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이야기=고려외

국립 전주박물관 = 2

백련암 2016. 3. 18. 23:43

 

『理藪新編[이수신편]』중 「韻學本源[운학본원」

한자(漢字)의 운(韻)을 분류하여 일정한 순서로 배열한 운서(韻書)의 일종이다. 『理藪新編[이수신편]』권 20에 수록되었다.

황윤석은 여기에 훈민정음과 관련되 내용도 소개하였다. 즉 "세종대왕훈민정음본 문자모(世宗大王訓民正音本 文字母)"라 하여

훈민정음의 23자모와 신경준(申景濬)의 36자모를 통합하여 표로 설명하였다.

또한 초성(初聲, 음절의 구성에서 처음 소리인 자음), 중성(中聲, 음절의 구성에서 중간 소리인 모음),

종성(終聲, 음절의 구성에서 마지막 소리인 자음),을표로 구성하였다.

 

理藪新編(이수신편)  :  黃胤錫(황윤석, 1729년~1791년    시대 = 1943년

이수신편은 1774년(영조 50년)에 황윤석이 편찬한 23권의 백과사전식 과학서이다.

이수란 사물의 이치를 담은 총체 즉,이학(理學)의 총채, 물리연원(物理淵源)을 뚯한다.

이 책은 권 1에서 권 20까지 태극도(太極圖), 이기(理氣)등을 수록하였고,

권 21에서 권 23까지는 수학과 관련한 주학입문(籌學入門), 주학본원(籌學本原)을 수록하였다.

 

이재 황윤석(이제  黃胤錫)

황윤석(黃胤錫, 1729년~1791년)은 고창 출신의 조선 후기 실학자이다.

어려서 부터 우주의 사물과 현상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학문적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이는 『頣齋亂藁[이재난고]』,『理藪新編[이수신편]』,『恣知錄[자지록]』등 그가 남긴 다양한 저술의 바탕이 되기도 하였다.

그의 학문은 실학(實學)의 학풍을 이어 받은 것인데 특히 사물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폭넓은 학문 세계를 추구하였다.

성리학과 이학(理學) 연구에 힘썼고, 북경을 거쳐 전해진 서양의 지식을 수용하여 이를 조선 사회에 소개하기도 하였다.

특히 그의 이학은 기존 이학과 서구의 새지식과의 조화를 시도한 것으로 주목된다.

※頣 = 눈크게 뜨고 볼 신, 혹은 턱 이字

 

 

『理藪新編[이수신편]』 중 「日月[일월]」

이수신편에는 천문 · 역법 등 동서고금의 여러 가지 학설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일월 중에는 간평의(簡平儀)를 제작한

이탈리아인 선교사 웅삼발(熊三拔, P. S, De Ursis : 1575년~1620년)이 소개되었다.

간평의는 천문관측 및 계산도구로 지구의 적도면과 평행인 가상 지점에서 바라본 천체 모습을 평면화한 것이다.

이는 "지구설(地球說)", "정기법(定期法)" 등 당시 서구 천문학의 주요 요소를 담고 있는데,

 조선에서는 1718년 관상감에서 제작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황윤석이 일찍부터 서구의 천문 · 역법에 깊은 관심과 이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文人畵 屛風(문인화 병풍) :  李定稷(이정직, 1841년~1910년)     시대 = 조선 19세기  비단에 먹과 엷은 색(絹本水墨 · 淡彩[견본수묵 · 담채)

좁고 긴 10폭의 화면에 대나무 · 소나무 · 매화 · 모란 · 연꽃 · 파초 · 국화 · 괴석 등을 그렸다.

화면이 좁아 구도가 단조롭지만 나무줄기 등을 비스듬하게 배치하여 변화를 주었다.

괴석(怪石)처럼 먹의 농담(濃淡)만으로 표현한 작품도 있지만, 댓잎이나 매화는 녹색, 흰색, 붉은색으로 칠해 산뜻하게 보인다.

또한 화면의 빈 공간에 유려한 필치로 남긴 글은 이정직이 서화(書畵)에 능했음을 보여준다.

