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이야기=고려외

국립중앙박물관 = 금관 과 허리띠, 꾸미개장식들

백련암 2014. 5. 22. 16:15

 

금관과 허리띠(金冠 · 金製腰帶,[금제요대])

국보(國寶) 제 191 · 192호    시대 : 삼국시대(三國時代) 신라(新羅) 5세기(五世紀)

금관(金冠) = 높이 27.3cm,  지름 17.0cm, 무게 1062g,     허리띠(腰帶) = 120cm,  무게 919g     출토지 = 경주 황남대총(慶州 皇南大塚)

금관과 허리띠는 신라의 황금문화와 최고의 금속 공예기술을 보여준다.

 

금관(金冠)에는 나무, 사슴뿔, 그리고 새 등의 요소가 담겨져 있는데, 나무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것으로 왕을 상징한다.

사슴뿔의 형태는 시베리아 지역 샤먼(Shaman)이 사용하는 모자에 등장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나무와 사슴뿔모양의 세움 장식에는 비취의 열매와 황금잎이 달린 듯 곱은 옥과 달개가 달려있어 신라의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준다.

금관은 얇은 금판을 오려서 만들었기 때문에 머리에 쓰고 활동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허리띠(腰帶)는 가족허리띠를 장식하였던 금속의 띠꾸미개만 남아있다. 드리개에는 물고기모양, 주머니모양, 쪽집게, 곱은 옥 등이 달려있는데,

고대 북방 유목민족들이 생활에 필요한 작은 도구들을 허리에 찼던 풍습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

 

 

최근에 특별전시가 있어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옴

 

 

                                                                   금관과 허리띠(金冠 · 金製腰帶,[금제요대]) = 5년전 사진

 

 

국보(國寶) 제 191 · 192호    시대 : 삼국시대(三國時代) 신라(新羅) 5세기(五世紀)

금관(金冠) = 높이 27.3cm,  지름 17.0cm, 무게 1062g,     허리띠(腰帶) = 120cm,  무게 919g     출토지 = 경주 황남대총(慶州 皇南大塚)

 

금관과 허리띠는 신라의 황금문화와 최고의 금속 공예기술을 보여준다.

 

 

 황남대총 북분 금관 (皇南大塚北墳 金冠)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금관이다.

신라 금관을 대표하는 것으로 높이 27.5㎝, 아래로 늘어뜨린 드리개(수식) 길이는 13∼30.3㎝이다.

이마에 닿는 머리띠 앞쪽에는 山자형을 연속해서 3단으로 쌓아올린 장식을 3곳에 두었고, 뒤쪽 양끝에는 사슴뿔 모양의 장식을 2곳에 세웠다.

푸른 빛을 내는 굽은 옥을 山자형에는 16개, 사슴뿔 모양에는 9개, 머리띠 부분에 11개를 달았다.

또한 원형의 금장식을 균형있게 배치시켜 금관의 화려함을 돋보이게 하였다.

아래로 내려뜨린 드리개는 좌·우 각각 3개씩 대칭으로 굵은 고리에 매달아 길게 늘어뜨렸다.

바깥의 것이 가장 길고, 안쪽으로 가면서 짧아진다. 장식 끝부분 안쪽에는 머리띠 부분과 같은 푸른색 굽은 옥을 달았고,

바깥쪽에는 나뭇잎 모양의 금판을 매달았다. 발견 당시 금관과 아래로 내려뜨린 드리개들이 분리되어 있었다.

이 금관은 신라 금관의 전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어느 것보다도 굽은 옥을 많이 달아 화려함이 돋보이고 있다.

 

 

국보(國寶) 제 191 · 192호    시대 : 삼국시대(三國時代) 신라(新羅) 5세기(五世紀)

금관(金冠) = 높이 27.3cm,  무게 1062g,     허리띠(腰帶) = 120cm,  무게 919g     출토지 = 경주 황남대총(慶州 皇南大塚)

 

 

금관(金冠)국보(國寶) 제 191 · 192호    측면

 

금관(金冠)국보(國寶) 제 191 · 192호 반대쪽

 

금관(金冠)국보(國寶) 제 191 · 192호  정면

 

 

 

부분세밀도 

 

 

 

 

 

 

 

 

 

 

금관에는 나무, 사슴뿔, 그리고 새 등의 요소가 담겨져 있는데, 나무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것으로 왕을 상징한다.

