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북도 = 心 산사 길없는길

2017. 3. 19. 진안 마이산 금당사

백련암 2017. 3. 24. 23:02

마이산 금당사

금당사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서기 650년(백제 의자왕 10년) 고구려에서 백제로 건너온 보덕(普德)화상의 제자 중 한사람인

무상(無上)스님이 그의 제자인 금취(金趣)스님과 함께 세웠다고 하는 설입니다.

처음 금당사가 자리잡은 위치는 지금보다 약 1.5km 떨어진 곳이었으며, 그래서 예전 자리를 고금당(古金塘) 혹은 자연동굴을 법당으로 삼았으므로

혈암사(穴巖寺) 또는 금동사(金洞寺)로 불렀다고 합니다. 금당사에서 반대편 산을 바라보면 금색으로 칠한 암자가 보이는데  이곳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675년(조선 숙종 1년)경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합니다.


또 다른 창건설은 814년(현덕왕 6년) 중국의 혜감(惠鑑)스님이 창건했다는 설입니다.

한때는 제법 규모가 큰 사찰로 여러 차례의 중건 및 중수를 거쳤는데, 한때 고려의 고승 혜근(혜근, 1320년 ~ 1376년)스님도 이곳에 머물며 수도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쇠락하였으나 167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중창하였다. 그 뒤 1978년에는 명부전, 1987년 산신각, 

1990년 극락전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대웅전은 약 300여 년 전에 건립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인데 나한전에 봉안된 6척의 목불좌상(木佛坐像)은 동구나무로 만든 것으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18호로 지정되어 있고, 너비 5m, 길이 9m의 괘불(掛佛)은 보물 제 126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봄단장이라할까?  자리배치 중이라할까?  공사에 바쁜 금당사 전경



金塘寺 石塔(금당사 석탑) : 전북 문화재자료 제 122호     시대 =

금당사 경내에 있는 탑으로, 현재 남아있는 부재들로 보아 5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단부(基壇部)는 가운데돌이 없어져 다른 돌로 대신하였으며,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올렸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 놓인 머리장식은 후에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규모가 작은 탑으로, 제작양식이나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金塘寺 石塔(금당사 석탑) : 전북 문화재자료 제 122호     시대 =



금당사 전경



대웅보전과 극락전



대웅보전과 탑 그리고 地藏殿(지장전)



地藏殿(지장전)



地藏菩薩(지장보살)



지장전 내부엔 지장보살과 감로탱 그리고 신중탱이 좌우에 있다



地藏菩薩(지장보살)



감로탱엔 넘실대는 파도 속에서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이 망자들을 용화선에 태워 인도하고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지장전에 모셔져 있는 신중탱



大雄寶殿(대웅보전) 옆면



大雄寶殿 懸板(대웅보전 현판)





大雄寶殿(대웅보전) 정면



대웅보전에 모셔져 있는 삼존상



金塘寺木佛坐像(금당사목불좌상)  :  전북 유형문화재 제 18호    시대 =

중국의 승려 혜감(慧鑑)이 814년에 창건한 사찰로 전해지는 금당사에 있는 불상으로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한 삼존불상이다.

본존불은 사각형의 평판화된 얼굴에 비교적 당당한 체구이며, 양 손을 들어서 엄지와 약지를 맞대고 있어 아미타불을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둥글게 움추리고 있는 어깨와, 도식화된 옷자락 표현에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이 잘 드러나고 있다.

좌 · 우 보살은 복잡한 보관(寶冠)이나 가슴의 구슬장식, 두 손에 잡은 연꽃가지 등 장식적 요소를 제외하면 본존불과 흡사하다.

이 불상은 둥근맛 나는 양감과 온화한 얼굴표정으로 보아 적어도 17세 후반기에 제작된 상당한 수준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鎭安 金塘寺 木佛坐像(진안 금당사 목불좌상)

전라북도 진안군에 있는 금당사의 목조 불상이다.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의 유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었다.


중국의 승려 혜감(慧鑑)이 814년에 창건한 사찰로 전해지는 금당사에 있는 불상으로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한 삼존불상이다.

본존불은 사각형의 평판화된 얼굴에 비교적 당당한 체구이며, 양 손을 들어서 엄지와 약지를 맞대고 있어 아미타불을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둥글게 움추리고 있는 어깨와, 도식화된 옷자락 표현에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이 잘 드러나고 있다.

좌 · 우 보살은 복잡한 보관(寶冠)이나 가슴의 구슬장식, 두 손에 잡은 연꽃가지 등 장식적 요소를 제외하면 본존불과 흡사하다.

이 불상은 둥근맛 나는 양감과 온화한 얼굴표정으로 보아 적어도 17세 후반기에 제작된 상당한 수준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신중탱



신중탱



極樂殿(극락전)



아미타불 탱화가 모셔져 있는 극락전

좌우로 문수 · 보현보살 탱이 모셔져 있다.



청사자를 타고 지혜의 검을 들고 있는 문수보살



흰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보살







극락전 아미타불 탱화 옆으로 보물인 금당사 괘불탱과 사리함이 모셔져 있다.