 

石亭 李定稷(석정 이정직)

李定稷(이정직, 1841년~1910년)은 김제 출신으로 이기(李沂, 1848년~1909년), 황현(黃玹, 1855년~1910년)과 함께 조선 말기

호남 유학을 대표하는 학자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전념하여 사학(四學, 성리[性理], 시학[詩學], 천력[天曆], 산수[算數])과

실학(實學), 서화(書畵)에 통달한 대학자가 되었다.

 

1868년부터 1년 동안 청나라에 체류하면서 서양 학문과 중국 최신 학문을 두루섭렵하였다.

그는 조선시대의 고전적인 학문체계를 근대적인 학문체계로 전환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뿐만 아니라 서예와 묵화(墨畵)로도 이름이 높았으며, 전북의 근대 화단을 형성한 서화가들을 길러낸 인물로도 평가 받는다.

 

 

이정직 글씨 = 李定稷 書(이정직 서) : 李定稷(이정직, 1841년~1910년)    시대 = 조선 19~20세기   종이에 먹(紙本墨畵[지본묵화])

이 병풍은 중국 송(宋나라)의 육유(陸游), 명(明나라)의 심응(沈應), 당(唐나라) 허혼(許渾)의 시를 이정직이 옮겨 쓴 것이다.

이정직은 학문뿐만 아니라 서화(書畵)에도 통달한 대학자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글씨는 구양순(歐陽詢), 미불(米芾), 동기창(董其昌), 안진경(顔眞卿), 서체에 능숙하였고 그림은 채색화보다는 묵화(墨畵)에 뛰어났다.

특히 그는 전북의 근대화단을 형성했던 조주승(趙周昇), 송기면(宋基冕)과 같은 제자들을 길러낸 인물로서도 평가받는다.

 

1~2폭 = 陸游(육유, 1125년~1210년) <初夏野興[초하야흥]>

여러 줄 저수량(楮遂良) 서첩을 창문에서 배우고, 한권의 도연명(陶淵明) 시를 베개에 기대어서 본다

數行楮岾當窓學(수행저점당창학)  一卷陶詩倚枕看(일권도시의침간)

 

3~4폭 = 沈應(심응) <寄邵德昻[기소덕앙]>

시를 통해 그림의 뜻을 전하는 왕마힐(王摩詰)이요, 배에 그림을 싣는 소리는 미사인(米舍人)이라네 

詩傳畵意王摩詰(시전화의왕마힐)  船載畵聲米舍人(선재화성미사인)

 

王摩詰(왕마힐) = 당나라 시인 王維(왕유, 701년~761년),     米舍人(미사인) = 송나라 문장가인 米芾(미불, 1051년~1107년)

 

5~6폭 = 許渾(허혼, 791년~854년) <遊錢塘靑山李隱居西齋[유전당청산이은거서재]>

숲이 구불구불하여 바둑 두는 것을 포기하고 바위 아래 샘물에서 술잔을 전한다.

林間度曲抛棋局(임간도곡0기국)  巖下分泉遞酒盃(암하분천체주배)

 

 

사리갖춤 = 舍利莊嚴具(사리장엄구) : 시대 = 統一新羅(통일신라) 8-9세기   출토지 = 傳 南原(전 남원)

남원 부근의 탑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하는 사리갖춤은 연꽃대좌 위에 방형투조함을 얹은 형태이다.

녹색 유리사리병은 함 내부에 안치되어 있었다.

투조, 선조, 주조 등 다양한 공예기술을 활용하여 만든 이 사리갖춤을 통해 통일신라의 빼어난 공예 수준을 살펴볼 수 있다.

 

 

사리갖춤 = 舍利莊嚴具(사리장엄구)

 

부처를 품은 그릇, 사리갖춤

사리는 본래 석가모니부처를 화장(火葬)하고 남은 유골을 의미한다. 부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사리를 보호하고

장엄하기 위한 사리갖춤은 보통 유리 · 금 · 은 · 동 · 돌 등으로 네 겹, 다섯 겹 장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방식은 시기에 따라 달랐으며, 부처의 사리 대신 불상, 불경, 보석등으로 대체하기도 하였다.

