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문 청동기 (農耕文 靑銅器) 뒷면 : 보물 제1823호, 시대 = 철기시대 즉 청동기시대 BC 4세기
출토지 = 전 대전 괴정동(傳 大田 槐亭洞)
‘농경문 청동기(農耕文靑銅器)’는 한 면에 밭을 일구는 남성과 새 잡는 여성, 다른 한 면에는 나뭇가지 위에 새가 앉아 있는 장면을 새긴,
청동 의기(儀器)로 추정되는 유물이다.
하반부가 결실되었으나 같은 시기의 다른 청동기와 달리 당대의 생업과 신앙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화사적 가치가 높다.
남성이 밭을 일구는 장면은 한 해가 시작되는 초봄에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의례 가운데 파종을 나타낸 것으로,
조선 후기 함경도, 평안도 지역에서 행해졌던 나경(裸耕), 혹은 기경속(起耕俗)을 연상시킨다.
그 하단의 인물은 가을에 추수하는 여성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되고,
그 옆 여성의 앞에 놓여있는 항아리는 초기철기시대의 흑도장경호(黑陶長頸壺)의 모습이다.
뒷면에서 보이는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 모양 조각은『삼국지(三國志)』「한전(韓傳)」, 『후한서(後漢書)』등에 나오는 소도(蘇塗, 솟대)와
우리나라 민간신앙에 나타나는 신간(神竿)을 표현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신간숭배 신앙은 우리나라와 시베리아 지방에 널리 분포하였던 습속으로 인간의 영혼을 저승으로 안내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농경문 청동기의 주문양은 양각으로 새겼고 각 면의 테두리 문양 등은 음각으로 새기고 있어 고리를 매단 방식과 함께
상당히 복잡한 주조법으로 제작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농경문 청동기는 앞선 청동주조 기술을 바탕으로 기존의 청동기에서는 볼 수 없는 풍부하고도 생생한 문화상을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농경문 청동기 (農耕文 靑銅器) 앞면 : 보물 제1823호,
‘농경문 청동기(農耕文靑銅器)’는 앞면에 솟대를, 뒷면에는 농경 의례(農耕儀禮)를 표현한 청동 의기(靑銅儀器)로서
생산과 풍요를 비는 의식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면의 새가 나뭇가지 위에 앉은 모습은 농촌 마을의 솟대를 연상시킨다. 뒷면에는 사람이 항아리에 무언가를 담고 있거나.
머리에 긴 깃이 달린 모자를 쓴 사람이 따비로 밭을 가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벌거벗은 모습을 상징하듯 성기가 노출되어 있다.
밭고랑 아래에는 또 한 사람이 괭이를 치켜든 장면이 있다.
앞 · 뒷면
금제교구(金製鉸具) 허리띠 고리 : 출토지 = 평양 석암리 9호 무덤(平壤 石巖里 9號墳)
금판위에 수천 개의 금 알갱이들을 붙였고, 큰 용 1마리가 중앙에서 꿈틀거리고, 그 주위로 6마리의 작은 용이 바짝 붙어 있다.
53.9g(14>3ehs)의 순금으로 만든 허리띠 고리이다.
현악기(絃樂器) 복제품 = 출토지 : 광주 신창동(光州 新昌洞) 1992年 발굴
유공광구소호(有孔廣口小壺) 구멍단지 : 시대 = 삼국시대 중 백제 7세기(三國時代 百濟 7世紀)
출토지 = 전남 나주 복암리 무덤(全南 羅州 伏岩里 墓)
몸통 중앙에 구멍이 뚫려있는 그릇이다. 주로 제사와 같은 의례에서 구멍에 대롱을 곶아 돌려가며 내용물을 마시는데 쓰였다.
유공광구소호(有孔廣口小壺) 구멍단지 : 시대 = 삼국시대 중 백제 7세기(三國時代 百濟 7世紀)
양이반구병(兩耳盤口甁) : 시대 = 삼국시대 중 백제 5세기(三國時代 百濟 5世紀)
출토지 = 충남 공주 수촌리 무덤(忠南 公州 水村里 墓)
양이반구병(兩耳盤口甁) : 시대 = 삼국시대 중 백제 5세기(三國時代 百濟 5世紀)
흑갈유병 黑褐由四耳甁(흑갈유사이병) : 시대 = 삼국시대 중 백제 6세기(三國時代 百濟 6世紀)
출토지 = 충남 공주 무령왕릉(忠南 公州 武寧王陵)
흑갈유병 黑褐由四耳甁(흑갈유사이병) : 시대 = 삼국시대 중 백제 6세기(三國時代 百濟 6世紀)
금동식리(金銅飾履) 금동신발 : 시대 = 삼국시대 중 백제 5세기(三國時代 百濟 5世紀)
출토지 = 전북 고창 봉덕리 1호분(全北 高敞 鳳德里 1號墳)
백제 중앙 정부는 흡수 · 통합한 지역의 수장들에게 금동관모, 금동신발, 고리자루칼, 중국도자기 등을 내려주며 그들이 적극적인 협조와
충성을 요구 하였다. 고창 봉덕리 1호 무덤 4호 돌방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용무늬와 봉황무늬 등이 투조된 것으로서
이 무덤이 고창지역 최고 수장층의 무덤임을 보여준다.