三聖閣(삼성각)



七星撑(칠성탱)



龍王撑(용왕탱)



山神撑(산신탱)



괘불탱전



金塘寺掛佛幀(금당사괘불탱)  :  보물  제1266호     시대 = 조선

화면 가득 화려하게 장엄된 여래를 단독으로 그린 괘불인데,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할 때 법당 앞 뜰에 걸어 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이 괘불은 길이 8.70m, 폭 4.74m의 관음보살 입상으로 광배의 끝부분은 화려한 색을 이용하여 불꽃무늬를 표현하였고,

불꽃무늬 안에는 좌우에 각각 작은 불상을 10구씩 두었다. 머리에는 수많은 부처의 얼굴이 있는 보관을 쓰고 있으며, 그 좌우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다.

이목구비는 작게 표현되었고,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크게 그려졌다. 연꽃 가지를 들고 있으며, 화려한 장식과 문양의 옷 모습이 화면을 압도한다.

채색은 주홍색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녹색과 분홍색, 흰색을 이용하여 은은한 분위기를 표현하였다.

숙종 18년(1692)에 화가 명원(明遠) 등 4인이 그린 이 괘불은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은은한 무늬와 색상이 17세기 후반 불화의 모습을 잘 표현하여

통도사괘불탱화 및 무량사미륵불괘불탱화 등과 함께 장엄형 괘불탱화의 최고 걸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상반신 부분)



<상반신과 하단의 것은 문화재청 펌 사진>



金塘寺掛佛幀(금당사괘불탱)  :  보물  제1266호

전라북도 진안군, 금당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탱화이다. 1997년 8월 8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266호로 지정되었다.

이 그림은 넓은 천 가운데에 커다란 관세음보살상을 두고, 그 둘레에 작은 보살상 이십 구를 배치한 것이다.

괘불탱은 야외에서 큰 불교행사가 있을 때 걸어 두고 예배를 드리던 그림인데, 이 괘불탱은 가로 5m, 세로 9m이다.

조선 숙종 8년(1682년)에 명원 · 조지연 등이 그렸다. 둥근 얼굴에 근엄한 표정, 당당한 자세로 서 있는 관세음보살상에는 갖가지 화려한 무늬가 수놓아져,

뛰어난 표현기법을 엿볼 수 있다. 보살상의 배치 또한 특이하여 불교문화의 귀중한 유물로 평가된다.

옛날부터 가뭄이 계속될 때 이 탱화를 꺼내어 걸어 놓고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렸다고 전한다.





경내에 있는 삼층석탑



대웅보전앞에서 바라보면 저 앞산 너머에 있는 절이 보인다. 무슨 절집인지는 모르겠다.

이름도 알수없는 저 절 집이 매우 아름답다.






金堂靈地(금당영지)란 표지석이 경내에 세워져 있다.



범종각이 아직 없어 마당에 법고가 놓여있다.



鎭安 金塘寺 石塔(진안 금당사 석탑)  : 전북 문화재자료 제 122호

금당사 경내에 있는 탑으로, 현재 남아있는 부재들로 보아 5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단부(基壇部)는 가운데돌이 없어져 다른 돌로 대신하였으며,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올렸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 놓인 머리장식은 후에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규모가 작은 탑으로, 제작양식이나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글>


鎭安 金塘寺 石塔(진안 금당사 석탑)  : 전북 문화재자료 제 122호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금당사에 있는 석탑이다. 1986년 9월 8일 전라북도의 문화재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연못 가운데 자리한 이 석탑은 남아 있는 부재로 보아 본래 오층탑이었던 것으로 여겨 진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석탑이 크게 파손되었으나, 숙종(1674~1720)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고쳐 세웠다.

받침부 중간에 놓인 돌은 원래의 것이 아니며, 꼭대기 부분 역시 없어진 것을 후대에 만들어 놓았다.


이 지방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소형 석탑으로, 구조나 제작수법을 보아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1300년의 전통을 지닌 금당사는 원래 열반종 계통의 절이었으나 지금은 조계종에 속해 있으며,

고려말 나옹스님이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고 한다.


※현재 연못에서 나와 대웅보전 앞에 설치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연못 가운데 있던 탑이 있을 당시에 건너가는 다리이다. 이 다리를 건너면 미륵불이 모셔져 있다.

지금은 연못이 축소되어 있다.



미륵불 조성 방명비 옆면



미륵불 조성 방명비 정면



    

龜趺(귀부)와 螭首(이수)의 모양



미륵불 조성 방명비



연못 옆에 있는 미륵존불











감로수









금당사의 역사이야기



사슴벽화



거북이 벽화



학벽화



보리수 성수아래 길상초 풀잎을 깔고 신명바친 육년고행 샛별을 보고 성불했네...







도솔천 내원궁에 호명보살 계시다가 마야부인 태몽중에 백상타고 하강하네...



미륵불과 가섭존자



쌍림열반상



녹야원 전법상



수하항마상



설산수도상







비천 동자상



비천 동자상



유선출가상



사문유관상



연등불과 선혜수행자



一柱門(일주문)

진안 탑사와 금강사 그리고 은수사  세절을 가려면 이 일주문을 통과해야  한다.