 

 

사리갖춤 = 舍利莊嚴具(사리장엄구)

 

 

사리갖춤 = 舍利莊嚴具(사리장엄구)

 

 

사리갖춤 = 舍利莊嚴具(사리장엄구)

 

 

    

 

사리갖춤 = 舍利莊嚴具(사리장엄구)

 

    

 

 

진리의 상징, 불상◈

불상은 미술품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불교의 예배 대상이다. 이 때문에 불상을 만들 때, 세속적 아름다움 보다는

불상이 가지고 있는 정신인 "불성(佛性)"을 얼마나잘 표현하였느냐가 중요하였다.

아울러 불교의 발전 정도에 따라, 불상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나 시각에 따라 불상이 각기 다른 모습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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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 금동판불(금동판불)  :  시대 = 三國時代 中 百濟 七 世紀 前半(삼국시대 중 백제 7세기 전반)

1960년 김제 대목리에서 발견된 것이다. 부처와 반가사유상을 본존으로 한 삼존상 2매, 사존상, 14존의 나한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래삼존상에는 다리가 있어, 판불이라기보다 판불을 만드는 틀로 추정하기도 한다.

 

 

    

부처와 반가사유상을 본존으로 한 삼존상

 

 

三尊像(삼존상)

 

 

十四尊의 羅漢像(14존의 나한상)

 

 

四尊像(사존상)

 

 

 

 

보살 = 塼 菩薩片(전 보살편) : 시대 = 삼국시대 중 백제 7세기 전반    출토지 = 益山 彌勒寺地 出土(익산 미륵사지 출토)

 

 

악귀 얼굴 =  塑造惡鬼像頭(소조악귀상두) : 시대 = 삼국시대 중 백제 7세기 전반    출토지 = 益山 帝釋寺地 廢棄場 出土(익산 제석사지 폐기장 출토)

 

 

    

천부얼굴 =  塑造天部像頭(소조천부상두) : 시대 = 삼국시대 중 백제 7세기 전반   

출토지 = 益山 帝釋寺地 廢棄場 出土(익산 제석사지 폐기장 출토)

「관세음응험기」에 따르면 제석사는 백제 무왕 40년(639년)에 전소되어 다시 조성하였다고 전하는데, 이는 실제 발굴조사에서 확인되었다.

한편, 제석사지에서 500m 떨어진 폐기장에서 발견된 이 소조상들은 639년 제석사 화재 때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부처 = 金銅佛立像(금동불입상)  : 시대 = 통일신라 9세기    출토지 = 익산 사자암 출토

 

 

약사불 = 金銅藥師佛立像(금동약사불 입상)  : 시대 = 통일신라 9세기    출토지 = 익산 사자암 출토

 

 

부처 = 金銅佛立像(금동불입상)  : 시대 = 통일신라 9세기    출토지 = 임실 성미산성 출토

 

 

부처 = 金銅佛立像(금동불입상)  :  시대 = 統一新羅 末 - 高麗 初(통일신라 말 - 고려 초)  출토지 = 김제 · 완주

부처 = 金銅佛立像(금동불입상)  :  시대 = 統一新羅  9세기(통일신라 9세기)         출토지 = 金堤 玉山里(김제 옥산리) 

부처 = 金銅佛立像(금동불입상)  :  시대 = 統一新羅 末 - 高麗 初(통일신라 말 - 고려 초)  출토지 = 전주 · 남원 

 

 

 

 

 

 

부처 = 純金製佛坐像(순금제불좌상) : 시대 = 고려 1361년   출토지 = 익산 원수리사지

익산 원수리에서 나온 이 순금 불상은 출토지가 명확한 고려 말 - 조선 초의 대표적인 불상이다.

뒷면에는「男善人 辛丑正月日金□□[남선인 신축정월일금□□」 이라는 명문이 있는데,

 여기서 신축은 불상 양식으로 미루어 1361년으로 여겨진다.

