 예뻐 걸을만하다.
◈찾아가는 길
지하철 = 1호선은 동대문역, 2, 5호선은 동대문 역사 문화공원에서 4호선으로 환승 → 3번출구로 나옴 → 바로 마을버스 정류장있음
이 곳에서 마을버스 강북 03번을 타고 빨래골정류장하차 종점이기도 함 → 종정 하차하여
도보 약 10분정도 올라가면 일주문 보임 셔틀이 있기는 한데 걸어올라가 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 찾아가기 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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