금동식리(金銅飾履) 금동신발 : 시대 = 삼국시대 중 백제 5세기(三國時代 百濟 5世紀)
백제금동대향로(百濟 金銅 大香爐) : 국보 제 287호 시대 = 삼국시대(백제) 6~7세기(三國時代 百濟 6~7世紀)
출토지 =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
약 62cm에 달하는 높이의 백제금동대향로(百濟 金銅 大香爐)는 뚜껑과 몸체, 받침으로 이루어진 향을 피우던 도구 입니다.
뚜껑의 맨 위에는 날개를 활짝 편 한 마리의 봉황이 있고, 뚜껑의 표면에는 74개의 산봉우리와 상상의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봉황의 가슴에는 2개의 구멍을, 산봉우리 뒷쪽에는 10개의 구멍을 뚫어 향이 피어오르도록 하였다.
몸체에는 3단으로 연꽃잎을 배치하였으며, 각종 동물들을 조각하였습니다.
받침에 표현된 용은 하늘로 올라갈듯 한 자세로 몸체를 받치고 있습니다.
백제금동대향로(百濟 金銅 大香爐) : 국보 제 287호
문화재청의 소개글
백제 나성과 능산리 무덤들 사이 절터 서쪽의 한 구덩이에서 450여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높이 61.8㎝, 무게 11.8㎏이나 되는
대형 향로로, 크게 몸체와 뚜껑으로 구분되며 위에 부착한 봉황과 받침대를 포함하면 4부분으로 구성된다.
뚜껑에는 23개의 산들이 4∼5겹으로 첩첩산중을 이루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피리와 소비파, 현금, 북들을 연주하는 5인의 악사와
각종 무인상, 기마수렵상 등 16인의 인물상과 봉황, 용을 비롯한 상상의 날짐승, 호랑이, 사슴 등 39마리의 현실 세계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다.
이 밖에 6개의 나무와 12개의 바위, 산 중턱에 있는 산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폭포, 호수 등이 변화무쌍하게 표현되어 있다.
뚜껑 꼭대기에는 별도로 부착된 봉황이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 날개를 편 채 힘있게 서 있는데, 길게 약간 치켜 올라간 꼬리의 부드러움은
백제적 특징이라 하겠다. 봉황 앞 가슴과 악사상 앞뒤에는 5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몸체에서 향 연기를 자연스럽게 피어오를 수 있게 하였다.
몸체는 활짝 피어난 연꽃을 연상시킨다. 연잎의 표면에는 불사조와 물고기, 사슴, 학 등 26마리의 동물이 배치되어 있다.
받침대는 몸체의 연꽃 밑부분을 입으로 문 채 하늘로 치솟 듯 고개를 쳐들어 떠받고 있는 한 마리의 용으로 되어 있다.
이 향로는 중국 한나라에서 유행한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은 듯 하지만, 중국과 달리 산들이 독립적 · 입체적이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창의성과 조형성이 뛰어나고 불교와 도교가 혼합된 종교와 사상적 복합성까지 보이고 있어
백제시대의 공예와 미술문화, 종교와 사상, 제조기술까지도 파악하게 해 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동곳 銅串(동관) : 시대 = 고려 동곳= 남자의 상투를 고정하는 도구
좌측 銀製鍍金 佛經函(은제도금 불경함) : 시대 = 고려
우측 金銅製 舍利甁(금동제 사리병) : 시대 = 고려 10~11세기 출토지 = 전남 영암 도갑사 부근 탑(全南 靈岩 道岬寺 附近 塔)
참외 모양 연적 瓜形 硯滴(과형 현적) : 시대 = 고려
梅甁(매병) : 시대 = 고려
竹文扁 甁(죽문편 병)대나무 무늬 편병 : 최영도 기증
竹文扁 甁(죽문편 병)대나무 무늬 편병
靑磁 瓢形注子(청자 표형 주자)청자 조롱박 모양 주전자 : 시대 = 고려 12세기 *남궁련 기증
鬼面靑銅爐(귀면청동로)짐승 무늬 얼굴 풍로 : 국보 제 145호 시대 = 高麗時代 * 남궁련 기증
귀면청동로는 높이 12.9㎝로 솥 모양의 몸체(훈구부)를 받침부(기대부)가 받치고 있는 모습이며, 몸체에 도깨비 얼굴을 형상화시켜 놓았다.
몸체의 윗부분인 입구는 3개의 삼각형 모양이 솟아 있고, 몸체 양 측면에는 각각 2개의 고리가 붙어 있다.