 

 

 

 

부처를 수호하는 신 = 金銅浮彫神將像(금동부조신장상) : 시대 = 高麗(고려),   출토지 = 益山 獅子庵 出土(익산 사자암 출토)

 

 

보살 = 靑銅菩薩 立像(청동보살 입상)  :  시대 = 고려,    출토지 = 익산 사자암 출토

 

 

부처 = 金銅誕生佛立像(금동탄생불입상) : 시대 = 統一新羅 末 - 高麗初(통일신라 말 - 고려 초)

 

 

향완 =  靑銅 香垸(천동향완)  :  시대 = 고려,     출토지 =  전주 화엄사 출토

 

 

傳 樂壽亭 銅鍾(전 낙수정 동종) : 보물  제1325호,   시대 = 고려,

이 범종은 일본인 다까하라 히미꼬 여사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소장해 오던 중 1999년 11월 국립문화재연구소를 통해 기증 · 반환한 것으로,

종을 매다는 용뉴 부분의 훼손이 있기는 하나 거의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종의 윗면은 수평에 가까우며, 어깨부분인 상대와 맨아래 부분인 하대에는 띠를 돌리고 그 안쪽으로 반원무늬와 덩굴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상대와 연결된 사다리꼴 모양의 유곽 테두리에도 덩굴무늬를 얕게 조각하였으며, 유곽 안에는 작은 꽃받침을 갖춘 유두가 돌출되어 있다.

종의 약간 아래쪽 2곳에 배치되어 있는 당좌는 종을 치는 부분으로, 이중원의 테를 두르고 그 안에 덩굴무늬를 장식하였다.

당좌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며 배치된 4개의 비천상은 구름 위에 꿇어앉고 두손을 모아 합장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 비천상은 다른 문양들보다 도드라지게 조각되어 있다.

종에 새겨진 기록이 없어 종의 제작년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형태와 문양 및 성분비율 등을 살펴볼 때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계승하여 고려 초에 제작된 범종으로 생각된다.

<문화제청의 글>

 

 

종을 매다는 용뉴 부분의 훼손

 

 

   

 

傳 樂壽亭 銅鍾(전 낙수정 동종) : 보물  제1325호,   시대 = 고려,

 

전 낙수정 출토 범종

종을 거는 용뉴(龍 鈕)와 음통(音筒)이 온전하지 않지만, 균형 있는 몸체와 당좌(撞座) 비천(飛天) 등의 장식무늬로 볼 때,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 초기의 범종으로 추정된다.

이 범종은 전주 낙수정(樂水亭, 현 전주시 완산구 교동)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며,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99년 다카하라 히미코(高原日美子[고원일미자])씨의 기증으로 70여 년 만에 고향 땅으로 돌아왔다.

 

 

    

 

진리의 소리, 범음구

범음구는 소리가 나는 악기로 흔히 네 가지 보배(사보,[四寶])라고 일컫어지는 범종(梵鐘) · 법고(法鼓) · 운판(雲板) · 목어(木漁)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범음구는 그 소리만 들어도 중생(중생)이 구제된다고 여겨 흔히 부처의 말씀에 비유된다.

 

 

 

 

 

    

龍紐 · 甬筒(용뉴 · 용통) : 시대 = 고려 12-12세기    출토지 = 부안 남포리

 

 

 

 

 

 

    

 

 

 

 

쇠북 = 靑銅金鼓(청동금고) : 시대 = 고려 12-13세기     출토지 = 扶安 南浦里(부안 남포리)

 

쇠북 = 靑銅金鼓(청동금고) : 시대 = 고려 12-13세기     출토지 = 扶安 南浦里(부안 남포리)

 

 

청자의자 = 靑磁透刻墩(청자투각돈) : 시대 = 高麗 十二 ~十三世紀(고려 12- 13세기)

 

 

백자 연꽃무늬 병 = 白磁陰刻蓮花文甁(백자음각연화문병)  :  시대 = 高麗 十二世紀(고려 12세기)

 

 

백자 연꽃무늬 병 = 白磁陰刻蓮花文甁(백자음각연화문병) 목부분 정밀

 

 

    

백자 연꽃무늬 매병 = 白磁陰刻蓮花文梅甁(백자음각연화문매병)  :  시대 = 高麗 十二世紀(고려 12세기)

 

 

백자 연꽃무늬 매병 = 白磁陰刻蓮花文梅甁(백자음각연화문매병)  :  시대 = 高麗 十二世紀(고려 12세기)

 

 

청자  연꽃무늬 매병 = 靑磁陰刻蓮花文梅甁(청자음각연화문매병) =  시대 =  高麗 十二世紀(고려 12세기)

 

 

청자연꽃무늬 붓꽂이 = 靑磁透刻蓮花唐草文筆架(청자투각연화당초문필가) : 시대 =  高麗 十二世紀(고려 12세기)

고려시대의 청자 붓꽂이는 남아 있는 사례가 적은데 이처럼 투각 기법으로 장식한 경우는 더욱 귀하다.