사슴뿔의 형태는 시베리아 지역 샤먼(Shaman)이 사용하는 모자에 등장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나무와 사슴뿔모양의 세움 장식에는 비취의 열매와 황금잎이 달린 듯 곱은 옥과 달개가 달려있어 신라의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준다.

금관은 얇은 금판을 오려서 만들었기 때문에 머리에 쓰고 활동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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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皇南大塚 北墳 金製 銙帶)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의 북쪽 무덤에서 발견된 금 허리띠(과대)와 띠드리개(요패)이다.

황남대총은 남 · 북으로 2개의 봉분이 표주박 모양으로 붙어있다.

과대는 직물로 된 띠의 표면에 사각형의 금속판을 붙인 허리띠로서 길이 120㎝, 띠드리개 길이 22.5∼77.5㎝이다.

28장의 판(板)으로 만들어진 이 허리띠는 주위에 있는 작은 구멍들로 미루어 가죽같은 것에 꿰매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허리띠 아래에 매달려 있는 13개의 띠드리개는 경첩으로 허리띠와 연결하였다.

이 허리띠와 띠드리개는 출토될 당시 상태가 아주 좋아서, 착용법과 띠드리개의 배치순서를 아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부분세밀도

 

 

 

 

 

 

 

 

 

 

 

 

 

 

 

 

 

 

 

허리띠는 가족허리띠를 장식하였던 금속의 띠꾸미개만 남아있다. 드리개에는 물고기모양, 주머니모양, 쪽집게, 곱은 옥 등이 달려있는데,

고대 북방 유목민족들이 생활에 필요한 작은 도구들을 허리에 찼던 풍습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

 

 

금동관(金銅冠)  :  시대 = 삼국시대(三國時代). 신라(新羅)   변종화(卞鍾夏) 기증 문화재

 

변종하(卞鍾夏, 1926年~ 2000年)선생은 광복 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을 한 서양화가였다.

1955년 당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부통령상을 수상하였으며,  이는 선생의 예술세계에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후 대학에서 후진양성을 하다 1960년 프랑스로 건너가 그림을 공부하였다.

선생은 한국적 이미지에 대한 탐구를 통해 담백하고 세련된 작품 세계를 구축하여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이러한 선생의 문화탐구는 우리 문화재의 사랑으로 이어져 1998년에 애장해 오던 금동관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였다.

 

 

금동관(金銅冠)  :  시대 = 삼국시대(三國時代). 신라(新羅)  

 

금동관(金銅冠)  :  시대 = 삼국시대(三國時代). 신라(新羅)  

 

 

 금제관모(金製冠帽) 금관 모 : 시대 =  삼국시대 중 신라 5세기(三國時代 新羅 5世紀)  무게 139g 重 139g

출토지 = 경북 경주 금관총(慶北 慶州 金冠塚)

 

맞새김무늬가 있는 여러 장의 금판을 연결하여 만든 화려한 모자이다. 남성의 머리 위에 쓰는 것으로, 주로 관꾸미개와 셋트로 출토된다.

금관과 함께 지배자를 상징하는 위세품의 하나이다. 금제관모는 모자의 모양이기는 하나 머리에 직접착용하기에는 작기때문에

가죽 혹은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모자의 윗부분을 장식한 용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금제관모(金製冠帽) 금관 모 = 반대방향 면의 모습

 

천마총에서 발견된 신라 때 모자이다. 와 비슷하다.<위의 사진은 경주 금마총에서 발견된 것이다.>

금모(金帽)란 높이 16㎝, 너비 19㎝인 금으로 만든 관(冠) 안에 쓰는 모자의 일종으로 널<관(棺)> 바깥 머리쪽에 있던 껴묻거리(부장품)

구덩이와 널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각각 모양이 다른 금판 4매를 연결하여 만들었는데, 위에는 반원형이며 밑으로 내려갈수록 넓어진다.


아랫단은 활처럼 휘어진 모양으로 양끝이 쳐진 상태이고 윗단은 눈썹 모양의 곡선을 촘촘히 뚫어 장식하고 사이사이 작고 둥근 구멍을 뚫었으며,

남은 부분에 점을 찍어 금관 2장을 맞붙인 다음 굵은 테를 돌렸다. 그 밑에는 구름 무늬를 뚫어 장식하였고

또 다른 판에는 T자형과 작은 구멍이 나 있는 모양의 금판이 있다. 머리에 쓴 천에 꿰매어 고정시킨 후 썼던 것으로 보인다.