그 고리에 손잡이 장식을 달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아랫부분은 잘록해지면서 받침부와 붙어 있다. 잘록한 부분에는 도깨비 얼굴을 크게 새기고, 입을 뚫어서 바람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받침부 밑에는 괴물을 조각한 3개의 다리가 붙어 있다. 외형은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으나 솥 안쪽에 불덩이를 받쳤던 불 받침판이 없어졌다.
모양은 향로와 비슷하지만 몸체에 바람이 들어가는 통풍구를 뚫은 것이 풍로나 다로(茶爐)로 사용된 듯하다.
金銅菩薩 立像(금동 보살 입상) : 시대 = 統一新羅時代 7世紀(통일신리시대 7세기) * 서상호 기증
白磁 象嵌 樹木文甁(백자 상감 수목문 병) : 시대 = 조선 15세기 * 동원 이홍근 기증
白磁 象嵌 樹木文甁(백자 상감 수목문 병)
조상의 얼굴들
正德 五年銘 舍利具(정덕 오년명 사리구) : 시대 = 조선 1510年
발우(鉢) : 시대 = 시미즈 난잔(淸水 南山 1875年 ~ 1948年)
甲胄(갑주[투구])( 紺絲威胴丸[감사위동환]) 갑옷과 투구 중 투구만 찍음 *일본 에도 시대 19세기
甲胄(갑주[투구])( 紺絲威胴丸[감사위동환]) 갑옷과 투구 중 투구만 찍음
靑磁 多口甁(청자 다구병) : 시대 = 용천요(龍泉窯) 원나라 14세기 초반 *신안해저 출토
좌측 靑磁 점花草花文兩耳甁(청자 점화초 화문 양이 병) 청자 풀꽃 무늬 병 : 시대 = 용천요(龍泉窯) 원나라 14세기 초반 *신안해저 출토
중앙 靑磁兩耳牧丹文花甁(청자 양이 모란문 화병)청자 모란무늬 꽃병 : 시대 = 용천요(龍泉窯) 원나라 14세기 초반 *신안해저 출토
우측 靑磁陽刻蓮唐草文兩耳甁(청자 양각 연당초문 양이 병)청자 연꽃 넝쿨 무늬 병 : 시대 = 용천요(龍泉窯) 원나라 14세기 초반 *신안해저 출토
앞에서 마주보았을 때의 위치임
靑銅 鼎(청동 솥) : 시대 = 元나라 14世紀 초반 출토지 = 1984년 신안 해저 출토
靑磁 獅子形 硯滴(청자 사자형 연적) ; 시대 = 고려 918年 ~ 1392年)
靑磁 堆花 蓮花唐草文 注子(청자 퇴화 연화당초문 주자) 옆면 : 시대 = 고려 12~13세기 *이홍근 기증
청자 퇴화 연꽃 넝쿨무늬 주자.
靑磁 堆花 蓮花唐草文 注子(청자 퇴화 연화당초문 주자) = 정면
白磁 靑彩 蟠龍飾 墨壺(백자 청채반룡식 묵호) : 시대 = 조서 19세기 *동원 이홍근 기증
「소유영빈지인」명귀뉴은보(「昭裕暎嬪之印」銘龜鈕銀寶) : 시대 대한제국(大韓帝國) 1899年 이후
「소유영빈지인[昭裕暎嬪之印]」이라 새겨진도장. 금속 = 은 98% 구리 1%임
영조 후궁 영빈 이씨 인장 = 동원 이 홍근 기증
해룡도(海龍圖) : 작가 미상(作家未詳) 종이에 색[紙本彩色]
파도와 구름이 뒤섞인 가운데 청룡과 황룡이 녹색 여의주를 가운데 놓고 서로 포효하고 있는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한 작품이다.
필선이 활달하고 파도와 구름에는 음영을 넣어 묘사하였다. 특히 파도와 함께 화면 아래쪽 좌우에는 두 마리 용 사이에 일어난 물보라들을
호분으로 표현하였는데, 이는 용의 돌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민화풍의 작품이지만 섬세한 묘사와 표현력에서 수준 있는 화가의 작품임을 짐작해볼 수 있다.
金銅菩薩 立像(금동 보살 입상) : 시대 =
靑磁蓋罐(청자개관)연꽃모양 뚜껑 단지 : 越窯(월요) 시대 = 北 宋나라(960年 ~ 1127年)
파도 · 꽃 무늬 병(白地黑花波濤草花文甁[백지 흑화 파도초화문 병]) : 시대 = 元나라 14世紀, 초반 출토지 = 吉州窯(길주요)
靑花 花果文執壺(청화화과문집호)꽃 · 과일무늬 주전자. : 시대 = 明나라 永樂 1403年 ~ 1424年 (명. 영락)
장소 = 景德鎭窯(경덕진요)
靑花 花果文執壺(청화화과문집호)꽃 · 과일무늬 주전자.
白釉黑剔花纏枝 牡丹文梅甁(백유흑척화전지 모란문매병) : 玆州窯(자주요) 시대 = 北 宋나라 (북송, 960년~1127년))
청화백자 병 : 시대 = 레 왕조, 15세기 *한국박물관협쇠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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