연꽃 넝쿨을 매우 정교하고 입체적으로 표현한 이 붓꽂이는 전성기 고려청자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백자 연꽃무늬 잔 = 白磁陰刻蓮花文盞(백자음각연화문잔) : 시대 = 高麗 十二世紀(고려 12세기)

 

 

청자 잔과 잔받침 = 靑磁托盞(청자탁잔) : 시대 = 高麗 十二~十三世紀(고려 12~13세기)

 

 

청자 잔과 잔받침 = 靑磁托盞(청자탁잔) : 시대 = 高麗 十二~十三世紀(고려 12~13세기)

 

 

청자 잔과 잔받침 = 靑磁托盞(청자탁잔) : 시대 = 高麗 十二~十三世紀(고려 12~13세기)

 

 

 

고창 용산리 가마

고창 용산리(龍山里) 자기 가마에서는 15세기에서 16세기 초에 제작된 분청사기, 백자, 육유자기 등이 출토되었다.

분청사기는 내섬시(內贍寺)나 예빈시(禮賓寺) 같은 중앙 관청에 납품할 정도로 양질의 것이었으며,

연질(軟質) 과 경질(硬質)이 혼재된 백자 역시 관요 자기양식의 영향을 받은 상급이었다.

 

 

 ◈왕궁리 오층석탑

석탑 1층 지붕돌 중앙에 뚫린 2개의 네모난 구멍(舍利孔[사리공])에서 사리갖춤과 금강경판 등이 발견되었다.

기단 내부 심초석(心礎石)에 "品(품)"자로 뚫린 3개의 구멍에서는 금동불(金銅佛), 방울 등이 확인되었다.

<전주박물관의 글>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갖춤◈

益山 王宮里 五層石塔 舍利莊嚴具(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 국보 제 123호    시대 = 통일신라

마한의 왕궁이 있던 자리로 알려진 터에 있는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을 보수하기 위해, 1965년 해체하면서 탑을 받치고 있던

기단부와 1층 지붕돌 윗면에서 발견된 유물들이다. 발견된 유물들은 백제에서 고려에 이르는 여러시기의 것이다.

기단부 윗면에 品자형으로 뚫린 3개의 구멍 중 동쪽에서는 광배와 대좌를 갖추고 있는 청동여래입상 1구와

불교 의식 때 흔들어 소리를 내던 청동요령 1개가 나왔고, 북쪽구멍에서는 향류(香類)가, 또 다른 구멍은 이미 도굴된 상태였다.

1층 지붕돌 윗면 중앙에 뚫려있는 2개의 구멍에서는 각각 연꽃 봉오리모양의 마개가 덮혀있는 녹색의 유리사리병과

금강경의 내용을 19장의 금판에 새긴 다음 접어서 2개의 금줄로 묶은 순금금강경판이 있었다.

이 유물들은 모두 2중으로 된 상자(합)안에 안전하게 들어 있었다. 바깥쪽의 외합은 단순히 내합과 유물들을 보호하기 위한

기능으로 장식도 없고 칠도 벗겨져 있었다.  녹색의 사리병이 들어 있었던 내합은 뚜껑 윗면에 반쯤 핀 연꽃 봉오리와

주변에는 구슬무늬를 새겨 넣었고, 금강경판이 들어있던 내합은 뚜껑 윗면에 손잡이로 금고리를 달고

국화 문양을 새긴 것으로 모두 도금 상태가 완전하였다.