천마총은 경주 고분 제155호 무덤으로 불리던 것을 1973년 발굴을 통해 금관, 팔찌 등 많은 유물과 함께 천마도가 발견되어 천마총이라 부르게 되었다.

 

 

 

 

금제 조비익형 관식(金製 鳥翼形 冠飾) 금관 꾸미개  : 보물  제630호,  시대 =  삼국시대 중 신라 5세기(三國時代 新羅 5世紀)

 출토지 = 경북 경주 황남대총(慶北 慶州 皇南大塚) 

 

관모에 끼워 장식하는 것으로, 새 날개의 모양을 본 떠 만든 것이다. 양쪽 날개에는 수많은 달개가 달려 있어 화려하게 날아갈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황남대총 남분 금제 관식 (皇南大塚 南墳 金製冠飾)

황남대총 남분 금제 관식(皇南大塚南墳 金製冠飾)은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되었다.

황남대총은 2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표주박 모양으로 붙어 있다.

이 관식은 황남대총 남쪽 무덤에서 발견되었으며, 높이 45㎝, 날개 끝 너비 59㎝의 크기이다. 3매의 금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운데 금판은 위에 3개의 돌출된 부분이 있어서 전체가 山자 모양을 하고 있다.

아랫부분은 차츰 좁아져서 V자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이 가운데 금판 좌우에 새 날개 모양의 금판을 작은 못으로 연결하였다.

전면에 작은 원형 장식을 달았으나 가운데 금판 밑의 관(冠)에 꽂게 된 부분에는 장식이 없다. 관 장식의 가장자리에는 작은 점을 찍어 처리하였다.

가운데 금판은 세로 중심선에서 안으로 약간 접은 상태여서, 밑의 뾰족한 부분을 무엇인가에 꽂았으리라 생각되지만,

평소에 썼던 관의 일부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금제화식(金製華飾) 금제 드리개  : 시대 =  삼국시대 중 신라 5세기(三國時代 新羅 5世紀)

 출토지 = 경북 경주 황남대총(慶北 慶州 皇南大塚) 

 

여러 모양의 금제 드리개 들  금령총 출토 금관과 금 허리띠의 크기가 작은 편이기 때문에 어린왕자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금관이나 금허리띠에 붙어있던 금드리개들

 

 

   

금제화식(金製華飾) 금제 드리개  : 시대 =  삼국시대 중 신라 5세기(三國時代 新羅 5世紀)

 

 

금동관(金銅冠) :  시대 = 삼국시대(가야)5세기(三國時代 加耶 五世紀)  

출토지 = 경북 고령 지산동(慶北 高靈 池山洞)

 

 

금동관(金銅冠) :  시대 = 삼국시대(가야)5세기(三國時代 加耶 五世紀) 옆면 

 

 

금관(金冠) : 삼국시대(가야)5세기(三國時代 加耶 五世紀) = 출토 당시의 모습

출토지 = 전 경남 창녕(傳 慶南 昌寧)

 

 금관(金冠) : 삼국시대(가야)5세기(三國時代 加耶 五世紀) = (복제품)복원된 모습

출토지 = 전 경남 창녕(傳 慶南 昌寧)

 

 

금동관(金銅冠) : 삼국시대(가야) 5세기(三國時代 加耶 五世紀)

출토지 =  경북 성주 가암동(慶北 星州 伽岩洞)

 

 

 

 

금동관모(金銅冠帽)

 

금동관모(金銅冠帽)는 신분을 상징하는 꾸미개로 우월한 지위를 가진 사람의 무덤에서 주로 출토된다. 

형태는 둥근 고깔 모양으로 모자의 뒷부분에 대롱모양의 장식을 달거나, 앞 또는 뒷부분에 화려한 장식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러한 형태의 금동관모는 공주 수촌리, 서산 부장리, 천안 용원리, 익산 입점리, 나주 신촌리, 고흥 길두리 등 백제의 영역뿐만 아니라

가야와 일본 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어 주목된다.

금동관모(金銅冠帽)는 금동신발 · 중국 도자기 등의 고급물품과 함께 부장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것들은 백제가 마한의 세력을 통합해가는 시기의 유적에서 주로 확인되고 있다.