<문화재청의 글>

 

益山 王宮里 五層石塔 舍利莊嚴具(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 국보 제 123호    시대 = 통일신라

사리내함

 

 

益山 王宮里 五層石塔 舍利莊嚴具(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 국보 제 123호    시대 = 통일신라

舍利甁(사리병) = 사리병은 녹색 유리로 제작하였으며

 

 

사리병 받침인 하단 장식부분 정밀하게

 

 

舍利內函(사리내함) = 사리내함은 순금으로 만들었다.

 

 

舍利甁과 舍利內函(사리병 · 사리내함)  :  국보 제 123호,     시대 = 三國時代 中 百濟 七世紀 前半(삼국시대 중 백제 7세기 전반)  

            출토 = 益山 王宮里 五層石塔(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부처의 유골을 의미하는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용기이다.

불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리를 담는 용기였던 만큼 사리병은 녹색 유리로 제작하였으며, 사리내함은 순금으로 만들었다.

 

 

사리내함의 상단 연꽃장식 정밀하게

 

 

    

 

益山 王宮里 五層石塔 舍利莊嚴具(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 국보 제 123호    시대 = 통일신라

 

    

 

 

益山 王宮里 五層石塔 舍利莊嚴具(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 국보 제 123호    시대 = 통일신라

 

부처 = 金銅佛立像(금동불입상) : 시대 = 後百濟 1十世紀 初(후백제 10세기 초)

왕궁리 오층석탑을 1965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사리갖춤과 이 불상이 발견되었다.

불상은 심초석 위에서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불사리 개념으로 안치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부처 = 金銅佛立像(금동불입상) : 시대 = 後百濟 1十世紀 初(후백제 10세기 초)

 

 

부처 = 金銅佛立像(금동불입상) : 시대 = 後百濟 1十世紀 初(후백제 10세기 초)

왕궁리 오층석탑을 1965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사리갖춤과 이 불상이 발견되었다.

불상은 심초석 위에서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불사리 개념으로 안치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益山 王宮里 五層石塔 舍利莊嚴具(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 국보 제 123호    시대 = 통일신라

방울 = 靑銅鈴(청동령) : 시대 = 後百濟 1十世紀 初(후백제 10세기 초)

 

 

益山 王宮里 五層石塔 舍利莊嚴具(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 국보 제 123호    시대 = 통일신라

유리구슬 = 琉璃 玉(유리 옥)  :  시대 = 삼국시대 중 백제 7세기 전반

 

 

益山 王宮里 五層石塔 舍利莊嚴具(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 국보 제 123호    시대 = 통일신라

舍利外函(사리외함)  :  삼국시대 중 백제 7세기 전반

 

 

銀製鍍金 金剛經板(은제도금 금강경판) :  국보 제 123호,     시대 = 三國時代 中 百濟 七世紀 前半(삼국시대 중 백제 7세기 전반)  

출토 = 益山 王宮里 五層石塔(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금강경판은 종이에 불경을 쓰는 사경과 달리 금속판에 글자를 새긴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 순금으로 알려진 왕궁리 오층석탑 출토 금강경판은 과학적 조사결과 은판 위에 금도금한 것으로 밝혀졌다.

 

 

金剛經板函(금강경판함) : 시대 = 삼국시대 중 백제 7세기 전반

 

 

    

銀製鍍金 金剛經板(은제도금 금강경판) :  국보 제 123호,     시대 = 三國時代 中 百濟 七世紀 前半(삼국시대 중 백제 7세기 전반)  

출토 = 益山 王宮里 五層石塔(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금강경판 내함=

 

 

銀製鍍金 金剛經板(은제도금 금강경판) :  국보 제 123호,     시대 = 三國時代 中 百濟 七世紀 前半(삼국시대 중 백제 7세기 전반)  

출토 = 益山 王宮里 五層石塔(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金剛經板函(금강경판함) : 시대 = 삼국시대 중 백제 7세기 전반

 

 

銀製鍍金 金剛經板(은제도금 금강경판) :  국보 제 123호,     시대 = 三國時代 中 百濟 七世紀 前半(삼국시대 중 백제 7세기 전반)  

출토 = 益山 王宮里 五層石塔(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金剛經板函(금강경판함) : 시대 = 삼국시대 중 백제 7세기 전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