 

 

 금동관모(金銅冠帽) : 시대 = 삼국시대 중 백제 5세기(三國時代, 百濟 5世紀)

출토지 = 충남 공주 수촌리 무덤(忠南 公州 水村里 墓)

 

 

 

 

  화염 문투각 금동보관(火炎 文透彫 金銅寶冠) 금동 불꽃 맞새김무늬 관  : 시대 = 삼국시대 중 고구려 5-6세기(三國時代, 高句麗 5-6世紀) 

출토지 = 평양시 대성구역(平壤市 大成區域)

 

 

금동관식(金銅冠飾) 금동 깃털모양 관 꾸미개 :  시대 = 삼국시대 중 고구려 5-6세기(三國時代, 高句麗 5-6世紀)

 

 

산형장식(山形裝飾) 산모양 관 꾸미개 : 시대 = 삼국시대 중 고구려 5-6세기(三國時代, 高句麗 5-6世紀) 

 

고구려의 금동관(高句麗의 金銅冠)

고구려의 사람들은 신분에 따라 다른 모양의 관을 착용하였다. 고구려의 관인(官人)은 절풍(折風)이나 소골(蘇骨)이라 불리는

고깔 모양의 관에 새깃 2개를 꽂고 금테나 은테를 섞어 둘렀다.

지안(集安) 일대에서 출토된 고구려의 금동관 꾸미개는 두껍게 도금된 상태로 대개 세움장식 가장자리를 촘촘히 오려낸 다음 하나씩 꼬아 새의 깃털처럼

표현하고 세잎무늬(三葉文)등을 맞새김해 장식하였다.

개마총 벽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쓰고 있는 관 꾸미개의 형태가 이와 비숫하다.

이런 고구려의 관과 꾸미개는 금 · 은제 귀걸이와 허리띠 장식. 금동 신발 등과 함께 고대 국가 지배 계층의 신분과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물이었다.

 

 

 금동투조장식(金銅透彫裝飾) 금동 맞새김무늬 꾸미개 : 시대 =  삼국시대 중 고구려 5-6세기(三國時代, 高句麗 5-6世紀) 

출토지 =  평양 진파리 무덤(平壤 眞坡里 墓)

 

 

 금동봉황장식(金銅鳳凰裝飾) 금동 봉황모양 꾸미개 :  시대 = 삼국시대 중 고구려 5-6세기(三國時代, 高句麗 5-6世紀)

평북 운산 용호동 무덤(平北 雲山 龍湖洞 墓) 

 

 

무령왕릉 출토 유물(武寧王陵 出土遺物)  :  시대 = 삼국시대 중 백제 6세기(三國時代 百濟 6世紀)

 

왕비의 관꾸미개는 얇은 금판에 인동당초 무늬(忍冬唐草 文)와 불꽃무늬(火焰文)를 맞새김 하였는데,

대칭형의 구도로 되어 있으며 달개는 달려 있지 않다.

문헌기록이나 출토 위치 등으로 미루어 검은 비단으로 만든 관모에 꽂았던 장식품으로 파악되고 있다.

 

 

 

 

 

 

무령왕릉 출토 유물(武寧王陵 出土遺物)  :  시대 = 삼국시대 중 백제 6세기(三國時代 百濟 6世紀)

 

왕비의 관꾸미개는 얇은 금판에 인동당초 무늬(忍冬唐草 文)와 불꽃무늬(火焰文)를 맞새김 하였는데,

대칭형의 구도로 되어 있으며 달개는 달려 있지 않다.

문헌기록이나 출토 위치 등으로 미루어 검은 비단으로 만든 관모에 꽂았던 장식품으로 파악되고 있다

 

 

 

 

 

 

金冠(금관)

 

금관총 금관은 신라 금관 중 가장 먼저 발견된 것이다. 금관에는 띠 모양의 관테에 나뭇가지 모양과 사슴뿔 모양의 장식이 세워져 있는데,

장식의 앞면에는 122개의 달개와 57개의 굽은 옥이 달려 있다. 세움 장식의 가장자리에는 한줄의 연속점무늬, 관테에는 파도무늬가 새겨져 있다.

관테에는 한 쌍의 드리개가 달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새모양 관 꾸미개(鳥翼形冠飾) : 국보 제 87호 금

 

 

새모양 관 꾸미개(鳥翼形冠飾) 옆모습 : 국보 제 87호 금

 

 

새모양 관 꾸미개(鳥翼形冠飾)반대쪽 모습 : 국보 제 87호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